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아십니까, 아가씨?"

 

 정갈한 집사복을 차려입은 젊은 청년이 차분히 미소를 지었다. 곱슬기 짙은 금발의 머리카락, 깊은 바다를 품은 영롱한 눈동자, 갸름한 턱과 산뜻한 인상이 매력적인 짓궂은 미남자였다. 


 낡은 흔들의자 위에 앉아 가만히 반동을 음미하며, 반쯤 꿈을 꾸듯 몽롱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람은 살면서 반드시 목숨보다 더 애정하는 대상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신만이 아시죠. 때로는 손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을 애정하지만, 때로는 주제에 맞지 않는 것을 탐하게 됩니다. 그걸 두고 운명의 장난이라 부르죠."

 

 후우, 한숨을 쉬며 청년이 자신의 흰 장갑을 주욱 잡아당겼다. 


 이윽고 드러난 그의 손은 척 보기에도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흉했다. 


 화상과 자상, 심지어 염산에 녹은 흉터까지 있는 안쓰러운 손이다. 다행히 약과 치료를 통해 형태는 회복했지만, 누덕누덕한 흔적은 여태까지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제 손이 왜 이 모양이 되었는지 아십니까, 아가씨?"

 

 청년, 발루안트 가문의 집사인 앙투안이 잠시 고개를 뒤로 젖혔다. 무언가를 회상하던 그가 다시 말했다.

 

 "아가씨는 어릴 적부터 몸이 굉장히 허약하셨죠. 저는 그걸 볼 때마다 마음이 몹시 아팠습니다. 이 모양 이 꼬라지가 되도록 학대한 손보다, 아가씨의 병세를 보며 느끼는 고통이 더 컸단 말입니다."

 

 발루안트 공작의 막내딸, 샤를로트 발루안트. 


 치렁치렁한 은발의 머리와 도톰한 입술, 창백한 살결과 가녀린 체구, 오똑한 코와 영롱한 눈동자가 도드라진 청초한 여인. 그녀는 마치 전설에 나오는 뱀파이어 같은 외모의 소유자였다. 


 살면서 햇빛 한 번을 보기 힘들었으니 어느 정도는 당연한 귀결이지만. 

 

 태생적으로 허약하게 태어난 샤를로트는 침상을 떠나는 일이 많지 않았다. 늘 하녀들이 동행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좌했고, 그녀가 먹는 음식과 가는 장소, 심지어 입을 옷마저도 꼼꼼한 검수를 거쳤다. 


 자연히 인간 관계도 협소했고, 언제나 외로움에 시달리던 불쌍한 아가씨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곁을, 앙투안만이 언제나 충실하게 지켰다.

 

 "기억하시죠? 저와 아가씨가 소꿉친구로 함께 자랐던 것을. 제게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가씨와 처음 만난 그 날, 제 인생 최초로 천사의 빛을 본 그 날이. 이런 걸 두고 그렇게 표현하죠. 첫눈에 반했다, 혹은 운명의 사랑이었다."

 

 잘생긴 외모와 젠틀한 성격 덕분에 이성에게 인기가 많은 앙투안이었지만, 그는 그 어떤 여인도 곁에 두지 않았다. 무수히 쌓이는 고백 편지도, 매일 날아오는 영애들의 선물도 무엇 하나 수령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실은 남색가가 아니냐는 괴팍한 풍문마저 떠돌 지경이었으니. 


 하지만 앙투안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샤를로트를 모실 수만 있다면, 샤를로트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어떤 꼬리표가 따라붙어도 좋았다. 


 자신에게 지어주는 아가씨의 미소,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행복했다.

 

 "흐음, 그러고 보니 화제가 잠시 곁가지로 샜군요. 제 손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아가씨는 제 손의 상태를 아셨습니까? 아마 모르셨겠지요. 매일 이런 얇은 장갑을 끼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정말 장갑 탓일까요?"

 

 그렇게 말하며 앙투안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냥 관심이 없으셨던 거죠. 제게는 아가씨가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근데 아가씨에게 전 무엇이었나요? 편안한 소꿉친구? 친근한 오빠? 편리한 집사? 단 한 번이라도 장갑을 벗어보라는 말을 하신 적이 있나요?"

 

 아가씨가 고통받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앙투안이었다. 밤마다 오르는 고열, 매해 악화되는 의사의 진단, 죽음을 예감한 소녀의 눈물을 외면할 수 없었던 그였다. 


 그래서 그는 약제를 독학하고 연금술에 손을 댔다. 


 그녀의 신체를 고칠 수 있는 영약을 제조하기 위해, 그녀의 수명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어쩌면 영원한 젊음과 생명마저도 주기 위해. 

