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하던 온라인 게임이 있었다.

하지만 온라인게임이란게 다 그렇듯 얼마 지나면 할게 없는 고인물이 된다.



전신 중갑을 걸치고 나는 마을 앞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흔히 보이는 고인물의 말로다.


"아 컨텐츠가 없다. 좆망겜."


나는 분명 마을 앞에 쪼그려 앉는데 마을 저 먼 건너편에서 메아리치듯 대답이 들려온다.


"원래 이 겜이 그렇죠 죶망겜."


그렇게 나는 전신 플레이트 갑옷을 걸친 채 마을 앞에 서 있었다.

팔짱을 낀 내 캐릭터 앞에 한 여캐가 와서 나를 보았다.


 기본 모험가 장비를 걸친 캐릭터.

 아까전부터 마을 여관과 길드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초보자 퀘스트를 하고 있던 캐릭이다. 그 여캐는 갑자기 내 앞에 서서 말했다.


"컨텐츠가 없으면 절 좀 도와주시죠."


그리고 파티 신청 메시지가 뜬다.

뻔뻔하다. 나는 거부 버튼을 누르며 답했다.


"그 레벨에 도와줄게 어딨냐. 그 구간에선 혼자서 하는게 더 빠르단 것도 모르냐."

"알리가 없죠. 저는 뉴비거든요."

"뭐?"

"저는 뉴비라고요. 뉴비님이에요. 위대하신 뉴비님이라고요."


이 여캐는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건가.

뉴비가 어째서 위대한 존재란 말인가.

그때 마을 뒤쪽에서 메아리치듯 고함소리가 울려퍼졌다.


"뉴비라고!"

"뉴비!"

"뉴비라고!"


마을 뒤에서 세명의 전사들이 달려왔다.

핑크빛 팬티에 핑크빛 요정의 날개를 단 반나체의 근육질 야만요정전사.

붉은 입술과 금빛 장발이 매력적인 치마교복 차림의 쌍검사(남자).

고양이 귀 머리띠를 하고 고양이 꼬리를 달고 인형옷을 입고 있는 대검사(남자).


"뉴비다! 뉴비다!"

"오오오! 뉴비다!"

"우리가 도와주도록 하지!"


뉴비라 자칭한 여캐를 둘러싸고 있는 세 남자.

화면이 더러워지고 있긴 하지만 저들은 분명 호의로 뉴비에게 접근하고 있다. 뉴비는 그들을 바라보더니 곤란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거 큰일났네요. 이미 저를 도와주기로 한 분이 여기 있는데."

 "도와준다고 한 적 없는데. 너 왜 파티 신청 계속거는건데."

 "하지만 이 세분도 강해보이네요. 어쩌지요. 먼저 오신 분을 그냥 보낼 수도 없고."

 "파티 신청 걸지말라고. 저 세놈중에서 골라. 저새끼들이 나보다 세다고."

 "따라서 네분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12발년 사람말 안듣네"

 "면접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각자 어째서 제게 도움이 되는지 어필해주세요."


 먼저 야만요정전사가 나왔다.

 야만요정전사는 춤을 추며 마음껏 자신의 근육을 과시했다. 


 "뉴비 구간에서는 빠른 이동속도가 중요합니다. 저와 함께 하시면 스태미너 만땅의 질주로 빠르게 필드몹을 정리하고 보스를 쓰러트려드리지요."

 "그런 둔해보이는 몸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니. 믿을 수 없군요.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탈락입니다."

 "아니 진짠데"

 "다음분 나와주세요."


치마교복을 입은 쌍검사(남자)가 나왔다.


"저는 이 게임의 근본클래스입니다. 이 게임의 참된 매력을 알려드릴 수 있지요."

"그 교복도 근본인가요?"

"물론이죠."

"근본이 기분나쁘니 탈락입니다."

"어째서!"

"다음분 나와주세요."


 고양이 귀 머리띠를 한 대검사가 나왔다. 


"나는 솔플로 현 최강의 컨텐츠를 클리어한 자다. 너에게 내 현란한 테크닉을 전수해주겠다."

"솔플 테크닉 따위 필요없습니다. 탈락."

"이새끼 대체 뭐임."


최강의 고인물 셋이 달려왔는데 그 셋의 도움을 모두 거절한 뉴비.

하지만 나는 왠지 그 기분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왜냐면 이 고인물들...

 너무 기분나쁘게 생겼다...


 판타지를 즐기러 온건데 처음 만나게 된 마을사람이,


 핑크팬티에 핑크날개를 단 근육질의 요정, 

 치마교복을 입은 장발의 여장청년.

