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나. 자네의 전초기지에 가게 된 니케가 있어서, 소개해주려고 불렀네."
부사령관실. 앤더슨은 보는 사람까지 속이 시원해질 것 같은 건치미소를 하며 말했다.
저런 표정을 자주 짓는 사람이 아닌데.
누가 봐도 기분이 좋아보이는 그의 옆에는...
"야, 뭘 봐? 너. 그리고 너.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안 해!?"
슈엔이,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람을 열받게 만드는 표정을 만드는데 특화된 눈매와 입꼬리, 그리고 배를 드러내는 특이한 복장. 마지막으로 자그마한 신장까지.
'생전' 모습과 상당히 닮았다.
"뭐, 뭐야. 이게 뭐하는 짓거리야!? 당장 손 안 떼...!! 으긋, 아악...!"
턱 아래 한 손을 집어넣고 양 볼을 가볍게 짓누르자 톡톡 튀는 반응이 돌아온다.
작디 작은 주먹을 휘둘러보려고 하지만 어깨를 흠칫거릴 뿐. 이제 그녀는 그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다.
이렇게, 꽉 쥐어도.
얼굴을 찌뿌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흠. 들뜬 건 이해하네만... 여긴 부사령관실일세. 소유물에 훈계를 행할 장소로 적합하다곤 할 수 없겠지."
"누가 이 새끼 소유물이야!!!? 병신 집단 병신 대가리 주제에! 야, 너...!"
악물린 이빨 사이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앤더슨은 그런 슈엔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내게 고개를 돌렸다.
"방금 일을 그냥 넘어가는 대신,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나?"
"넵."
누구 말씀이라고 거부할까. 곧바로 대답하자 앤더슨은 팔짱을 풀고 어깨를 풀기 시작했다.
"자네의 소유물에게... 약간의 충돌이 있을 예정인데 혹시 '무슨 일이 있어도 입 하나 벙긋하지 말고 가만히 서있어라'고 저것에게 명령해줄 수 있겠나?"
"감히, 감히..! 아가리 열지 마. 죽여버릴거야. 개새......"
"입 닫아."
"읍, 으으읍!!! ...!"
명령이 내려지기 전에 도망치려는지 자수정 같은 눈동자가 이리저리로 데굴거린다. 그러다 내 뒤의 문으로 시선이 고정되더니.
"그 상태로 멈춰. 무슨 일이 있어도 더 이상 움직이지 마라."
도망가려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 유쾌한 피사체를 본 우리는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하하하하핫!!"
"하하! 이거, 자세까진 주문하지 않았는데."
"서비스입니다."
"고맙네."
하나, 둘.
셋-을 셀 것도 없이 앤더슨의 흉터 투성이의 손이 어퍼컷을 쳐올리듯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진다.
-뻐거억!
두꺼운 제복 위로도 앤더슨의 근육이 도드라질 정도라, 나는 잠깐 몸서리를 쳤다.
"후. 비전투용 니케는 이런 느낌이었군. 고맙네, 지휘관. 마침내 원수를 갚은 것 같아 기쁘군."
나는 기억한다.
탄핵 직전까지 몰린 슈엔이 어떤 미친 짓을 저질렀는지.
유사 랩처를 만들어 온 방주에 뿌렸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방주에 기어들어온 이유는 지휘관들과 타 기업 니케, 중앙 정부의 무능 탓이라고 대중들을 선동하여 방주의 기능을 마비시켰다.
그리고 슈엔은 패닉에 빠진 방주에서 유일한 구원자인 척, 선구자인 척 나타나려고 했다.
하지만 유사 랩처는 폭주해버렸다. 슈엔에겐 그것들을 통제할 수단이 없었다.
그 결과, 방주는 약 한 달간 수많은 희생을 거쳐야했고.
앤더슨과 나 역시, 희생해야 할 것이 있었다.
문득, 이제는 다시 듣지 못할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가 귀에 아른거렸다.
-으드득...
이 가는 소리.
그래.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니다.
절대적인 방호를 자랑하는 방주의 내부에서 일어난 재앙.
그 배후에 슈엔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을 때, 앤더슨은 부러진 잇조각을 회의 도중 뱉어내었었다.
나는 기억한다.
