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보니 길어짐.

1편

https://arca.live/b/nikketgv/67303473


2편

https://arca.live/b/nikketgv/67451707







"흉기 난동 사건의 범인은 곧바로 ACPU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연인으로 추정되는 남녀 피해자는 모두 중태에 빠진 상태입니다."


아아...약간..뒷 마무리가 너무 안일했나보다...


"감히!!!감히 니가!!!!!니가 페트로니스를!!!!!!"


그것도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분노에 찬 소피아의 얼굴.그리고 미처 생각도 못한 행동. 소피아가 휘두른 칼에 먼저 찔린 건 나였다. 옆구리 그리고 명치,칼을 막으려고 발버둥 치던 손.바닥에 쓰러져 도망치려는 내 다리를 잘라 버리겠다는 듯이 찔러지던 다리.

몸 어디에도 성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애초에 살려둘 생각이 없었던 거겠지.나 뿐이 아니었다. 페트로니스도 마찬가지였다. 페트로니스는 소피아를 설득하려했다. 그 모습은 마치 소피아를 구하려는 듯이 보였다. 그 의도가 어찌되었든, 내눈에는 그리 보였다.


"도망...쳐...내가....내가 범인이 될께...."


....페트로니스는 그렇게 소피아에게 말했다.....실망했다.드디어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는데...그는 내 태양이 아니었나보다.태양이...꺼져간다...







.

.

.

.

.

.


"....???"


왜 다시 눈을 뜬건지는 모른다.여튼 나는 눈을 떴다. 머릿속에는 평생 알리가 없는 여러 군사정보들이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나는.....


"정신이 드나yo?"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려봤다.


"읏....."


눈이 부시도록 밝게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너무 밝아서 그게 뭔지는 보이지 않는다.태양과도 같은 빛...내가 그토록 찾던....


"아.Sorry. 일단 라이트를 끄도록 하지요."


잘못봤다.


강렬한 빛이 꺼지고, 그냥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괴상한 옷을 입은 수염 달린 남자가 서 있었다.


"동의서에 따라 you는, nikke가 되었고 지금 Perfect하게 깨어났습니da!"


...동의서....?무슨 동의서...?


"you는 사고사이기 때문에, 당신의 죽음에 관련된 Memory는 완전 깔끔하게 Delete했어Yo.굳이 개인적으로 찾아보겠다면 그걸 말리지는 않겠지만,적어도 me의 girl이 된 이상, tetra에서는 you의 사망에 대해선 그 어떤 정보도 주지 않을겁니다."


사고사....?내가...죽었다고...?니케가 되었다...?


"어쨌든, 새로 new commander와 squad가 배정될 겁니다.그전까지는 일단, 단체 숙소에 가서 쉬도록 하세yo."


....



대원모집





분대 배정 명령서.


지휘관 : 레오폴드


분대 : 퍼스트 스피어


일시 : xxxx.xx.xx


...평생 절대 연관될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군대'. 하지만 지금 난 지휘관 '레오폴드' 앞에 서 있다.지금 막 전입된 퍼스트 스피어 분대의 막내로.





"...어서와.크리스."


멋들어진 제복을 입고는 서류뭉치에 얼굴을 박고 있던 지휘관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흐음....'


꽤 미남...그리고 꽤 젋었다.아빠는......어땠지...?아빠가 지휘관일때 몇살이었더라...?


"내 이름은...뭐 이미 알고 있겠지만, 레오폴드라고 해.오늘부터 네가 소속될 분대 퍼스트 스피어의 지휘관이지."


그렇구나...분대..지휘관...니케...랩쳐...전쟁...알고 싶지도 아니 알아야 하는지도 몰랐던 지식들은 '교관'에 의해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었다.


"우리는 분대 이름 그대로 최전방으로 주로 임무를 나가게 돼.그만큼 위험한 임무를 많이 맡게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하지만 걱정하진 마.선배 분대원들이 널 도와줄거야."


...확신에 찬 위풍당당한 얼굴이었다.그래 티없이 맑은 얼굴...


"그리고, 나역시도 너를 온 힘을 다해 도와줄거야.우리는 그래야 하거든."


본 적이 있는 얼굴이다.내가 그토록 원했었던 얼굴......밝게 빛나는 태양....


"최전방에서 싸우는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안전이 최우선사항이야.그 만큼, 그 어떤 일이든 대충해선 안돼."


그래...페트로니스를 보던 기분이랑 매우 닮아 있었다.


"그럼, 크리스는 혹시 내게 궁금한게 있어?"


"....지휘관님은...몇살이신가요?"


"...응???"


예상못한 질문이었던 모양이다.당황하는게 눈에 띤다. 저런 사람이 지휘관이라...앞날이 조금 걱정된다.


"25.지휘관이 된지는 1년차야."


"....젊으시네요."


25...비슷한 연배였다.내가 인간인채로 였다면.


"쿨을 좋아해."


"...네?"


"어...크리스의 나이가 나와 비슷하잖아.나 고등학교때는 쿨이 최고였지.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했던 가수거든.크리스는 어땠어?"


쓸데없는 것 까지도 닮은 모양이다...


"....좋아해요."


"그래.취향이 비슷한 대원이 있어서 다행이야.다른 분대원들은 너무 딱딱해서 이런 얘기 잘못하거든."


지휘관은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분대원들을 만나러 가볼까?"


지휘관의 뒤를 따라 들어간 숙소는...인간시절 살던 조그마한 월세방보다도 더욱 더 열악해보였다. 창고...는 겨우 면한것 같은 허름한 숙소....이걸 숙소라고 불러야 하는지 고민되는 숙소였다.


그 숙소에는 2명의 분대원이 질서 정연하게 서 있었다.


"모두들, 소식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오늘 우리 분대에 새 대원이 들어왔어.이름은 크리스.우리 분대가 첫 발령난 분대라고 하니까,아직 모르는게 많을거야.모두들 애껴줘."


"안녕하세요.크리스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


자연스레 인간답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어머.크리스 양."


"네...?"


2명의 분대원 중 한명이 이름을 불렀다.


"군인이 그렇게 인사를 하면 안되죠.경례는 어디갔나요?"


"...."


경례...그랬다.머릿속에 입력되긴 했다.하지만...생전 처음인지라 반사적으로 인사가 튀어나왔다.


"...죄송합니다."


일단 사과멘트를 던지고 바로 오른손을 이마에 갖다댄다. 생전 처음 해보는 경례이지만 몸이 꽤나 올바른 자세를 잡아준다.니케라서 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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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 1 - 튜토리얼 1-전투란?


첫전투가 끝났다.리페어 센터에서 파손 부분을 수리하는 중에 멍하니 하얀 천장을 바라봤다.전장은...어땠었지...?정신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일단 눈에 보이는 빨간 빛이 나는 곳에는 무조건 방아쇠를 당겼던 건 기억난다.


그런데, 감정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막연히, 총을 들고 랩쳐와 싸운다...라는 사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딱히 그런 걸 느낀 기억이 없다. 오히려 공포에 넋이나가 버렸던 걸까?


적당한 엄폐물 뒤에 숨어서 랩쳐의 공격이 없을때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목표로 삼은 적에게 총알을 발사.탄환이 떨어지면 엄폐물로 숨어 미리 준비해두었던 탄창을 갈아끼우고 지시가 있을때까지 대기.


이 과정을 반복한 내 스테이지 1에 대한 감상은...시시했다.





스테이지 2 - 튜토리얼 2-지휘관의 역할


퍼스트 스피어 분대의 전투란 건, 말만 들었을때는 정말 최전방의 가장 강력한 적들과 제일 먼저 싸우는 그런 자살특공대 같은 건가,싶었지만 아닌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 빼고는 꽤 부상이 적다.


"1사수 엄폐해!3사수,5사수!14시 방향,저격형 랩쳐 집중공격!"


그리고 그것도 빼먹어서는 안된다.인이어를 통해 쉴새없이 들려오는 지휘관의 지시.니케들의 뒤에 숨어서 아무것도 안하는 줄만 알았던 지휘관의 역할은 생각보다 컸다.


눈 앞에서 랩쳐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사이, 미처 보지 못하는 니케들에게 위험 경고를 날린다거나, 가장 시급해보이는 제거 대상을 지적한다거나.


"로드급 랩쳐,코어에 집중공격!풀 버스트!!"


상황에 따라서는 잡것들 상대는 집어치우고 커다란 놈에게 화력을 집중시킨다거나.


"고생하셨어요 지휘관."


"응.모두들 고생했어.,심각한 부상 입은거 있어?"


"5번 사수 에이다,왼쪽 허벅지,왼쪽 옆구리,왼쪽 어깨 경미한 손상!"


"3번 사수 드레스,엄폐물 파손때 튀긴 파편에 의한 경미한 자상."


"1번 사수...크리스...오른팔 경미한 손상, 오른쪽 옆구리 파손...."


리페어 센터의 천장이 보였다.총격을 받는 순간, 굉장히 아팠다는 기억이 떠올랐다.그리고 굉장히 미안해하는 지휘관의 얼굴이 보였다.지휘관과 니케라는 건...원래 이런건가...?


그동안 신경써 본 적도 없어서 잘 모르겠다.니케는...그냥 전투병기라고만 알고 있었는데...막상 우리 지휘관은 조금 다른 것 같다...어쩌면 모든 지휘관이 저러는걸까?아니면 우리 지휘관만?





스테이지 3 - 튜토리얼 3-초보가 하기 쉬운 실수


큰 전투는 아니었다. 단순한 수색임무였고 랩쳐도 30여기 밖에 없었다.일반급 랩쳐만 있었고, 이때다 싶었다. 인카운터와 동시에, 통각센서를 전부 꺼버렸다.


지난 두 번의 전투에서 느꼈던 불편함이 사라졌다.견착을 했음에도 요동치는 소총의 반동이 느껴지지 않았다.튀어오르는 탄피가 볼을 건드려도 뜨겁지 않았다.


불편함이 하나둘 사라지자 자신감이 붙었다.그래...에이다,드레스 두 선배 니케가 전투에 두려움없이 나서는 이유가 이거였구나!참 야박한 선배들이다.


이런게 있으면 좀 알려줄 것이지. 저 멀리서 날아오는 탄환이 슬적슬쩍 보였지만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나에게 고통이 없다면 두려울게 무었이랴.


그저 방아쇠를 당겼다. 탄창을 비워지면 곧바로 다시 바닥에 깔아놓은 탄창을 집어들고 다시 랩쳐를 똑바로 쳐다보고 방아쇠를 당겼다.


"1사수!!!엄폐!!!"


"!?"


인이어에 갑작스런 지휘관의 외침이 들렸다.고작 세번째 전투지만 나름 전투경험치라도 쌓인건지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여 엄폐물 뒤에 숨었다.그리곤 지휘관을 쳐다보았다.


지휘관은 굉장히 화난 얼굴을 하고선, 왼손 검지로 자신의 오른팔을 가르키고 있었다.


"???"


처음엔 무슨 의미인지 이해못했다가 문득 지휘관이 아닌 자신의 오른팔을 봤다.그리고 깨달았다.어느새, 내 오른팔은 팔꿈치까지만 붙어있었고, 그 아래는 아예 뜯겨져 나가 있었다.


....언제...??







니케 상담 크리스 1


작전은 쉽게 끝났고, 지휘관은 보수를 받으러,나는 리페어 센터로 수리를 받으러 향했다.팔 교체 자체는 그리 힘든 작업이 아니었던지라 금방 끝났고,


전초기지의 숙소에 도착하려는 때에 지휘관에게 블라블라 메시지가 왔다.상담호출이었다. 니케들의 멘탈케어. 이것도 지휘관의 할 일이었다.일주일에 최소한 한번씩은 지휘관과 짧은 상담시간을 가진다.


매일 만나는 지라 딱히 할말이 없다고 해도 지휘관은 무조건 해야 한다며 절대로 호출을 잊지 않는다.


"크리스, 수리 완료후 복귀했습니다."


"음. 고생했어."


짦은 침묵.거봐...맨날 얼굴보는데 딱히 할 말도 더 없다니까.


"...통각센서, 왜 껐는지 이유를 말해줄래?"





A.아픈게 싫고 무서워서 ○


B.통증이 전투에 방해되는게 싫어서





"아픈게 싫고 무서워서."


"....아..."


대답을 들은 지휘관의 표정이 슬쩍 어두워졌다.


"...그러고보니 크리스는 전장에 나가본 지 얼마 안됐구나."


지휘관은 뭔가를 결심이라도 한듯이 자리에서 벌떡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약한 소리를 했다고 꾸중이라도 듣게되는건가 싶었지만, 지휘관은 한손으로 내 오른쪽 옆구리를 살살 문질렀다.


지난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던 자리다.


"여기 다쳤을때, 많이 아팠나보네?"


"....네."


솔직히 대답했다.굳이 아닌척 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잔인한 소리가 될테지만, 그래도 다음부터는 전투중에는 통각센서를 끄면 안돼.자신의 부상도 알아채지 못하거든."


지휘관이 세상 자상한 목소리로,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말했다.


"아무리 나라도 한창 전투중일때 모두의 부상정도까지 확인해가면서 지휘할 순 없거든.그러니까, 전투중에 부상을 입게되면 숨기지 말고 말해줘.그때 그때 내가 상황에 맞는 작전을 지시할테니까."


....뭐지...이 상냥한 태도....내 머릿속에 '군인'이란 존재는,니케란 존재는 피도 눈물도 없는 병기이며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할텐데, 이 남자는...왜이리 자상하게 날 대해주는 걸까...마치...페트로니스처럼.


