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랄랄라라라아아아라라랄라랄랄~♪"


"……."


"어디어디~ 으으으음~! 맛있어♥ 분명 선생님 입에도 딱 맞을 거야~."


"그야 카레니까. 나도 그렇지만 다들 좋아하잖아, 카레."


"뭐어? 누구? 누구야 그게? 누군데 선생님이 그렇게 잘 알아? 아는 사람?"


"아니, 카레 나오는 날은 애들이 대체로 잔반 덜 남기니까 그렇지."


"흐으으음… 정말?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나 말고 다른 제자도 나 몰래 손대고 막 그런 거 아니지?"


"애초에 너한테도 손 댄 적 없는데…."


"손 대도 괜찮아! 마침 오늘 위험한 날! 수정 확률 105%! 우리 사랑의 결실이 착상하기 딱 좋은 타이밍!"


"그럼 더더욱 안 되겠네."


"어쨌든 그게 누군데 선생님이 잘 알고 있는 거야? 우리 사이에 비밀 같은 거 없잖아. 솔직히 말하면 용서해줄게. 응? 선생님~ 선생님의 사랑스러운 제자가 이렇게 부탁하잖아?"


"그 손에 든 칼만 내려놓으면 더더욱 사랑스러울 거 같아."


"에잇!"


"우와."


"에헤헤~♥ 정말, 정말정말정마아알~ 아무리 내가 좋아도 그렇지, 그렇게 갑자기 확 꼬시면 나 너무 놀라버리잖아~♥"


"아직 대출금 반도 못 갚은 집 벽에 칼이 꽂힌 나도 심장이 떨어질 거 같아. 진짜. 농담 아니라 진짜 정말."


"우우, 선생님은 나보다 집이 더 소중해? 나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었어? 설마 질린 거야…? 나, 벌써… 싫증 났어? 아…… 그렇지. 응… 아하하, 그러게. 이런 귀찮은 여자… 너무너무 잘생기고 멋있고 상냥한 선생님한테는 짐만 되겠지… 응, 미안해. 이런 나쁜 여자 죽어야지. 선생님의 소중한 집을 더럽힌 나 같은 게 살아서 뭐 해…."


"욘석아."


"꺄응."


"질리긴 뭐가 질려. 이렇게 예쁜 애가 날 위해 저녁까지 차려주는데."


"나, 나 예뻐? 정말? 그치만 손 안 대는데… 자꾸 내 앞에서 딴 사람 얘기만 하구…."


"알았어. 안 할게. 절대, 절대. 됐지?"


"에헤헤~ 응! 응응! 선생님 너무 쪼아~♥"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망했다.

아무래도 내 인생, 제대로 망한 모양이다.


일의 계기는 며칠 전, 동료 교사의 자살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어쩌다 내가 맡게 된 그 인간의 '뒤처리'다.


일가친척도 없는 천애 고아였다고 한다.


나를 포함한 동료 중에도 친한 사람은 없었다.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없었다.


가끔 복도를 지나가다 본 녀석의 수업 시간, 제대로 듣는 사람 하나 없었다. 모두 고개를 처박고 자기만 했다.


겉돌기만 하는 아웃사이더. 음침하고 우울한, 어디에도 제대로 섞이지 못하는 이물질.


그다지 연이 없는 내가 봐도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 인간이 집에서 시체로 발견됐다는 얘기가 그리 놀랍지 않은 것도 당연했다.


"하아…."


그러니까, 그냥 무시했어야 했는데.


쓸데없이 지역 언론을 의식한 교장이 멋대로 등을 떠밀었다. 하필 그 많고 많은 교사 중에 나를. 그냥 같은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건 그렇고 너, 집에는 안 가도 돼?"


"응!"


"즉답이네."


"그야 엄마는 나 같은 거 관심도 없는걸?"


"부모한테 그럼 못 써."


"……왜 그 년 편을 들어?"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다래는 모두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착하고 성실한 모범생이니까."


말 한 마디 잘못 했다고 칼로 펄펄 끓는 냄비를 쾅쾅 두드리는 애가 아니라.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다.

애초에 요즘 세상에 교사 죽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왜 날 거기 보낸 거야.

그 날 가지만 않았으면… 이 망할 휴대폰 주울 일도 없었을 텐데.


"선생님 나 좋아해!?"