책상 위에 놓인 잇조각을 바라보며 그가 지었던 표정을.
"한 일주일 빌려드립니까?"
내 질문에 앤더슨은 한 쪽 눈썹을 살짝 까딱이더니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평소와는 다른, 격앙된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지휘관."
"넵."
"저것은 전투용이 아닐세."
"..."
"어떠한 효용을 얻기 위함도 아니요, 어떠한 역할이 있는 것도 아닐세."
새로 생긴 흉터들이 부르르 떨린다. 나는 가만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처벌용일세. 알고 있겠지?"
"넵."
"절대 잊지 말게... 자네가 니케를 많이 아낀다는 것을 알고 있네. 하지만 저것에게 정이 들거나 한다면...."
"부사령관님."
그는 내 표정을 보고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미안하네. 실언이었어."
"이만 가보겠습니다."
"잘 가게."
부사령관실을 나와 전초기지로 가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을 지나, 마침내 전초기지.
"....저건가."
"슈엔이지? 저거."
"흠... 잘 됐네."
".....결국 왔네."
전초기지에 자리를 잡은 수많은 니케들의 눈초리가 쏟아진다.
특히나, 에피넬의 눈길이 걸린다. 그녀를 따르던 아이들의 피뭍은 옷가지를 쥐며 울부짖던 에피넬이 기억난다.
하지만 그녀도 이내, 고개를 돌린다.
복수에도 순번이 있었다.
"들어가."
커맨드 센터.
그 안에는 수많은 양산형 니케들이 적의와 증오가 끓어오르는 눈으로 슈엔을 노려본다.
"■■■■■!!! ■■■■, ■□■■..."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한 명이 하나밖에 없는 다리로 바닥을 박차며 기어왔다. 그녀는 양팔이 없는 탓에 한껏 등을 곧추세워 슈엔의 종아리를 깨물었다.
-으즈즈저어억......
"끄으읏...!?!! 읍, 으읍읍읍!! 으크으으읍!!!!!!"
생긴게 효율적이지 않다며 슈엔의 독단으로 기존의 사지 파츠를 단종한 탓에 뒷골목에서 팔, 다리 없는 장난감으로 구르다 구출된 양산형 니케.
나는 용도에 맞지 않는 학대로 망가져 노이즈 밖에 내지 못하는 그녀를 조용히 안아들어 침대에 누였다.
다시 말하지만, 순번이 있다.
"...그래. 마침내..!"
-짜아악!!
지휘관실에 들어가자, 그 안에 있었던 아니스가 힘껏 슈엔의 뺨을 때렸다.
"지휘관. 저 안쪽이야."
"그래."
"네온은.. 잉그리드 님이 데리고 갔어. 더 보고 있기 힘들다고. 품 안에 있으면 안 봐도 된다면서. 그 여자도 참 웃기지..."
아니스는 비척거리며 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아마도 커맨드 센터의 몸 불편한 니케들을 돌보려는 것이겠지.
"...안녕? 슈엔."
그리고 마침내.
나는 복수자에게 도달했다.
"지휘관."
"응."
"정말, 정말 유니 먼저 해도 돼?"
그토록 원하던 복수를 앞둔 유니.
의외로 그녀의 표정엔 흥분도, 기쁨도, 하다못해 슬픔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증오.
질척하게 흘러내리는 폐기름 같은 증오가 눈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만 같다.
난 핑크색 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난 이미 하고 왔어."
"그래.. 그렇구나아."
유니는 내 손에 자신의 머리를 문지르다가, 내게 안겼다.
"있잖아."
"응."
"유니는 라피를 이미 용서했어."
"그랬니?"
"응... 유니, 이제 라피가 밉지 않아."
"라피가 좋아하겠네."
공허하다.
하지만, 내가 자처했다.
내가 저것의 처벌이 되겠노라고, 우리의 전초기지를 저것의 고문장이자 형장으로 삼으라고 주장했다.
저 작은 아이가 혀로 자신의 머리를 굴려 전초기지까지 와서, 거래하자고 했으니까.
나는 맹세할 수밖에 없었다.
복수를 하게 해주겠다고.
"지휘관, 슈엔에게 명령해줘."
"듣고 있어."
유니는 스륵, 내 품에서 벗어나 슈엔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몸에서 힘 빼."