그에 대한 호감도가 100만큼은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스테이지 4 - 튜토리얼 4 - 레벨업


"타다다다다당!!!"


비록 기관총이나 기관단총에 비하면 적다곤 해도 소총의 탄약도 적지는 않다. 그러다보니 적지 않게 튀는 탄피는 그 불똥같은 뜨거워진 채로 볼을 때리고 떨어진다거나 무릎이나 허벅지에 떨어지곤 한다.


그게 싫어서 통각센서를 껐다가 크게 낭패를 겪어봤으니,그냥 참을 수 밖에.내 속상한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한건지 이번 약한 랩쳐들만 출몰했고, 미리 준비해둔 엄폐물들이 채 파괴되기도 전에


전투가 끝났다.


"5번 사수 에이다,경미한 손상!"


"3번 사수 드레스,완벽한 무손상."


"1번 사수 크리스...경미한 손상."


전투를 마치고 전초기지로 돌아가던 중, 지휘관의 허리춤에 패용중인 네모난 박스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항상 전투에 차고 나갔는데, 저게 뭔지 전혀 몰랐다.


"배틀 레코더야."


지휘관이 자신의 허리에 걸린 네모난 박스를 톡톡쳤다.


"전투 상황 발생시에 나, 그리고 너희 모두의 움직임을 기록하지.전투 상황.랩쳐의 움직임.공격패턴,그에 대응하는 너희들의 움직임,내가 내린 판단,내 지시에 너희들이 응하는 속도 등등등.그야말로 모든것"


마치 감시받는것 같기도 하네.


"....그걸 어디다 쓰나요?"


"레벨업!"


"....레벨업이요?"


"응.기지에 가면 이 배틀레코더의 기록을 분석해서 '배틀 데이터 칩'에 저장할 수 있어. 그리고 그 데이터는,바로 너희 니케들의 레벨업에 쓰이지.이른바 너희들의 경험치야."


...무슨 게임같다.




니케 상담 크리스 2


지잉-


"어서와."


지휘관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지휘관이 기다렸다는 듯이....가 아니지.호출했으니까 기다렸지.여튼 벌떡 일어나며 반겼다.뭔가 기쁜일이라도 있는 듯이 얼굴엔 환한 미소를 잔뜩 머금었다.


"뭐 좋은일 있으신가봐요?"


"응.좋은일있지."


"지휘관님이 기쁘신거 같아서 저도 좋네요."


환한 미소...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페트로니스의 미소와 닮았다.


"쨘.준비 다 됐어."


지휘관이 양손을 들어 올려 보였다.왼손에는 뭔지 잘 모르겠는 길이 10센치쯤 되어 보이는 막대기를, 오른손에 조그마한 USB 드라이브를 꺼내 들었다.


"...뭐예요 그건?"


"뭐긴, 크리스의 레벨업 도구지."


레벨업...그러고보니 어제 이야기를 들었었다.


"자,그리고 이걸 물어."


그리고 지휘관은 왼손에 들고 있던 막대기를 내밀었다.


"막대 밑단이 혀에 밀착되야 하니까 잘 물고 있어야돼."


"...이걸...."


"자,여기봐"


지휘관은 잡고 있던 막대의 반대쪽, 그러니까 지휘관이 잡고 있던 쪽을 보여줬다.


"여기 USB 포트가 보이지?여기에 배틀 데이터 칩을 꼽으면 배틀데이터가 혀를 통해 크리스에게 입력될거야."


저 둥그런 막대를 물고 있어야 한다고...?


"아,그리고 시간 좀 걸릴거니까, 서 있지말고 여기.소파에 앉아서 해."


해맑은 표정으로 지휘관실 소파를 탁탁 두드린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지휘관이 둥그런 막대기를 내쪽으로 내밀고 나는 소파에 앉아서 얼굴을 내밀고 그 막대기를 물고 있으라고...?


"..."


엄청난 그림이 그려진다.


"하읍...."


뭐라 할라다가 그냥 아무말 안하고 막대기를 입에 물었다.뭐라 했다간 쓸데없이 서로 말만 많아지게 될 것 같았다.그리 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리 작지도 않고....


"자,그럼, 데이터 칩, 넣을께?"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인다. 지휘관이 막대기에 USB 드라이브를 집어넣자 꾹~하고 입에 물고 있는 막대기가 조금 밀리며 내 머리를 뒤로 밀어냈다.


치칙-


막대기가 닿아있는 혀에 살짝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아아...이게 그 배틀 데이터가 내 몸에 인스톨 되는 과정인건가...그 과정 때문에 미각센서를 건드리는 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 맛도 없는 막대기에 닿아 있던 혀에 이상한 맛이 나기 시작했다.아마도 데이터가 설치되면서 그 영향으로 센서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 모양이다. 단맛짠맛매운맛...쓰고,시큼한맛....??


"으읍...."


입안에 느껴지는 이상한 맛에 나도 모르게 살짝 헛구역질이 나올뻔 했다.


"참아야돼,크리스.앞으로 계속하게 될거야."


"....읍..."


레벨업(?)은 대충 30분 정도가 지나서야 끝났다.


"고생했어.크리스"




A.이거,다시는 하기 싫어요.



B.되게 이상한 기분이예요.○




"되게 이상한 기분이예요."


"그치?나도 솔직히 말하면 할때마다 뭔가 되게 막 쑥쓰럽고 민망하고 그래."


슬쩍보니, 이 남자, 살짝 얼굴이 상기된 것 마냥 약~~간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다.머릿속이 보이는 것 같다.


.......이 남자가...조금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







니케 크리스 에피소드 1 - 나만의 태양


"중앙 정부 사무소요?"


지휘관이 외출준비를 하라더니 나를 데리고 방주로 향했다.그리고 지금 가려고 하는 곳이 중앙 정부 사무소라는 곳이라고 한다.


"임무를 완수하고 작전 보고서를 작성한 후, 제출하면 급료를 받는곳이야."


아...그래...그제서야 전초기지를 굴리는 '돈'의 출처가 이해됐다. 다른 건 몰라도, 지휘관 본인의 식사나 니케들을 위한 식료품이나 물,구호물품등 그런 것들이 죄다 무료로 제공될리는 없으니 분명 구입을 할텐데, 그 돈이 어디서 나오나 했다.


"그럼, 크리스는 여기서 기다리도록 해."


으리으리한 건물 앞에 서서, 지휘관은 대기를 명령했다.


"저 구경시켜 주려고 데려오신거 아니었어요?"


"여기는 안돼.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니케는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은 곳이야."


10분....20분....쯤 지났을때 인가...?문이 벌컥 열리곤 모르는 얼굴의 지휘관이 한명 튀어 나왔다.


".....크....으......"


얼굴이 엉망이었다. 눈물 범벅이었고, 슬픔인지 분노인지 모를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꽉쥔 두 주먹에는 새빨간 피도 흐르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고작.......고작...이정도라고......??"


절규같은 중얼거림과 함께 그 지휘관은 건물의 벽을 있는 힘껏 발로 걷어찼다.하지만 그런다고 건물에 무슨 피해가 발생할리가 없었다.오히려 그 지휘관은 자기 발을 감싸쥐고 주저앉아 울면서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그딴 작전...수주하는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그 지휘관은 한참동안을 맨바닥에 보기 흉하게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지루했지?"


레오폴드 지휘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뇨..."


지루했다기 보단 마음만 복잡해진것 같았다.


"지휘관님."


"응?"


생필품과 식료품을 사러 가는 도중에 지휘관을 불렀다.


"아까, 사무소 앞의 다른 지휘관들은...왜 그리 슬퍼하는 건가요?"


"...거기에 들어가면,현실을 마주하게 되거든."


"....?"


"지휘관이란 자들은 말이야..."


말을 이어가려던 지휘관은 갑자기 내 어깨를 톡톡쳤다.그리곤 원래 가려던 방향과 다른 방향을 검지로 가리키며 발걸음을 옮겼다.공원이었다.


"지휘관이란 자들은 엘리트야.사관학교에서 고등 교육을 받고 졸업한 영웅 후보생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방주에서 가장 훌륭하고 자기 희생적인 위대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 아예 교육을 그렇게 하거든."


"...."


갑자기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그리고 그 태도도 떠올랐다.그러고보니 아빠는 언제나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면 용서하지 않았다.아내였던 엄마도, 딸이었던 나도, 아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곧바로 폭력이 따라왔다.그래서 그렇게나 술에 쩔어 사는 그 와중에도 아빠를 뜯어말리지 못했다.엄마도 막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했던 선택은...독립...을 가장한 도피. 그러고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페트리우스와 함께 독립한 직후, 엄마와 아빠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지휘관은 어느새 도착한 공원 벤치에 앉아 말을 이어갔다.옆자리에 앉으라며 벤치 빈자리를 톡톡 치는 모습에 사양않고 그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치례야.실상은 전혀 다르지.왜 그런지 알아?"


"...모르겠어요."


"월급,주급,시급. 그런 개념이 아예 없는 직업이야. 여기서부터 현실이 시작돼.아무리 영웅이네 엘리트네 떠 받들어 줘봤자, 인간인 이상 먹고 자지 않으면 안돼.하지만 아무리 영웅이라고 해도 세상에 공짜는 없거든.방주 어디에서도 지휘관이라고 공짜로 밥을 주진 않아.지휘관이라고 공짜로 방을 주지도 않지.지금 우리가 생필품과 식료품을 사러 나왔듯이, 지휘관들은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먹고 살아야해.하지만..."


지휘관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진것 같았다.


"사무국에 임무 보고서를 제출하고 사실여부를 파악한 뒤, 통장에 입금되는 돈의 액수를 보면,대부분은 기가 막혀 할말을 잊어버리곤 하지. 잘 생각해봐. 최소 분대 인원 3명을 유지해야 하고 지상에 나가 목숨걸고 랩쳐와 싸워서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는데, 니케들 수리비와 생활비로 쓰고나면, 수중에 남는 돈은 용돈도 안되는 경우가 정말 많거든. 마이너스가 찍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어.그러다가 돈이 부족해서 니케를 제대로 수리하지 못한채로 돈을 벌기위해 난이도 높은 임무를 나갔다가, 임무 실패는 물론 동행한 니케의 사망 또는 지휘관 그 자신이 사망하는 경우도 매우 많아.박봉에 단명.유명하지?"


"....지휘관님은...."


"응?"


"지휘관님은 안 힘드세요?"


말만 들어서는 도대체 왜 하는 지 모르겠는 직업이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 이 이야기를 할때 본 얼굴 말고는 이 남자의 얼굴이 어두웠던 걸 본 적이 없다.어떻게 그게 가능하지?마치...페트리우스마냥...


"난 꿈이 있으니까."


"...꿈?"


지휘관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씨익~하고 티없이 맑은 미소가 지어졌다.


"아마 나 말고 수 많은 사람이 이루고 싶은 꿈이긴 할테지만 말야."


지휘관은 팔을 하늘 높이들고 손바닥을 펼쳤다.


"저 태양이야."


이번엔 고개도 들어 저 멀리 있는 하늘을 쳐다봤다.


"저런 스크린에 표시해주는 닫혀있는 하늘에 그려져있는 디지털 태양이 아니라,끝없이 펼쳐져있는 넓고 맑은 하늘에서 스스로 빛나는 태양.나는, 그 태양을 내 손에 넣는다!"


지휘관의 손이 콱!하고 움켜쥐어졌다.


"그리고 그 태양을 방주의 모두에게 선물한다.그게 내 꿈이야."


지휘관의 꽉 쥐어진 주먹이 저 멀리 있는 태양을 가려 버렸다.그게 무슨 상관이랴. 태양의 빛은 이제는 지휘관의 주먹에서 나오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며 난 깨달았다. 그동안 확신이 없었고 망설여졌는데,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남자다.그 어린 시절부터 찾아헤매이던 태양.나만을 비춰주며 밝게 빛나는 태양.내가 힘들때 내게 힘을주고 내가 슬플때 나를 위로해주고 내가 괴로워할때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태양. 다른 누군가에게서 빼앗은게 아닌,나만을 위한 태양.








니케 상담 크리스 3


그날 이후, 지휘관을 위한 소소한 이벤트가 떠올랐다. 방에서 혼자 거울을 보며 연습 3일째.마침 오늘 지휘관이 상담 요청을 받는다고 해서 곧바로 상담을 요청했다.


"오,크리스.무슨 고민..."


"지휘관님!궁금한게 있어요!"


"응!?뭐,뭔데?"


평소보다 적극적인 언행에 조금 놀란 것 같았다.뭐 그러던 말던,그건 중요하지 않다.


"저번에 레벨업할때 쓴 그거 말이예요."


"응?그거?"


"네,제가 지휘관님 앞에 앉아서 30분간 물고 있던 그거요."


"으,으응!?그거,데이터 브릿지...왜?"


살짝 당황한 듯한 태도.역시.이 남자, 야한쪽 이야기에는 내성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계획대로.


"지난번에 생필품 구입할때 또 사셨잖아요.그거 낭비아닌가요?"


"...응...?"


조금 다른 의미로 당황한듯한 태도였다.


"그,그건 너도 알다시피 30분이나 입에 물고 있던거잖아.침 잔뜩 묻은거, 놔뒀다가 다시 쓰는건 위생상도 않좋고,생리적으로 거부감 들지 않아?그래서 그거 1회용이야.한번쓰면 버린다구.괜히 레벨업 할때마다 크레디트가 소비되는게 아니야."