 고양이 머리띠에 배가 뽈룩한 인형옷을 입은 대검사라니.


 클리어 타임이 길어지는 한이 있어도 그런 녀석들과는 파티하고 싶지 않아.

 그런 마음은 이해하지만 나한테 파티 걸지도 말라고.


 뉴비는 그렇게 몇번이나 나에게 파티신청을 걸다가 쪼르르 사라졌다.

 혼자서 퀘스트를 하러 간거겠지. 


 그리고 얼마 지나 레벨이 살짝 오른 뉴비가 내 앞에 와서 섰다.


 "이 게임에는 정상적인 옷을 입은 사람이 저와 당신 밖에 없군요."

 "곧 너도 저렇게 헐벗고 춤추게 될거다. 여기선 그게 정상이다."

 "당신은 왜 벗지 않죠. 당신은 비정상인가요?"

 "나는 여신의 뜻을 받드는 위대한 성기사이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당신은 마음이 비정상이군요."

 "이 씨12발년 왜 시비임."

 "당신이 받드는 여신은 뉴비를 보면 도와주라는 말은 안했나요."

 "뭘 도와주면 되는건데."

 "돈을 주세요."

 "그 구간에서는 필요한 장비도 물약도 전부 퀘스트에서 줄텐데 돈이 왜 필요함."

 "저는 깨달았어요."


 뉴비가 경매게시판을 가리킨다.

 유저들 끼리 아이템을 거래할 때 쓰는 게시판이다.


 "저기서 퀘스트 아이템을 팔고 있어요. 저기서 아이템을 사면 던전을 가지 않아도 퀘스트가 클리어 되는거 아닌가요?"

 "호오."


 그런 발상은 해본적이 없었다.

 퀘스트를 하다보면 우연히 템이 추가 드롭되어 남을 때가 있지. 뉴비구간 템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으로 올라온다. 그걸 사서 마을에서 모든 퀘스트를 클리어하겠다는건가. 안락의자 뉴비의 등장이다.


 싹수가 노란 뉴비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감각이 좋은 녀석이었군.

 

 "좋은 정보를 얻었다. 나는 뉴비구간 퀘스트 필수템을 전부 사재기해서 비싸게 팔아야겠다. 쉽게 골드를 벌 기회야. 그 골드로 새 갑옷을 사야지."

 "자본주의의 돼지나 할 법한 발상이네요. 정보료를 주세요."

 "내가 왜 정보료를 줘야하지?"

 "주지 않으면 제가 확성기로 당신이 물가조작을 꾸미는 쓰레기라고 소문낼겁니다."

 "너 이새끼..."

 "사사게에 가고 싶지 않으면 제게 돈을 주세요. 백만골드."


 허세인가.

 아니. 그럴리가 없다.

 이녀석의 포스는 진짜다.


"좋아. 백만골드 주겠다."

"의외로 순순히 주시네요?"

"사재기하면 그 열배는 벌 수 있으니까... 1시간 뒤부터 나는 사재기를 시작할테니 너는 그 백만골드로 필요한 템을 전부 사라. 다 사도 팔십만 골드는 남겠지. 그건 물약값으로 쓰고."

"알겠습니다."


 뉴비가 총총총 경매소로 달려간다.

 나는 사재기로 뉴비 돈을 뜯으며 새 갑옷 아바타를 살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1시간 뒤, 나는 경매소로 향했다.


 "좋아. 사재기를 해볼까. 일단은 붉은색 가죽부터..."


 하지만 경매소에 붉은색 가죽은 없었다.


 "음? 너무 뉴비구간 템이라 매물이 없는건가. 그럼 다음은 검은 가죽..."


하지만 검은 가죽도 없었다.


 "어? 이 정도로 없나? 그럼 그 다음은..."


 경매소에는 그 어떤 뉴비 퀘스트템도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당황하는 내 곁에 뉴비가 와서 섰다.


 "어리석은 자본주의의 돼지가 당황하는걸 보니 즐겁군요. 사재기할 물건이 없어서 당황했나요?"

 "그걸 어떻게... 너 설마!"

 "네 그렇습니다."


 뉴비는 뿌듯하게 가슴을 펼치며 말했다.


 "제가 전부 다 사버렸습니다. 천만골드를 벌 기회가 있다는데 사재기 하지 않으면 바보지요. 당신이 준 백만골드는 유용하게 썼습니다."

 "키, 키사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소재탭에 올렸지만 거의 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