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주인은 인세에 지옥을 불러오려는 자입니다!"

"또한 그분의 방패이니"
"제발 그자를 버리고 인류를 위해 싸워주십시오!"

"그분의 적을 멸하고, 막아내는 것이 나의 사명"

"그자는 그대같이 고결한 자가 따를만한 위인이 아니란 것을 알잖습니까!"
"그분을 방해하는 자들이여. 나를 먼저 감당하라"

"젠장...모두 공격해라! 상대는 제국 최강의 기사다! 수가 많다고 해서 방심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마라!"


 한 명을 상대하기 위해 수백이 넘는 자들이 달려드는 광경. 보통은 시체가 온전할 것이라는 희망도 느끼지 못할 숫자 차이를 보면서 그는 그저 묵묵히 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으아아! 죽어라!!"

"인류의 배반자 녀석!"
"너 같은 녀석을 존경했었다니!"


 시끄러운 전장에서도 선명히 들리는 비난을 묵묵히 들으며, 그는 검집에서 칼을 뽑아 휘둘렀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저 안타까울 뿐."


 그가 전방을 향해 휘두른 칼날에 두 명이 목이 날아가고, 셋은 팔이 잘렸다. 그 모습을 눈에 담으며 그는 다시 검을 회수하고, 옆에서 접근하는 병사를 향해 찔렀다.


"-커헉..."


 다시 뽑은 검날을 비스듬하게 기울여 기사의 검격을 흘리고, 자세가 흐트러진 기사의 목을 벤다. 그 사이 뒤를 노리고 다가오던 암살자가 날린 비수를 잡아채며 주먹을 쥐었다. 인간을 벗어난 악력에 조각 난 비수를 사방으로 뿌려 적들이 가리지 못한 헬멧 틈새로 보이는 눈에 상처를 낸다.


 수많은 적을 죽였지만 아직도 시야를 가득 메우는 갑옷으로 이루어진 은빛 파도를 바라보며, 그는 묵묵히 검을 휘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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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그 분의 계획을...쿨럭-... 방해하게 두지 않겠다..."

"이런 미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는 것은 알았지만...."

"저딴 괴물을 어떻게 이기냐고!"


 주변에는 시체와 검으로 이루어진 산이 생겨나고, 발밑으로는 그의 것인지, 적군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피의 강이 흐르고있다. 남은 적은 단 20명. 하지만 그의 몸은 이 20명도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다.


"모두 겁먹지 마라! 저 괴물도 이제 다 죽어가고 있다! 우리라면 저놈을 해치우고 그 주인놈까지 죽이며-"

 

 앞으로 나서 소리 치던 자의 가슴에 검이 날아가 박힌다. 이미 날이 모두 나가 무기로써 쓸모를 다한 검은 마지막 살생을 이루고 그의 손을 떠났다. 이제 남은 적은 19명. 그에게 남은 것은 다 부서진 갑옷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뚱아리 뿐.


"너희는 그분께 갈 수 없다."

"젠장... 이제 무기도 없는 놈이다! 한번에 달려들어!"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지만 쓸 수 있는 무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휘두를 수 있는 건 많다. 그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잘린 팔을 들어 상대의 검을 막았다. 상대의 검이 팔의 살을 베었지만, 뼈에 닿으며 잠시 기세가 죽는다. 그 틈을 노려 칼이 박힌 팔을 상대에게 밀어 던지고, 원래는 아름다운 장발을 자랑하였을 자의 머리카락을 손에 감고 잘린 머리를 휘두른다. 헬멧을 쓰지 않고 있던 녀석의 머리가 잘린 머리와 부딪히며 함께 터졌다. 그 모습을 바라본 나머지 적들은 모두 공포를 느꼈다.


"네녀석은 이제 기사도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냐!"


 그렇게 소리치며 검을 휘두르는녀석의 칼을 이번엔 스스로의 팔로 막는다. 잘린 팔 위로 부러져 날카로워진 뼈가 생겼다. 그대로 적의 목에 박아 넣는다.


"....나는 그분의 검이자 방패. 그분의 적을 멸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니. 너희는 나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얼어붙은 나머지 17명에게 말한 그는 날카로운 뼈가 튀어나온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어 검술의 자세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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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체의 산과 피의 강위에 홀로 서있던 그가 바닥으로 쓰러진다. 그는 자신의 주인이 있을 방향으로 겨우 고개를 돌리고 말한다,


"쿨럭...아아...나의 주인이시어....부디 뜻한 바를 모두 이루소서...당신의 길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이 불충한 기사를 용서하지 마소서..."


 자신의 죄를 고하듯  담담하면서도 슬픈 목소리는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이내 그의 눈빛에서도 빛이 꺼진다. 시체의 산에 한 구의 시체가 더 늘어났지만 그것을 구별할 수 있는 자는 이 전장에 남아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