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유독 흐린 날이었다.


하늘에 뭉게뭉게 떠오른 검은 구름들.


추적추적 내리는 비.


유독 번개가 내리치며 바람이 거센 날이었다.


"사부님...!"


"쿨럭...도망 가거라...!"


내 사부의 뱃속에 들어가 등으로 뚫고 나온 칼에서 흐르는 붉은 핏물이.


아직도 그 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오르게 만든다.


나는, 그 날 사부님을 살해 당했다.




§




"으아아악!"


악몽이 나를 덮쳐왔고 그렇기에 꿈에서 깨어났다.


자는 중에도 식은 땀이 흘러 온몸을 적셨다.


아직도 그 날의 악몽은 잊혀지지 않고 내 머릿속 깊이 박혀있다.



아주 어릴적. 부모에게도 버려진 나를 주워다 길러주신 사부님.


굉장히 풍족하지는 않아도, 내 삶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함께 식사를 하고, 밭을 일구며, 나무를 하고.

무공을 배웠다.


처음에는 무공을 배우는것이 힘들었었기에 하기 싫다고 투정도 부렸으나, 그럴수록 착잡하고 수심이 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사부님의 슬픈 눈동자에 나는 별 말 없이 무공 수련을 하였다.


그렇게 내가 자라고 자라 20살이 되던 그 해.


사부님과 처음 만난 그 날을 기념하여, 나무를 시장에 판 돈으로 술과 고기를 사서 집에 돌아갔던 그 날.


"까드득..."


사부님을 살해한 그 놈의 얼굴을 다시금 되새긴다.


굉장히 특색있지는 않으나, 수려하게 생긴 외모.

검은색 일색의 사람의 6척 길이는 넘어보이던 기다란 장검.


"네 사부의 원수를 갚고 싶거든, 강서성으로 와서 나를 찾아라."

"내 이름은 정진운. 너의 원수의 이름이니 잘 기억해라."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사부님의 시체를 끌어안고 우는 나를 뒤로한채 사라졌다.


그 후, 사부님의 시체를 묻고. 함께 지내온 집을, 함께 일구웠던 밭을. 불태우며 다짐하였다.


내 반드시 사부님의 원수를 갚겠노라.

놈의 배를 사부님과 똑같이 꿰뚫어 복수하리라.


그 후로 오랜 시간을 떠돌았다.

험난한 산이라는 산은 전부 가보았다. 절벽도 기었고 호수의 밑바닥까지 헤엄도 쳤다.


무거운 바위를 들고 몸을 단련했고, 물 속에서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이곳 강서성에 도착하였다.



§



놈의 이름과 내가 기억하는 생김새, 사용하는 무기를 토대로 수소문을 하였다.


그렇게 그가 사는곳을 알아냈다.


강서성의 성도 난창.


그는 그곳에 살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허나, 그 시간이 뭐가 중요하랴? 내 뼛속깊이 사무친 이 원한을 갚을수 있다면.


이 또한 족하리라.


가장 먼저 놈의 집을 알아내기 위해 조사를 해야한다.


난창시에 사는것은 안다지만 난창에 어디 집이 한둘이겠나?


나는 먼저 가장 눈에 띄는 객잔에 들어갔다.


"어서옵셔!"


객잔에 들어서자 기운찬 목소리의 점소이가 나를 반겨준다.


나는 가장 먼저 그에게 흔하디 흔한 초반(볶음밥)과 포자 한그릇을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술은 시키지 않는다.

원수를 갚기 전까지 단 한모금의 술도 입에 대지 않기로 맹세했으니.


내가 술로 목구멍을 적시는 그 날은 원수를 갚고서 사부님의 무덤 앞에 놈의 머리를 가져다 바쳤을때 뿐이리라.


얼마 지나지않아 내가 시킨 음식이 나왔다.


음식을 내려놓고 돌아서는 점소이를 불러 철전 몇개를 던져주며 물었다.


"혹시 자네, 이 난창에서 산지 얼마나 되었나?"


"아, 제가 이 난창에서 평생을 살아왔습죠. 그보다 왜 그러십니까요?"


"내가 사람을 하나 찾고 있네만..."


"아하. 사람이요? 어떤 사람을 찾으십니까요? 저로 말할것 같으면 이 난창에서 발이 가장 넓고..."


말을 하면서도 나에게 슬쩍 눈치를 주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드는 점소이.

나는 그에게 철전 몇개를 더 던져주며 말했다.


"정진운이라는 사람을 아는가?"


점소이는 나를 슬쩍 훑어보더니 답했다.



"어떤 정진운을 말하시는 겁니까?"


"남자다운 굵은 턱선에 부리부리한 눈썹을 가지고있고..."


"6척길이의 검을 휘두르는 사람 맞습니까요?"


"...그래, 맞다. 어떻게 알았느냐?"


"하하! 우리 난창에서 그 분을 모르면 오랑캐 아니면 막 난창에 올라온 촌놈입죠. 그래서, 그 분은 왜 물어 보십니까요?"


뭔가 의뭉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점소이에게 나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과거의 연 때문에 말이네. 내 그분에게 갚아야 할 빚이 조금 있거든."


"아하! 그런 문제라면 그 분 께서는 사양하실 겁니다. 그렇게 은혜를 갚겠다며 왔다가 박대를 당하고 돌아간 무인들을 제가 몇 본 적이 있습죠."


"...그래도 찾아뵈야하지 않겠나? 어디에 사시는지 말해주게."


"거, 참. 어차피 찾아가봐야 박대를 당하실건데..."



