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 로비는 죽은듯이 조용했다.


모험가들을 위한 수십개의 테이블도 커다란 의뢰 게시판도 그대로였으나 정작 모험가와 의뢰는 없었다.


그저 몇명의 관광객과 하릴없는 소년들 그리고 단 한명의 안내원만 있을 뿐이었다.


옛날에는 참 떠들썩했는데.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잔 부딪치는 소리와 떠들썩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돌주먹’ 그레트헨이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용을 토벌하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 기쁜 모양이었다.


그 옆에서는 커다란 도끼를 들고 다니는 타이커스가 날랜발 크레이그와 노름을 하고 있었고, 파티의 리더인 에릭은 신대륙 탐사를 위한 대원들을 즉석에서 구하고 있었다.


가장자리에서는 이름없는 신입 모험가가 모든 것이 낮설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리라는 포부를 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그녀는 그때에도 길드 안내원이었다. 수백명의 젊은이들이 그녀의 도장으로 정식으로 길드 모험가가 되었다. 


그녀가 담당한 모험가가 어엿한 베테랑으로 성장하여 신입들의 동경의 대상이 될 때면 그녀는 왠지 뿌듯하고 또 자신의 간접적인 도움이 낳은 결과가 신기했다.


또 운없는 몇이 부고 소식으로 돌아올 땐 하루 종일 우울했다. 와야 할 사람이 오지 않는 느낌은 몇년을 일하고 나서야 겨우 익숙해졌다.


그녀에게 꿈과 희망에 부푼 모험가들은 모두 하나의 샛별이었다. 하나의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그들을 보며 그녀 역시 이유모를 기대감에 부푼 채 열심히 일했다.


 




“저기요, 이거 얼마에요?”


갑작스러운 말소리가 그녀의 회상을 방해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청년이 길드 문양이 새겨진 은색 뱃지를 들고 있었다. 모험가가 됐다는 징표로 지급하던 뱃지와 똑같이 생겼다.


차이점이라면 철로 된 진품과 달리 플라스틱으로 된 싸구려 기념품이라는 점이었다.


“저쪽 카운터 가서 여쭤보세요.”


그녀가 손으로 ‘기념품점’이라 적힌 쪽을 가리키자 사내는 투덜대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모두 과거일 뿐이었다. 이미 길드는 제 기능을 잃은지 오래였다.


더이상 세상은 모험가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계몽과 위대한 발견의 시대가 끝날 무렵 세상에 ‘미지의 대륙’같은 것은 없었다. 모든 땅과 바다가 각각의 깃발 아래서 사람의 명령에 따르고 있었다.


모험가들이 가장 자주 맡는 마수 토벌은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사라졌다. 행정과 치안이 도시부터 시골까지 전부 닿게 되면서 사람들을 잡아먹는 마수는 멸종되거나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마법공학이라 불리는 마법과 기계를 접목한 기술의 발달도 한몫했다. 선천적인 마법사나 부자의 전유물이던 마법이 이제는 간단한 기계장치의 형태로 서민들에게까지 보급되며 누구나 자기방위의 자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남은 의뢰라고는 간단한 소일거리나 1회용 마법기구조차 살 수 없는 빈민들의 것뿐이었다. 자연스레 하나둘씩 다른 일을 찾기 시작하더니 결국 모험가란 죽은 직업이 되고 말았다.


길드의 몰락 역시 당연한 수순이었다. 전국의 대도시에 하나씩 지부를 가지던 모험가 길드는 이제는 수도의 본부만이 박물관의 형태로 남게 되었다.


아무리 길드에 애착이 있는 그녀라도 모험가 대신 멍청한 관광객들이나 상대하다 보면 애정이 식는 법이었다. 이제라도 다른 직업을 찾아봐야 하나 고민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그래도 아직도 이 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라 하면…’


그때 문이 열렸다.


관광객은 아니었다. 약간 피로한 기색에 오른 뺨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있는, 매서운 인상의 사내였다.


나이는 이미 쉰을 향해가고 있지만 온몸을 덮은 갑옷도 그 아래 다부진 몸집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다.


등에는 큰 대검을 매고 있었고 오른 허리에 한손검을 추가로 차고 있었다. 반대쪽에는 튼튼한 주머니에 붉은 물약 여럿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왼쪽 가슴에는, 붉게 녹슨 길드의 문양이 달려 있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사내는 곧장 그녀 앞으로 걸어왔다. 

