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는 말은 대부분 거짓이다. 대부분. 내가 본 신은 결코 예수처럼 수염이 많지도 않고, 시바처럼 손이 많지도 않으며 스파게티 괴물 처럼 이상하게 생기지도 않았다.


보라색 머리에 노란색 눈을 한, 그냥 소녀 한 명이 어느 날 우리집 창문을 타고 넘어오기 시작했다.


" 안녕! 나는 신이라고 해! 너를 죽이기 전에 미리 알려주려고 왔어! "


그 소녀는 창문에 매달려, 그렇게 소리를 쳤다.


이게 무슨 개소리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야기를 듣기로는 신이 '특별한 이유' 때문에 나를  정해진 삶보다 더 일찍 죽이기로 했고 '우선고지' 의무와 '상호동의' 조약때문에 계약서에 싸인을 받으러 왔다고 하는데....


" 그러니까 여기, 계약서에 싸인을 해주면 고맙겠는데? "


창문에 매달린채로, 싱긋 웃으며 재주도 좋게 내민 펜과 하얀 종이. 계약서에는 그저 '갑은 을이 죽일 것에 합의하며 갑은 그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을 것을 서약한다.' 는 한마디 말만 적혀있을 뿐인데.


" ...제가 여기에 꼭 싸인을 해야하는 이유가 있어요?! "


내 나이 18세. 이제 창창한 앞길이 눈에 보이려던 찰나에...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절대로 지금 당장 죽기는 싫은데.


" 아니? 꼭 그런 이유는 없는데, 하지만 신이잖아? 게다가 너를 위해서 친히 이렇게 와주었으면, 그 정성을 봐서라도 싸인을 하는게 예의 아닐까? "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내 코앞에 계약서를 내미는 그런 신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로, 계약서를 잡아서는 꾸깃꾸깃 꾸겨서 날려버렸다.


" 야?! 너 지금, 그, 그걸 날려버렸어?! "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듯 울먹이는 신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밀어내며 나는 소리를 쳤다.


" 아니, 아무리 신이라고 주장을 해봤자 요즘은 아무도 안 믿거든요?! 게다가, 신이라고 쳐도, 그렇게 사람의 목숨을 자기 마음대로 와리가리 쳐버리면 도대체 뭐하려고 태어나게 한거에요?! 최소한, 죽어달라고 부탁을 할 거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거 아니에요?! "


" 대가? 하지만 나는... 신인걸... 게다가 이렇게 이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신인데... 부탁, 들어주지 않을래? "


퍼억.


힘껏, 베개로 신의 얼굴을 때렸다.

신은 잠시 휘청이더니, 두고보자는 듯 나를 한 번 노려보며 천천히 어디론가 사라졌다.


" .... 꿈인가? "


볼을 세게 꼬집은 그 순간, 귀청이 떨어질 듯한 목소리가 우렁차게 내 고막을 때렸다. 


" 두고봐, 꼭 니 입에서 죽고싶다는 말이 나오게 해주겠어!!! "


...내 나이 18세. 신에게 선전포고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