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데. 저 애로 하지."
"예, 나으리."

그게 첫 만남이었습니다.

"말은 할 줄 모르는 건가?"
"통 말을 하질 않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얘, 너 말할 줄 모르냐?"
"알... 아요..."
"오, 아는데 그래."
"주인님이 말거니까 바로 하네요!"

혀를 움직이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노예 교육 받을 때 혀에 철심이 박혔거든요. 때로 몇몇 노예들은 용도에 따라서 박기도 한다더군요.

나중에 보였을 때의 당신의 표정은 아주 볼만했더라죠.


그럼에도 힘들게 혀를 움직였던 이유는 그저 당신에게 맞을 거 같아서였습니다.

노예 생활 때의 두려움을 잊지 못하고 그때처럼 채찍질 당할까 두려워 억지로 입을 연 것이었습니다.

"이름은... 몰?루로 하지."
"... 예?"
"몰?루로 하자고."
"나으리 아무리 그래도 그건..."
"그래? 그럼 알프레드가 한번 지어봐."

궤멸적인 네이밍 센스도 기억에 남습니다.

집사님도 질색을 하셨죠.

... 안할 래야 안할 수가 없었습니다만.

"얘, 얘야! 정신차려라. 정신줄을 놓으면 안된다. 날 보고 있어! 알프레드! 알프레드!"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빨리 의원을 불러라, 빨리!"

무슨 병이었던가 독하게 앓았었던 적이 있었죠.

노예 생활할 적에 이런 병은 보통 전염병이라 살처분 했었죠.

밝히는 것이 무서웠던 저는 병을 키웠고, 끝내는 중병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는 나아졌지만.

"잘 들어라... 알프레드가 마차를 대기시켜 두었다... 후문으로 나가서는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로... 말을... 달..."

제가 기억하던 당신의 마지막은 그랬습니다.

유언 하나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저택에서 죽어가던 당신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신에게는 죄송하게도, 유언은 지킬 수 없었습니다.

저도 피가 뛰는 인간이었나 봅니다.

불타던 저택은 제 눈시울마저 붉게 물들였습니다.

"마음에 드는데. 저 애로 하지."

그리고 지금, 익숙한 풍경에 익숙한 말이 오가고 있습니다.

다른 점은 제가 철장 밖에 서는 입장이고, 당신이... 아니, 당신을 닮은 아이가 철장 안에 있는 입장이란 것입니다.

"저기... 혹시 저 아세요?"

"?"

"그 많은 애들 중에... 절 콕 집어 고르셔서..."

저는 이 아이를 압니다.

모를 수가 없는 아이입니다.

애도 안 낳은 당신이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아이인데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
"진짜요? 저는 그럼..."
"너는... 아니 당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