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히 말하면 스토리텔링이 부재한 거지.



텍스트 기반이고 뭐고 하는 건 매체의 선택이란 차원의 이야기고.


가령 친절하게 일직선형 서사 구조를 게임이 채택할 수 있고,


여러 선형적 구조를 강제하고 플레이어의 선택지를 제약하면서


게임 플레이적으론 한정된 경험을 제공하지만 상대적인 스토리텔링은 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게 되는 건데.



왜냐면 파편화 된 정보를 일일이 습득해 모을 필요가 없고, 따로 생략된 행간의 의미를 추적할 필요도 없으며 그러다보면 시공간적으로 뒤틀린 플롯 구성을 재배치해서 암호해독 하듯 이해의 노력을 요구하는 스토리라인에 비하면 직관적이고 직선적이니까 편리하지.



근데 엘든링처럼 안 그래도 기존 소울류의 전통상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거친 스토리텔링(거의 없다시피 한) 방식을 고집해 왔던 장르가 세계관 전체를 오픈월드화 해버리면 그 게임 경험과 스토리의 괴리는 어디까지 벌어질까?


안 그래도 기존 소울류조차 어느 네레이터가 작정하고 따라붙어서 일일이 설명해주는 것도 없고, 정리된 하나의 이야기책도 부재한 가운데서 짐작만 가능할 뿐 제대로 모아놔도 죄다 파편화된 정보 꾸러미에 지나지 않는, 아예 스토리텔링이 부재한 장르에서는 스토리가 어떻게 되는 걸까?



근데 난 오히려 이렇게 되고 나니 더 흥미로운 점은, 아예 게임 플레이어한테 자유도를 극한에 가깝게 풀어줘 버리고 나니까 스토리텔링의 부재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게 된 느낌을 줌.



기존 소울류가 맵 배치에 따라 어찌 되었든 어느 흐름을 따라 보스를 처단해 가며(지역을 마치 토벌해나가듯) 나름의 빌드업 구조를 쌓는 경험을 유저에게 제공했는데, 이런 과정에서 빈약한 스토리텔링이 어떤 관점으론 목적 의식의 부재를 부각시키는 효과가 있었다고 봄.


아무리 새로운 지역에 가서 기믹이 달라지고 보스의 파훼 방식이 변화해도, 궁극적으로 계속 몬스터를 처치해 나간다는 게임 목적 의식이 전적으로 그 플레이어의 진행 의지에 맡겨져 있었기에, 정작 그 뒷받침을 해줘야 하는 스토리텔링의 빈약함이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


보스 클리어가 재밌으니까 걍 한 거지, 예를 들자면 인류를 구해내기 위해 마왕을 쓰러 트려야 하는 용자의 서사에서 적당한 중간 보스를 처리하고 능력치가 성장한다거나, 어딜 공략해서 유용한 아이템을 얻게 된다거나 이런 자잘한 부분에서 스토리가 부여하는 게임 진행의 동기나 명확한 클리어의 목적이 상대적으로 부재할 수밖에 없었던 건데.



엘든링의 오픈월드에선 그걸 고민할 필요조차 없어짐.


왜냐면 플레이어의 선택과 그 자유롭게 나아가는 길이 그냥 스토리가 되거든...


다큐멘터리 3일에서 선생님이 그러시잖아.


삶이란 게, 뒤돌아보면 굽이쳐 있다고. 본인은 곧게 달린다고 생각하지만, 인생이란 그렇게 굽이쳐 가는 것이라고 하듯.



엘든링은 스토리텔링의 불친절함 혹은 부재를 개선해야 하는 단점으로 본 게 아니라 외려 그걸 개척해나가는 운명 같은 걸로 인식을 바꿔 놓은 점에서 새로운 경험과 경지를 보여준 느낌은 듦. -> 너무 찬양식 포장인가...?


스토리란 부분을 게임적으로 해석해 냈다라는 점에선, 어설프게 PC를 주입하려고 하거나 공감되지 못하는 이상한 스토리를 강요하는 스토리텔링 방식보단 훨씬 나은 부분이지.



그냥 좀 있어 보이게 해석하자면 이런 관점도 있을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