 

 "이거 아십니까, 아가씨? 실험이라는 거, 생각보다 힘든 과정입니다. 돈도 많이 들고, 매번 실패와 좌절이 반복되고, 결정적으로 매우 위험하죠. 자칫하면 사고로 죽을 수도 있는 겁니다. 전 그 과정을 몇 년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되는 화학 실험. 그 과정에서 앙투안의 손은 앙상할 정도로 망가졌다. 


 데이고, 동상을 입고, 녹아내리고, 찢어졌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의 손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샤를로트를 구할 수만 있다면 손이야 값싼 대가였으니. 


 그렇게 몇 년을 연금술에 매진했고 밤마다 연구실을 전전했으며, 어둠의 루트를 통해 뛰어난 연금술사들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집사의 봉급으로 충당하기 어려운 액수를 요구했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돈을 모아 배움을 이어갔다. 

 

 모든 것은 오직 한 사람, 샤를로트 아가씨만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고작 며칠 전, 영약의 개발에 성공했다. 아가씨의 병을 치유하는 것을 넘어, 그녀에게 건강과 영생을 선사할 수 있는 희대의 발명품이었다. 


 이를 공표한다면 그는 순식간에 유명인사가 될 터이지만, 앙투안은 그러지 않았다. 


 이 약은 오로지 샤를로트만을 위한 것. 그녀 말고는 이 약을 먹을 자격을 지닌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 분명히 그랬는데......

 

 "한데 그 결실을 맺으려던 날, 저는 정원에서 아가씨를 보았습니다. 포보이 공작가의 후안 공자와 함께 웃는 그 모습을."

 

 포보이 공작가. 발루안트 공작가와 맞먹을 수 있는 제국의 명가 중 하나. 


 후안 포보이는 그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였다. 수려하고 총명하고 유능한 유망주이자 기린아. 그것이 그를 칭송하는 자들이 붙이는 수식어.

 

 그런 자의 손을 잡고, 샤를로트는 웃고 있었다. 


 수줍게 뺨을 붉힌 채, 자신의 앞에서는 단 한차례도 보여준 적이 없는 사랑이 담긴 미소를. 


 친구 대 친구로서 짓는 미소가 아닌, 사내를 연모하는 여인이 짓는 미소를 말이다.

 

 "저는 여지껏 제 마음이 순수하다고 자부했습니다. 저는 그저 아가씨의 행복을 원하는 것뿐이라고. 아가씨가 밝게 웃기만 한다면, 더 이상 고통받지만 않는다면 아무래도 좋다고. 그게 저, 앙투안의 본심이라고 말입니다."

 

 후우, 한숨을 쉬며 앙투안이 가만히 제 이마를 짚었다.

 

 "그런데 그 날 저는 제 밑바닥을 보았고, 거기에는 참으로 참담한 진실이 숨어있었지요. 제가 원하던 것은 아가씨의 행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만을 바라기에는 너무 탐욕스러웠던 겁니다. 제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은 단 하나."

 

 앙투안이 부드럽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바로 아가씨 그 자체였지요."

 

 "우읍, 으읍! 흐으읍!"

 

 그의 앞에는 밧줄로 결박 당한 샤를로트 아가씨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하얀 천으로 재갈을 물린 채, 양 손과 발이 묶여 도망칠 수도 없는 딱하고 가련한 샤를로트가. 


 잠을 자다가 납치 당한 그녀는 아직도 레이스와 프릴이 잔뜩 달린 앙증맞은 잠옷을 입고 있었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고, 어깨는 작은 생쥐처럼 부들부들 떠는 중이었다. 

 

 공포로 질린 그녀의 얼굴을 보며 앙투안이 말했다.

 

 "압니다. 아가씨도 절 많이 생각하셨겠지요. 늘 제게 친절하고 상냥하셨으니까요."

 

 샤를로트는 천사처럼 곱고 착한 영애였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고용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조곤조곤하고도 부드러운 말투로 사람들을 대했다. 

 

 그러나 매일 그녀를 모시는 앙투안에게는 조금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앞에서는 솔직하게 웃고 호불호를 표현했으며, 남들에게 말하지 않는 비밀도 앙투안과는 공유했다. 앙투안의 말이라면 아무리 허무맹랑해도 전적으로 신뢰했다. 

 

 그래서 어쩌면, 어쩌면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 걸지도 모른다고 앙투안은 믿었다.

 

 "하지만 아가씨에게 저는 그저 소꿉친구일뿐이었죠. 매일 진심을 전달하려고 부던히도 용을 썼는데, 둔감한 아가씨께는 전해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뭐, 아가씨는 원래 눈치가 부족하셨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만족할 생각도 없고요. "

 

 그렇게 말하며 앙투안이 슬며시 흔들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아가씨에게 다가가 그녀의 재갈을 내렸다. 