나는 점소이에게 그가 사는곳의 약도를 받고서 객잔을 나섰다.




§



객잔에서 나오고, 나는 해가 저무는 시간까지 거리를 돌아다니며 기다렸다.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른 하늘.


원래라면 밝을 보름달이 구름에 가려져 빛을 발하지 못하는 밤.


미리 기억해둔 길을 걸어 그의 집 앞에 도착하였다.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은 장원.


분명 말하기를 이 장원도 그에게 은혜가 있는 어느 부자가 어거지로 안겨준거랬던가.


하지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랴?


나는 벽을 타고 뛰어넘어 장원의 안으로 들어갔다.



허리춤에 찬 검집에서 미리 검을 뽑아든다.


자갈이 가득한 마당이지만, 군데군데 잡초가 무성하였기에 그 잡초들을 골라 밟으며 발걸음의 소리를 죽여 걷는다.


밤 늦게까지 불이 켜진 방이 보인다.


불빛에 비춰진 그림자로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높은 확률로 정진운 그자 이리라.



최대한 발걸음을 죽여 놈이 있을 뒤편의 벽으로 다가간다.


"누구더냐..."


"...!"


분명 최대한 발걸음을 죽여 움직였는데...!


"내, 다른 누군가에게 원한을 산 기억이 없거늘 누구이기에 나를 찾아왔느냐?"


"..."


"혹, 자네에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일단 안에 들어오지 않겠나? 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죽고싶지는 않으니 말일세."


"...알겠다."


나는 몸을 돌려 발걸음을 내며 움직여 놈의 방 문 앞에 섰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 문을 열고 들어간다.


하지만, 비겁한 암습 같은것은 없으리라.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안에 들어가자 내 기억속에 있는 모습 그대로의 그가, 의자에 앉아 나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였나?"


"나를 기억하나?"


"기억 할 수 밖에... 내가 가진 유일한 원이 자네일테니..."


나는 손에 든 검을 들어 그를 가르킨다.


"그럼, 이 검을 달게 받아라. 이 또한 원일테니."


"미안하네만, 그럴수는 없네.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거든..."


"그럼 그저 그 목을 가져갈수 밖에."



나는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공기를 찢으며 날아가는 검.


챙-!


하지만 정진운은 언제 꺼냈는지 기다란 검을 들어 내 검을 막아냈다.


"...정말로 꼭 이래야만 하는가?"


"당연한 말을."


부딪힌 검을 돌려 역수로 잡아 위로 올려 벤다.


정진운은 고개를 뒤로 꺾어 내 검을 피한 후 몸을 돌려 단숨에 창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거기 서라...!"


나는 창문을 넘어 정진운을 쫒았 나갔다.


땅에 발을 딛기 무섭게 그의 장검이 내 팔을 노리고 날아온다.


채앵-!


나는 검을 들어 올려 놈의 검을 막아냈다.


"...제법이구려..."


"너를 죽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날부터 내 삶을 갈아 넣어 갈고 닦은 검이니까...!"


놈의 검을 튕겨내고 검을 위로 들어 올린다.


정진운은 놀라며 검을 들어올려 내 검을 막으려 한다.


하지만 상관없다. 물 속에서 단련한 내 비장의 검술.


'단철검(斷鐵劍)'


쐐애애액-!


내 검의 날이 그의 검을 내려 찍는다.


챙그랑-!


내 검날과 부딪친 검이 반으로 쪼개진다.


촤아악-!


그의 쇄골부터 가슴팍을 따라 허리까지 사선으로 베어내며 피가 흩날린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정진운의 몸뚱이.


"...크어억...!"


"..."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나는 검을 역수로 잡고서 정진운의 배를 조준하고 내려찍었다.


푸욱-!


"커억...!"


"...원수는 갚았다."


"이, 이걸로 만족... 하나?"


"...만족 하냐고?"


모르겠다. 다만 이제 후련한 기분이 든다.


바스락.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뒤를 돌아보자 어린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칼을 들고 서있다.


"...너는 누구냐."


"이..이익..! 아버지의 원수...!"


"...아버지라..."


정진운의 아들인가?


그 아이를 바라보다 뒤편에 위치한 정진운의 배에 박혀있는 내 검에 눈길을 준다.


그런 내 눈길을 눈치 챘는지 정진운이 피를 토하며 입을 열었다.


"...부, 부탁이네."


"..."


"내, 자네를... 살려두지 않았었나...? 그러니, 내 아들도... 부디..."


"...그러지."


"고, 맙..네..."


그 말을 끝으로 정진운은 눈을 감았다.


나는, 그 아이. 두 눈에 독기가 가득찬 정진운의 아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훗날, 네 아비의 원수를 갚고 싶거든, 섬서의 화산으로 나를 찾아와라."

"나는, 검귀 독고무. 네 아비를 죽인 원수의 이름이니, 잘 기억해라."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몸을 돌렸다.


나는 오늘 사부의 원수를 갚았고 하나의 원을 만들었다.




§




검귀 독고무. 그가 강서성의 난창에서 떠난 그 다음 날.


난창에서는 군자검 정진운의 장례가 치뤄졌다.


그 장례식은 정진운의 유일한 혈육인 아들 정태천의 손으로 치뤄졌으며, 그 장례가 끝나고 3년 후.


정태천은 모습을 감추었다.


그렇게 사라진 정태천이 발견된것은 약 10여년의 세월이 지난 후.

섬서에 위치한 화산의 아래에 있는 마을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