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신가, 하북사정주이다.


지난 시간에 이어 내 고닉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돌아왔다.


전편에서 설명했듯, 하북사정주란 [원소 본초] 휘하의 네 맹장인 안량 / 문추 / 장합 / 고람을 이르는 별칭이다.


물론 정사에 기록된 별칭은 아니고 후대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이지만, 삼국지발 명칭이 다 그런 식이니 대충 넘어가자. 오호대장군도 생전에 오호대장군이라 불린 건 아니다.


이번 편에서는 두 번째 순서이자 필자의 최애캐인 문추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겠다.


최애캐인 이유는 사실 별 거 없다. 삼국지 게임에서 원소 진영으로 싸울 때 얘를 너무 잘 썼기 때문. 


문추 없으면 하후돈 / 하후연 / 악진 / 우금 / 허저 / 조인 등등의 S급 무장이 즐비한 조조군을 절대로 못 이긴다. 씨이팔 금수저 좆망게임 ㅂㄷㅂㄷ


또 소장 중인 삼국전투기 웹툰에서 얘를 너무 간지나게 묘사하기도 했고(디자인이건 실력이건).





문추(文醜)


세트 메뉴인 안량과는 반대로 이름에 더러울 추(醜)가 들어간다. 


물론 그냥 음차한 이름일 터라 정말로 외모가 더러운 인간이었는지 여부는 불명이다. 안량도 잘생겨서 이름이 안량인 게 아니듯이.


사실 기록으로만 따지면 문추는 정확히 뭘 하던 인간인지 안량보다 내용이 부실하다. 안량과 마찬가지로 관도대전에서 패배하기 전까지는 따로 등장하는 사서가 없기 때문.


관도대전 당시, 안량이 백마 전투에서 전사하자 원소는 후발 주자로 문추에게 5천 가량의 기병대를 주어 조조의 후미를 급습하게 했다. 꽤나 중요한 임무를 맡긴 것으로 보아 일단 원소에게 신임을 받는 명장이었던 건 확실하다.


실제로 문추에 대한 삼국지 인물들의 평가는 안량과 거의 비슷하다.


순욱은 문추를 안량과 더불어 "단순히 필부의 용맹함만을 갖춘 자"라고 깠고


공용은 반대로 "안량과 문추는 하북 제일가는 원소 삼군 최고의 맹장들"이라고 추켜세웠는데


아마 전편에 소개한 안량과 마찬가지로 지략이 초콤 딸리는 돌격형 맹장이었던 듯싶다.


다만 고대 시절 주요 전력인 기병대의 지휘를 맡겨 적을 급습하게 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안량보다는 머리를 쓰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요즘으로 따지면 기갑사단에 버금가는 주요 부대를 그냥 내줄 리는 없기 때문. 


물론 운용한 병력의 수로만 따지면 직위 자체는 안량이 좀 더 위였을 수도 있다. 



뭐가 되었든 문추는 원소의 명대로 조조군을 추격해 적진을 들이치는데


이때 조조군은 순유의 계략에 따라 일부러 물자를 전부 놔두고 매복한 상황이었다.


일반적으로 군량과 우마를 수송하는 치중대를 맨 후방에 배치하기에 원소군은 조조군이 급히 도주하느라 물자를 전부 내팽겨쳤다 착각, 이를 약탈하느라 진영이 급속히 무너진다.


재물에 눈이 먼 기병대가 빈틈을 보이자 매복하고 있던 서황의 부대가 기습을 가했고


특히 핵심 인사였던 문추가 집중 공격을 당하면서 그대로 전사하고 만다. 



다시 말해 정사의 문추는 관우가 아닌 서황에게 죽은 것.



패전 기록으로만 볼 때, 문추 개인의 용병술은 그렇게 뛰어난 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일개 부대를 이끄는 장수가 휘하의 군대를 통솔하지 못하고 적습에 당했기 때문.


다만 당시 병사들이 약탈과 노략질로 부족한 봉급을 충당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꼭 문추만의 잘못은 아닐 수도 있다. 적지를 점령하면 일정 기간 약탈을 허용하는 게 일상적인 관례였을 수준이니. 


특히나 소와 말 같은 가축을 비롯, 병사들 월급으로는 꿈도 못 꿀 귀중품이 사방에 즐비했으므로 눈이 돌아갔을 공산이 크다.


또 조조군이 치중대를 방치하고 숨어버렸기 때문에 겁먹고 꽁무니를 뺐다 여겨 방심한 걸 수도 있고.


좌우지간 최후로만 따지면 안량보다 많이 안습하다.


그래도 문추를 죽인 사람이 그 서황이었음을 생각하면 최소한 체면치레는 한 셈. 연의의 묘사와는 달리, 정사의 서황은 말 그대로 무패 신화를 자랑하는 괴물 of 괴물이니까.


문추의 이런 허망한 죽음 또한 원소군의 사기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가 말하길 "안량과 문추는 모두 원소의 명장이었으며, 그들이 격파당하자 원소군이 크게 동요하였다"라고 했다.


문추 또한 기록이 안습하기는 해도 결코 연의 한정으로 부풀려진 졸장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안량과 마찬가지로 문추도 상술한 여러가지 점을 참작했는지, 연의에서는 이름만 대도 아는 전국구 네임드로 급부상을 한다.


