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속의 내용을 떠올린다.


'계속해서 이 초식을 반복하는 이유는 대체 뭐야? 사람이든 괴물이든 검에 찔리면 죽잖아?

그럼 간단한 동작만 배우고 나머지 시간엔 신체를 단련해서 그 힘으로 밀어붙히면 장땡아닌가?'


이 때의 나는 아직 상태창의 수치로 전투의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게임의 감성에 많이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멍청하지만 나름 좋은 질문이에요. 세상의 모든 검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뭘까요?'


'어... 상대방을 쓰러트리는거?'


'맞는 말이네요. 막말로 오라버니가 말씀하신대로 검술을 하나도 배우지 않은 일반인도 검을 들고 사람을 찌르면 상대방을 쓰러트릴 수 있죠.

신체가 발달한 사람이면 더더욱. 하지만 그런데도 왜 검술을 배우는 걸까요?'


'그야... 검술을 배우면 더 효율적이니까? 나도 검사 나부랭이니까 검술을 배운 사람과 안배운 사람의 차이점은 이제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거든'


'오랜만에 그 머리에서 상당히 좋은 대답이 나왔네요. 이 세상의 모든 검술은 결국 공방일체를 추구합니다. 

오라버니가 좋아하는 게임에 비유하자면 나는 맞지 않으면서 상대방엔 모든 공격을 히트 시킨다 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왜 이렇게 초식을 반복숙달해야 하는건데?'


'하아, 오라버니는 새로 발매된 격투게임을 할 때, 바로 기술 같은걸 쓸 수 있나요?'


'그건 아니지. 연습해야지.'


'검술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무리 널리 퍼진 검술이라도 그 초식에는 그 검술이 추구하는 공방일체의 묘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 초식을 반복숙달하면서 실제 상황이 닥쳤을 때 자연스럽게 동작이 연결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흔히 말하는 머슬 메모리라고 할까요.'

 

'그런가?'


'자, 잡담하면서 휴식시간이 끝났네요. 그럼 다시 가시죠.'


'아... 지겹다.'





방금 급히 사용한 각성제의 효과가 온 몸을 타고 흐른다.

이로서 부족한 신체의 힘은 어설프게나마 메꾸었다.


흔히 소설에서 초식의 벽을 허문 것을 최고의 경지라 칭한다.

자신이 배운 초식의 형에 얼메이지 않고, 검과 몸이 하나가 되어 반응하는 경지. 신검합일의 경지.

호사가들은 이 경지야 말로 검사가 추구하는 최고의 경지 중 하나라며 칭송한다.


그에 비해 나는 애송이에 불과하다. 아직 수많은 반복으로 익힌 초식을 어찌어찌 한두 동작을 응용해낼 수 있는 그런 애송이다.


다행히도 저 그린스킨은 복잡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몬스터이다. 다만 자체의 피지컬이 그 단점을 체우고도 남는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나의 몸은 저렇게 무지성으로 높은 자세를 하고 있는 상대를 죽이는 가장 좋은 방법을 이미 기억하고 있다.


나의 무게 중심을 아래 두고 튀어 오르면서


찌른다, 그리고 그 상태로 베어낸다!


그대로 몸이 기억하고 있는 동작의 힘을 검에 전달한다.

살을 가르는 묵직한 감각과 강한 운동에너지의 반발력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이거 각성제 안먹으면 분명 내가 오히려 검을 놓치고 저 뭉둥이에 뭉게졌겠구나

저 그린스킨이 새내기 헌터 학살라라는 별칭은 화투쳐서 바꿔먹은게 아니라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저 그린스킨은 나의 검에 목이 찔리고 베여 찐득한 피가 솟구쳤다.

약 2m의 근육질 거체가 무너져 내리면서 뜨근한 피가 내 몸을 적셨다.


현재 무력이 F급에 불과한 내가 각성제의 도움을 받아 D급 최강 몬스터인 그린스킨을 혼자서 잡아냈다.

이는 본래 게임에서도 고인물들이나 할 수 컨텐츠다.


검을 배운지 얼마 안된 애송이가 이정도면 정말 잘한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제는 각성자가 아닌 일반 남성들도 무장하면 그럭저럭 상대할 수 있는 잼민이 고블린들만 남았을 것이다.

그러면 구조대가 오기전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서서히 각성제로 무리한 온몸의 근육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 고통에 서서히 정신이 혼미해진다. 하지만 여기서 쓰러지면 고블린들에게 온몸이 찢겨나는 것이 필연이기에

정신을 부여잡고 다른 사람과 예린이가 숨어있는 은신처로 걸음을 옮긴다.


돌아가면 예린이한테 고맙다고 인사나 해야겠다


그렇게 게임 속 이지만, 게임이 아닌 세계에서 첫 전투의 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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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인데 어렵다

글쓰기는 어렵다

히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