"몸에서 힘 빼."
슈엔의 온 몸이 축 늘어진다. 하지만 꼿꼿한 자세만큼은 그녀의 고집을 보여주듯 그대로였다.
-으득, 으득!
유니는 슈엔의 가느다란 양 팔을 차례로 꺾어 손이 날개뼈에 닿도록 잡아당겼다.
"팔 고정."
"팔 고정."
보통 사람에겐 불가능할 자세. 하지만 명령에 철저히 따르는 니케의 신체가 이를 가능케 했다. 그러나 무리한 자세엔 부하가 오는 법.
분명 뼈가 갈리고 근육이 끊어지는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겠지.
"다리는... 게다리."
"게다리 자세."
무릎이 양 옆으로 벌어지고 허벅지 안쪽이 활짝 펼쳐져 하얀 속살을 내보인다. 유니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슈엔의 옷을 벗겼다.
몇 번의 손길이 지나자, 가린 곳 없는 가느다란 나신이 드러난다.
동시에 슈엔의 눈에도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입, 이제 열어도 좋아."
"입.."
"당장 안 풀어!!!!"
반항심 가득한 외침이 지휘관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럼에도 유니는 공허한 눈으로 슈엔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 마조년은 이미 뒤지고 없거든? 나한테 찾아봐야 아무것도 없어, 알아!? 야, 야야야 너. 이거 당장 풀어. 감히 개같은 것들이. 장난감이 주제를 알아야...악!!!!"
-퍽.
특이할 것 없는 발차기가 슈엔을 때렸다.
"아.. 아악..!!"
정확히는, 사타구니를 때렸다. 전투형 니케의 출력은 별다른 움직임 없이도 끔찍할 정도로 강한 출력을 자아냈다.
하얗고 통통한 것이 순식간에 빨갛게 충혈되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아픈지 그곳만 발작하듯이 파르르 떤다.
-퍽.
"끼야아아아악!!!"
-퍽.
"카하악!! 끄으... 아흐으..!!!"
터져서 너덜너덜해질 때쯤, 유니는 자신의 얼굴을 슈엔의 얼굴 가까이에 대었다.
"슈엔. 유니, 장난감이야?"
"그...래 이 정박아년아... 크흣..."
"미하라도?"
"그 돼지년은 장난감도 못 돼지이... 카아햑!!!!"
꾸우욱, 유니의 엄지 손가락이 슈엔의 쇄골을 짓눌렀다.
처벌용으로 설계된 탓에 인간일 적보다 통각이 300% 증가되었을 그녀에겐 그 어떤 고문보다 끔찍할 터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비를 구걸하지 못한다.
참회하지 못한다.
영원히 그렇게 살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졌다.
"퉤!!"
그렇기에, 온 몸을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고 눈물을 쏟으면서도 스스로 이유도 모른채 굽히지 않았다.
유니는 뺨에 튄 침을 닦아내고 내게 고개를 돌렸다.
"지휘관."
"응."
"유니가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
"뭘?"
"산책, 허락해주세요..."
"어려울 거 없지."
"고마워, 지휘관. 유니 지휘관 너무 좋아."
"그래."
유니는 그럴 줄 알았다는듯 해맑게 웃으며 개목걸이를 왼손에 들었다.
깨질 것 같이 위태로운 미소였다.
"흐흥~ 흐흐흥~"
나는 그녀의 오른손에 들린 대용량 고추장 튜브를 애써 무시했다.
"오줌도 싸야되니까~"
주입구가 상당히 얇은 주사기에 물과 고추장을 개어 넣는 모습도 외면했다.
하지만 슈엔은 도저히 그것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뭐, 뭐하려는거야!?"
앗, 하는 순간 새빨간 액체가 든 주사기의 주입구가 슈엔의 어딘가에 쑤셔박았다. 정확히 어디인지는 유니의 뒷모습에 가려져 알 수 없었다.
니케다운 속도에 나도, 슈엔도 벙쪄 정적이 흘렀다.
"......"
그리고 당연하지만, 정적은 금방 깨졌다.
"꺄아아아아!!! 꺄아악!!!!!!!!!"
"흐흥흥~"
유니는 그저, 콧노래만 불렀다.
새빨간 복수는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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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의 새빨간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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