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 


내가 용사를 처음 보고 내린 감상이었다.


타이틀만 용사지 할 줄 아는 것은 검을 휘두르는 것 뿐. 그것도 그냥 좀 한다 정도이지 제국 최강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내 보조가 없다면 중급 던전에서 까불다가 객사할 정도. 그저 그런 검사로 근근히 먹고 살다가 운이 좋아야 은퇴하고 나서 농사나 짓고 살 그저 그런 사람.


이런 사람이 어째서 용사가 되었을까? 머리 회전 만큼은 빠른 나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병신이라서.


용사란, 이득보는 것이 없다. 타이틀만 근사하지 귀찮은 일은 다 떠넘길 수 있는 편리한 심부름직 같은 거였다. 그런 주제에 보수는 명예 뿐이고 그 마저도 여차하면 욕 받이로 전락한다.


그것도 좋다고 용사 하겠다고 덥썩 받아버리는 병신이란, 이 병신 밖에 없었다.


나도 이 용사파티 같은건 할 생각 없었다. 궁정 마법사나 해서 꿀빨려고 했지만, 연구하다가 거하게 해먹은 바람에 모두가 기피하는 파티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마왕 퇴치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거창하게 마왕이지만 그냥 으례 있는 마물 퇴치랑 똑같은거다. 마왕이라고 해봐야 진짜 마왕은 이미 진작에 퇴치했고, 신생 마왕이 나타날때마다 주기적으로 싹을 뽑는 귀찮는 일 정도인 것이다.


이 병신 같은 용사에게 이성적으로 끌릴 이유? 당연히 하나도 없다.


귀찮은 일을 하고는 있어도 나는 외모도 탑급이고 실력도 천재다. 내 입으로 말하기도 뭐하지만 이런 여자는 흔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정이 좀 들었다고 해서 이성으로 끌렸다든가 그럴 수가 없다. 다가오는 남자들만 해도 죄다 굵직했다. 어느 왕국의 왕자님, 변경백 자제, 부호의 아들 등등. 걔 중에는 성격도 좋고 미남이었던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과 연을 맺었어도 꽤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은 한다. 객관적인 평가로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미래를 상상해보아도 별로 끌리지 않았다. 대신, 내 상상속의 미래에는 항상 용사가 있었다.


미래의 남편이라는 주제로 상상을 해보면 그 예시는 항상 용사였다. 다른 남자를 애써 생각해봐도 그것만큼은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다른 남자는 불쾌하기 까지 했다. 그러나, 용사가 남편이었다고 생각하면 그냥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러웠다.


이유는 모르겠다. 


무슨 저주라도 걸린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아니었다. 매혹에 걸릴 짬도 아니다. 한 눈에 반했다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논리적으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 만한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모르는 것이 하나 생겼다.


---


[마왕 토벌 원정 시절, 야영중.]


"용사는 여자 경험이 없나?"


"푸흐흡. 뭐, 뭐라고?"


"동정이냐고."


"아니, 그건...."


"동정이구나."


"뭔데? 갑자기?"


"아~니. 그냥 너무 답답할 때가 있어서."


"여자 경험이라면 많이 있거든?"


"거짓말이라면 진작에 했어야지. 늦었어."


"나한테 구혼하는 여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


"아 예. 또 그 고향의 시골처녀 이야기지."


"너한테 뭐 잘못한 거 있나? 왜 갑자기 긁는거지?"


"용사 잘못 하나 하나 나열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데 시작해도 돼?"


"....아니 미안."


"널 괴롭히려는 건 아니고. 너 장가나 갈 수 있나 해서."


"그걸 왜 네가 걱정하는데."


"동료 걱정이지."


"눈물나겠네. 어련히 잘 가겠지."


"의외로 너. 좋은 사람이니까 그럴지도."


"긁었다가 칭찬했다가 뭔지 모르겠네."


"나는 항상 사실만 말해."


"됐어. 그런 말이나 할 거면 빨리 잠이나 자."


"용사. 나중에도 여자가 없으면."


"응?"


"나랑 결혼할까."


"...뭐, 뭐?"


"나중에 결혼할 여자 없으면 나랑 하자고."


"너, 너랑? 내가?"


"싫어?"


"아니, 그, 뭔데 갑자기?"


"싫다곤 안하네. 좋아."


"아니 아니 좋고 싫고 이전에 갑자기 왜?"


"동료 걱정?"


"그게 걱정이야? 고백 아니야?"


"아닌데? 굳이 따지자면 보험인가."


"결혼하자는건 프로포즈잖아!"


"조건이 붙었잖아. 다른 여자가 없으면."


"이상하지 않아? 다른 여자가 있으면 그럼 안한다는거?"


"내가 좋으면 만들지 말든가."


"아니, 너 그런 그.. 그건..."


"동정 답게 말도 반응도 개노잼으로 하네."


"...."


"뭐야. 할 말도 없나 이젠."


"그.. 이럴 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흐응."


"법사는 내가 좋은거야?"