정론이다.그리고 이미 검색을 통해 알고 있었다.하지만 오늘 상담의 진짜 목적은 이게 아니었다.




A. 거기까진 생각 못했어요.그냥 크레디트 쓰는게 아까워서.


B. 한번 쓰고 버리는 건 줄 몰랐어요. 다른데 더 쓰는건가 싶었는데...○



"한번 쓰고 버리는 건 줄 몰랐어요. 다른 데 더 쓰는건가 싶었는데..."


"다른데...?어디?"


"......글쎄요?"


검지 손가락을 내입에 가까이 갖다댄 뒤, 혀를 살짝 내밀어 슬쩍, 아래에서 위로 손가락을 핥아 올렸다.


"...하아!?"


지휘관의 깜짝 놀라는 얼굴을 본 순간, 잽싸게 뒤로 돌아 지휘관실 출입문 개폐버튼을 눌렀다.


"오늘 상담 고마워요!궁금한게 풀렸어요!"


"..어......!잠깐!!!"


당황한 지휘관의 목소리를 못들은 척,지휘관실을 나갔다.


지잉----


블라블라가 번개같은 속도로 울린다


지휘관

   '절ㄹ대로 엉ㅇ뚱한데ㅔㅇ 쓰지 앟ㄴ아써1111!!!!!!







스테이지 5 - 튜토리얼 5 - 스테이터스

"...."


다시 한번 시시한 전투였다. 지난 전투처럼 경미한 부상으로 그친 간단한 전투.랩쳐가 왜 이리 금방금방 터지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지휘관님.크리스 스테이터스 측정은 해보셨나요?"


"응?"


"지난 번에 크리스 레벨업했잖아요...설마 안했어요?"


"....까먹었어."


"...."


지휘관의 얼빠진 대답에 에이다와 드레스가 한심스럽다는 의미의 레이저를 쏘고 있었다.


"스테이터스 측정은..뭔가요...?"


나에 대한 일이라지만, 난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크리스의 니케로서의 능력을 측정하는 거지."


방주로 내려와 리페어 센터의 스테이터스 측정실에서 설명을 들었다.크게 체력/공격력/방어력으로 나뉘며, 전투시에 특별히 돋보이는 재주,=스킬이라 부르며 그 능숙함의 정도에 따라 10단계로 나뉘어서 수치화하며 결국 전체적인 전투력을 측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근데,공격은 총으로 하는데 공격력은 의미가 있나요....?"


"그 무거운 총에 그 무식한 구경의 탄환 집어넣고 쏴대는 힘이 공격력으로 이어지는 거지.힘이 더 세면 셀수록 더 무식한 탄환을 사용할 수 있는 거고."


...알 것 같으면서도 뭔가 좀,어렵다.







니케 상담 크리스 4

"지휘관님!지휘관님!!"


양손으로 지휘관 책상에 쾅!하고 내리치고는 그자세 그대로 얼굴을 지휘관 얼굴에 들이민다.


"으,응!?왜?"


"저 지금 얼마나 강해진거예요?"


"어...?자,잠깐만."


지휘관은 핸드폰을 꺼내서 화면을 몇번 톡톡 거리며 터치했다.


"어...지난번에 측정했을때.....너 레벨 10."


"높은거예요?"


더 더욱 얼굴을 들이민다.부담스러운지 핸드폰을 자기 얼굴 높이만큼 들어올리고선 팔꿈치를 책상에 대고는 핸드폰으로 자기 얼굴을 가려 버렸다.


"...아니.낮지.무지 낮지."


"그럼,지휘관님!!그거해요,그거!"


핸드폰을 잡은 지휘관의 손에 볼을 갖다대고 위아래로 부드럽게 비벼댔다.


"헙..!!!.....그...그거??"


"레벨업!"


"어...아....으음....그..."


잠시 할말을 찾는 듯 하던 지휘관이 손을 빼버렸다.


"크,크흠"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한 헛기침.


"너 그거 못해."


"?왜요?"


"니케는 일정 수준의 레벨에 도달하면 더 이상 배틀 데이터만 입력해서는 안돼. '코어 더스트'라는 재료가 필요해."


또 모르는 단어.이것도 나중에 검색해 봐야겠다.


"그거 있어요?"


"아니,없어"


"없었어요?"


"응.없었어."


"있었는데?"


"아니,그냥 원래 없었어."


흐음...구하기 어려운건가?


"최전방 부대라고 해놓고 이런 소리 하는 건 좀 웃기긴 한데,왜 갑자기 강해지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거야?"




A.태양을 붙잡아다가 방주 시민에게 선물하려는 지휘관을 도우려고요.○


B.스테이터스 측정을 해보니 다이어트할때 몸무게 재는것 같아서 도전의욕이 생겼어요.




"태양을 붙잡아다가 방주 시민에게 선물하려는 지휘관을 도우려고요"


"...응?"


"지휘관님의 꿈이라면서요?저도 그걸 위해 같이 달려 보려구요."



지휘관과 지상 탈환에 대한 희망찬 상담 시간을 가졌다.







스테이지 6 - 튜토리얼 6 - 저지전.그리고 스테이지 클리어 보수


"이번엔 공동 작전이야."


지휘관이 공중에 전자지도를 띄우고 작전 브리핑을 시작했다.


"저기.우측에 다른 분대 보이지?"


지휘관이 가리킨 쪽에는 다른 분대의 지휘관과 니케가 한데 모여 있었다. 작전의 브리핑은 이랬다.




현재 퍼스트 스피어 분대의 우측에 있는 곳에는 거대한 랩쳐, '타일런트' 급 랩쳐의 파괴된 잔해가 있다.


방주에서 그 랩쳐의 잔해에서 쓸만한 부품을 분해해서 방주로 가져가기 위한 작전을 펼치고 있었는데, 중간에 랩쳐에게 발각되었고, 지상과 가장 가까운 '전초기지'에 있던 퍼스트 스피어 분대에게 지원 명령이 내려온 상황.


"호위 병력이 있긴 한데, 양산형 부대라 큰 위력은 발휘하기 힘들어.그러니까 우리가 할일은, 저들이 랩쳐의 분해 및 부품 운송이 끝날때까지, 다른 랩쳐들이 저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막는거야.한마디로 '저지전'인거지. 저지 라인은....이쯤이 좋겠다."


지휘관이 허리춤에서 작은 기계를 하나 꺼내더니 바닥에 굴렸다.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러간 그 기계는 멈춰서더니 지 혼자 뭔가 철컥철컥 거리고는 푸른 빛으로 커다란 장막을 만들어냈다.


"일단 단순한 빛의 장막이니까 저 파란 벽은 아무런 저지효과가 없어. 혹시 우리가 놓치게 되서 벽에 랩쳐가 가까이 가면 빨간 빛으로 우리에게 경고를 해줄꺼야. 내지휘도 지휘지만, 벽이 빨개지면 무조건 벽에 가장 가까워진 대상을 노려줘."


"네,알겠습니다."


"부품 회수 부대의 능력을 생각하면....우리가 놓쳐도 되는 적은 대략 20포인트. 소형랩쳐는 1포인트, 중형 2~3포인트, 대형 5포인트로 정하자.20 포인트 이상의 적이 저지선을 돌파하면,아마 회수 부대는 전멸하고 작전도 실패할거야."





"5사수,11시!"


지휘관의 지휘가 뛰어난 건 몇번의 전투로 알긴 아는데, 이번 전투도 믿을 수 없이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것 같았다. 아까 몰려오던 랩쳐 무리가 어느새 반으로 줄었다.마치 랩쳐의 부품을 뜯어가는 것을 막겠다는 듯이, 랩쳐무리는 우리에 대한 공격보다는


부품 회수 부대에 대한 돌파를 우선시 하는 듯, 공격의 고삐는 매우 늦춰져 있었다.


'철컥'


탄창을 갈아끼우며 슬쩍 지휘관을 쳐다보았다. 지휘관도 생각보다 전투의 강도가 약하다고 느낀 건지 약간 여유로워 보였다.


"?"


아,눈이 마주쳤다. 빙긋~이 웃어주었다.지휘관은 깜짝 놀란 듯, 바로 전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귀엽네...


"전 사수, 12시, 공중!"


다급한 지휘관의 목소리가 들렸다.뭔가 대단한 적이라도 나온건가 하고 쳐다봤지만, 그냥 별거 없는 것 같은 원형 판을 마치 표적지처럼 자기 앞에 붙이고 있는 적이었다. 일단 무조건 쏘고 본다.


"콰앙!!"


지휘관이 지정한 대상이 폭발하는 순간, 전장 전체에 찌릿!!!하고 강렬한 전류가 흐른다. 그덕에 감전이라도 일으켰던 것인지, 방금 폭발한 랩쳐와 동시에 전장에 합류했던 10여기의 랩쳐들이 제자리에서 꼼짝 못하고 있었다.아아,이런 적도 있구나.


새로운 적에 대한 정보를 배웠다.이 전투도 그 배틀 레코드에 기록될것고 배틀 데이터 칩으로 전환되겠지?그러면 다시 레벨업이 가능해질것이다.코어 더스트라는 그것을 구하기만 하면 될텐데.


"레오폴드 지휘관님?"


부품 회수 부대의 지휘관이 다가왔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덕분에 목숨을 건졌어요."


"뭘요. 당연히 해야할 일입니다. 무사하셔서 다행이예요."


"감사의 의미로 이거, 받아주시겠습니까?"


"네?"


회수 부대의 지휘관은 손에 든 축구공만한 원형의 철덩어리를 지휘관에게 내밀었다.


"이,이건 회수해야할 부품이 아닙니까?"


"아닙니다.저희가 회수해야 할 부품은 타일런트 급 랩쳐의 잔해이지요.이것은 방금전 여러분의 전투에서 파괴된 랩쳐의 부품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쇠공.그자체였다. 가온데에 뭔가 빨간 빛을 내는 LED 같은것도 보이고,주위엔 무슨 모양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전자기판 회로도 같은 패턴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어!?"


"니케들,레벨업 시키다보면 모자라시죠?코어더스트.원래 저희 임무는 타일런트 급 분해뿐이었지만, 이건 여러분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셈치고 분해한겁니다.여러분꺼예요.이번 임무 클리어 보수라고 생각하세요."









니케 상담 크리스 5

"이걸...어떻게 하는건가요?"


일단 지휘관실에 불려가서 책상에 놓여있는 코어 더스트를 쳐다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이걸로 레벨업을 한다지만,이 쇠공으로 어떻게?


"그 붉은 부분있지?빛은 안나지만.거기에 손바닥을 대고 있으면 나머지는 내가 해줄께."


붉은 부분. 아마도 이게 눈알이었다면 동공쯤 되는 부분일것이다. 이제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LED 부분.그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아,그리고 데이터 브릿지, 신제품 나왔어."


"예?"


배틀 데이터 칩과 전에 본것과 거의 같은 둥그런 막대기가 지휘관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건 저번이랑 다르게 내가 붙잡고 있지 않아도 돼.자, 아~해봐."


"...아~"


슬쩍 입을 벌리자 지휘관이 둥근 막대기를 수평으로 내 입에 들이밀었다.


"??"


"응,됐어.이제 입 다물고."


입을 다물자 당연히 다물어지진 않았다. 막대가 입에 걸려있어서....이건....그냥 재갈을 물려놓은거 아닌가?????


"지히간잉??"


"재갈 물린거 같다고?맞아.참어."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하면서 입에 물려있는 데이터 브릿지에 USB 드라이브를 끼워 넣었다.


"아,그아~"


"자,다음은..."


치직-


"!?"


갑작스런 전류 소리에 깜짝 놀라 소리가 난 쪽을 보니,지휘관이 스턴건처럼 생긴 물건을 들고 있었다.


"아, 과정을 설명해주자면, 코어더스트 자체는 매우 특이해서 니케에게 직접 '흡수'돼.그 흡수된 코어더스트가 니케의 데이터 저장소를 확장하는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강해지지 않게된, 그러니까 성장판이 닫혀버린 니케의 성장판을 열어버리는 기능을하지.


하지만,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코어 더스트는 당연히 작동이 중지된 상태잖아?그래서는 사용할 수가 없으니까 미세 조정된 전류를 흘려넣는거야.


그러면 코어 더스트가 작동하면서 저절로 분해되서 크리스의 몸에 흡수될거야.그러면 레벨업 가능!인거지."


"아...아하요?"


"아프냐고?글쎄..."


치직-


"끄으으으으으!!!!!!?"


통각센서를 왜 미리 안꺼두었는지 후회하는 순간이었다.


"난 인간이라."








"많이 아팠어?"




A.이 원한, 평생 잊지 않겠어요.○



B.저한테 뭐 화난거 있어요?




"이 원한, 평생 잊지 않겠어요"


"어...그건 곤란한데...."


"데이트 한번 해주시면 용서해 드리죠!"


"안해주면?"


"매일밤 꿈에서 괴롭힐거예요."


"어....."



거기서 왜 즉답이 아닌 고민을 하냐는 질문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느라 인내심이 길러지는 상담이 끝났다.














니케 크리스 에피소드 2 - 전초기지....이게...기지???


"지휘관님.샤워실 잘 썼습니다."


"응."


경례를 하고나서 곧바로 숙소로 내려가지 않고 잠시 서 있었다.


"왜?뭐 할말있어?"


침대에 누워있던 지휘관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벌써 3개월째 쓰고 있지만요..."


지휘관 실의 샤워실 문을 통통 치며 물었다.


"왜 저희들이 지휘관실에 있는 샤워실을 쓰고 있는거예요?"


