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적인 용사 파티란 무엇인가.


개연성 넘치는 용사.

모든 것을 자애롭게 품어주는 성녀.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대마법사.

그리고 동료들이 갈 길을 알려주며 지원사격을 날려주는 궁수.


가끔가다 짐꾼 한 명이 포함되기야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틀에선 벗어나지 않는다.


짐꾼이 있다면 웬만한 허드렛일은 짐꾼이 맡아서 하지만, 짐꾼이 없는 경우엔 파티 내에서 가장 가사능력이 뛰어난 인원이 보통 허드렛일을 맡게된다. 빌어먹게도, 그걸 파티 내의 궁수인 내가 맡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정찰 갔다와서 빨래에 요리에 장비 정비에 해야될 게 너무 많잖아..."

"거 미안하게 됐군, 힘들면 도와줄까?"

"아, 아뇨... 헤헤... 당연히 이런 건 제가 해야죠."


모든 가사를 책임져야한다는 점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파티원들의 표정에서 항상 미안함을 볼 수 있었기에 억지로 참아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강제적으로 참아낼 수 밖에 없다고 해야할까.


마왕과 마주하면 당장에 근육만으로 마왕을 반으로 찢어버릴 것 같은 듬직한 육체를 가진 용사님.

마주치는 마수마다 직접 척추를 적출하시며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 완벽한 근육의 성자님.

힘으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버린 대마법사.


세상에 어떤 호리호리한 궁수 따위가 이 세 사람을 앞에 두고 감히 불평불만을 대놓고 드러낼 수 있을까. 하지만 겉모습과는 달리, 전부 나에게 친절했기에 지금까지는 버텨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도망가야해.'


슬슬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었다. 정찰을 몇 시간하고 돌아와서 염전 노예마냥 가사일을 했기에 몸이 너무 고달팠고, 용사와 성자, 대마법사의 눈치를 봐야했기에 마음까지도 지쳐가고 있었다.

내가 원했던 용사파티는 전투가 끝난 후 서로서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하며, 비슷한 힘을 가지고 역경을 이겨나가는 형태였지만, 이건...


"생각하지 말자. 이 분들한텐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지만, 더 이상은 힘들어..."


그렇게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 ,나는 하나의 메모를 남긴 채 도주를 택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가지고 올지 알지도 못한채.






쓰고 도망간다. 이거 쓰니까 시험 스트레스 확실히 풀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