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부터 말해야 할까... 아, 그래.

어릴 때.

뭘 봐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어.

그리고 궁금했지.

'왜 저것만 있지? 이런 것도 있으면 좋을텐데.'

마침 또, 당시의 미실리스는 3D 프린터를 사용하는 작은 제조업체였거든.

난 온갖 것들을 만들어 볼 수 있었어.

대부분이 특허로 등록됐고, 미실리스는 방주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또 가장 발이 넓은 기업이 되었어.

하지만.

니케만은 만들 수 없었지.

어떡하겠어~ 독자 기술로는 라이선스를 못 내주겠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땐 꽤나 초조했네.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았으니까.

그래도, 기다렸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당시 상황도 내 편이었거든.

가면 갈수록 니케 양산이 불가피해졌고, 결국 그 아줌마의 기술을 이전받아 고철 양산을 시작했어.

뭐? 왜 고철이 됐냐고?

머저리들 머리에서 나온 기술로 양산 때린 것들인데 그게 고철이 아니면 뭔데. 깡통?

아무튼.

미실리스의 생산 라인이 절박해진 정부가 협상을 걸어오더라고?

미실리스를 상징할 수 있는 스쿼드 하나를 독자 기술로 제작하게 허용해줄테니, 공장 좀 쓰자고.

한 1년? 정도 걸렸나.

우리 애들이 만들어졌지.

고철들과 차원이 다른, 모든 면에서 우수한 우리 애들 말이야.

메티스 스쿼드는 다른 고철들과 급이 다른 전공을 밥먹듯 올렸고.

그 시점에서 미실리스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기 시작했지.

그래서...


"잠깐."

"뭐야? 듣기 싫어? 그럼 나야 좋고."

"...방법을 찾았어."

"뭐, 뭔데!"

"네 과거는 일에 치우쳐있어. 그렇지?"

"...그렇네. 그래서, 그게 뭐?"

"소재가 고갈된거지. '일'이라는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소재가 다 떨어진거야."

"....!"

"평소에 일 말고 하는 게 있어?"

"야. 너 내가 우스워보여? 일 말고 하는 게 있냐니, 허. 나~ 미실리스의 CEO 슈엔이야~ 너 따위는 감히 시도조차 못 해봤을 고상한 취미가..."


갑작스레 슈엔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그러니까... 출근해서, 결재하다가, 밥 먹고, 결재하고... 연구 하다가.... 퇴근해서, 밥 먹고... 어?"

"없네."

"입 다물어! 평일 스케줄이니까 당연한거거든? 아~ 그래. 작전마다 푼돈 타가는 지휘관 떨거지한테는 직장인의 삶을 이해하기 힘들었겠네~ 그래그래."

"그럼 주말엔 뭘 하는데?"

"...출근."

"그리고?"

"결, 재..."

"결국은?"

"퇴...근......"


자신이 일만 하고 살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니.

중증이었다.


"일단, 좀 놀아."

"뭘 하고?"

A"나 따위는 시도할 엄두도 못낼 고상한 취미는 어때?"
B"쇼핑은 어때?"

a"야. 너 지금 나 놀려!? 됐고, 따라오기나 해. 간만에 돈이나 좀 써보려니까."
b"뻔하지만.. 달리 생각나는 것도 없네. 좋아, 따라와."

"그 전에, 제안할 게 있어."

"뭔데?"

"발명가인 네가 더 잘 알겠지만, 영감이란 금새 사라지잖아?"

"꼴에 아는 척. 그래~ 그래서. 뭐."

"고생고생해서 소재를 떠올렸는데, 업무 전화를 받는다고 그 소재가 변질되어버릴 수 있다는거지."


슈엔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핸드폰의 전원을 꺼버렸다.


"자, 됐지? 그럼 따라와."


로열 로드의 명품관.


"와~ 세상 참 좋아졌네~ 요즘은 이런 쓰레기도 명품이랍시고 나오는거야?"

"저, 손님..."

"허. 이거 언젯적 패턴이야. 디자인으로 승부본다던 명품이 재활용을 하네? 구조는.. 아~ 이건 아예 배꼈네. 그래~ 그럼 그렇지."

"손님...?"

"여기 이 브랜드 대표가 누구야? 나 몰라? 나~ 슈엔이야~ 나한테 이딴 걸 들이대고 그냥 넘어갈 것 같아?"

"손님....!"


결국 이 날 슈엔은 돈이라곤 한 푼도 쓰지 못했다.

대신, 슈엔이 해결해야 할 결재 서류는 쌓여만갔다.

머리가 사라진 공룡은 닭만도 못하기 마련.

미실리스라는 거인은 차차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계획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