 겨우 입이 자유로워지자 샤를로트가 두려운 표정으로 빌었다. 

 

 "아, 앙투안, 제발......제발 이제 그만해......"

 

 아아, 어찌 목소리마저 이리도 아름답다는 말인가? 봄날의 꾀꼬리요, 다듬어지지 않은 성악가요, 천상의 멜로디였다.

 

 그래서 더욱 분하고 오기가 치솟았다.

 

 이런 귀중한 보물이 내 것이 아니라니.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앙투안의 손이 샤를로트의 턱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도톰한 앵둣빛 입술을 엄지로 쓰다듬으며 앙투안이 속삭였다.

 

 "그러니까 이건 전부 아가씨가 나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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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흑! 하윽! 하흐흣!"

 

 다리를 벌리고 누운 샤를로트가 연신 신음성을 내뱉었다. 잠옷 치마를 걷은 앙투안이 그녀의 보지를 열렬히 핥고 있었다. 


 영롱한 눈물을 글썽이며 발버둥을 쳤지만, 앙투안의 애무는 멈추지 않았다.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허벅지를 간지럽혔다.

 

 "그만해! 아흐흑, 그만해! 히익!"

 

 그의 머리를 붙잡고 저항을 했지만, 앙투안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그럴 수록 보지를 괴롭히는 혀의 움직임이 더욱 교묘해졌다. 주먹으로 퍽퍽 때려보기도 했지만, 앙투안에게 아가씨의 조막만한 주먹은 단지 귀여울뿐이었다. 


 핑크빛 보짓살을 헤집던 혀의 끄트머리가 회음부를 넘어 항문으로 내려가자 아가씨는 허으윽, 숨 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거, 거긴 안 돼! 아으극! 아악, 앙투안!"

 

 다음 순간 샤를로트의 아랫도리에서 다량의 조수가 왈칵 쏟아졌다. 난생 처음 겪는 성적인 감각, 그것을 방증하는 시큼한 홍수였다. 


 반쯤 실신한 아가씨의 보지 구멍을 어루만지며, 앙투안은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혀를 내민 채 움찔거리는 샤를로트의 아름다운 얼굴, 발갛게 달아오른 양 뺨. 

 

 아아, 샤를로트. 나의 사랑스러운 아가씨.

 

 그렇게 중얼거리며 앙투안이 입으로 그녀의 단추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투둑, 작은 단추들이 뜯겨나가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샤를로트가 앙투안을 붙들었다. 그녀가 눈물을 글썽이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앙투안, 그만. 이제 제발 그만해, 응? 내가, 내가 잘못했어."

 

 그러자 앙투안이 고개를 들어 훌쩍거리는 아가씨를 올려다 보았다. 이슬을 머금은 보석처럼 영롱한 샤를로트의 눈동자. 그 위에 비치는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 


 그것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던 앙투안이 조용히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대로 아가씨의 얼굴에 제 얼굴을 갖다대며, 앙투안이 간드러지게 속삭였다.

 

 "역시 아가씨는 울 때가 가장 예쁘세요."

 

 "아, 앙투안......"

 

 반쯤 광기에 가까운 집착과 탐욕, 그리고 정념. 그것이 넘실거리는 집사의 눈동자를 보며 샤를로트는 사색이 되었다. 


 이런 앙투안의 모습은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그녀를 위해 상냥하게 웃어주던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누구보다 믿고 의지하던 든든한 오빠였는데.

 

 투두둑! 쫘악!

 

 그 순간 앙투안의 손이 우악스럽게 샤를로트의 잠옷을 뜯어버렸다. 뒤이어 봉긋하고 귀여운 유방이 드러나자, 샤를로트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가렸다. 


 어깨를 바르르 떨며 그녀가 외쳤다.

 

 "싫어! 보지 마!"

 

 허나 그런 말 정도로 단념할리가 만무했다. 


 곧이어 앙투안의 머리가 그녀의 가슴팍에 내려앉는 순간, 샤를로트는 히익,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며 몸부림을 쳤다. 앙투안이 마치 갓난아기처럼 그녀의 젖을 쪽쪽 빨고 있었다. 


 서둘러 그를 떼어내려 했으나 앙투안이 그녀의 팔을 낚아채는 게 훨씬 빨랐다. 


 그대로 샤를로트의 움직임을 봉쇄한 채, 마치 아이스크림이나 젤리를 녹여 먹듯이 아가씨의 유두를 탐했다. 핑크빛 살덩이를 간지럽히는 혀의 놀림에 샤를로트는 그저 달뜬 신음성만을 토하며 허리를 비비 꼬았다. 