일단 세트 메뉴라서 그런가, 안량과 문추를 일종의 의형제나 베스트 프렌드 관계로 설정하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


게다가 안량의 뒤를 이어 출전한 장수라는 점 때문인지 능력치 자체는 안량보다 위인 것으로 설정하는 판본이 많다. 아무래도 나중에 나오는 놈이 더 세야 재미가 있으니까. 


심지어 분량도 안량보다 많다 ㄷㄷ


반동탁 연합군이 화웅과 대치할 당시, 원소가 "안량과 문추만 있었다면!"이라고 외칠 정도인 원소 세력의 핵심 무장으로 묘사되며


손견이 옥새를 숨긴 채 칼을 뽑고 패악질을 부리자, 원소를 보호하며 손견과 무력으로 대치하는 최강의 포스를 보여주기도 한다.


차후 원소가 기주목 한복을 제치고 기주를 차지할 당시, 한복의 수하인 경무와 관순이 원소를 급습하자 단칼에 이들을 베어 주군을 구했다. 


특히 연의 문추의 진가가 빛나는 전투는 원소와 공손찬이 충돌한 계교 전투


판본에 따라 등장 여부가 불투명한 안량과는 달리, 문추는 거의 무조건 나와 분량을 챙겨간다.


계교 전투 때 문추는 선봉장 역할을 맡아 문자 그대로 공손찬의 군대를 갈아버렸으며


공손찬 휘하의 정예부대인 백마의종 또한 문추와 원소 휘하의 또 다른 명장인 국의의 일제 공격에 무너진다(국의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편을 할애하겠다).


당황한 백마의종의 네 장수들이 한꺼번에 문추에게 덤볐으나, 결국 모조리 격퇴를 당하는데


판본에 따라 네 명이 싹 다 리타이어했다고도 하고, 한 명만 죽고 나머지는 내뺐다고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다 죽여버린 쪽이 문추의 위상을 감안했을 때 더 맞는 전개가 아닌가 싶음 ㅇㅇ



공손찬군을 그야말로 초전박살낸 후, 문추는 마지막으로 도망치는 공손찬의 뒤를 쫓아가는데


이때 하필 우리의 영웅 조자룡이 개입하면서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만다.



조자룡의 실력이야 명불허전이니 여기서 따로 설명하지는 않겠다.


중요한 건 여기서 조자룡과 문추가 무려 50합을 겨루었는데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의의 문추는 그 조자룡과도 호각으로 맞설 수 있는 실력자인 셈 ㄷㄷ


이후 관도대전 직전까지는 등장이 뜸한데, 아마 역경루에 틀어박힌 공손찬을 신나게 패고 있었거나 원소를 도와 흑산적을 토벌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 비로소 대망의 관도대전이 시작되는데


다들 알다시피 안량이 먼저 출전했다가 관우한테 원콤을 당하고 수급만 진영으로 돌아왔다.


이에 분개한 문추가 자신은 안량과 형제 같은 사이였다며 복수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원소는 이를 허락하면서 조조 진영에 정말 관우가 머무르는지 확인하기 위해 유비를 대동시킨다.


그러나 정작 문추는 유비를 군대의 후위에 배치했는데


유비가 싫어서 그랬다는 말도 있고, 유비가 워낙 패배를 많이 한 놈이라 불길해서 그랬다는 말도 있고, 하여간 이유는 다양하다.



상술한 정사의 내용대로 문추가 이끄는 기병대는 조조군을 쫓다가 물자에 눈이 팔려 진영이 흐트러졌고


이를 노린 서황군에게 바로 급습을 당하는데


허무하게 사망한 정사와는 달리, 연의의 문추는 불시에 습격을 당했음에도 굉장히 선전한다.


조조군의 명장 장료와 서황이 한꺼번에 달려들었으나, 문추는 곧장 철궁을 쏴 장료를 쓰러뜨리고 서황 또한 일기토에서 꺾어버리니


연의의 서황은 안량과 문추 둘한테 번갈아가며 굴욕을 겪은 셈이다.


그러나 선전도 잠시, 관우가 난입해 문추와 일기토를 벌이는데


서황을 꺾은 문추도 적토마를 탄 군신 관우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고, 당황해 도주하려고 하나 적토마의 속력을 당해내지 못해 그대로 참수되고 만다.


근데 이 장면 때문에 레알 삼국지의 파워밸런스가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장료와 서황은 이후 전개에서 관우와도 맞서는 맹장으로 묘사되는데, 정작 관우한테 원콤당한 문추가 이 둘을 그냥 꺾어버렸기 때문.


아무래도 임팩트만 생각하면서 집필하다 보니 그런 세세한 디테일은 잡아내지 못한 듯하다.



어쨌거나 이걸로 하북사정주 문추전을 마치겠다.


안량전에서도 말했듯이, 패자들 중에도 기억할 만한 영웅들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패배한 영웅들에게는 또 패배자 나름의 낭만과 간지가 존재한다. 이런 점을 잘 활용하면 영웅 컨셉으로 글을 쓰는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엉망이지만 읽어줘서 감사하다. 다음 편은 장합전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