"...너희들 숙소에 샤워실 찬물만 나온다며."


"그러니까요."


지휘관이 누워있는 침대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응?왁!!깜짝이야!"


핸드폰을 쳐다보느라 내가 다가가는 걸 몰랐던 건지,지휘관은 자기 얼굴 바로 앞에 내 얼굴이 불쑥 들이밀어지자 깜짝 놀라며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뭐,뭐...?"


"왜 저희들 숙소에는 온수가 안나오는 데요?"


"고장"


"고치면 되잖아요."


"안돼."


"왜요?"


"돈 없어."


"...."


그건 아닐거 같은데...


"진짜 이유.안 말해주면, 장난칠거예요."


"뭔 이유?진짜 돈 없다니까?마이티툴즈가 공짜로 일해주긴해도 자재비용은 내야한다고.살 돈 없어."




늦은 밤,크리스는 방안에서 혼자 침대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거리고 있었다. 검색결과 전초기지는 아주 예전에 이름 그대로 지상 탈환의 전초기지로 지어졌고, 완공이 되면 수 많은 니케들이 상주하며 랩쳐와 전투하며 지상 탈환의 시작점이 될 장소였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그나마 멀쩡히 기능하는 것이 지휘관실 뿐. 니케들 숙소는, 수 많은 니케가 1인1실을 배정받을 정도로 넓게 제작되어 있긴 했지만, 그외의 모든 공간은 이미 녹슬어버리거나 부숴저버린,한마디로 버려진 채로


남겨져있는 폐허였다. 레오폴드 지휘관이 이 전초기지에 온 것은 1년 전. 지휘관으로 임관한지 고작 3개월이 지난 시점, 단 3기의 니케를 데리고 8번 연속 임무 성공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전초기지의 상태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포상'이 아니었다.일종의 '좌천'에 가까운 인사 이동이었다. 이 인사 이동에는 전설적인 지휘관 앤더슨 부사령관의 명령이었다고 한다.방주내의 인터넷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여기까지.


지휘관에게 직접 물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소한 포상이 필요했다.


"흐음..."


일단 상의는 벗고 간단하게 런닝셔츠만 입고,셀카 한장. 새빨간 입술마크도 추가.최대한 양팔을 오므려서 가슴골을 만들고 또 한장.거울에 비친 뒷모습을, 목선이 나오도록 고개를 슬쩍 돌려가며 한장.


대충 여러 남성 잡지에 나온 섹시 화보 몇장을 흉내내서 찍은 다음에, 지휘관 아이디로 사진 전송.



크리스

   '안 말해주면, 장난칠 거예요.'



...메세지를 열어보지 않는다.자는 모양이다.약간 아쉽네.아침이 기대되네.



다음날 아침.




레오폴드

   '이거 보면 당장 튀어 오시오'




"뭐하는 짓인데,이게..."


지휘관은 핸드폰을 책상에 내려놓고 검지 손가락으로 톡톡 내리쳤다.거기엔 내가 어젯밤에 열심히 찍어서 보낸 사진이 있었다.


"말했잖아요.이유 안 가르쳐 주면 장난칠 거라고."


"누구한테 배운 건진 모르겠는데, 질 나쁜 장난이야,이거."


"그러니까 저 나쁜 니케로 만들지 말고 알려주세요."


에휴...하고 한숨을 푹 내쉰다.대체 뭐 얼마나 터무니없는 이유가 있길래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3일.3일 후에 이유를 직접 보여줄께."


3일...3일후엔 순순히 가르쳐준다고 하니,고맙다고 포상을 더 줘야겠네.





3일후.


"왠일이세요?"


뜬금없이 지휘관이 내 개인실에 찾아왔다.그리고 그 이유로 오늘이 바로 '이유를 보여주기로 한 날'이라면서 다른 방으로 날 데려갔다.


"몇시간만,이 방에서 나와 함께 있을거야."


"...예?"


이건, 예상못한 이벤트였다. 갑자기 왜 이리 적극적이래? 설마 요 3일동안 계속 셀카를 찍어 보낸게 효과가 있었나?나 혼자 그리 생각하는 사이, 지휘관이 핸드폰을 열더니 방안에 설치된 프로젝터에 연결했다.


지잉-


작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한 프로젝터가 보여주는 영상은, CCTV였다.위치는...전초기지.


"아마...1시간,1시간 이내로 움직임이 있을꺼야. 기다려봐."




1시간후.


아무런 변화가 없던 화면에 조그마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


아무도 오지 않는,퍼스트 스피어 분대를 제외한 그 누구의 왕래도 없던 전초기지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왔다.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랩쳐'였다는 것이었다.


"!지휘관!당장 출동을!"


"아니,그대로 둔다."


"예?"


"니케 숙소는 전초기지 지하에 있어.저녀석들은 전초기지의 지상 부분만 수색한 뒤 돌아가거든. 수색시간은 5~6시간정도. 그러니 그동안 우리는 이 지하 숙소에 쳐박혀 있으면 돼."


랩쳐를 피한다고?


"섬멸하지 않나요?"


"응.안해."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내 표정을 보고는 지휘관이 씩 웃어 보였다.


"설명해줄께.전초기지에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는 이유."


지휘관이 CCTV 영상을 끄고는 핸드폰을 터치하며 다른 화면을 보여줬다. 전초기지 전체의 조경도였다.


"보다시피, 지상 부분에는 뭐하나 제대로 건설 된 구조물이 없어. 죄다 기초공사가 10%?5%?그정도 밖에 안되는 사실상 전혀 진행되지 않는 상태로 버려져있지.그리고 지휘관실을 비롯한 니케숙소는 지하에 있어.왜 그런지 알아?"


"...저희들은 모두 방주에서 생활했으니까,적응을 위해서요?"


"아니,오히려 반대지.전초기지는 사실상 지상에서 활동하기 위한 쉼터니까 적응하려면 지하 생활을 떨쳐내고 지상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지.하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간단해. 랩쳐들이 지하는 탐색하지 않기 때문이야.

맨 처음 건설이 시작되었을때는,그런걸 신경써서 만들어진건 아니고, 단순히 인부들이 인간이니까 인부들의 안전을 위해 지하에 건설되었다가 그대로 지하에 지어진 거긴 하지.하지만 전초기지는 지하 숙소가 완공된 이후,

직접적인 지상 기지 건설 초창기부터 건설 소음때문에 랩쳐에게 시달리기 시작했어.어느 정도 건물이 건설되면 랩쳐무리가 나타서 파괴하고,다시 복구하다보면 랩쳐 무리가 나타나서 파괴하고.이게 반복되었지.

그러다가 결국 방주에서 전초기지를 포기했어. 그냥 방치해버렸지. 하지만 이미 위치는 랩쳐에게 알려져 버렸으니까, 툭하면 랩쳐들이 쳐들어오곤 했어.그런데, 랩쳐들은 비어 있는 기지를 파괴하진 않았어.

제멋대로 널부러진 건설자재도, 연결이 되다만 전기 선로도, 완공되지 못한 수도관도 그냥 놔두고 탐색만 하다가 가더군. 벌써 몇십년 전 일이야."


지휘관이 말하려는 이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저희가 지휘관님 샤워실을 쓰는 이유가, 랩쳐때문이라는 거죠?"


"응.맞아. 만약 우리가 전초기지에 구조물을 세우거나 우리의 편의를 위해 뭔가 수리를 하거나 하면, 랩쳐가 변화를 눈치채고 지금보다 더욱 더 샅샅히 기지를 탐색할거야."


"그랬다간..."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지하 숙소를 찾지 못하란 법이 없지. 게다가 그대로 방주와 연결된 엘리베이터라도 발견한다면, 끔찍한 일이 발생하겠지."


지휘관은 다시 핸드폰을 조작해 전초기지의 CCTV 영상을 띄웠다.


"전초기지에서 1년 넘게 근무하면서 알아낸건, 저녀석들은 이 변화없는 기지를 3개월 마다 한번씩 순찰한다는 거야.그리고 오늘이 그날이었고.대충 반나절 쯤 수색하다가 돌아가더라고."


영상속 랩쳐들은, 지휘관의 말대로 기지를 이리저리 둘러보기만 할 뿐, 뭔가를 거칠게 다루는 느낌은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소형이라해도 인간보다는 컷기에 인간이나 니케가 사용할 출입구를 사용하는건 불가능해보였다.

그래서 당연히, 문을 통째로 부수고 수색을 할것이라는 내 예상과 다르게, 랩쳐들은 그저 둘러보기만 할 뿐이었다. 인간이나 니케가 아닌 존재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크리스."


갑자기 지휘관이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네?"


대답하며 지휘관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지휘관이 손이 내 머리 위에 얹혀졌다.


"내 방 샤워실 쓰는게 불편한 건 이해해.하지만, 참아줬으면 좋겠어."


지휘관이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는다. 뭔가 어린애 달래는거 같아서 조금은 화가 나지만...기분 좋네,이거...


"나도 언젠간 승진해서 전초기지 담당에서 빠지면,크리스도 굳이 전초기지에 남아 있을 필요 없으니, 열심히 해볼께.그때까지는 크리스가 많이 도와줘."


승진이라.....전초기지의 정보를 검색해볼때 본 내용이 생각났다. 앤더슨 부사령관의 추천으로 전초기지로 부임했다는 내용...하지만 포상보다는 좌천에 가까웠다는 인사....그게 진실이었나?


"승진해도..."


"?"


"승진하더라도 저 버리지 마시고 데려가세요.전 지휘관님이랑 같이 태양을 잡을 니케라구요."


"기억해줘서 고마워."


지휘관의 손이 머리에서 떠나갔다. 아쉽다.


"하지만, 아마 그건 안될꺼야."


"...네?"


"지금은 전초기지를 담당하고 있기에, 에이다와 드레스,그리고 크리스가 나에게 '전속'되어 있을 뿐, 일반적으로 지휘관은 한번 작전을 함께했던 니케와는 연속으로 작전에 참여하지 않아.최소 3개 작전 정도의 텀을 두고 해."


또 모르고 있던 내용이 흘러나왔다.


"그럼...승진하시면..."


"작전 중에 만날 수야 있겠지만, 지금처럼 함께 지내는 건 불가능하지."









스테이지 7 - 튜토리얼 7 - 거점 방어전


"전원 엄폐!"


지휘관의 지시에 이제는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콰쾅!!!쾅!!"


랩쳐가 쏘아올린 폭탄(?)같은 것들이 엄폐물을 격하게 때리며 부숴져 갔다.


"충전율 95%!!거의 다 됐어!!마지막이야!!!"




1일전.


"거점 방어전이요?"


지휘관이 내일 있을 작전에 대해 브리핑을 이어갔다.


"응. 웹(Widefield Energy Projector=광역 에너지 투사기)를 설치하고 그걸 지키는거지."


웹...또 뭔지 모르는 게 나왔다. 대충 브리핑 내용은 이러했다. 지상의 어느 지점에, 랩쳐의 집결지점이 발견된 것이다. 집결지점이란, 소규모의 랩쳐들이 한데 모이다가 소규모라 할 수 없을 만큼 모여서 부대가 편성되는 곳으로,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고 한다. 몇년 전에는 그런게 발견될 경우 방주측에서도 만만치 않은 규모의 니케와 지휘관을 파견해 섬멸전을 벌였지만, 그것도 집결이 시작되었을때나 가능하지, 조금만 늦어도 로드급 랩쳐가 줄지어 나오고 조금만 더 늦으면


타일런트 급이 모여들기 시작해 손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까지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방주에서 내놓은 장비가 '웹". 말그대로 아주 넓은 범위로 에너지를 투사해 랩쳐들의 사고 회로에 영향을 미쳐 집결지점을 캔슬해버리는


그런 장치였다. 원래부터 그런 용도는 아니었고, 애초에 왜 랩쳐들이 그 에너지 투사기의 전파를 쏘이면 집결을 포기하고 다시 원래 소규모 집단으로 갈라져서 행동하는지 원리는 아직 모른다고 한다.블랙박스인 채로, 그냥 그렇게 사용하면


효과가 있으니까 사용하는 거라고 한다.


"웹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대상 지면에 단단히 박아야 해.물론 망치질같은건 필요없이 바닥에 설치된 소형 드릴이 자동으로 땅을 파고 들어갈거지만,더 중요한 건...에너지가 완충될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거야."


웹에는 당연히 투사할 에너지는 가득차 있다.하지만 그 에너지를 '광역'으로 흘뿌리기 위해서는 기계 내부에서 '충전'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충전 과정에서 당연히 소음이 발생하고, 랩쳐가 달려들테니, 우리는 그 웹을 지켜야한다.


그래서 거점 방어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2시간 전.


"저~기,보여?"


지휘관이 저 멀리 있는 지점의 랩쳐무리를 가리켰다. 정말 멀리 있기에 대충 보인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바글바글이란 표현이 딱 알맞아 보인다.


"지금 랩쳐가 있는 지점을 A라고 하고, 지금 우리가 있는 지점을 B 라고 하자."


지휘관이 핸드폰에 지형도를 띄우며 작전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저기.A지점을 기준으로 B지점과 일직선 방향.B를 지나서...저쪽,낮은 언덕 위를 C라고 치고."


지휘관의 손가락을 따라 C지점을 보니 오래된 건물 잔해가 조금 흩뿌려지듯이 널려 있었다.


"C 지점에 엄폐물을 세우자. 엄폐물 설치가 완료되면, B 지점에 웹을 설치하고, 랩쳐들을 유인하는 거지.질문?"


"..."


