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의 칼날에 마왕은 죽음을 맞이했다.


오랜 승부의 종착점, 그 결투의 시작과 끝이 맞닿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분 여 남짓의 찰나.


길었던 싸움의 종막을 표현하기에 너무나도 짧은 교환이었다.


그러나 결말은 모두가 원했던 그런 이야기가 아녔다.


마왕의 파편을 흡수해 용사는 인간을 초월한 '무언가'로 존재 자체가 승천하였고,


찬란한 빛과 함께 그 자리에 재탄생 된 존재는 더는 인간의 잣대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였다.


또 다른 마왕인가? 그를 향해 신성 모독이란 명분으로 공격을 가한 성녀를 비롯한 교단이 시작의 방아쇠를 당겼다.


용사의 동료들은 꺼림직하게 변한 '용사였던 존재'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처음 대화를 시도했던 현자는 그 자리에서 가루가 되어 소멸했다, '이것'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10위계 마법 [멸하는 불꽃의 노래]


파 천류 오의 [천위멸섬]


12 구속 해방 기적 [신의 심판]


마왕을 토벌하는 데 도움은 주지 못했으나, 그 부하들을 토벌하는데 일조했던 강력한 공격들이 그것을 향해 명중했다.


-쿵! 콰르릉.


하늘과 대지를 진동시키던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흙먼지가 잔뜩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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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웠나?"


뭔가 듣기만 해도 안 좋은 대사를 내뱉는 검신을 끝으로, 모두가 '그것'의 소멸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소망은 이뤄질 수 없었다.


혼자서도 마왕을 박살을 낸 용사가, 이전보다 훨씬 강해져 다른 무언가로 승천하였는데


그 마왕조차 이기지 못했던 날파리들의 공격이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이내 그곳에 고고하게 서 있는 '그것'은 상처 하나 없이 그대로였다.


[다수의 선제공격을 확인, 집행 . . . 사형을 선고]


 손짓 한 번으로, 용사 파티 전원이 소멸했다.


[불순한 사상을 지닌 그대들 또한 포함이다, 이 자리에서 판결을 해 . . . 전원 사형을 선고한다]


성녀를 비로한 교단의 성 기사단이 그것의 선고와 함께 먼지로 돌아갔다.


남은 이들은 더는 저항하는 것을 포기했다.


대륙 최강의 인물들도 순식간의 개만도 못한 죽음을 맞이했다.


저것은, 아니 '저분'은 대체 무엇인가. 용사가 맞는 걸까?



*

시간은 흘러 대륙은 새로운 '질서' 아래 통일되었다.


모든 지성체는 하나의 거대한 의지 아래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인간과 엘프 사이에 더는 주인과 노예 관계는 없었다.


오크와 고블린은 더는 인간을 공격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들도 똑같은 지적 생명체로 대우받았다.


드워프는 더는 전쟁 병기를 생산하는 노예로서 혹사당하지 않게 되었다.


다크 엘프는 엘프와 동일한 존재로서 인정받고 차별받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절대적인 하나의 '질서' 앞에서 동등한 존재가 되었다.


이를 가능케 했던 건 무엇인가?


압도적인 힘.

자신을 새로운 대륙의 질서라고 소개했던 그 존재에 대항했던 자는 꽤 적잖았다.


대륙의 은둔 고수들, 1인 계승 문파의 마지막 계승자들, 이름 모를 용사 후보생들.


그들 모두가 손짓 한 번으로 먼지가 되어 소멸했다.


질서를 흩트리는 그를 향해 드래곤 로드가 싸움을 걸었다.


용언은 통하지 않았고, 기적과 권능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제야 눈앞의 이 괴물이 드래곤 따위로는 대항이 불가능한 존재란걸 깨닫고 굴종의 맹세를 하려 했으나


[선제공격을 확인, 사형을 선고한다]


그 이후로 대륙에서 드래곤이란 존재는 완전히 멸종했다.


드래곤 로드의 독단적인 결정이었으나, 휘하의 드래곤들을 포함해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해츨링들도 소멸당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드래곤 '알'들도 예외는 아녔다, 드래곤이란 종족 자체가 하루아침의 멸족을 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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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된 질서 아래 대륙의 모든 이들은 평등하게 되었다.


그 말은 마족들도 예외는 아녔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그들은 인간들과 똑같은 아카데미의 입학해 평범한 인간처럼 수업을 듣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질서라는 분은 늙지도 병들지도 않는 건가요?"