무거운 발걸음이 로비 전체에 울려퍼졌다. 그 주인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가 마침내 그녀 앞에 서자, 그녀는 약간의 친근감과 존경을 담아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용사님.” 





20년도 전의 일이었다. 왕국 서부의 무인지대에 마왕을 자칭하는 자가 나와 지성 있는 마물들을 규합했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자기밖에 모르고 사악한 마물들이 어떻게 힘을 합치겠냐 코웃음치며 얼마 안 가 안에서부터 무너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증오로 뭉친 그들의 결속력은 훨씬 단단해서, 그들의 군세는 인간보다 우월한 힘과 강대한 마력을 앞세워 순식간에 나라 전체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수백의 마을이 지도에서 지워지고, 수만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름높은 왕국군의 명성이 무색하게 수도마저 무너질 위기에 놓이자, 왕은 최후의 수단으로 젊은 모험가 넷을 불렀다.


자기보다도 커다란 도끼를 휘두르는 거구의 전사


오만가지 마법을 다룰 줄 아는, 대현자의 제자 출신의 마법사


주신의 부름을 직접 받았다는 방랑 성직자


그리고, 검으로는 누구도 당해낼 자가 없었다는 검사.


모두 검증받은 실력과 수많은 경험을 가진 베테랑들이었다.


왕은 그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마왕을 토벌해주기를 부탁했고, 그들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왕국 전체를 횡단하며 수많은 모험담을 낳은 용사들은, 마침내 마왕 앞에 당도하였고 하루에 걸친 싸움 끝에 검사의 대검이 마왕을 조각내며 끝이 났다.


온 나라가 그들을 칭송했다. 광장에는 그들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졌고, 왕은 금화가 가득 담긴 상자와 함께 그들만을 위한 훈장을 수여했다.





“들어온 의뢰는 있습니까?”


“아니요, 저녁은 돼야 하나가 들어올까 말까 할걸요.”


그러나 위대한 모험가이자 용사인 그들조차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는 못했다.


갈수록 의뢰가 줄어들자, 그들 역시 다른 모험가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일을 찾아 떠났다.


마법사는 궁정에 들어가 정치에 뛰어드는 한편 마법 연구를 계속하였고, 성직자는 지금까지 번 돈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고아원을 차렸다.


전사는 신병들에게 무기술과 격투기를 가르치는 교관이 되었으나 몇년 전 사고로 인해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러나 검사만은 끝까지 그 자리에 남았다.


누구는 그가 마왕을 쓰러뜨리는 모험에서 미쳐버렸다 하고, 단순히 부자의 기행이라고 일축하는 이도 있었으나 그 누구도 용사의 고집을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떠나, 이제는 그가 길드에 등록된 유일한 모험가였다.


“저녁에 다시 오도록 하지요.”


의뢰가 없다는 말에 돌아가려던 그는, 안내원의 책상에 올려진 반으로 접힌 종이를 발견했다.


“저 종이는 뭡니까?”


“이거요? 치안대에서 온 건데, 지하수도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데 일이 바빠 자신들이 해결하기 힘들다네요.”


그녀는 이 의뢰가 영 탐탁치 않은 듯 했다.


"어린 대원이 뭣도 모르고 자기 일을 떠넘긴 거겠죠. 다른 멀쩡한 의뢰가 오면 말씀드릴게요."


"제가 수주하겠습니다."


어차피 그 말고는 수주할 사람도 없건마는, 용사는 의뢰를 받을때면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안내원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당신같은 분이 할만한 일이 아니에요.”


그러나 용사는 이미 의뢰가 적힌 종이를 손에 쥐고 있었다.


“일이 끝나면 돌아오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왔던 길을 돌아가는 용사를, 안내원은 씁쓸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길드에서 나온 용사는 그대로 치안대 병영으로 향했다.


바쁘다는 것이 빈말은 아닌지, 건물 안에 병사들은 몇 명 없었다.


그는 잠시 안을 둘러보더니, 서류에 잔뜩 무언가를 쓰고 있는 이에게 다가갔다.


“뭐요?”


"의뢰를 보고 왔습니다."


사무를 보고 있던 앳된 청년은, 종이를 쓱 훑어 보더니 귀찮다는 듯 일어섰다.


"염병, 이제는 별별 짓을 다 하는구만."