"그러게. 좋은가본데."


"자기 자신인데 3인칭으로 말하는건 뭐야."


"논리적으로 생각해본 결과 그런 결론이 나와서 그런거야."


"이해할 수가 없네."


"나도 그래. 근데, 그냥 그런걸 어쩌겠어."


"법사는 다른 남자는 없는거야?"


"있어보이냐? 지금 너랑 이렇게 마왕 잡겠다고 쌩고생 하고 있는데."


"아니, 고향에서 기다리는 남자라든가..."


"하이고 그 수컷 새끼들이 잘도 여자를 기다리겠네."


"그럼 왜 나인데?"


"그냥 너라면 괜찮겠다 싶은거지."


"그.. 왜?"


"뭘 묻고 싶은건데."


"내가 왜 좋은거 해서."


"진짜 정 떨어지게 만드네. 그런걸 직접 물어? 무드도 없고 에휴."


"아니, 하지만 나, 나는 법사를..."


"뭐, 왜 나는 여자로 안봤다?"


"..."


"..진짜냐. 이런 초미인을 눈 앞에 두고 여자로 안봤다고?"


"동료는 동료잖아."


"그거는 그냥 하는 소리지 인간 새끼들이 얼마나 짐승인지 몰라? 눈 앞에서 젖만 출렁이면 달려드는게 수컷 새끼들이라고."


"남자가 다 그렇지는 않아."


"그렇지 않은 남자는 아마 고자거나 뭐 그런거겠지. 너 같은 거거나."


"...."


"너무 풀 죽지마. 여자들도 똑같아. 잘생긴 남자만 보면 일부러 약한척 아양 떠는 거 보면 얼마나 역겨운지 몰라."


"그런건가...."


"그래서지. 너는 적어도 피곤하진 않을거 같으니까."


"좋아해야 하는 부분인가 이거?"


"물론이지. 이런 초미인 천재 마법사가 결혼하자고 하는건 흔치 않은 기회잖아."


"자기 스스로 그렇게 말하는거 안부끄러워?"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사실만을 말해."


"그런가.... 법사는 미인인건가."


"너는 여자 보는 눈도 없니? 그냥 병신이 아니라 상병신이었나?"


"아, 아니 한번도 의식한적이 없어서."


"....짜증나."


"아, 아얏?! 왜 떄려?"


"병신 같은 말만 하니까 못 참겠어서."


"내가 좋다는거 아니었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영문을 모르겠네 진짜."


"나도 동감이야."


"에이씨. 그냥 놀리는거면 나는 이제 잘란다."


"그러든가."


"........"


"자냐? 진짜 자냐?"


"........."


"에휴. 병신 고자 새끼."


---


[수 년후, 첫날밤]


"야. 뭐해?"


"아니.. 그게..."


"너.. 진짜 나로는 안선다 뭐 그런건 아니겠지?"


"...."


"아니 시발 진짜로?"


"그, 그럴리가 있어? 그냥, 조금 긴장되어서."


"아니 뭔 씹 맨날 야영 할때 여자가 줄을 섰니 마니 했더니만 진짜 어이가 없네."


"그건 진짜라고! 너도 봤잖아?"


"너한테 앵기는 여자 보긴 했는데 솔직히 여자 데리고 여관에 데리고 간건 못 본것도 사실이고."


"하.. 참."


"삐졌냐?"


"그러는 너는 뭔데? 너라면 데려가려는 귀족도 있지 않았어? 왜 저번에 그 영감."


"미쳤어? 역겨워 죽겠네."


"그래도 꽤 있었던 거 같은데. 너한테 술 먹자고 했던 그 모험가도 있었고."


"뭐 그랬던 남자가 한둘이여야지. 괜찮은 남자가 없던건 아니긴 한데."


"한데?"


"별로더라고. 성에 안찬다고 할까?"


"....그래서 나를?"


"...푸훕."


"뭐 뭐야?"


"좋냐? 응?"


"아, 아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 아니면 왜 결혼한건데!"


"약속했었잖아. 그리고 뭐, 괜찮겠다 싶은거였고."


"내가 좋아서 그랬다 그런건 아니고?"


"좋냐 싫냐를 따지면 당연히 좋은 쪽이지. 싫은 사람이랑 결혼 하겠냐고."


"그건.. 그렇지만.."


"뭐야? 사랑한다고 말 안해줘서 섭섭해? 쿠후후."


"아, 아냐."


"아니긴. 얼굴에 다 써있구만. 사랑해 용사. 됐지?"


"...."


"뭐야. 이걸로는 성에 안차? 역시 용사는 그릇이 다르다 이거야?"


"아니 뭐.. 그냥."


"에헤이. 됐다. 됐어. 할거나 하자. 안 서는 것도 지금 뿐이라구."


"아니, 자 잠깐 법사. 잠, 읏, 으읏, 자, 잠깐 갑자기 자극이 으읏"


"내가 왜 천재라고 불렸는지 알게 될거야. 우후후. 용사여도 좀 힘들거야?"


