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쯤 우리 집 근처에 새로생긴 국밥 집이 문을 열었다.

승전보 국밥이라는 이상한 이름이었지만, 요즘들어 다른 국밥집들이 초심을 잃고 '마라국밥'이니 '짬뽕국밥'이니 내놓던터라 사람이 꽤나 몰려들었다.

나도 그 중 하나였고, 첫맛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포장해서 냉장고에 넣어두니 뽀얗고 하얀 국물이 젤리처럼 굳어 아주 쫀득해 보이는게 나의 식욕을 자극시켰다.


오픈 첫 한 달 동안 국밥에서 바선생이 나왔으니, 식당에 쥐가 돌아다녔느니, 갑자기 알바가 미쳐서 뚝배기로 손님을 후려쳤다더니 하는 사소한 사고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그렇게 한 1년 쯤 꾸준히 얼굴 도장을 찍고, 단골들도 오픈 1주년을 축하하며 좋은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는데 최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사건의 발단은 지역신문 인터뷰가 나가고 나서였다. 
국내 최대 체인 퍼렁국밥에 자극받은건지, 아니면 1주년을 찍고 정점을 찍은 매출에 눈이 돌아간 것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주방 이모가 우리집도 개고기 삶을 거라면서 갑자기 개장수 왕씨 아저씨를 불러다가 앉혀두고 계약서를 쓰더라.


가게 오픈 1년 3개월 만에 이제부터 돼지고기에 개고기 섞어서 팔 거라는데 본인은 이게 씽크빅이라면서 브레이크 댄스추고 난리도 아니다.


왕씨 아저씨가 샘플로 가져온 고기는 딱봐도 냉동실에 한 3년 묵혔다가 꺼낸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보랏빛이 감도는게 맛탱이가 이미 가버린 것 같다.


주방 이모는 신이나서 신메뉴의 이름을 '렘밀리아람'이라는 아방가르드한 이름으로 지을거라고 한다.
도대체 무슨 국밥인지 감도 안 잡힌다.


아무래도 지금 이 가게를 당장 나가야 하는걸까...?


단골 손님들 대부분은 뜯어말리는데 몇몇 틀딱이 
'개고기 국밥!!! 바로 그거지!! 완씨 손두부 집도 그렇게 성공했다고!!'
라면서 괜찮다고 하질 않나


몇몇 아지매들은 
'에이 괜찮어~ 개고기 수육이나 개고기 순대도 아닌데 뭘~'
'정 싫으면 주문할 때 빼달라고 하던가?'

라며 두고보잔다.


그런 와중에 이 가게 사장님이 원래 개고기 전문점에서 일한 적이 있다느니 오픈 장사 때 반짝했으니 이제 주식 상장을 할거라느니 하는 흉흉한 소문도 같이 돈다.


이게 맞나???
아직 가게에서 석박지도 제대로 못담구는 주제에 AI가 미래라고, AI가 담근다는 김치 공장에서 매일 사오고 있고
기본적인 밑반찬도 3~4가지 밖에 없어서 부실한 주제에 개고기라니....


아닐 것이다... 아닐 것이다...


그래.... 이건 모두 나쁜 꿈이야. 더러운 악몽일 것이다.


저 앞의 뚝배기로 내 뚝배기를 내리치자 그럼 깰 수 있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