 

 "아으응, 그만! 그만해! 간지러워, 앙투안!"

 

 유륜을 끈적하게 자극하는 사내의 설육이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신선한 감각을 일깨웠다. 갓 성년을 넘긴 샤를로트에게는 지극히 생소한, 그러나 여인으로써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던 본능의 일부였다. 


 허나 창피함과 수치심 탓에 이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었다. 


 생전 처음으로 사내의 앞에서 드러낸 맨살이다. 그런데 그걸 앙투안이 마치 갓난아기처럼 쪽쪽 빨고 있었다. 이마가 후끈거리고 아랫도리가 저려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하으으, 앙투안......"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비로소 그녀의 젖가슴에서 앙투안의 얼굴이 떨어졌다. 겨우 애무에서 해방된 샤를로트는 힘없이 헐떡거리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우읍?!"

 

 그 순간, 앙투안이 냅다 샤를로트와 입을 맞추었다. 거칠게 입 안으로 파고드는 혓바닥이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그가 이끄는 대로 진한 딥키스를 하며 샤를로트가 어깨를 떨었다. 


 첫키스. 일생 최초의 키스인데.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남겨둔 소중한 경험을 앙투안에게......

 

 "우음, 하음, 아응......."

 

 이번에도 앙투안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치 전설 속의 몽마와도 같은 기세로 그녀의 입술을 갈구하며 침과 침을 교환했다. 


 그리고 키스가 거칠어질 수록, 샤를로트가 지닌 이성의 끈도 점점 얇아져만 갔다. 


 몸이 뜨겁고 뱃속이 근질거려 참기가 힘들었다. 덕분에 한꺼풀 한꺼풀 옷이 벗겨지는 동안, 샤를로트는 그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알몸으로 전락한 후였다. 


 하악하악, 고양된 호흡을 내쉬며 샤를로트가 자신의 성기를 가렸다. 희고 가냘픈 팔이 가슴과 음부를 필사적으로 가로막았다. 

 

 "앙투안, 이러지 마. 제발 그만해."

 

 "말씀드렸잖습니까. 전부 아가씨가 나쁜 겁니다. 제게 보인 적 없는 미소를 후안 공자에게 보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자 샤를로트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해야, 앙투안. 나 후안 공자랑 아무 사이도 아니야."

 

 "정말입니까? 제가 오해를 한 겁니까?"

 

 "응, 정말이야. 우리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러니까......"

 

 그 순간 앙투안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이를 납득의 표시로 짐작한 샤를로트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놓았다. 서투른 변명이지만 일단은 통한 것 같았다. 


 뒤이어 앙투안의 얼굴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다시 키스를 할 생각인지, 입술과 입술이 맞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샤를로트의 창백한 뺨을 쓰다듬으며 앙투안이 속삭였다.

 

 "거짓말."


 피가 차갑게 식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샤를로트는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그런 그녀를 향해 앙투안이 다시 말했다.


 "아시죠, 아가씨? 제가 얼마나 거짓말쟁이를 혐오하는지."


 "아, 앙투안......"


 공포로 인해 덜덜 떠는 샤를로트, 그녀의 알몸에 자신의 팔을 감으며 앙투안이 눈빛을 번뜩였다.


 "거짓말쟁이 아가씨는 벌을 받아야죠."


 

 

()()()()()()()()()  

 

 


 "하앙! 아앙! 아흐앙!"


 앙투안의 품에 안긴 샤를로트가 연신 신음성을 내뱉었다. 갓 처녀를 잃은 피투성이 보짓살, 그 속으로 앙투안의 자지가 거칠게 들락거리고 있었다. 


 자신의 허리를 붙잡고 마구 내려찍는 앙투안의 팔, 그것을 붙들며 샤를로트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아으윽, 앙투안! 그만! 이제 그마안!"

 

 하지만 부질없는 외침이었다. 그녀의 가녀린 팔로 앙투안의 품을 벗어날 길은 없었다. 그저 자신을 유린하는 이 사내의 뜻대로 끌려가야 할뿐. 펑펑 눈물을 흘리며 샤를로트가 말했다.

 

 "아파! 아파, 앙투안!"

 

 "걱정 마십시오. 금방 괜찮아질 겁니다."

 

 "아으흑! 하극! 앙투안!"

 

 말을 마침과 동시에 앙투안이 그녀의 목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열렬한 애무로 인해 붉은 키스 마크가 연달아 흰 피부 위에 남았다. 


 그러자 샤를로트는 얼굴을 붉히며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어떻게든 멈춰보려는 움직임이었지만, 언뜻 볼 때는 그저 애무에 호응하는 자세로만 보였다. 