"착하고 성실한 모범생 다래 학생을 좋아하지."


"맨날 인스턴트만 먹는 선생님한테 저녁도 차려주고, 선생님 앞에서 벌거벗지 말라는 말도 잘 지키고, 엄마도 안 죽이잖아. 충분히 착하고 성실한 모범생 아냐?"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


"그치이~? 그러니까 선생님도 이제 딴 년 얘기는 입에도 담지 마? 응? 알았지? 약속이다?"


"그래. 약속."


"랄라랄라라~♪"


또 정체불명의 콧노래를 부르며 냄비를 젓는다.


요컨대 지금 등을 돌린 상태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내 것이 아닌 휴대폰을 꺼내, 그대로 다래를 향해 들었다.


"제발, 제발… 이번엔 제발 통해라…!"


딱히 신을 믿어본 적은 없지만 이번에는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다.


화면에는 다소 어설픈 디자인의 UI의 어플이 켜져 있다.


일명 학생부 연동 최면 여친 관리 시스템.

자살한 그 교사 녀석이 만든 엉터리 어플이다.


좀 어둡고 사회성 딸리는 줄은 알았지만, 설마 이딴 걸 집에서 몰래 만들고 있었을 줄이야.


처음 이걸 발견했을 때도 그렇고 정말 이해 안 가는 놈이다.


그렇게 학생한테 시달렸으면서 이런 음흉한 생각이나 했다니. 조금은 그 처지를 동정한 내가 바보 같았다.


아, 물론 진짜 바보인 사람은… 이런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걸 진짜 학생한테 써버린 나겠지만.


그래. 자업자득이다.

딱히 부정할 생각 없다.


흑심을 품었다.

자기 반의 학생한테, 그것도 내 수업을 그나마 듣던 몇 안 되는 성실하고 착한 학생을 상대로.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나도 이제 서른이 반이나 지났어. 여자 경험 하나 없이 동정으로 삼십 년 이상을 버텼단 말야.


그런 와중에 날 향해 웃어주는 여자애한테 흔들리지 않는 게 가능이나 하겠어? 심지어 얼굴도 예쁘고 가슴도 겁나 큰 애한테? 그냥 걷기만 해도 눈앞에서 출렁거리는 가슴 앞에서 그렇고 그런 생각 안 하는 남자가 있기나 하겠냐고!


"호감도를… 젠장, 또 100이잖아. 이걸 다시 0으로…."


물론 지금은 후회한다.

정말 미친 듯이 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있다.


이딴 게 정말 작동한다는 것도 어처구니 없지만 그 이상으로 엉터리였다.


일단 조작이 제대로 안 된다.

지금도 계속 호감도를 내리고 있지만 멋대로 다시 올라간다.


심지어 처음 설정한 '날 너무너무 좋아해서 몸도 마음도 모조리 바치는 여친'이란 설정은 아예 풀리지도 않는다. 계속 에러만 뜬다. 뭔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는 숫자와 알파벳 나열은 덤이다.


덕분에 몇 안 되는 상식인이었던 내 제자가 이 지경이 됐다.


멋대로 집까지 쳐들어 와 여자친구 행세를 하는 건 물론, 감정 기복도 이랬다 저랬다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심하게 다그쳤더니, 아예 자기 목에 칼까지 갖다 대고는 협박해서 이제는 그러지도 못한다.


아무리 그래도 제자잖아.

내 손으로 제자의 앞날을 끝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버텼지만 정말 한계다.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 하게 한다.


그나마 학교에서는 비교적 얌전하긴 한데… 저번에 나랑 인사 한 번 나눴던 다른 여교사 차에 불 지르려고 했던 걸 생각하면 이것도 정말 모르겠다. 불안해서 미칠 지경이다.


"짜자잔~♥ 선생님을 위한 내 러브러브 카레 완성이요~!"


"어, 어어… 그래. 엄청… 맛있겠… 아야."


"우우, 정말! 처음은 내가 아앙~ 하고 먹여주기로 했잖아!"


"…아, 그랬지. 응."


"에헤헤~ 그럼 어디… 자, 아아앙~♥"


이번에도 엉터리 최면 어플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나 보다.


노골적으로 자기 가슴골이 보이도록 고개를 숙인 채 음흉한 미소로 숟가락을 들이미는 제자 앞에서 난, 무기력하게 입을 벌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