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 파티의 리더인 용사 2년 차. 

우리는 아직은 미숙하지만 훌륭한 동료들과 마왕을 처단하기 위한 여정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조금 까칠하지만 천재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은 인간 마법사. 

쾌활하고 시끄럽지만, 야성적이고 압도적인 힘의 묘인 격투가. 

활은 그다지 백발백중의 실력, 함정 설치와 정찰에 모두 능한 엘프 궁수. 

그리고... 부끄럽게도 나 같은 모자란 남자와도 사귀어주는 자애로운 성녀님까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어느새 2년이 지나자 전장에서 등을 맡길 수 있는 훌륭한 동료라고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한 달만에 우리는 모든 사천왕을 꺾고 마왕성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야영을 이루었다. 


착잡한 마음을 정리하고자 강가로 혼자 나오니, 환한 빛을 비추며 여신님의 형상이 나타났다. 



"용사여, 참으로 훌륭하다. 급박하고 짧은 순간이었음에도 벌써 절대악의 처단을 눈 앞에 두고 있구나." 



꿈속에서 나타난 여신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즉시 무릎을 꿇고 소리쳤다. 



"아닙니다. 저는 아직 모자랍니다. 모두 제 동료들의 덕입니다." 


"그들을 규합하고 이끈 것은 그대다. 쉬워 보이지만 범인이 할 일은 아니지... 하여, 내가 그대에게 진실을 말해주겠다." 



진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혹시 여신께서 내게 숨기는 것이...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방금은 참으로 신성모독적인 생각이었다. 분명 마왕이 숨기고 있는 비장의 수에 관한 것일 것이다. 



"나는 마왕의 목이 떨어질 때, 그대들을 배신하려 했다."


"예?" 


"마왕의 목이 떨어지는 순간, 파티가 가장 취약해질 때를 노려 너희를 제거할 계획은 세웠다."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여신님?" 


"그대의 존재는 내게 있어서 위협이었다. 신의 경지에 가까운 가장 거대한 악, 마왕을 토벌한다면 피조물들의 지지는 모두 그대들이 가져가겠지. 그만큼 내 힘과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다." 



마치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았다. 

아니, 차라리 누군가 망치로 때리거나 죽었던 사천왕중 하나인 서큐버스 퀸이 만든 환술이라고 믿고 싶다. 



"... 하지만 그대의 선함과 용기를 지켜보며 결심했다. 그대에게는 그런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아... 아아..."



그래. 이걸 말해주셨다는 것은 그럴 생각을 내려놓으셨다는 뜻이다. 

결국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 괜찮지 않을까, 만약 그럴지라도 우리는 반드시 마왕을 처단할 것이다. 



"또한, 주의하라. 마법사는 그대들에게 복수를 계획하고 있다." 


"예?" 



우리 파티의 가장 중요한 전력이자 가장 강력한 힘. 

사천왕의 토벌은 만약 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텐데. 

나는 마법사를 가장 존경했는데, 그가 우리에게 복수를 계획한다니? 



"마법사는 그대들이 자신을 푸대접하고, 배신할 거라 생각하고 있다. 마왕을 앞에 두고 자신을 용사 파티에서 추방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지." 



이게 무슨 소리인가. 

마법사는 우리 파티에서 가장 유능하고, 가장 많은 일을 맡은 만큼 가장 많은 전리품과 전공을 배분받고 있다. 

마법사는 논공행상에서 단 한 번도 뒤로 밀려난 적이 없었다. 그가 받은 훈장만 나열해도 마을 하나를 크게 두를 수 있을 것이다. 



"그, 그래도... 마왕은 죽어야 합니다. 마법사의 손에 죽더라도 마왕의 목을 잘라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해야 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격투가는 그대를 배신할 생각을 품고 있다." 


"캐, 캐르가요?"



우리 파티의 분위기 메이커이자 두 번째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격투가였다. 그녀는 사천왕 엘더 데스나이트을 앞에 두고도 단 한 번도 물러서지 않았고, 긴 시간 동안 나와 등을 맞대고 싸우던 참된 전우였다. 



"그래. 마왕의 목이 떨어지는 순간 그녀는 독을 묻힌 비수로 네 등을 찌르고, 수왕(獣王)을 불러내어 파티를 모두 마왕성에 묻어버린 뒤 배신자라고 모함한 뒤, 전공을 독식할 음모를 품고 있다." 



너무 어지러웠다. 여신님을 앞에 두고도 주저앉아 손으로 땅을 짚었다. 



"그래도, 그래도 마왕만 죽는다면 상관없습니다. 제가 배신자로 낙인찍혀 사라지더라도..." 


"... 엘프 궁수는, 마왕과의 결전을 앞두고 자네들을 모두 처리할 생각이었다." 


"...." 



이제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여신님은 내게 동정의 시선을 보내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녀의 진명은 알테어 바나. 위대한 검성(劍聖), 폭풍의 창, 별을 부수는 활이다. 한 손으로도 마왕을 가볍게 도륙할 수 있는 강자지." 


"그, 그런 분이 어째서...?" 


"지루했기 때문이다.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정체를 숨기고 너희 파티에 들어간 것이지. 하지만 사천왕을 토벌할 때부터 용사 파티를 시시하다고 생각하며... 만약 마왕과의 결전에서도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모두 목을 날려버릴 생각을 품고 있다."



마왕, 마왕. 도대체 누가 마왕인가? 

이런 게 용사 파티라니, 믿기지 않는다. 정말 마왕이 사라지더라도 평화가 돌아오는 걸까? 진정한 악은 도대체 누구인가? 


지금 이 순간 연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힘들 때 나와 함께하며 사랑을 나눈 사이였기에 그녀만은 믿을 수 있었다. 



"... 잘 들어라, 용사여. 성녀는..." 


"아닙니다. 아닐 겁니다. 그만해주십시오... 제발, 그분은... 그분은 저를 배신하지 않으실 겁니다..." 


"아니다. 성녀는 너를 배신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너의 편이다." 


"아아!"



그래, 그녀를 조금도 의심해서는 안됐다. 누구보다 아름다우신 성녀님, 조각상 같은 미모와 훌륭한 성품을 가지신 분이시다. 

수도의 천민들에게 자신의 모든 금화를 베풀고, 맹인의 눈을 고쳐주시며, 진심으로 여신님을 따르는 자애롭고 선한 분이시다. 



"성녀는 남자다." 


"예?" 



첫날밤을 앞두고 부끄러워하던 그녀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는 낯설었고, 그녀를 더럽힌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고 그녀도 마지막까지 주저했지만... 결국 우리는 그날 밤 잠에 들지 못했는데.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가 침소에서 직접 봤는데... 분명 여자셨습니다." 


"그래. 성녀의 육신은... 여자지. 하지만 그는 내가 다른 세계에서 초청한 나의 사자다." 


"설마...!"


"성녀는 전생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난 단 한 번도 그의 영혼을 훼손한 적이 없다. 그는 전생에 군대를 나온 건장한 스물다섯 살의 남성이었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