 그 탓일까, 더욱 자극을 받은 앙투안이 거칠게 샤를로트의 가슴골을 핥았다.

 

 "으흑!"

 

 젖무덤을 넘어 젖꼭지를 깨물자 샤를로트가 작게 비명을 질렀다. 


 그런 그녀의 신체를 앙투안이 점점 더 강렬하게 자극하기 시작했다. 욱씬거리는 보지의 통증을 참으며 샤를로트가 앙투안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의 셔츠 칼라를 깨물고 어렵사리 이 시간을 견뎠다.

 

 자신을 속박한 사내의 팔을 원망하며 샤를로트가 흐느꼈다.

 

 믿었는데. 나, 앙투안을 믿었는데.

 

 내 첫경험을 앙투안이......

 

 "아히잇?!"

 

 들썩, 허리를 꺾으며 샤를로트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앙투안이 샤를로트의 엉덩이를 쥐어짜고 있었다. 아가씨의 통통한 볼기를 어루만지던 손은, 곧 그녀의 후장 쪽으로 이동해 장난스럽게 그 위를 문질렀다. 


 그러더니 푹, 단숨에 자신의 검지를 항문 안으로 찔러넣었다. 


 밑구멍이 강제로 벌어지자 샤를로트가 비명을 질렀다.


 "아으윽! 아파! 빼 줘, 앙투안!"


 그의 손을 떨쳐내려고 했지만 역시나 막무가내였다. 오히려 그 반응이 재미있는지 마치 휘핑크림을 휘젓는 거품기 마냥 그녀의 항문 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아응! 하흐흑! 앙투안! 앙투안!"


 열락의 신음성을 토하며 샤를로트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생소한 쾌감, 그것이 차근차근 샤를로트를 갉아먹고 있었다. 


 보지를 꿰뚫는 자지의 맥동, 후장을 찌르는 검지의 촉감이 그녀를 기이한 황홀경으로 몰고 갔다. 뱃속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자궁이 쿵쿵 울려 미칠 지경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샤를로트는 앙투안의 동작에 맞추어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아가씨, 소질이 탁월하십니다."


 잘근, 그녀의 귓불을 깨물며 앙투안이 지분거렸다.


 "첫경험이신데도 벌써 요분질하는 법을 익히셨군요. 제 자지 맛이 어떠십니까?"


 "아응, 몰라! 그런 거 묻지 마! 아하앙, 앙투안! 나, 나 좀......!"


 애써 부정하며 도리질을 쳤으나, 이미 신체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차츰 끓어오르는 욕정으로 인해 몸을 똑바로 가눌 길이 없었다. 보지에서 애액이 펑펑 쏟아지고, 입은 갈증을 호소하며 앙투안의 혀를 찾았다. 


 어느새 그녀는 와락 앙투안의 목을 끌어안고 열렬히 그와 딥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아움, 후움......"


 샤를로트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와 혀를 섞지 않으면 목구멍이 불타서 죽게 될 것만 같았다. 수컷을 갈망하는 암컷의 본능이 조금씩 깨어나고 있었다.


 "후아......"


 한참을 뒤엉키던 혀가 떨어지는 찰나, 앙투안이 웃으며 속삭였다.

 

 "후우, 아가씨. 이제 그만 싸겠습니다."

 

 화들짝, 그 말을 듣는 순간 샤를로트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서둘러 그를 밀쳐내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역부족이었다. 

 

 "밖에! 밖에 싸, 앙투안! 제발! 제발!"

 

 "늦었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와락, 도망치지 못하도록 앙투안이 강하게 그녀를 휘감았다. 


 뒤이어 왈칵, 뜨거운 남자의 정액이 그녀의 안으로 쏟아졌다. 


 "아하아앙!!"


 샤를로트의 허리가 활대처럼 꺾였다. 도톰한 입술 아래로 미처 삼키지 못한 침줄기가 주르륵 흘렀다. 


 벼락을 맞은 짐승처럼 파르르 전율하던 샤를로트는, 금세 기력을 잃고 앙투안에게 기대며 쓰러졌다. 허벅지 밑으로 주르륵 흐르는 정액, 그것을 느끼며 힘없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기가......


 내 안에 앙투안의 아기가......


 그래도 겨우 끝났다는 생각에 긴장을 풀던 찰나였다.


 "아흐흑?!"


 앙투안의 허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죽지 않은 팔팔한 성기가 샤를로트의 자궁 입구를 쿵쿵 두드렸다. 


 당황한 나머지 그의 목덜미를 할퀴며 샤를로트가 외쳤다.


 "아, 앙투안! 이제 그만......!"


 그러자 앙투안이 대답 대신 그녀의 등허리를 어루만졌다. 


