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르트알파헤임에서 태어나 사람의 피를 빨고 사는 회색빛 피부의 흡혈귀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했다.


오랜 역사를 귀족으로 살아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교육 받아온 스스로는 어째서 인간 마을 백성의 피를 빨아먹고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이다.


저들은 나에게, 우리 가문에 충성을 하는 이들이 아닌가?


나라에서 유배되어 빛이 들지 않는 이 척박한 땅까지 넘어와 땅을 일구어 살아가야 하는 불쌍한 존재들이 아닌가.


타락한 세력을 상징하는 노예문장을 몸에 찍히고도 생존을 위해 이 흡혈귀에게 몸을 의탁하고야만 저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나의 백성들을 마물들의 먹이로 연간 100여명씩 마왕의 성에 제물로 바칠 이유는 내게 존재하는가.


그만큼 내가 강압적이고 그들에게 신적인 존재인가?


그 대답은 아니라는 답 뿐이다.


오늘 저녁에는 나를 죽이겠다며 저택을 찾아온 인간에게 발길을 옮겼다.


마을에서 발탁한 인간 기술자의 모진 고문을 받고 발 밑에 누워 있는 수도승의 몸둥이를 내려다보았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체념한 것인지, 아니면 구출을 바라는 조용한 기도를 올리는 것인지 사내는 전혀 움직임 없이 얌전히 누워 있었다. 


'이리 죽어버리다니 나약하구나, 인간이여.'


같은 인간이면서도 마을의 평화를 위하여, 인간을 고문해 죽인 기술자를 바라보았다.


인간의 불쌍함을 이해해주고 이를 극복하고 구원을 이루려 한 수도승은 무척이나 정의로운 이였을 터이다.


마치......내가 생각했던 - [진정한 귀족] - 처럼.

그가 대항한 [나]라는 존재는 악한, 정의롭지 못한 자인 것이겠지.


귀족으로서의 가르침이 머리를 스쳐지나 간다.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


'나는 지금 고귀한 행동을 하고 있는가?'


기술자가 시체를 치운다.

나는 그것을 불러세워,


"인간의 방식으로 장례를 치르도록 하거라."


이것만이 흡혈기인 내가 인간인 그를 대우하는 유일한 방법일 테지.

그들은 조용히 그러나 깊게 상체를 숙이고서 묵묵히 시체를 처리했다.


이후 그 수도승의 묘비에 다가섰을 때에 마을 사람들이 몰래 두고 간 꽃다발과 음식거리를 볼 수 있었다.


그런가... 그런가 그런가!


나의 백성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드디어 알았다.

인간의 마음을 깨달은 그 순간 머리에서 신호가 전깃불처럼 튀며 백성을 위한 싸움을 준비한다.


마을 광장에 무두질한 가죽 갑옷을 입고서 인간의 대장장이가 만든 검을 쥐고 선언한다.


"지배자로서 나를 향한 너희의 복종이 그 자리를 면하기 위한 거짓말이였더라도 상관 없다."


"허나 너희의 복종을 받는 나의 행동은 일고 할 가치가 있다."


"나는 더 이상 나의 백성을 잃고 싶지 않다!"


"나는 더 이상 제물로서 마왕성에 보내지는 인간을 배웅하고 싶지 않다!"


"그로인해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ㅡ나는 마왕을 치겠다."


"나는 마왕을 신들의 자손으로서 반신(半神)적인 존재라고 여겼다."


"허나 너희는 특정 종교나 거룩한 신을 숭배하지 않고, 오히려 고대 조상들의 유서와 경외심을 중심으로 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나는 너희를 믿는다."


"놈도 나와 같은, 신도 반신도 아닌 그저 마물일 뿐이라고."


"잘 있거라! 내 마왕의 목을 치는 날에 너희를 태양이 뜨는 나라에 이주 시켜 줄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