---


[신혼 생활 중]


"엄마. 엄마는 아빠를 사랑해?"


"너네 아빠? 그럴리가 있겠니."


"그러면 나는?"


"우리 딸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지."


"나는 아빠의 딸인데도?"


"너네 아빠는 아빠고. 딸은 딸이잖니."


"그럼 아빠를 사랑하지 않으면 왜 결혼했어?


"음.... 운명?"


"운명이 뭐야?"


"그건 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걸 그러려니 하고 퉁치고 넘어갈 때 쓰는 단어란다."


"어려워."


"지금 이해할 필요는 없어. 나중에 다 알게 될거란다."


"그런거야?"


"응. 딸. 크면 다 알게 될거란다."


---




마법사는 학자이기도 했다. 무지에 대한 혐오. 지식에 대한 욕망.


그리고 모른다는 것은 곧 고통이기도 했다.


용사가 좋은 이유를 평생에 걸쳐서 알아내고자 했다. 그렇지만, 알지 못했다.


대신 알아버린 것은, 지금 눈 앞의 용사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 감정이었다.


"...우냐?"


"....."


"하.. 하하... 법사가 우는 걸 다 보네..."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했다. 천재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 천재도 뛰어넘는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자마자 어마어마한 무력감이 덮쳐 아무것도 더는 할 수 없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용사는 수척하지만 동시에 웃고 있었다. 그 손을 잡았다.


"용사."


"응."


"사랑해."


".....응."


입으로 내뱉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몰랐던 게 아니다. 모른 척 했던거구나. 잘난척을 그동안 하고 있었던거구나. 


천재라도 범인과 같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나도."


용사는 눈을 감았다. 아프지는 않았기를 기도했다. 웃는 것을 보면, 그럴 것이라고 여길 수 있었다.


이 또한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용사의 손을 가지런히 두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


"딸. 네 아버지 간수 잘 하고 있으렴."


"네? 하지만.. 아버지는..."


"누가 와도 절대로 넘겨서는 안돼. 알겠지?"


"뭘 하시려고요?"


손에 끼고 있는 반지 빼서 딸에게 넘겼다.


"업보청산."



---


[ 버려진 숲, 오래된 오두막 ]


".....으응?"


"...용사?"


"....뭐지? 지옥인가?"


"뭐야? 그 말은?"


"법사가 보이는거 보면 천국은 아닌것 같아서."


"아쉽게도 여긴 현세야."


"그래? ....어라? 나.. 뭔가 느낌이 이상한데."


"그럴 지도. 뭐, 일단 일어나봐."


"으윽. 뭔가 몸이 삐꺽거리는 느낌이.. ...? 어라."


"어때. 언데드가 된 느낌은."


"...뭐라고?"


"너는 이제 그 동안 지긋지긋하게 베어왔던 잡졸 언데드 1 이 되었다는 말이지."


"아니, 하지만 그건 흑마법 이잖아."


"맞아."


"....법사 네가 했어?"


"천재가 진심을 내면 흑마법사 전직 쯤은 껌이라는 거지."


"....그만둬 법사."


"뭐라고?"


"이런 일을 하면 네 혼이..."


"누가 모를 것 같아? 너보다 1000배는 더 잘 이해하고 있어."


"그렇다면 당장 그만둬 이런 형태는 나는-"


"입 닥쳐. 지금 누구한테 명령이야?"


"명령 하는게 아니라-"


"그리고, 되돌리고 싶어도 늦었어. 이것을 위해 한 일이 좀 많거든."


"....."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널 불러오지 않아도 됐을텐데."


"......"


"미리 사과할게. 언데드가 되어버린 사람도, 그 주인도. 곱게 죽지는 못하거든."


"하아.... 그런거라면 어쩔 수 없지."


"무슨 의미야."


"돌이킬 수 없다면 내가 더 뭐라고 하는 것도 소용 없잖아. ...그래서? 이제부터 어쩔건데."


"...괜찮아? 언데드라니까?"


"그래. 언데드. 밥은 안먹어도 되겠지? 그건 마음에 드네."


"상상하고 좀 다른데."


"뭐가?"


"사료에서는 언데드가 된 사람은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했어서."


"그렇긴 해. 체감은 잘 안되지만, 법사 네가 말한 거니까 그런가보다 하는거야."


"그냥 바보였네."


"널 믿는 거니까 신뢰라고 해줘."


"....응. 그런가. 그게 좋았어."


"뭐, 뭐야? 남사스럽게."


"사랑해. 더는 떠나게 두지 않아."


"...그래.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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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의 딸은 왕정에게 재촉 받았다. 빨리 희대의 마녀를 찾아내라고.


딸은 물론 자신의 부모님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냥, 가끔씩 편지를 받을 뿐이다.


그 편지 내용으로 보아 아마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용사의 딸은 금고에서 맡아뒀던 반지를 꺼냈다.


이제 곧, 찾아올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딸은, 부모를 맞이 하기 위해 현관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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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득한 판타지 순애물이 보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