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 탁.


푹신한 소파에 등을 뉘고있는 남자.

티에르 에일러는 귓가로 흘러오는 모닥불 소리를 들으며  책을 보고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20평도 안되는 곳이었는데, 나무로 된 아치형 창문에  모닥불이 타오르는 벽난로, 쓰다만 깃펜이 올려져있는 책상과 의자와 바닥에 깔린 고풍스런 적색 카페트가 조화를 이루어 꽤나 멋들어진 서재의 분위기를 내는듯했다.


사락ㅡ.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에일러는 한숨을 내쉬며 책을 탁상위에 올려놓고선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갔다.


그가 책을 읽는동안 시간이 많이 지났는지 밖의 풍경은 어두웠지만, 길거리의 꺼져있던 가로등이 하나둘씩 밝아지자 그 어둠은 금새 자취를 감추었다.


툭, 투둑.


어두워져 잘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물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빗방울들은 창문 여기저기 들러붙어 주르륵 흘러내렸고, 그건 그의 방을 한층더 낭만있게 만들어주었다.


비가 내리는 세상에서 활활타오르는 모닥불과 함께 하루를 지나보내는건 그에게 일종의 안정감을 선사했다.


밖의 풍경들을 고요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던 에일러는 탁상위에 올려둔, 이제는 다 식어버린 차를 들고 입으로 홀짝였다.


까마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늘도 끝이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때였다.


쾅!


문이 열리더니 검은옷의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밀러의 방에 들어왔다.


낭만있는 분위기에 취해 한창 차를 마시고 있던 에일러는 들고있던 갑작스런 그 소리에 찻잔을 떨어트리고말았고,

찻잔은 바닥에 닿아 깨져 그 내용물이 카펫을 물들였다.


분위기가 깨져 눈살을 찌뿌리던 에일러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억.. 헉..ㅡ 사건.."


"제임스?"


숨을 돌리고 남자가 고개를 올리자

노란 머리칼에 파란 눈동자, 코의 조화가 인상깊은 미청년이 땀을 흘리고있었다.


그는 에일러의 조수, 제임스였다.


"일단 좀 숨을 돌리고 말해보게. 그 젖어버린 코트도 갈아입고."


그러나 제임스는 그의 말을 들을 생각도 없이, 에일러에게 아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말을 큰 목소리로 전했다.


"사건이라고요 사건! 에일러선생님!"


"뭐, 그게 사실인가?"


믿기지 않는듯 재차 물어보는 그에게, 제임스는 자신의 말이 사실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었다.


"네!  아리시아 남작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답니다!"


제임스가 고한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라고도 할만한 것이었다. 살인사건이라니? 일개 탐정따위가 일임한만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러나 에일러는 제임스가 가져온 의뢰를 거절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라는것이 더 정확하리라.


 그가 머무는 건물, 그중에서도 102호는 둘의 탐정사무소인 동시에 그와 제임스의 거처이기도 하다. 매달 월세를 내며 간간히 살아가고 있던 그들이었지만 그마저도 최근들어선 내기 힘들어졌다. 


그 이유는 파리의 문젯거리가 확연히 줄어들었다는것. 탐정이라고 해서 무언가 대단한 일을 맡는것이 아니다. 사람찾기부터 미스터리 해결까지, 그 범주는 다양했다. 


그런 그들의 일거리가 줄어들었다는건 그만큼 위험한것들이 줄어들었단 것이고. 위험도의 감소는 곧  파리의 치안이 강해졌다라는 결론으로 도달할수 있었다. 


물론 치안이 강화된건 분명 좋은 일이다.하지만 그와 같은 사립탐정에게는 일거리가 줄어드는것이나 마찬가지어서, 어찌보면 치안이 강화된것에 대한 악영향이라고도 할수있었다.


 그렇기에 에일러는 그 사건이 자신의 그릇을 넘어서는것 같으면서도 그 제안을 수락할수밖에 없었다. 


그의 조수인 제임스도 최근 사정을 알고있었기에 이 시간까지 밖에서 방방곡곡 뛰어다니던 것이었으니까.


"...어서 가봄세!"


조금은 긴장감이 묻어있는 목소리로 대답한 에일러는 문옆에 새워둔 옷걸이에서 코트를 집어 걸치고는, 제임스와 함께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향했다.


문이 닫기고 아무도 없는 방에선 모닥불만 계속ㅡ 타오르고 있었다.


티에르 에일러. 파리의 사립탐정.


그가 보내고 있던 그날은 여느때와 다름없는 밤이었다.

여전히 밤하늘은 공장의 증기에 덮혀있었고, 기술의 발전을 위시하듯 파리의 번화가는 밤이 다 되어가는 시간임에도 여전히 그 휘광을 뽐내고 있었다.


그래, 그날은. 아주 평범한 날이었다.


어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