 이윽고 그의 손가락이 한 지점을 푹 누르는 순간, 샤를로트는 히익 소리를 지르며 아랫도리를 오므렸다. 갑자기 짜릿한 충격이 솟구치며 뇌리를 강타한 것이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헉헉대는 샤를로트를 보며 앙투안이 말했다.


 "어떠십니까? 동방 출신의 학자에게 배운 점혈술이라는 기예입니다. 이 부분을 누르면 여인의 음욕이 솟구친다고 하더군요."


 뒤이어 연달아 비슷한 자리를 쿡쿡 자극하기 시작하자 샤를로트는 혀를 쭉 빼문 채 앙앙 색기로 물든 교성을 쏟아냈다. 그가 혈을 찍을 때마다 뱃속이 뜨거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아으응, 이상해! 이상해, 앙투안! 나, 나 좀 어떻게, 하흐학!!"


 "물론입니다. 금방 편하게 해드리죠."


 그렇게 말하며 앙투안이 한층 거세게 자지를 삽입해댔다. 


 샤를로트는 그저 집사에게 매달려 그의 자지를 힘껏 조이기만 했다. 본능적으로 깨우친 요분질을 그녀도 멈출 수가 없었다. 자지와 보지가 하나가 되고, 그녀의 세포 하나하나에 앙투안이 각인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응, 앙투안! 앙투안! 이, 이거 뭐야?! 나 무서워! 나 죽어!"


 "아가씨, 그게 바로 절정의 감각입니다. 제 자지로 가버리시는 겁니다."


 "하으악, 하앙! 가, 가기 싫어! 싫어엇!!" 


 이게 만약 절정이라면, 그건 죽음에 준하는 경험일 터였다. 뇌가 화르륵 타버리고, 예민해진 오감이 온몸을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것만 같았다. 


 어릴 적, 물에 빠져 익사할 뻔했던 날이 불현듯 떠올랐다. 수면 아래애서 허우적대며 폐가 말라비틀어지던 그때의 감각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나, 나 정말 죽어! 앙투안, 그만해앳!!"


 그러나 아가씨의 애원에도 앙투안은 아랑곳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거세게 그녀를 자극하며 간교하게 속삭였다.


 "맞습니다, 아가씨. 아가씨는 지금 죽습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시는 겁니다. 육체의 기쁨을 아는 여인으로, 그리고 저 앙투안의 소유물로 말입니다."


 얼마나 정사가 지속되었을까, 한계에 달한 앙투안의 자지가 울컥, 하얀 씨물을 내뿜었다. 


 한껏 달궈진 자궁, 그 안으로 침범하는 물결을 느끼며 샤를로트는 다시금 환락의 비명성을 토했다.


 "아흐으응!!"


 또......또 안에.....


 하아하아, 숨가쁜 호흡을 반복하며 샤를로트는 갓 실감한 절정의 감각을 되새겼다. 


 너무나도 공포스럽고 과격한 경험이었지만, 동시에 묘하게 흥분되고 짜릿한 체험이었다. 헐떡헐떡, 죽어가는 암캐처럼 침을 흘리며 샤를로트가 양쪽 어깨를 부들거렸다. 


 이게 바로 여인의 기쁨......


 이게 가버리는 감각......


 "아힛?!"


 식겁한 샤를로트가 새된 소리를 냈다. 앙투안의 자지가 또 그녀의 보지를 후벼파고 있었다. 


 겁에 질린 샤를로트가 사력을 다해 애걸했다.


 "하흐흑! 조금만! 조금만 쉬게 해줘! 앙투안, 제발!"


 그러자 앙투안이 빙긋,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샤를로트의 입술을 매만졌다. 


 언제나 그녀를 위해 지어주던 따뜻하고 친절한 미소.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이미 하늘과 땅 차이였다.


 "기대하십시오, 아가씨. 정말 죽을 때까지 가게 해드리죠. 아가씨의 머릿속에 저 밖에 남지 않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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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윽, 하으윽, 아으으......"

 

 반쯤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샤를로트가 이불 위에 침을 질질 흘렸다. 


 이미 초점을 잃은 영애의 눈동자는 안개 낀 저녁의 호수처럼 한없이 공허했다. 침대에 누워 집사의 자지를 받으며 귀족 아가씨는 마치 죽어가는 짐승처럼 몸을 버르적거렸다.

 

 벌써 며칠째 반복된 정사인지 알 수도 없었다. 시간 감각도, 날짜 감각도 흡사 신기루처럼 송두리째 사라지고 말았다. 머릿속의 상념도 모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아으어......그마.......그만 갈래......."