"없으면 그대로 작전을 진행한다.에이다,드레스.둘이 C 지점에 엄폐물을 설치하고, 크리스는 나와 함께 B 지점으로 가서 웹을 설치한다."


"에?함께요?"


웹의 무게때문에 니케가 들고가서 설치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출격 전에 분명 설치방법을 배웠기 때문에 당연히 혼자 설치하러 갈거라 생각했기에 지휘관의 동행은 의외였다.


"크리스는 이번이 처음이잖아.설치 감독이야."


"...위험하지 않을까요?"


"혼자 보내면 실수를 해서 위험할 수도 있겠지.그래서 내가 같이 가는거야."


"아니,저말고 지휘관님이요."


"괜찮아."





1시간 30분 전



"지휘관님,질문하나 해도 되요?"


"응.뭔데?"


나와 지휘관님은 B지점에 놓여있는 커다란 돌 뒤에 숨어 기다리고 있었다.저 멀리 있는 A 지점의 랩쳐들은 당연히 우리는 물론, C 지점의 엄폐물 준비중인 니케들도 모른채 자기들끼리 바글바글 거리며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왜 굳이, 웹 설치를 제게 시키고 저랑 같이 오셨나요?"


"설명했잖아."


지휘관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A 지점을 주시한 채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정말 그게 다예요?"


"응."


이번에도 노 룩 답변.웹을 잠시 내려놓고는 지휘관의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지휘관님?"


"왜 또,무...으악!?"


지휘관은 어느새 자기 얼굴 가까이에 다가간 내 얼굴을 보자마자 또 깜짝 놀라며 몸을 뒤로 뺐다.언제봐도 좋은 반응이었다.


"솔직히 말해봐요.저랑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러셨죠?"


"...하아...?"


묘한 표정이었다.일단 당황한 표정은 알겠는데 금새 다시 좀 전의 진지한 얼굴로 바뀌었다.


"작전 중에 무슨 소리야. 정신 바짝차려.우린 지금 로드급도 포함된 랩쳐들과 싸우기 직전이라고."


"그건 그렇지만....어차피 엄폐물 설치가 끝나기 전까진 할 거 없잖아요."


"정!찰!이!지!"


지휘관은 다시 고개를 돌려 랩쳐 무리쪽을 쳐다봤다.


"규모가 너무 커지기 시작하면 엄폐물 설치가 완료되지 않더라도 웹을 박아넣고 시작해야돼."





1시간 전

"엄폐물 설치, 오래 걸리네요...?"


벌써 한시간이 흘렀다. 작전중엔 적당한 엄폐물을 찾아 들어가는 게 보통이지만, 오늘처럼 엄폐물을 직접 '설치'하고 전투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 다만, 보통 10~20분 사이로 끝내곤 전투에 돌입하는데, 오늘은 유난히 오래 걸렸다.


"큰 소리를 내면 안되니까."


지휘관이 전방 감시를 멈추고 바위 뒤로 숨으면서 후우~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전투 직전에 엄폐물을 세울때는, 어차피 랩쳐와 조우한 상태이기에 전투가 시작되기 전까지 그냥 막 내던지고 제멋대로 쌓아놓고 대충 그 뒤에서 숨어서 전투를 시작하잖아.하지만 오늘은 우리쪽이 전투를 거는 쪽이야.


전투 시작 타이밍은 우리에게 달려있지. 랩쳐가 우리를 발견하기 전까지는.그래서 들키지 않으려고 엄폐물을 천천히, 조심스레 쌓는거야.그러니 오래걸릴 수 밖에."


"으음....그러고보니 그렇네요."


항상 전투 시작은 랩쳐 발견과 함께 시작한다.대충 주위의 잡동사니건 돌이건 뭐건 보이는 대로 대충 쌓아놓고 그 뒤로 숨어서 사격.


"지루해?"


"...아뇨,그런건 아니고..."


잠깐 머리를 굴려본다.뭐라고 해야 할까....


"...모처럼 단 둘이 있는 데, 제가 아니라 랩쳐만 쳐다보시는게 질투나서요."


"...!!"


조금 놀란것 같은 반응이었다.그리고 아마도, 머릿속으로 뭐라 말을 꺼낼지 고르는 중 인듯 했다.


"어제 찍은 셀카, 보내드릴까요?"


"응?"


내 말에 또 다시 머릿속에서 다른 것들이 떠오르는 듯 햇다.


"...자,장난치고 싶은거라면 됐어."


고개를 훽 돌리면서 손을 훠이훠이~거리며 흔든다.


"장난 아닌데."


"장난 아니면 뭐?"


"장난 아닌 셀카"


"....돼,됐거든요?"


관심 없다는 척하는게 뻔히 보이는 태도로 대답하더니, 지휘관은 바로 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관심 있으시나봐요?제 셀카."


"...크리스.웹 설치."


"네?"


"엄폐물 설치 완료.블라왔어."


증거라도 내밀듯이 지휘관은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 블라블라를 보여주었다.


"네,알겠습니다. 지휘관님"


이 조그마한 상담(?)시간은 아무래도 여기서 그쳐야 할 것 같다. 바닥에 내려놓았던 웹을 들어 바닥에 1자가 되도록 세웠다. 중간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밑 바닥에 설치된 드릴이 철컥!하고 빠져 나왔다.


그리고 어제 설명들은 대로 몸체를 양손으로 꽉 잡고,바닥에 꾹 누른다.


위이이이잉-


생각보다는 작은 소리를 내며 드릴이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보통 2~3분이면 끝난다는 작업이었다.


"...크리스."


"예..?"


드릴이 반정도 묻힌 시점,지휘관이 입을 뗐다.


"작전 끝나고, 상담 하자."


아아,이 남자.좀전에 내가 불평하듯이 한 말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긴 하네.그래...그래야지.그래야 내가 찾은 태양이지...나를 위해주고, 내가 슬퍼하면 나를 위로해줄 남자...


"네.이번 작전 끝나면 그 즉시요."






현재


"전원 엄폐!"


지휘관의 지시에 이제는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콰쾅!!!쾅!!"


랩쳐가 쏘아올린 폭탄(?)같은 것들이 엄폐물을 격하게 때리며 부숴져 갔다.


"충전율 95%!!거의 다 됐어!!마지막이야!!! 1사수는 엄폐 지속!3,5사수는 웹에 접근한 놈 일제 사격!!"


"지,지휘관님!"


지휘관은 아무래도 방금 공격으로 내 앞의 엄폐물이 완전히 파괴된 걸 몰랐던 모양이다.


"어차피 지금 엄폐물이 파괴되었어요!저도 사격하겠습니다!!!"


"3사수,엄폐!5사수는 비행형 랩쳐를 저격!"


못들은 걸까?응답없는 지휘관은 놔두고,나에 대한 지시는 아니었지만 하나보다는 둘이 났다는 생각에 에이다에게 지시한 비행형 랩쳐를 향해 사격했다.


"!!1사수,사격 중지!!!중지!!!!!"


"에?"


갑작스런 사격중지 명령에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엎드려!!!!"


"?"


지휘관의 깜짝 놀란 표정.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의아해하는 순간, 빛이 꺼졌다.











본 적이 있는 천장이었다. 새하얀 천장.그래...이곳은...리페어 센터.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의식이 돌아 오나요,크리스?"


상냥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고개를 조금 움직여 보자, 침대 옆에 간호사가 서 있었다.


"자,이제 일어나 보시겠어요?새 스페어 보디에 잘 정착 되었는지 테스트를 해봐야 하거든요."


스페어 보디...?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간호사의 말대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뭔가 조금...온몸이 조금은 뻐근한...느낌이었다.그래도, 큰 문제는 아니었던 걸까? 간호사를 따라 검사실로 향하는 그 고작 5분도 안되는 시간만에,


몸의 감각이 살아나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간단한 테스트. 팔을 들어 올린다거나 다리를 들어 올린다거나.반사신경 테스트도 포함된 간단한 운동능력 테스트가 진행되었다.테스트 결과는, 그냥 무난하게 통과였고,


간호사가 테스트는 끝이라며 퇴원 준비를 하라고 했다.


"저...질문좀..."


"네,뭔가요?"


기억이 조금 몽롱~했다. 분명 거점 방어전을 수행중이었고, 지휘관이 사격을 중지시킨 것 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다음 어떻게 해서 내가 리페어 센터에 누워있는 건지 알 수 없다고 하자, 간호사는 친절히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크리스는 전투 중에 로드급 랩쳐의 원거리 저격 빔에 상체를 관통 당했고,수 많은 총탄이 하체를 파괴시켰어요.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머리가 멀쩡해서,스페어 보디에 이식한 거랍니다."


퇴원후, 전초기지로 걸어가면서 기억을 더듬어 본다.거점 방어전 마지막에...엄폐물이 파괴되고...지휘관이 엄폐 지속을 명령했다.사격중지도.


'아...'


엄폐물이 파괴된 건 나 뿐이었으니까, 에이다와 드레스에게만 사격을 시킨거였다.그래야 랩쳐의 어그로가 그 둘에게 쏠려 엄폐물이 없는 나에게 공격이 들어오지 않을텐니까. 내가 그걸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사격을 한 바람에,


랩쳐의 모든 공격이 나에게 집중되었던 모양이다.지휘관님,엄청 화나셨겠다.....


"...지휘관님!?"


그런 걱정을 하며 전초기지로 올라갈 엘레베이터에 도착했는데, 그 앞에 지휘관님이 서 있었다.표정은...역시나 화난듯 많이 굳어 있었다.


"퇴,퇴원했습니다."


"...응.가자."


우우웅--


전초기지로 올라가는 동안, 지휘관님은 아무말도 없었다.뭔가...분위기를 좀 바꾸고 싶은데...아직은 눈치가 보인다.지휘관은 생각에 빠진듯 눈을 감고 엘리베티어 벽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있었다.


"...."


지금은,괜한 소리 하지말고 조용히 기지로 올라가는 게 좋을것 같다.


"크리스."


"네.지휘관님"


허를 찌르듯 지휘관이 말을 걸었다.그리곤 팔짱을 풀고는 내게 다가오더니...


"!?지,지휘관님?"


그 넒은 가슴팍에 내 얼굴을 끌어 당겼다.생각도 못한 행동에 깜작 놀라는 사이, 지휘관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행이야.치명상이 아니어서."


"......네...."






니케 상담 크리스 6

"가만히 생각해 봤는데요."


이번에도 지휘관의 얼굴에 내 얼굴을 쓱 들이밀며 말을 건다.


"뭘?"


이제는 적응이 된 것인지, 지휘관도 더 이상 얼굴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말을 이어갔다.


"왜, 퍼스트 스피어 분대에는 추가 인원이 배정되지 않나요?"


"내가 모집을 안하니까."


"왜요?"


"돈 없거든."


"그거, 전초기지 수리 안하냐고 물어봤을때도 들은 거 같은데요."


"따로 쓸 데가 있어.모아야해."




A.돈 쓸 여자라도 있으신가봐요?



B.미래를 위한 투자라도 하시게요?○




"미래를 위한 투자라도 하시게요?"


"틀린 말은 아니지."


지휘관은 검지 손가락을 펴서는 내 이마를 꾹 눌렀다.


"마침 오늘, 너랑 갈 곳도 있어.어디다 쓰는지 보여줄게.외출 준비해."










니케 크리스 에피소드 3 - 의미 있는 투자


지휘관과 함께 방주로 내려왔다.그리고 당연히 쇼핑은 생필품과 식료품,레벨업에 쓰이는 데이터 브릿지 등등 여러가지를 사들였다.그리고 약간의 사치품(?)도 조금 사러 가긴 했는데...


"앨범이요?"


"응.쿨"


한동안 머릿속에 잊고 지내던 이름이 들렸다. 솔로 여가수 '쿨'.그러고보니 처음 배정 되었을때 지휘관도 쿨을 좋아한다고 했다.


"최근에 컴백했거든. 이번엔 무려 100페이지 짜리 화보집이 들어가 있는 스페셜 패키지라고."


마치 돈모아서 원하던 장난감을 사는 어린애 같은 밝은 웃음을 지으며 계산대로 향하는 그 모습이 귀여워보였다. 쿨이라...오래간만에 옛 생각이 났다. 내 첫번째 태양, 페트로니스를 유혹하던 기억이.


"쿨, 많이 좋아하시나 봐요?"


"응.내 학창시절의 버팀목이었지."


다른 매장으로 향하면서 잠시 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대충, 데뷔 때의 귀여운 맛에 무대영상을 찾아보고, 돈모아서 콘서트도 가고, 앨범들을 사모으고, 너무 빠져있다보니 알게 모르게 쿨의 패션에 취향이 물들었다느니 하는.


쿨의 패션...하니까 생각나는게 있었다.


"50데니아 검정 팬티 스타킹이요?"


"오?잘아네?"


알지...잘 알지...반년동안 신고 살았으니...


"하지만, 이미 과거의 일!지금의 쿨은 한층 더 멋진 누님이 됐지."


신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지휘관을 따라 걷다보니 왠 철물점(?)같은 곳에 도착했다.


"여기는..뭔가요?"


"내가 돈 모으는 이유.두번째.여기서 오늘 크리스의 장비를 살거야."


"장비...요?"


"톱니부터 건물까지!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쩌렁 쩌렁한 여성의 목소리가 반겨줬다.


"여,리타!오랜만이야!"


"어!왔느냐,애송이!"


그리고 그 안에서 왠 키작은 여성이 웃으며 지휘관을 반겼다.


