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를 호령할 인물이라며 경외받던 천마는,

어느새 노쇠하여 버렸다.



일어날 때마다 천상의 무골이라 불렸던 뼈가 뻑뻑하고,

유연하게 적의 검을 피하던 그의 몸은 굳었으며,

그의 강함을 추구하던 사념은 어느새 재가 되어 있었다.



더욱 높은 경지에 오르고 싶다는 꿈.

그 꿈을 저버린 지 어느새 4년.

그는 언제나 그렇듯이, 장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항상 똑같은 길. 남들이 보지 않게 숲을 지나 걷는다.

조금 더 멀지만, 그에게 그런 사소한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허나 그날은 달랐다.

어떤 아이가, 나무에 등을 맏대고 물구나무를 서고 '우와!' 하며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도 한낱 인간일지라, 그저 호기심에 그에게 물어보았다.

"아해야. 무슨 일이기에 그리 감탄을 내고 있느냐."



아이는 갑자기 나타낸 그의 기척에 깜짝 놀랐지만, 금세 다스리며 말했다.



"엄청나요! 아저씨도 한번 해 보세요!"



이립의. 그것도 불혹을 앞둔 사람에게 물구나무를 시키다니.

역시 어린아이는 순수하다 생각하며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보았길래 말이냐?"



"말로해서 뭐 해요. 느낌이 다르잖아요. 한번 해 보세요!"



그가 그리 기대감에 찬 얼굴로 그리 말했다.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 자신이 겪는 것도 아니면서.

그는 피식. 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저 나무와떨어지는 나뭇잎, 새, 그리고 하늘 뿐이지 않느냐? 여기에 놀랄 만한 게 있느냐?"



아이의 눈으로 보지 못할걸 자신이 못 볼리 없지 않은가. 그는 샅샅이 찾아봤지만, 끝내 특별한걸 보지 못했다.



아이가 이해 못한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나무 쪽으로 걸어가, 물구나무를 섰다. 그러고선 또다시, 탄성을 내뱉었다.



"하늘엔 나무가 거꾸로 매달려 있으며, 새는 배를 내보이고 거꾸로 날며, 나뭇잎이 하늘로 올라가 천장에 닿고, 제 발밑에는 그 끝조차 보이지 않는 푸른 구멍이 있는데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죠?"



소년의 말에 그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 내가 내 눈을 과신했구나.

소년의 눈으론 볼 수 있지만,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 있구나.

본질을 파악하려 드는것이 아니라, 있는 대로 보는 눈을 내가 저버렸구나.



그저 물구나무만 해서도 세상이 바뀌거늘. 나는 바뀌려 하지 않았구나.



그는 감격했다.


5년만의 심득.
그 깨달음은 그에게 강렬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의 눈에는 해져 버린 그의 꿈이 보였다.
더 높은 경지. 그 경지를 내가 꾸어도 되는 걸까.
저 탁한 꿈을. 전엔 가장 밝았던 꿈을, 내가 다시 품어도 되는 걸까.


그는 답을 찾는 마음으로, 소년에게 물었다.
"내가. 이 늙은 내가... 다시 꿈을 꾸어도 되겠느냐?"


남이 대답 해 주기엔 너무나도 무거운 질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건 질문을, 누가 선뜻 대답 할 수 있겠나.


하지만 소년이기에, 어리기에, 순수하기에,그는 맑은 목소리로 대답해 보였다.


"꿈은 억지로 못꿔요. 꿈은 꿔지는 거예요!"


아. 그래.
난 아직 꿈을 꿔지고 있었구나.


내 마음속 꿈이, 탁해져 버렸지만 사라지지 않은 건
내가 탁해졌기 때문이지, 그 꿈이 스스로 자신을 부정하며 탁해진게 아니였기 때문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