 공허한 음성으로 말했으나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정사를 멈출 생각이 없음은 그녀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차라리 이대로 숨이 끊어지기를 고대했으나, 그조차도 불가능했다. 앙투안이 만든 영생의 약, 그것 때문에 차마 죽을 수도 없었다. 


 "또, 또 가아......간다앗.......아하앙, 가아앗!!"


 다시금 경험한 절정으로 인해 아랫도리에서 조수가 콸콸 쏟아졌다. 


 앙투안의 자지로 가버릴 적마다 머릿속이 흰 백지처럼 물들어가고 있었다. 가족들의 얼굴도, 친구들의 얼굴도, 한때 사랑했던 후안 공자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았다. 


 떠오르는 건 그저 한 가지. 자신의 보지를 꿰뚫는 자지가 전부였다.


 잠시 후, 샤를로트는 개처럼 엎드린 채 앙투안에게 박히고 있었다. 팡팡, 엉덩이와 허벅지가 부닥치는 소음이 온사방에 메아리를 쳤다. 


 "아으으......또오......또 가아......가아, 가아아......."


 어렵사리 자세를 유지하며 샤를로트가 중얼거렸다. 뒤에서 거침없이 박아대는 자지가 완전히 색다른 쾌감을 안겨주었다. 출렁거리는 샤를로트의 젖가슴을 쥐어짜며 앙투안이 그녀의 등에 키스를 했다. 


 오돌토돌한 척추의 돌기를 낼름낼름 핥으며 그가 말했다.


 "기대되지 않으십니까, 아가씨? 제 씨가 아가씨의 모태에 착상했습니다. 아가씨는 절 닮은 예쁜 아기를 낳으실 겁니다."


 "흐아아......아기......아기 낳아......임신해......아으응, 간다앗!!"


 또 다시 절정을 느껴버린 샤를로트가 풀썩, 침대에 쓰러졌다. 그런 그녀의 가녀린 목을 어루만지며 앙투안이 물었다. 


 "아가씨의 이름을 말해보십시오."


 "하앙......몰라......이름 몰라......"


 "그럼 아가씨는 누구의 것입니까?"


 그러자 샤를로트가 헤에, 망가진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앙투안......앙투안 거......나......앙투안 아기 가져......"


 완전히 부서지고 만 아름다운 여신. 오직 자신만의 것으로 전락한 찬란한 여인을 주시하며 앙투안은 씩,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샤를로트는 발루안트 가문의 영애가 아니었다. 그가 모셔야 할 아가씨도, 그가 바라만 봐야 할 보물도 아니었다. 


 그녀는 후안 공자의 것이 아닌 앙투안의 것. 


 오직 자신만이 품을 수 있는, 자신의 아이만을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존재였다. 


 "맞습니다. 아가씨는 제 것입니다."


 쪽,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며 앙투안이 속삭였다.


 "영원토록. 이 세상이 끝나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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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루안트 공작가의 영애가 실종된 사건은 한동안 수도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공작이 가장 사랑하는 고명딸이자 포보이 공작가의 후계자와 약혼을 한 여인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증발하고 만 셈이니. 


 허나 아무도 제대로 된 실마리를 잡지 못했다. 샤를로트 영애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오리무중이었다. 그녀의 집사를 포함한 고용인들을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으나, 마땅한 물증이 없어 대부분 헛수고로 끝났다. 


 결국 샤를로트 발루안트의 실종은 미제로 남았고, 그렇게 천천히 세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뒷세계의 암시장에서는 돌연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어느날 난데없이 나타난 천재 연금술사, 까마귀 왕. 그 누구도 성취하지 못한 성과를 줄줄이 이뤄내는 경이로운 기인이 연금술 세계의 시장을 장악하는 중이었다. 


 연구에 목이 마른 학자들은 앞다투어 그가 개발한 신물질을 사들였고, 부유한 귀족들은 그가 만든 온갖 묘약을 차지하기 위해 경매장에서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자연히 검은 재물의 흐름도 오로지 까마귀 왕을 중심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이미 까마귀 왕은 제국의 황제를 능가하는 부자라는 소문이 사방에 파다했다.


 하지만 아무도 까마귀 왕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최측근을 제외하면 아무도 그를 직접 영접한 일이 없을 뿐더러, 비밀의 보안도 철통같기로 유명했으니 말이다. 


 덕택에 사실은 황실과 연줄이 있다는 둥, 악마와 계약한 이교도라는 둥 온갖 기괴한 풍문이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까마귀 왕 본인은 그런 풍문을 신경쓰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으므로.


 "각하, 초상화 작업이 끝났습니다."


 수하의 보고에 플라스크를 만지고 있던 앙투안이 고개를 돌렸다. 