"지난번에 네가 주문한 장비는 제작 완료했다.방어형 갓데시움 5티어 장비.맞느냐?"


"정확해."


리타라 불린 키 작은 여성은 커다란 상자 4개가 올려져 있는 핸드카트를 밀고 나왔다.그리고는 내 앞에서 카트를 멈추더니 나를 올려다 봤다.그 얼굴은 작은 키만큼이나 굉장히 앳되어 보였지만, 그 표정은 뭔가 인자한 느낌이었다.


"...이녀석이 쓰는거냐?"


"응."


"...흐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애초에 무슨 생각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지 모르겠으니까.


"잘 쓰거라."


리타는 자기혼자 뭔가를 납득했다는 듯이, 씨익 웃고는 카운터로 돌아갔다.


"그럼, 결재해다오.5티어 장비 3500K * 4니까 14M."


터무니 없이 큰 금액이 튀어나왔다.14,000,000 크레디트!?!?


"..."


핸드카트를 밀며 전초기지로 가는 엘리베이터로 향하면서도 말도 못할 금액에 멍해 있었다.


"아니,지휘관님."


"응?"


"이거, 헬멧이랑,방어복,근력 보조 장갑,각력 보고 부츠 그런거라고 했죠?"


"응.다음 작전부터는 크리스가 입고 출전할꺼야.돈 모으는 데 고생했어."


"지금까지는 그런 거 없었잖아요."


"말했잖아. 돈이 없었다고.그래서 못 사줬을 뿐,당연히 필요한거야."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하셨잖아요?"


"응.너희들이 살아야 나에게도 미래가 있거든."


엘리베이터 안에서 지휘관의 설명은 이어졌다.


"내 꿈은, 얘기했지?"


태양...


"그 꿈을 위해선 결국 오래 살아야돼.지상탈환이 하루이틀에 끝날일도 아니고, 쉬운일도 아니지.그리고 그 싸움동안 나는 당연히 너희들,니케들에게 목숨을 맡길수 밖에 없어.애초에 랩쳐는 인간이 대적할 수 없는 적이니까.


그래서 너희들의 생존율을 올릴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한다.더 좋은 장비, 더 강한 무기.나오면 나오는대로, 돈을 최대한 아껴가며 거기에 투자하는거야.너희들에 대한 투자가 결국 날 위한 투자가 되거든.


그래서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거지.아주 효율 좋은 투자.내 목숨을 지켜주는 투자.그리고..."


지휘관이 말을 끊고는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크리스의 목숨도 지켜주는 투자.이보다 더 의미있는 투자처가 어디 있겠어."


...전부터 느낀거지만...머리 쓰다듬어 주는거...기분좋아....









니케 상담 크리스 7

"그래서, 지휘관님은 결혼 안하세요?"


"응."


와...즉답...


"내 직업상,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데 뭔 연애에 결혼에,그런거 생각할 수가 있나?"


불가능은 아니지.안그러면 내가 태어날 일이 없었을테니까.


"여튼, 적어도 내가 젊은 동안은, 꿈을 쫒아 갈거야.내가 더 이상 전장에 서지 못하게 되는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관심 안생길거야."


"흐음....."





A.혹시,남자 좋아하세요?○



B.혹시,니케 좋아하세요?




"혹시, 남자 좋아하세요?"


"하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하지만 내겐 꽤 중요한 일이었다.정말 남자를 좋아한다면 그때는...


"크리스씨?나랑 며칠전에 방주에서 뭐 사왔나요?"


"...?제 보호 장비요?"


약간 갈피를 못잡는 나를 보고는 지휘관은 자기 책상 서랍을 드르륵~하고 열더니 화보집 하나를 꺼냈다.


"아....쿨..."


며칠전에, 쿨의 새앨범에 딸려나온 화보집이었다.


"난!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가 좋다!"


"흐음...."


다행히 남자를 좋아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지휘관님.이거 빌려갈게요."


지휘관이 들고 있는 화보집을 낚아채며 지휘관실을 나섰다.오늘 밤은, 100페이지나 되는 화보집의 모든 포즈를 똑같이 셀카로 남겨야겠다. 밤마다 한 3~4장씩 지휘관에게 보내주면 좋아하겠지.


사진을 몇장 찍고, 최근 쿨의 무대 영상을 찾아봤다.요즘은 팬티스타킹 말고 망사 스타킹으로 패션을 바꾼 모양이다.








니케 상담 크리스 8


"레벨...60..."


스테이터스 측정 결과를 쳐다보며 지휘관이 중얼거렸다.


"60레벨?높은건가요?"


"응.높지."


"그러고보니 저는 얼마나 더 강해질 수 있는 건가요?"


"어...잠깐만."


내 말을 들은 지휘관은 핸드폰을 바삐 터치했다.


"지금까지 방주의 스테이터스 측정 결과 최고점은....레벨 160이네."


"...160이요?"


꽤나 까마득한 미래의 일인 것 같이 느껴졌다.


"그 이상은 배틀 데이터 칩도,코어 더스트를 써도 스테이터스 상승이 안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그럼 그 정도 되면 얼마나 강해지는 거예요?"


"글쎄...에이다와 드레스가 현재 118,117이니까 크리스도 엄청 강해지겠지."





A.앞날이 캄캄하네요.


B.앞날이 밝네요.○



"앞날이 밝네요"


"왜?"


"제가 엄청 강해지면, 지휘관님의 꿈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될테니까요."


"....그러네.기대할게,크리스."









니케 크리스 에피소드 4 - 타일런트 급 랩쳐


"임무 브리핑 시작할께."


평상시 보던 생글생글 거리던 얼굴이 사라진 지휘관이 프로젝터로 벽에 지도를 표시하며 말했다.


"이번 작전은 구조임무야."


지휘관이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2일전,이 지점에서 지상에 작전을 나갔던 니케 1개 분대가 갑자기 소식이 끊어졌어.그리고 어제 그 분대를 찾기위한 수색분대가 출동했지만 역시나 소식이 두절됐지.해서, 우리가 가게 된거야."


수색 작전을 하기 좋은 장소는 아닌것 같았다. 과거 대도시가 있던 장소인지 건물 잔해들이 여기저기 너무 많이 널부러져 있는 장소였다. 숨기 좋은 엄폐물이 많다는게 장점이기도 했지만,


그 장점은 랩쳐도 마찬가지다.


"아,그리고..."


지휘관은 책상서랍에서 USB 드라이브를 꺼냈다.


"중앙정부에서 업적 보상이라고 배틀 데이터 칩을 보내줬어.스테이터스 측정 전에 보고된 내용을 보고 보상이 정해진 모양인데...용량이 조금 애매해."


지휘관은 USB를 살짝 흔들며 약간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레벨 60인 크리스는 어차피 코어더스트가 없어서 낭비가 되어 버리지. 레벨 120을 바라보는 에이다나 드레스에게 몰아주기도 애매해.그래서,반반씩 사용할거야.그게 맞다고 생각해."








"...아무도 없구나..."


목표지점에 도달한 지휘관의 첫 감상은 이것이었다. 정말 아무도 없었다. 하다못해 시체라도 찾을 수 있을까 했지만 그런것도 없었다.


"일단, 흩어져서 수색해보자."


4명이 한데 뭉쳐 수색한다는 건 너무나도 비효율적인지라, 우리가 왔던 방향을 제외한 3방향으로 갈라져 주위를 수색해보기로 했다. 인간인 지휘관님이 혼자 있을수는 없으니 나와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


수색 중 지휘관님도 나도 서로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지휘관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가볍게 농담을 던질만한 분위기는 아니다.'구조'작전이기에 더 그런 모양이다. 30분 정도가 지나자,그런 지휘관도 약간은


긴장이 풀린 듯,후우~하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휘관님,조금 쉴까요?"


"아니,수색을 계속한다.1분1초라도 더 빨리 더 많이 찾아봐야지."


지휘관은 품속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에이다와 드레스에게서 연락이 없음을 확인한 지휘관은 다시 품속에 핸드폰을 집어넣고는 수색을 계속했다. 일단, 무너져 있는 건물들은 볼 필요가 없다.


언제 어떻게 무너져 내릴 지 모르는 건물안으로는 절대 도망가지 않는게 원칙이다.그렇기에, 수색범위 자체는 넓지만 정작 수색해야 할 장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반나절.


핸드폰으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며 계속된 수색은 해가 지는 저녁시간이 되자 자연스레 중단되었다. 이제는 야영 준비를 해야했다. 적당한 공터에 적당히 엄폐물을 설치하고 주위에 디코이를 뿌려놓는다.


"더 안드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지휘관은 퍼펙트 바 겨우 두개를 먹고는 더 이상 입에 대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지상에서 수색작업을 하느라 초 긴장상태였기 때문에 허기를 잘 느끼지 못하는 것 일수도 있다.


"응.괜찮아.그보다, 아직은 잘 생각은 없으니까, 경계는 풀어도 돼.일단 쉴 수 있을때 쉬어 둬."


지휘관은 다시 핸드폰을 꺼내들어 지도를 띄워가며 오늘 작전의 결과를 정리하는 듯 했다. 인간인 지휘관이 잠들면, 니케가 불침번을 선다. 보통의 경우, 디코이에 의해 1차로 랩쳐의 접근을 알아 낼 수 있기에,


1기의 니케만이 불침번을 서는게 보통이지만, 지금처럼 사방이 건물의 잔해로 둘러 쌓여 시야가 넓지 않다면 니케 1기만의 경계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이 남자는, 그걸 알고는 자기가 자기 전까지 쉬어두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수색 상황은 제가 정리할테니, 지휘관님은 주무세요."


지금 지휘관이 하는 건 간단했다. 지도에 오늘 나와 함께 수색한 부분,에이다가 수색한 부분,드레스가 수색한 부분을 표시하고 내일 수색할 부분을 미리 설정하는 것.굳이 지휘관 본인이 하지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아냐.크리스에게 지시했다가 내일 아침에 깨어나서 다시 설명을 듣고 수색을 시작하면 그 만큼 시간이 낭비돼.내일 깨어나자마자 바로 시작하기 위해 내가 직접 하는거야."


일리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러다가 오히려 피로가 겹쳐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하면 그만큼 더 낭비가 아니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결국 참았다.그리고 쉴새없이 핸드폰을 두들기다가 고민에 빠진듯, 팔짱을 끼고


입술을 꽉 깨무는 모습을 보다보니,어느새 지휘관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톡톡'


에이다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랑 드레스가 경계를 설테니, 지휘관님을 부탁해."


"네.그럴게요"


에이다와 드레스가 각자 반대방향으로 나아가 건물 너머로 모습을 감췄다. 이러니까 마치 자리 비켜준 것 같네.


"...쿠우....."


지휘관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앉은채로 잠들어 버렸다.지금 막 잠든 사람을 바닥에 눕힌다고 움직이면 잠이 깰 것 같아서 가만히 내버려두었다.얼굴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


잘생겼다.그리고 특히 웃는 얼굴이 뇌리에 박히는 남자였다.태양과도 같던 밝은 미소...


"크......헝...."


잠결에 고개를 떨구는 걸 보고 얼른 지휘관에게 다가갔다. 앞에서 끌어 안고 조심스레 바닥에 뉘였다.일단 모포를 깔아놓긴 했지만, 역시 돌바닥에 누워 자는게 안스러워졌다.지휘관의 머리를 살짝 들고, 그 사이에 무릎을 집어넣었다.


니케의 무릎을 베고 자는게 좋을지 어떨지까지야 모르겠지만, 적어도 돌바닥에 머리를 대고 자는 것 보다는 나으리라...그러고보니 아직 이 남자를 손에 넣기 위한 작업이 좀 지지부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크리스 자신이 니케였기 때문이다.인간이었던 시절, 페트로니스를 손에 넣겠다고 결심한 그날 이후, 페트로니스를 향한 유혹은 꽤 치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모르긴 몰라도, 꽤나 용기있고 강단있게 해냈던 거 같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이 남자는 분명 다른 사람들보다 니케를 위하는 마음이 커보이는 건 명백했다. 연애,결혼을 포기했기 때문일까? 전우에 해당한다면 할 수 있는 니케에게 꽤나 신경을 써주고 있다.


굳이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방어 장비를 구입해서 지급한다거나, 고작 부리는 사치라고는 여가수 앨범이나 조금 사모으는것 말고는 없어 보였다.하지만 그래도 이 남자를 인간이던 그 시절처럼 용기있게 대담하게 유혹하진 못하고 있었다.


이 남자가 니케를 어떻게 생각하던, 방주 내에서 니케는 인권을 갖지 못한다. 니케에 대한 대우는 그냥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도 있는 병기.그 정도였다.방주 시내를 몇번이나 이 남자와 나가면서 몇번이고 그런 모습을 보았다.


방주에서 생필품과 식료품을 사면 이 남자는 항상 자신이 반 정도를 나눠 들었다. 물론 인간인 이 남자보다는 니케인 내가 더 많이 들고 가는 건 당연했지만, 여튼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나를 도와주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주위에는 그런 사람이 한명도 없다는 걸 몇번이고 확인했다. 지휘관 군복을 입은 남자는 뒷짐을 지고 걸어가고 있고, 그뒤에서 엄청 커다래보이는 캐리어를 양손으로 1개씩 끌고가는 여성=니케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꼭 그런 것만 아니더라도,길거리에서 간식을 살때도 2인분을 사면 묘하게 눈치를 준다거나...사람들의 인식이 이지경이니, 이 남자를 섣불리 유혹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지휘관과 니케의 관계로 있는 지금이


오히려 더 나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유혹할 자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니케니까. 인간 여성이 맘먹고 유혹한다면, 이남자는 아마 감당못하고 끌려가겠지.하지만 니케라면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남자가 니케를 위하는 마음이 크다는 건 알지만, 그건 말그대로 니케라서일 뿐일지도 모른다.이 남자를 니케가 유혹한다고 넘어올 지 어떨지는 모른다.그렇기에 망설여진다. 이 남자의 밝은 미소.나만의 태양을 지금처럼 영원히


볼 수 있다면 오히려 그게 더 좋은 일일테니까. 니케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대시한다면...인간 여성과의 연애,결혼도 관심없다하는 이 남자가 호의적으로 나올지는 모를일이다. 혹시라도 불쾌하게 느껴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면,


그건 그야말로 멍청한 자충수.


