일본 문학을 즐겨 본 사람들이라면 궁금해 할 것 같은 잡상식 하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상표명 '칼모틴'이라고 하는 약품인데, 이것은 진정, 수면작용이 있는 약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인간실격에서 주인공 오바 요조가 칼모틴을 구해달라고 부탁한 것과

금각사의 주인공 미조구치가 금각사 방화를 저지르기 전 자살용으로 쓰려고 칼과 함께

센본이마데카와 니시진 경찰서 근처 약국에서 100정짜리 한 상자를 당시 돈으로 100엔에 산 물건 중 하나다.


오늘은 이것에 대해 아주 길게 글을 써 보겠다.


칼모틴의 주 성분은 브롬발레릴요소(ブロムワレリル尿素)로, 브로민 계통의 약물이다.

악취가 심하며 자극적이기 때문에 복용도 어렵지만 대체할 물질이 없어서 그대로 사용되었다.

일본에서는 타케다 제약회사가 처음으로 이것을 칼모틴(カルモチン) 이라는 상표명을 붙여 판매하였다.


이것이 바로 시중에 판매된 칼모틴이다.

저 100정짜리 한 상자가 아마도 금각사에 나온 문제의 그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사진은 일본군 군의관이 사용한 구급상자의 내용물 일부로 세월의 무게로 변색된 것도 있지만

브로민 성분의 특성상 승화(기체로 변하는 현상)되어 알약과 병이 변색된다고 한다.


1907년 처음으로 합성된 수면제인데 이미 과다복용으로 사망 사례가 나타나 위험성이 지적되었지만

대체할 물질이 없어서 계속 쓰이다가 바르비투스산 계열이라는 새로운 물질이 대중화되면서 시장성을 잃는가 싶더니


바르비탈 역시 마약성 진통제 겸 수면제였다. 부작용이 덜하고 자극적인 브로민계 약물에 비하면 거부감이 덜해 보이지만

사용 시 내성이 생기며 이 역시 남용하면 과다복용으로 사망한다는 점은 칼모틴이나 이거나 그게 그거이기 때문이다.


의문의 자살로 유명한 문호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음독자살에 사용된 것도 이 바르비탈이었다.(상표명 베로날)

예전에는 칼모틴 자살설이 있었지만 현재는 바르비탈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다자이 오사무 역시 칼모틴 과다복용으로 내연녀와 동반자살을 시도했다가 본인만 살아남은 적이 있었다.


칼모틴은 이처럼 음독자살 용도로 남용된 일이 엄청나게 많이 있었다.

심지어 일본제국 치하의 조선, 만주국에서도 판매되고 있었으며

가격도 당시 기준으로도 저렴해 모리시타 인단과 함께 일본인, 조선인, 중국인 다들 애용한 물건이었다.

수면의 목적이 아닌 자살을 목적으로 사용한 인간도 부지기수였다.


현재의 서울인 경성부에서도 수면제 먹고 자살한 사람이 있었다면 십중팔구 칼모틴이었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이며 1932년부터 1934년까지 갑작스럽게 자살인구가 폭증했는데

절반 이상의 사망자의 사망 원인도 칼모틴 과다 복용으로 인한 죽음이었다.


이처럼 칼모틴은 손에 넣기도 쉽고 동네 약국에서도 버젓이 팔던 물건이었다.

심지어 이것을 진통제, 감기약의 목적으로도 사용한 일까지 있을 정도로 그만큼 일본인들에게는 일상화된 물건이었다.

하긴 필로폰이라는 위험한 물건이 버젓이 판매되고 사용되던 시절이니 어련하겠는가.


그래도 필로폰 같은 마약류는 GHQ의 통제하에 전부 금지되었으나 칼모틴은 여전히 규제를 받지 않고 버젓이 팔려나갔다.

이것이 조금씩 문제의식이 생겨난 것은 다름아닌 1950-60년대에 들어와서야 지적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유난히 중, 고, 대학생 등 청년 자살 사건이 갑자기 사회문제가 되었었는데

절대 다수의 사망원인도 칼모틴 과다복용이었다.


결국 1960년대에 와서야 과다복용, 중독성이 적은 벤조디아제핀계 수면제가 개발되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칼모틴은 브롬발레릴요소를 1정당 500mg 이상 함유하고 있었기에 강력한 수면제였지만 부작용도 강했기 때문이다.

결국 규제를 받아서 처방전 없이는 조제, 판매가 금지되어 칼모틴은 단종되어 고대유물로만 존재한다.

1965년부터는 감기약에 첨가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미국 FDA에서는 브로민계 화합물에 대해 의약품으로서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에서는 약국에서 버젓이 브롬발레릴요소가 포함된 약물이 판매되는 실정이다.

옛날부터 번개탄처럼 자살로 악용되는 일이 많다보니 일본에서도 엄청난 사회문제를 낳았으며

칼모틴이 결국 사회문제로 단종되어 시장에서는 사라졌으나 이것이 들어간 약품은 여전히 규제 하에 판매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규제라는 것조차도 우리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브롬발레릴요소가 포함된 약품은 1인당 1포 구매제한이 있으며 미성년자 구매시에만 신원조사가 이루어지는 게 규제의 전부이다.

브롬발레릴요소를 3정당 250mg 함유하고 있지만 '수면제'가 아니라 '진정제' 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웃트


이부프로펜과 에텐자미드, 그리고 브롬발레릴요소는 2정당 200mg 함유한 두통 치통 생리통엔 나론에이스


이 약물들은 의사의 처방 없이 구매가 가능하며 1인 1포제한으로 구매하는 것이 규제의 전부인 실정이다.

일본 국내의 의약전문가들조차 '어째서 FDA에서 사용금지한 물질을 의약품으로 버젓이 사용하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치명적인 물질의 반수치사량은 20g-30g 정도이며,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물질 때문에 목숨을 끊거나 잃었던 만큼

현재로서는 부작용도 더 적고 효과도 더 좋은 대체 물질이 많음에도 일본에서는 여전히 처방 없이 구매가 가능한 실정이다.

당시보다는 함량이 더 줄었음에도 말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한국에서는 왜정시대 때 판매된 기록 말고는 해방 후에 이 약물이 사용된 기록이 없다는 점은 다행이다.


만약 대한민국이었다면 볼 수 없는 광경일 가능성이 높다. 우유주사로 유명한 프로포폴이 오남용으로 엄청난 논란과 악명을 낳았으며

그 때문에 강력한 규제에 희생되어 정작 올바른 사용처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