 "제법 빨리 끝났군."


 "아가씨 덕분입니다. 미동도 않고 얌전히 계시니, 화가도 그리기 편하다고 하더군요."


 "잘 됐군. 생애 마지막으로 그리는 그림이니 수월하기라도 해야지.


 차근차근 연구 현장을 정리하며 앙투안이 대꾸했다. 거금을 들여 고용한 실력 있는 화가였지만, 작업을 마친 이상 살려둘 수는 없었다. 샤를로트의 얼굴을 본 자가 함부로 입을 놀리면 골치가 아플 테니까. 


 그래도 화가에게 사기를 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약속한 금액은 그의 유가족에게 충실히 전달될 터였다.


 "결과물을 확인하시겠습니까?"


 "나중에 보지. 우선 내 방에 걸어두도록. 난 샤를로트를 데리러 갈 테니."


 "알겠습니다."


 꾸벅, 머리를 숙이며 수하가 조용히 물러갔다. 


 그동안 수건으로 두 손을 닦던 앙투안은 대충 옷매무새를 정리한 후, 연구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길게 늘어진 복도를 따라 한참을 걷자 대기실로 향하는 커다란 대문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손수 힘을 주어 밀자, 소파와 난로가 기다리는 넓은 방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중심부에 단정히 차려입은 샤를로트가 가만히 앉아있었다. 


 샤를로트의 모습은 밀랍으로 빚은 사람 모양의 인형을 연상시켰다. 그만큼 정교하고 아름답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이할 정도로 움직임이 없었다. 마치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마냥,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 손가락도 까딱하지 않았다. 


 앙투안이 부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샤를로트."


 앙투안의 목소리에 움찔, 샤를로트가 얼굴을 들었다. 


 그러더니 배시시,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앙투안에게 폭 안겼다. 그녀와 마주 포옹하며 앙투안이 물었다.


 "드디어 초상화가 완성되었군요. 지루하지 않았습니까?"


 "안 지루해. 앙투안이 시키는 거면 다 좋아."


 샤를로트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바라보며 앙투안은 묘한 감정을 곱씹었다. 


 그에게 철저히 조교를 당한 후, 샤를로트는 정말 그만을 위한 작은 인형처럼 변하고 말았다. 


 앙투안을 제외한 사람들에게 그녀는 일절 무반응을 보였다. 앙투안이 없으면 웃지도, 움직이지도, 잠을 자지도 않았다. 언제나 앙투안이 먹여주는 음식만을 먹었고, 앙투안이 씻겨주는 욕조로만 들어갔으며, 앙투안의 품에서만 새근새근 잠들었다. 


 지금의 샤를로트는 앙투안이 없다면 그저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너무나도 기쁘고 만족스러웠다.


 샤를로트, 그대는 오직 나만의 여인. 나만이 향유할 수 있는 고귀한 보석.


 내 손길에만 반응하는 나만의 작은 천사.


 "착하군요, 샤를로트. 상을 드리죠. 오늘도 많이 가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샤를로트가 양 뺨을 붉히며 입술을 흠칫 떨었다. 그러더니 가만히 자신의 탐스러운 혀를 내밀며 말했다.


 "상 지금 줘, 앙투안. 혀 빨아 줘. 얼른 앙투안 거 줘."


 "물론입니다."


 샤를로트와 진하게 입을 맞추며 앙투안은 조금씩 불러오기 시작하는 샤를로트의 배를 쓰다듬었다. 그가 뿌린 씨앗이 천천히 그녀의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자신과 샤를로트를 닮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일 것이다. 


 "하아, 샤를로트."


 열렬하던 키스를 멈추며 앙투안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의 것입니까?"


 그러자 샤를로트가 색기 어린 낯으로 대답했다.


 "앙투안 거. 나 앙투안 거야. 사랑해, 앙투안."


 "잘 대답하셨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앙투안이 그녀의 허리에 손을 감았다. 그러더니 영차, 힘을 주어 그녀를 들어올려 품에 안았다. 공주를 안고 가는 전설 속의 기사처럼 그녀와 함께 침실로 향하며, 앙투안은 가만히 샤를로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이곳은 까마귀 왕을 위한 암흑 세계의 둥지. 


 그리고 둥지의 왕비는 다름아닌 샤를로트였다.


 "저도 사랑합니다, 샤를로트."




- End





크리스마스 시즌이기도 해서 커플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를 써보았다.


감히 커플이 되다니, 용서할 수 없어. 그 흉악한 커플은 NTR로 부숴버렸으니 안심하라고?


그건 그렇고 시험이 끝났더니 갑자기 글 쓸 의욕이 팍 죽어버렸네. 서큐버스 출품은 어림도 없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