"어렵네...나만의 태양을 가진다는 건..."


인간일 적에는 남의 태양을 빼았기까지 해보았는데,니케가 되어보니 이리도 어려운 일이 되어 있었다.니케 같은건...되고 싶지 않았는데...나는 동의한 적이 없는데...나는 동의했고 니케가 되어 버렸다.


사고 당시의 기억을 지운다.맨 처음 니케가 되어 깨어났을때 테트라의 CEO 머스탱은 그렇게 말했다.아마 사고 당시의 충격과 고통을 줄이기 위함이겠지만, 어쩌면...어쩌면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게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다 죽어가던 내가 살고 싶어 니케로의 전환에 동의를 했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니케가 되기전의, 아니 니케가 된 지금도 사실 니케에 대해선 잘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런 내가 과연, 죽기 직전 니케가 되겠다고 동의서에 싸인을 했을까...?




.

.

.

.




저 멀리 해가 떠오른다.다행히 밤새 랩쳐의 습격은 없었다.


"지휘관님,일어나세요.아침이예요."


고개를 숙여 지휘관의 귓가에 속삭였다.


"크으......으흠..?!?"


멍하니 눈을 뜬다.하지만 곧바로 잠이 깨진 못한 건지 약간 풀린 눈으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으음.....?"


아직 의식이 제대로 깨어나지 못한 것 같아 보였다. 씨익 웃어보이며 지휘관의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날이 밝았어요, 식사하셔야죠."


"..헛!?"


"꺅!"


드디어 의식이 깬 듯,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내 얼굴에 그대로 이마를 들이받았다.


"윽....미,미안,크리스."


"일어났네,지휘관님?"


때마침 드레스가 경계를 풀고 야영지로 돌아왔다.


"어,그래.깜빡 졸았다고 생각했는데,완전히 잠들어 버렸나보네."


지휘관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다시 지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에이다는 아직 경계중이야?"


"불러올까?"


"그래,부탁해 드레스.슬슬 수색 시작..."


지휘관이 갑자기 말을 끊었다. 지잉-하는 진동음이 들리자 빠른 손놀림으로 블라블라를 켰다.


"....크리스,드레스. 이동하자."


"예?"


"에이다가, 생존자를 찾았대!"


지휘관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벌떡 일어났다.


"뛰어간다면 10분이면 도착할거야!"


"뭐?아니, 에이다는 경계근무하랬더니 왜 그렇게 멀리 가 있는건데!?"


"모르지.일단 가자!"







"지휘관!여깁니다!!"


목표지점에 에이다가 서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무방비하게 엄폐물도 없는 탁 트인 공간 가온데에 서 있었다.


"...저 바보가,뭐하고 있는거래.."


드레스의 탄식이 들렸다.건물이나 엄폐물 뒤에 숨어 있다면 모를까,확실히 위험해 보이는 상태였지만, 지휘관은 그런건 지적하지 않고 곧바로 에이다에게 생존자의 위치부터 물었다.


"생존자는 어디있어?"


"여깁니다!"


지휘관의 질문에 에이다는 손으로 자신의 발 아래를 가리켰다.


"...여기?"


"네!여깁니다!"


"....?"


지휘관도, 나도, 드레스도 바닥을 살펴봤다. 아무리봐도 그냥 땅이었다. 지하 벙커로 이어지는 출입구라던가, 뭔가 잔해로 뒤덮여 있는, 입구로 의심할 수 있는 구조물이라던가 그런게 아무것도 없는 그냥 땅이었다.


"에이다, 지금 장난 칠때가 아냐."


"여기가 맞습니다!여깁니다!!"


"..."


뭔가 이상했다. 에이다도, 드레스도 워낙 군인 스타일의 '딱딱한' 성격의 인물들인지라 절대로 '장난'을 칠만한 성격은 아니었다.장난이 아니라고 한다면, 정말 이 아래에 뭔가 있다는 이야기인데...?


"여깁니다!여깁니다!여깁니다!!"


"???"


마치 억울하다는 듯이, 여기라는 말을 반복하는 에이다.지휘관님도 조금 당황한 듯이 에이다에게서 시선을 옮겨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주위에 건물들 잔해는 있어도 도저히 지하로 이어질만한 통로나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여깁니다!여깁니다!!여깁니다!!!"


"에이다!"


상태가 이상했다.자신의 말을 안 믿어 준다는 느낌이 들었을지라도 저렇게 반복한다고?지휘관이 정신차리라는 듯이 크게 소리를 한번 질렀다.그 순간.


"여여여여여기기기기깁니니니니니다다다다다!!!!!"


에이다의 눈이 새빨갛게 빛났다.


콰르르르르릉!!!


그와 동시에 에이다의 뒷쪽에 있던 건물 하나가 큰 파열음을 내며 부서지며 내려앉기 시작했다.


"후퇴,후퇴!!!"


굉음과 진동이 한데 어우러지 혼이 쏙 빠져나갈 것 같은 상황에 지휘관이 우리가 서 있던 뒤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드레스와 나는 곧바로 몸으로 지휘관을 가리며 뒤로 뛰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우리가 건물 잔해 뒤쪽으로 대피할때도, 건물이 전부 무너져 먼지가 자욱히 일어나며 시야를 완전히 가린 그 순간에도, 에이다는 '여깁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침식...인가?"


지휘관이 신음하듯이 내뱉었다.


"...어제, 경계 근무를 한다고 혼자 보냈을때, 당했던 것 같습니다."


"...제길.....내가 잠들지 않았다면..."


"아뇨. 지휘관님은 인간입니다. 저희와는 달라요."


-타앙!!!


총격음.하지만 이 소리는 적어도 저격총을 쓰는 에이다의 총소리는 아니었다.


"크르르르릉!!!"


저 멀리서 들리는 짐승과도 같은 울음소리...고개를 빼 소리가 난 방향을 보자, 에이다의 뒤에 거대한 랩쳐가 서 있었다.


"여깁니다!!"


에이다의 발언과 동시에, 랩쳐에게서 뻗어나온 촉수가 에이다의 허리를 휘감더니 그대로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자신의 등쪽에 있는 거대한 구멍으로 에이다를 쓱 집어넣어 버렸다.


"타일런트 급 랩쳐...블랙....스미스...니케를 납치,분해해서 부품만 뜯어내는 녀석이지."


지휘관이 이빨을 꽉 깨물었다.


"지휘관.후퇴해야 합니다."


드레스가 입을 열었다.


"지금 둘 만 가지고 타일런트 급 랩쳐를 이긴다는건 말도 안됩니다.게다가 에이다를 구출하는 건 더 무리고요."


"에이다를 버리자는 거야?"


지휘관이 드레스를 쏘아 보았다.


"블랙 스미스는 포획한 니케를 장시간 내부에 보관합니다. 지금 당장 구출하지 못한다 해도 구출 가능성이 제로는 아닙니다.지원을 요청하여 함께 공격해야 합니다."


"..."


"냉정해 지십시오.승산은 없습니다."


-타앙!!!!


또 한번의 묵직한 총격음과 함께 근처의 땅바닥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둘이서 적당히 응전해. 드레스 말대로 어차피 우리가 물리칠 수 있는 적이 아니야. 그동안 나는 지원 요청을 하고, 가장 가까운 엘리베이터를 찾아볼께."


"...섬광탄을 바로 쏠까요?"


"아니, 그건 일단 아껴둬.여기서 계속 엄폐만 하고 있을 순 없을테니, 후퇴할때 쓰자."


"네."


-타앙!!!타앙!!!타앙!!!


총소리는 세번 들렸지만 엄폐물, 그리고 바닥에 튕긴 총탄 소리를 들어보면, 6발 쐈다.


"..."


아직 블랙 스미스는 우리가 숨은 위치를 찾지 못한 모양이다. 그 동안 지휘관은 좀 더 멀리 떨어진 건물 안쪽으로 숨어들어 지원요청을 하고 있었다.


-휘리릭!!


블랙스미스의 양 어깨에서 길다란 촉수가 뻗어나왔다.


콰쾅-!


두개의 촉수는 비록, 아무것도 없는 엄폐물을 부서버리는 데 그친채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블랙스미스는 아직, 우리를 찾지 못했다.


"1사수 사격!!"


고개를 내밀고 다시 한번 블랙스미스를 찬찬히 쳐다봤다. 양팔에 거대한 라이플이 하나씩 달려 있었다. 아까전에 저걸 쏜 모양이다.앞 뒤 생각할 것도 없이 가까운 쪽 라이플에 집중 사격.


드레스도 같은 생각인지 나와 같은 표적을 노리고 사격을 시작했다.


-탕!탕!탕!


"으윽!!!"


한발을 어깨에 맞았다.단순히 한발만 가지고는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피해는 누적된다.


"휘리릭!!"


저 멀리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블랙스미스의 두개의 촉수가 날아왔다. 내쪽으로 날아오지는 않았지만, 드레스는 미처 촉수를 보지 못했다.


"아악!!"


두 개의 촉수가 드레스의 양 어깨에 박혔다.


"우우웅"


촉수가 박힌 순간, 블랙스미스는 뭔가를 준비하듯 낮은 소리를 내며 그자리에 멈춰섰다.


-타다다다다당


무엇을 하려했던, 어떻게 저지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무작정 사격했다.양쪽 어깨의 촉수가 시작되는 부분.한 탄창을 다 써버리고, 곧바로 갈아끼운 탄창이 반이상 비워지자,


블랙스미스는 양쪽 어깨에 작은 폭발을 일으키며 촉수를 거두어 갔다.


"너 이자식,!잘도!!!"


촉수가 빠져나가자 다시 양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된 드레스는 곧바로 좀 전에 떨어뜨린 총을 집어 들고 사격을 재개했다. 그런데...역시나 블랙스미스에게 타격이 있긴 한지 모르겠다.


"드레스!섬광탄!"


"네!"


뒤에서 갑자기 지휘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시를 들은 드레스는 재빠르게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두었던 섬광탄을 하나 꺼냈다.


"투척!!"


있는 힘껏 드레스가 섬광탄을 던지자마자 모두 엄폐물 속에 웅크렸다. 잠시후 콰앙!하는 굉음과 함께 강렬한 빛이 한번 번쩍였다. 의외로, 랩쳐들의 시각센서와 청각센서를 망가뜨리는데


꽤 도움이 되는 장비다.


"후퇴!!!!!"


블랙스미스가 회복하기 전까지, 도망치는 게 최선이었다. 블랙스미스가 있는 반대쪽으로 뛰어 갔다.


"지원 요청이 받아들여졌어. 가장 빨리 올 수 있는 부대의 도착예정시간은 30분!"


제멋대로 무너져 있는 건물을 옆으로 피해 돌아가며 지휘관의 상황 설명은 계속됐다.


"근처에는 방주로 내려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우리 목표는 최대한 시간을 끌어서 지원부대와 도착하는거야. 질문있어!?"


"없습니다!"


솔직히 뭘 질문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맞겠지.


-타앙!타앙!!!


핑!하고 총탄이 내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제길,벌써 따라붙은 건가!저 쪽!!!저기 무너진 기둥 뒤에서 대응한다!!"


지휘관이 가리킨 무너진 기둥을 뛰어넘어 곧바로 등을 붙였다.고개를 들어 블랙 스미스를 바라보니 블랙 스미스도 사격준비를 하는지 제자리에서 꿈틀꿈틀 거리고 있었다.


"일제 사격!!"


정확히 무엇을 준비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저지해야겠다는 생각에 몸이 저절로 움직였고, 지휘관도 반사적으로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드레스의 원거리 저격과 내 돌격소총의 연속사격은


블랙 스미스에게 그다지 피해를 주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가 않았다.


-콰쾅!!!


이번엔 또 처음 보는 패턴이었다. 블랙스미스의 양어깨에서 여러개의 포탄이 쏘아졌다.


"!?"


양쪽에서 6개씩 총 12개. 12개의 포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우리가 엄폐하고 있는 기둥쪽으로 날아왔다.


"포탄 요격!!!"


지휘관의 지시에 반사적으로 총구를 하늘로 향했다. 하지만 겨우 10발도 채 쏘지 못하고 탄창이 비워졌고, 새탄창을 끼우는 사이, 드레스가 포탄을 저격하고 있었다.


-콰앙!콰앙!!!


한발,두발...세발째 포탄이 요격됨과 동시에 나도 총구를 들어 사격을 시작했다.


-콰쾅!!콰앙!!콰쾅!


"늦었어!!!피해,드레스!!!"


7발의 포탑을 요격에 성공했지만, 5발은 아직 날아오고 있었다.그때 드레스의 탄창도 바닥났고, 드레스는 고개를 홱 돌려 뒤 쪽에 있는 지휘관을 돌아 보았다.현재 지휘관의 위치는 드레스의 직후방.