그것이 치안대를 두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그를 두고 하는 건지 용사는 묻지 않았다. 청년은 안쪽에 있던 콧수염이 인상적인 사내에게 무어라 하더니 열쇠 꾸러미를 받고 돌아왔다.


"끝나면 반납하러 오십시오."


그는 열쇠를 휙 던졌다. 용사의 손에 닿은 열쇠들이 서로 부딪혀 짤랑거렸다.


열쇠를 청년에게 주었던 사내는,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는 얼굴이 새파래진 채 달려왔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용사님! 새로 들어온 녀석인데, 제가 영 교육을 잘못 시켰습니다. 인마, 빨리 잘못했다고 사과 드려!”


상관은 부하의 머리를 억지로 누르며 고개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크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열쇠를 손에 쥔 채 용사는 발걸음을 되돌렸다. 등 뒤로 둘의 대화가 들렸다.


“이 새끼야, 내가 편하게 대해준다고 용사님한테까지 그렇게 굴면 어떡해?”


“‘전’ 용사겠죠. 이제 와서는 남들 소일거리나 해주는 퇴물한테 특별대우 해줄 이유가 있습니까? 제식 마법공학 권총 든 일반 병사한테도 질 인간인데.”


“맞는 말이라도 좀 예쁘게 하면 덧나냐? 전관예우는 해 드려야지.”


아무 말 없이, 그는 건물을 나왔다.





 한참을 사다리를 내려가며 도착한 지하수도는 특유의 역겨운 냄새가 났다.


안쪽을 향해 걸어가자 작은 슬라임 하나가 도망가는 것이 들렸다. 인간의 눈을 피해 숨어사는 마물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던전이 따로 없구만.”


세 동료와 함께 크레타의 미궁에 들어갔을 때가 떠올랐다.


보물상자는 없고, 적은 거대한 미노타우르스 대신 도망만 다니는 잔챙이에, 혼자였지만 지독한 냄새만큼은 똑같았다.


“죽을 뻔도 했지만, 그땐 재밌었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늙은 용사는 자신이 언제부터 혼잣말이 많아진건지 생각했다.


그 발단은 분명 외로움이었다. 그 대상에는 물론 자신의 옛 동료들도 있었다.


생사고락을 함께하던 그들이었건만 각자 길이 나뉘어진 후에는 영 모이기 힘들었다. 힘들게 모여 회포를 푼다 하더라도 헤어진 후에 남는 것은 일말의 씁쓸함 뿐이었다. 전사가 죽은 후에는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외로움이 더 큰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그는 모든 것이 그리웠다. 동료도, 떠들썩한 길드도, 세상을 구하는 모험도, 그 속의 예기치 못한 만남이나 심지어는 목숨을 거는 싸움까지도 전부 그리웠다. 


그가 모험가 활동을 계속하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비록 껍데기만 남아 옛 문화를 시범하는 광대처럼 됐지마는 그때만큼은 꿈 꾸고 도전하던 그 시절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땐 검을 배우려는 사람도 많았는데 말이야. 방어구를 파는 가게도 큰 도시라면 하나씩 있었고.”

 

한창 과거를 되새김질하며 걷던 용사가 갑자기 멈췄다.


오른쪽 벽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가 손을 대자 벽은 일렁이더니 감쪽같이 사라졌다.


“환술이군. 리치나 흑마법사들이 자주 쓰던 속임수야.”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뻔했다. 저 뒤에, 뭔가 숨기는 것이 있다는 소리였다.


벽 사이에 생겨난 길게 뻗은 통로를 향해 용사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좁고 어두운 통로를 조금씩 나아갈수록 따끔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강한 마기가 느껴졌다.


아주 익숙한 느낌이었다. 그는 이 마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직감했다.


한참을 걷자 마침내 부자연스러운 나무문이 눈 앞에 들어왔다. 약간의 긴장, 그리고 흥분을 남몰래 품고 용사는 문을 열어젖혔다.


“그동안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는데, 하필 첫 발견자가 너라니. 이것 참 얄궂군.”


푸른 보석들이 잔뜩 쌓여있는 누추한 방 안에는, 마왕이 서 있었다.


“모습이 조금 바뀌었군.”


“누구 덕분에 말이야.”


누추해진 집과 복장을 제하더라도, 용사가 기억하는 마왕과는 제법 다른 모습이었다.


집 한 채만 했던 몸집과 범접할 수 없는 마력은 어디가고, 눈앞의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체격의 비루한 마법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잘려서 밑동만 남은 두 뿔과 여전히 위엄있는 목소리만이 그가 과거의 숙적임을 증명했다.