한 마족의 소녀가 교사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에 대답하긴 어렵구나, 왜냐하면 우리도 모르기 때문이다."


"네? 그게 무슨..."


교수는 조금 부끄럽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 '질서'인 그분에게 감히 다가설 만큼 간이 큰 사람은 많지 않거든, 솔직히 너무 꺼림직하달까..."


"풋... 그게 뭐예요, 정말 존재는 하는 거예요? 그 '질서' 라는 게"


그러자 교수는 표정을 바꾸어 정색했다.


"아니. 분명히 존재한다, 내 말이 거짓처럼 들린다면 한번 '규칙'을 어겨보는 게 어떨까? 릴리스 학생"


"흥! 제가 그런다고 두려워할 거 같아요?! 좋아요."


젊은 혈기 탓일까, 어른들과 달리 신세대의 아이들은 '질서'의 두려움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지 못했기에 나오는 만용이였다.


그녀는 3위계 마법 [암흑 구체]를 옆자리의 학생을 향해 던졌다, 만일 질서가 존재한다면 마법은 소멸하겠지


-휙


거짓말처럼 마법은 대상을 향해 명중하지 못한 채 소멸했다.


[타인을 향한 공격행위를 확인, 판결 . . . 사형]


"에...?"


'이게 설마 질서인... 끝마치기도 전에 소녀의 의식은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확히는, 죽은 것이다.


시체와 의식을 비롯해 영혼, 존재 자체가 소멸했다.


"한심하군, 이러한 죽음은 안타까움을 느낄 수조차 없구나. 부모에게 소식 정돈 전해줘야겠지"


하루아침의 딸을 잃게 된 마족 부부에겐 안타깝지만, 그 이상의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이러한 죽음은 젊은 신세대 중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니까.


많은 죽음을 목격했기에 교수도 감정이 무뎌졌다.


"이어서 수업을 진행하겠다, 모두 자리에 앉도록"


수업은 계속되었다, 누군가 옆에서 죽는다 해도 그건 더 이상 패닉에 빠질 만큼의 일도 아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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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혼합시다, 저는 당신과 약혼할 수 없습니다."


"하아? 지금 제정신인가요 레온 공자, 이유 없는 '파혼 및 이혼'은 규칙을 어기는 일입니다"


뻔뻔하게 규칙을 언급하는 퍼퓨머 영애, 하지만 규칙을 어긴건 과연 누구일까?


"배속의 아이, 그거 진짜로 '우리'의 아이가 맞습니까?"


"당~연하죠, 그날 밤 저희가 함께했을 때 임신한게 맞아요."


아니, 이미 마법으로 다 알아봤다 그건 내 핏줄이 아니라 그녀가 평소 대리고 다니던 기사의 핏줄이다.


"질서님... 이 여성은 제가 아닌 다른 남성과 불륜을 저질렀습니다, 부디 파혼을 허락해주시길..."


"하! 질서..아직도 그런걸 믿.."


[판결 . . . 대상은 남편을 두고 불륜을 저질러 타인의 아이를 잉태, 판결 . . . 사형]


"작별이군요, 사형까진 예상 못했으나 . . . 당신 잘못이니 저는 관계가 없군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영애"


"에..? 정말로 존재했.. 아..아! 나는 죽고 싶지 않...!"


불륜을 저질렀던 소녀와 배속의 아이, 그리고 불륜남 기사 '백태양'도 그 날 소멸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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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질서.




내가 정한 규율 아래 모든 이들은 동등하게, 그리고 타인을 상처입히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지 않는다 해도 '그렇게 돼야만'한다.




규율을 어길 경우 소각한다, 언제쯤 세상은 진정한 평화를 맞이할 수 있을까?




이제 와서 수명의 곤란함은 겪지 않으나, 조금 따분한 건 사실이다.




벌써 1000년이 흘렀다.




다른 종족들은 규율의 순응하는 것을 택하고 완전해졌다.




하지만 '인간'은 아직도 저항하는 걸 포기하지 않는 듯 하다, 어째서인가?


타인의 것을 탐하지 말라.


타인을 상처입히지 말라.


타인을 질투하거나 모욕하지 말라.


타인을 배신하지 말라


그리고 질서를 벗어나지지 말라.



지금도 매 순간마다 나는 강해지고 있다.

힘을 제어하려면 이곳에서 나가선 안된다.

하지만 언젠가 내 힘이 제어가 안될때, 나는 무슨 짓을 저지르게 될까.

알 수 없다, 그것이 유일하게 내가 느끼는 두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