여기서 드레스가 포탄을 피한다면, 포탄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지휘관에게 떨어질 것이다.드레스는 결심을 굳힌듯,그 자리에서 총을 버리고 양팔을 벌리고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드레스!!!"


-콰콰쾅!!쾅쾅!!


강렬한 폭음과 진동. 5개의 포탄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 버린 드레스는 그 폭발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었다.꽤 강한 충격을 받았을것이 분명함에도 드레스는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크리스..."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온 음성은 완전히 힘이 빠져있었다.


"지휘관님...을...지켜..."


힘겹게 입을 떼면서, 드레스는 주머니에서 한발 남은 섬광탄을 꺼내 들었다.


"지휘관님...저 시커먼...녀석 뱃속....에서...기다릴테니까...꼭....구해주셔야...해요??"


-휘리릭!!


다시 한번 촉수가 날아와서 드레스의 몸을 휘감았다.드레스는 아무 저항도 못한채 빠르게 다시 수축되며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블랙 스미스의 촉수에 휘감긴 채 지휘관을 향해 미소지었다.그것을 지휘관이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다음 순간.


-퍼어엉!!!


다시 한번 굉음을 내며 섬광탄이 터졌다.


"뛰어,크리스!!!"


지휘관이 꽥 소리를 지르고는 블랙 스미스와 정반대쪽으로 전속력으로 달렸다.크리스도 그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지휘관을 쫓아 뛰기 시작했다. 섬광탄으로 끌 수 있는 시간은 어림잡아 3~4분.


아직도, 지원이 오기에는 10분 이상이 남아 있는 시간이었다.그 시간동안 뛰어다니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고, 뛰어다닌다고 블랙 스미스를 떨쳐낼 수도 없었다. 이 상황을 어찌 탈출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지휘관은 폐허가 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지휘관님.건물에 숨는건."


"알아...붕괴 위험이 있긴 해도,어쩔 수 없어.도망만으로는 한계야.얼마나 버텨줄 지는 모르겠지만..."


크르르르르르릉!!!!


건물 바깥에서 블랙스미스의 포효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섬광탄에 마비된 시각 센서가 정상으로 돌아왔을리라.


-쿠웅!!!!!


엄청나게 육중한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건물 폐허 안에서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자 그곳에는 어느새 블랙 스미스의 모습이 있었다. 방금 전의 소리로 미루어 보건데, 블랙 스미스는


점프를 뛰어 여기까지 쫓아온 모양이었다.


탕!탕!탕!!!


"크..."


블랙 스미스의 총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옆건물의 벽에 불꽃이 튀었다. 아직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듯, 잠시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또 다시 다른 건물에 총격을 가했다.두번,세번의 반복 후.


콰쾅!!!


기어이 블랙 스미스가 발사한 총탄은 우리가 숨어 있는 건물 벽을 때렸다. 이제 우리를 찾는 건 시간문제겠지.찾지 못한다해도 건물을 무너뜨려버리면 블랙 스미스의 승리...어떻게 해야 할까...?


콰르르릉...


아직 그 해답을 찾지 못했는데, 조금씩 건물이 흔들거리는 게 느껴졌다. 블랙스미스가 건물을 무너뜨리기 시작한 모양이다.지휘관과 눈이 마주친 순간,둘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블랙스미스가 있는


반대방향으로 달렸다. 중간에 제멋대로 널부러진 건물 잔해를 넘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문을 밟고 이미 뻥 뚫려 있는 벽을 지나쳐서 반대편으로 빠져나왔다.


-두두두두두두


"!?"


저 멀리서 헬기 소리가 들렸다.


"지원군이다!!!"


지휘관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뛰면서 소리쳤다. 소리가 나는 쪽은 뒤쪽. 뛰면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자, 비록 아직 멀리 있기는 했지만 헬기 한대가 접근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리는 아직도 멀었다.


그리고 우리와 헬기 사이에는 수 많은 건물 잔해와 블랙 스미스가 있었다.


-위이이이이이잉!!!!!!!


헬기쪽에서 머신건 사격소리가 들렸다.


-투두두두두두둑!!!!


저 먼 하늘에서 빗발치듯이 쏟아져 내려오는 탄환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크리스!!!살았다!!!"


"네!지휘관님!"


블랙스미스를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희망이 보였다.힘이 더 나는 듯 했다. 좀 전까지의 불안이 한꺼번에 사라졌다.달리면서 뒤를 돌아보자, 블랙 스미스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사격에 몸을 움츠린채 꼼짝 못하고 있었다.


"크리스!!"


나를 부르는 소리에 다시 지휘관을 쳐다보자 지휘관은 조금 더 앞쪽에 제멋대로 굴러있는 자동차의 잔해를 가리켰다.그걸 보자마자 다리에 더욱 더 힘을 주어 달렸고, 잔해에 다다랐을때, 나와 지휘관은 몸을 날렸다.


상쾌했다.마치 띔 틀을 넘어가듯, 나와 지휘관님은 자동차를 넘어 바닥으로 굴렀다.


-투두두두두둑!!!


-크르르르르르르릉!!!!!!


-콰쾅!!!!


자동차 넘어 저편에서 전투소리가 들렸다.우르르 쾅쾅 거리며 굉음이 몇번 들리고 난 후, 잔해 넘어로 고개만 빼들어 상황을 살폈다.


"8명.대단하네."


블랙 스미스와 대적하고 있는 니케는 무려 8명.항상 세명이서 다녔던 퍼스트 스피어 분대에 비해 두 배가 넘는 인원이 전투하는 모습은 경외감마저 느껴졌다.지휘관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할말을 잃고 그들의 전투를 지켜봤다.저 멀리 아침 해를 배경으로, 8명의 니케의 집중포격을 받고 있던 블랙 스미스는 앗!하는 사이,금새 동작을 멈췄다.


"가자,크리스.감사 인사를 해야지."


"네."


블랙 스미스의 침묵을 확인한 후, 나와 지휘관은 잔해에서 빠져나와 지원부대에게 다가갔다. 지원 부대가 오기전에는 반쯤 포기상태였다. 마지막에는 내가 미끼가 되어 지휘관을 도망시키는 수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아무리 내가 영원히 소유하고 싶은 태양이지만, 나는 니케다. 지휘관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그래서 반쯤 포기했던 이 태양을 나는 잃어버리지 않게 되었다.


'다행이야...'


아직은 이 남자를 더 유혹할지 어떨지 결정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아직 더 생각해볼 시간은 가질 수 있었으니까.


"레오폴드!!!엎드려!!!!"


지원부대의 지휘관이 다급하게 외쳤다.










니케 크리스 에피소드 5 - 재동


방주의 AI룸. 에닉의 재판이 진행중이었다.피고는 크리스. 죄목은 지휘관의 '사망 방조'였다.


"지휘관 절대 보호의 법칙을 어긴 점. 이것은 니케 크리스에게 있어 그 어떤 것보다 큰 죄입니다. 더구나 그로 인해 지휘관이 사망하였으므로 더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니케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점을 들어,


니케 크리스는 폐기처분을 지금으로 부터 1시간 후,실시합니다."


그것은 재판,이라기보다는 통보였다.애초에 니케에게 발언권같은건 없었다. 이의신청은 물론 불가. 니케 크리스는 폐기처분형이 내려졌다. 재판을 관전했던 여러 부사령관과 3대 기업의 CEO들이 모두 떠나가기를


기다린 에닉은 단말기를 조작해 누군가를 호출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한명의 니케가 AI룸에 들어왔다.


"프로토콜 스쿼드의 리더, 리코더.불러서 왔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리코더에게 부탁드릴 게 있어서 불렀습니다."


"...?"


"지금으로부터 52분 후에 니케 크리스에 대한 폐기처분이 진행됩니다.리코더는 그 폐기처분을 무해하게 진행시켜주십시오."


"...무해하게?"


리코더는 언뜻, 이해할 수 없는 내용에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폐기처분은 진행되어야 합니다.하지만 니케 크리스가 폐기처분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말을 돌려서 하는건지, 아니면 정말 다르게 말할 방법이 없는 건지 알송달송한 말이었다.


"요컨대, 폐기처분은 재판 결과대로 진행하되, 크리스를 무사히 빼내오라는 거지?"


"그렇습니다.문서상으로,데이터베이스 내에 완전히 폐기처분되어야 합니다."


"...에닉이 어째서 그런 일을?"


"지금 그것을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흐음...."


놀랄 일이었다. 재판을 진행한 AI가 자신의 판결 시행을 조작하라니,대체 왜?


"조건이 있어."


"무엇입니까?"


"일이 끝나면 전부 설명해줄 것."


"그렇게 하겠습니다."








1시간 후.


"자,일은 끝났어.폐기처분은 문제없이 진행되었고, 크리스는 무사히, 에닉이 준비한 다른 조력자에게 인계되었어.이제 말해줘야지?왜 이런일을 꾸민건지?"


"니케 크리스의 뇌를 스캔하면서 한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인간 크리스 시절, 크리스는 어린 시절부터 부친의 지속적인 폭행을 당해오며 성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크리스는 애정결핍,피해망상 등의


증세를 보였으며, 고등학교 3학년 생인 기간에는 그 애정 결핍을 메꾸기 위한 방법으로 친구를 유혹하여 자신의 반려로 삼게 됩니다. 그리고 가정으로 부터 독립 후,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크리스는 안타깝게도


흉기 난동 사건의 피해자로 사망하게 됩니다. 사고 직후, 병원에서 작성된 니케 시술 동의서로 인해 테트라의 니케로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그 다음부터도 약간 흥미로운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사실, 니케 크리스는


니케가 된 후로 감정이 많이 매말라 있는 상태였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겨우겨우 손에 넣은 반려인이 사망한 것에 대한 충격이 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사망한 레오폴드 지휘관은 그런 크리스에게


상냥하게 대해 주었으며, 크리스 자신도 다시한번 자신의 애정 결핍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새로운 반려를 발견했다고 생각했습니다.반려가 될 남성을 발견한 그녀의 행동력은 꽤 대담했고 놀라웠습니다. 보통의 여성이라면


꺼려할 선정적인 도발을 주로 사용해 반려를 붙들었습니다.인간일때 뿐 아니라, 니케일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부분이, 제가 학습할 가치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되었기에, 그녀를 살려 두려고 합니다."


"...학습?"


"예. 인간 남성과의 협상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방법. 소위 여성의 무기,미인계를 학습하기 좋은 교재가 될 것입니다."


"여자가 몸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건,그리 드문 일은 아니지 않아?"


"그런가요?저에게는 아직 생소한 분야이며, 제가 파악한 시점에서는 가장 뛰어났습니다."


"..."


"하여, 지금 그녀는 제가 별도로 부탁드린 조력자들이 기억소거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아...아까 내가 빼낸 크리스를 데려간 사람들 말이군."


"그렇습니다."


"그럼. 이제 크리스는 어떻게 되는건데?"


"그녀의 능력은 제게 큰 학습재료가 되는 것 이외에도, 실제 인간사이에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능력이 뛰어난 경우, 갱생관에 투옥한 뒤, 그 능력이 꼭 필요한 경우 출옥시켜 사용한 뒤 다시 투옥 시키는 방법이


유효하게 먹히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녀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그녀의 미인계,유혹등의 방법은 평소에 '친분'을 쌓아두지 않으면 절대 발휘될 수 없는 능력입니다. 하여, 평소엔 보이지 않다가 필요할 때만 투입되는 방법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또한,현재 그녀의 멘탈상태는, 두번째 반려, 레오폴드 지휘관의 사망으로 인해 완전히 붕괴된 상태이므로 기억소거를 실시중입니다.그녀의 능력은 강인한 멘탈하에서만 발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최종적으로, 니케 크리스는 오늘 재판의 결과에 따라 '폐기처분'되어야 했습니다. 폐기처분된 니케 크리스를 대신하여, 그녀에게는 오늘부터 새로운 신분이 주어집니다.첫째로, 그녀의 과거시절입니다.


그녀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우터림의 빈민가 출신.폭행,강도,절도 등을 일삼다가 다른 범죄자와 범죄수익 배분에 문제가 생겨 다툼 끝에 피살,그 이후 뇌를 기증하여 니케로 만들어 진 것으로 합니다.


둘째로, 그녀에게서 니케 크리스의 흔적을 지우기위해 소총이 아닌 다른 총기 사수로 교육합니다. 셋째로, 그녀는 더 이상 일반 부대가 아닌 중앙 정부의 중앙 첩보 관리실로 소속됩니다. 넷째로, 그녀에게 새로운 이름이


주어집니다. 그녀의 새로운 이름은...





니케 바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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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초기지 이벤트 중에 크로우가 '자칼은 자길 구하겠지만 바이퍼는 모르겠다'라는 걸 보고 삘이 와서 쓰기 시작함

솔직히 '폭력'에 의한 타락은 자칼이 더 어울리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어쩔 수 없지 뭐.




*원래 내 대가리 속 계획은 가정내 성폭행->삐뚤어진 성 윤리관->NTR물로 글을 쓸려고 했는데, 작중 시점에서 바이퍼가 미성년자잖아.

아청법이 무서워서 중간에 가정폭력으로 바꿔서 다시 썼어.그래서 늦어졌어.




*뭐임!?바이퍼 픽업 화요일날 공지 뜨겠지!!!화요일 새벽에 올려야지!!!!하고 일요일날 존나 놀고 푹 잤는데 웨 월요일에 뜸!!?



언젠가 목을 물려버릴 운명에 놓인 독사단, 가입하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