“분명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동안 이곳에서 숨어 지내던 건가?”


“그래. 조각난 몸 중 하나에 의식을 옮겨담고, 구차하게 살아남았지.”


마왕의 눈이 회한과 증오로 불타올랐다.


“강대한 힘, 나를 따르는 동족들, 광활한 땅. 그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잃고 이 지하에 기어왔을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나?”


“복수인가?”


“그래, 복수였다. 마왕성이 무너지고 마물과 마족들이 탄압당하는 모습을 바라만 보며, 그것들을 보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삼키며, 나는 복수만을 생각했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너무나 약해지고, 왕국군은 너무나 강해졌더군. 말단 병사조차 용사와 맞먹을 정도니 말이야.”


그 말만큼은 용사도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


“날 염탐이라도 한건가?”


“걱정 말게. 시장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니 말이야.”


“시장?”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인 나는 계획을 바꿨네. 우선 돈을 최대한 벌어야 했지. 장소가 장소다보니 돈 벌 수단도 제한되고 물건을 팔러 올라갈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했지만, 그래도 오래간 반복하니 제법 큰 돈이 모이더군.”


마왕은 푸른 산더미에서 푸른 보석 하나를 꺼내 손에 쥐었다.


“그걸로 마력석을 샀네. 손가락만 튕기면 도시 하나 정도는 가라앉힐 폭발을 일으킬 양으로.”


용사는 오른손을 칼에 가져갔다.


“죽기 전 마지막 고백인가?”


“누가 죽는다는 거지? 내가, 아니면 네가? 아무리 내가 약해졌다 해도, 늙은 용사 하나 정도 이길 힘은 남아있네.”


마왕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용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난 자네가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네.”


용사는 코웃음을 쳤다.


“내가 어째서 그래야 하지?”


“옛 시절이 그립지 않나? 


검을 뽑으며 다가가던 용사의 발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수도가 파괴되면 암만 왕국이라도 한참은 소란스러워지겠지. 나는 그때를 틈타 다시 한 번 마물들을 규합할걸세. 그러면 다시 시작하는 거야. 인간들에게 복수하려는 마왕과, 악에 맞서 세상을 모험하는 모험가들의 시대가.”


 모험가들의 시대. 이 얼마나 바라 마지않던 단어인가.


신비와 미지의 세계로 발걸음을 딛고, 예기치 못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항구에서 수많은 배들이 신대륙을 향해 떠나고, 음유시인의 영웅 이야기가 여관을 가득 메우고, 그 노래를 듣는 청년들은 새로운 꿈을 꾸고, 강대한 적과 싸우고…


늙은 용사는 자신이 젊은 용사일 적을 생각했다. 그때 그는 언제나 꿈을 꾸었다. 세 명의 마음 맞는 벗과 함께 온 세상을 누비며 누구보다 많은 것을 보았고, 듣고, 느꼈지만 언제나 그는 새로운 경험에 가슴 뛰는 꿈꾸는 사내였다.


그는 자신과 언제나 함께 했던 검을 바라보았다. 손잡이는 잔뜩 흠집이 나고 가죽끈은 낡아 헤졌지만, 검신만은 언제나처럼 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검은 늙은 용사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늙고 외롭고 우울한 시대의 퇴적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검 속의 그의 눈에는 또 하나의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야망 넘치고 정의감에 불타며  꿈꾸는 한 명의 모험가였다.


용사는 생각했다. 모험가의 시대는 다시 시작할 필요가 없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모험가이고,내가 모험가로 살아있는 한 모험가의 시대는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는 마왕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땐 넷이고, 지금은 하나다. 평생 갈고닦은 검술은 여전하지만 힘도 체력도 줄어들었다. 마왕의 말마따나 나 하나 이기는 것은 어렵지 않을 일이리라.


상관 없었다.


“모험가는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이들이고,”


용사는 검을 두 손으로 쥐고는, 칼끝을 마왕에게로 향했다.


“용사는 부조리한 상황에 대항하는 이들이다.”


마왕은 또다시 빙그레 웃었다.


“그리 말할 줄 알았네.”


도시의 더러운 하수도에서,


그 누구도 모르게,


용사와 마왕은 또다시 왕국을 걸고 싸움을 시작했다.








원래 더 길게 쓰려했는데 글자수 넘치길래 포기함

반응 괜찮으면 마저 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