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보다 약한 남자와는 결혼하지 않을거야."


소꿉친구, 케일리가 웃으며 하는 말에 브래드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어느날의 오전. 브래드는 어린시절부터 가까이 지내온 케일리와 함께 나들이를 떠났다. 이렇다 할 오락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시골에서의 유흥거리라고 해봤자 언덕 위에서 풍경을 감상하며 바람을 맞는 것 외에는 그다지 없었으니.


선선한 바람, 따스한 햇살. 그리고 혼기가 차오른 장성한 남녀.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고 여긴 브래드는 은근슬쩍 케일리에게 미래의 일, 그러니까 누구를 배우자를 고를 것인가 물었다. 가능성이 없다고 여기지 않았다. 또래의 남자들 중에서 그녀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것은 자신이었으니까.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란 게 저런 것이라 브래드는 순간 케일리의 정신이 나가버린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들었으나, 그녀의 단호한 눈빛을 보고 그것이 거짓이 아님을 깨달았다. 저건 진실을 말하는 눈이라고, 오랜 소꿉친구의 경험으로 단숨에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랬기에 믿을 수 없었다.


케일리는 브래드가 아는 인간 중에서 최강이었으니까.



이 시골에서 소소하게 운영하는 유술도장의 외동딸이라 하면 그것은 적어도 이 마을에선 케일리를 뜻하는 말이었다.


도장의 딸, 단지 그 정도의 칭호로 그녀가 최강이라고 말하는 것은 뻔뻔했다. 브래드가 기억하기로는 3년 전, 그러니까 그녀가 고작 열다섯이 되었던 해에 저 멀리 대도시에서 열린 무술대회에서 그녀가 우승하고 돌아왔었지. 지방 대회 수준이 아니라 왕국에서 명망높은 커다란 대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대회의 우승상금으로 다 무너져가던 도장을 기둥부터 다시 세웠을 수준이니 어련할까.


그랬던 그녀가 3년이 지나는 동안 스스로를 단련하길 멈추질 않았으니, 이제 이 세상이 그녀보다 강한 사람이 있을까 브래드는 감히 의문을 꺼냈다. 혼기가 끝나기까지 머지 않았으니 적절히 타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하고. 그녀만은 못하지만 나름 실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브래드였기에 일말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도 있었다.


허나 케일리는 단호했다.


"나는 나보다 강한 사람이 좋아."


좋아하는 사람이 진 것이라는 게 이런 것이겠지. 브래드는 그날로 단련하는 양을 평소의 2배 이상으로 늘렸다.






그날 이후 케일리는 저 작지만은 않은 시골마을에 대대적으로 공표했다. 자신보다 강한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때 그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당연하지만 마을은 난리가 났다. 시골마을 특유의 폐쇄적인 성질 때문인가 케일리가 얼마나 강한지 가늠하지 못하는 남자들이 많았고, 또한 그렇지 않더라도 케일리가 여간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안될 것을 알면서도 혹시 몰라 도전하는 사람이 끊이지를 않았다.


소란이 커지자 그녀가 결혼상대를 구한다는 소문으로 와전되어 각지에서 그녀에게 반했던 무투가들이 찾아와 한 번 씩 대련을 청했고,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누구도 그녀에게 단 한 판조차 따내지 못했다.


이제는 단지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는 게 아닌 단지 강한 사람과 겨루고 싶어 도전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고, 상황이 겉잡을 수 없이 불어나 당황했던 케일리 또한 그 상황이 마냥 싫지만은 않아 격전의 나날을 보내가며 고고한 왕좌를 지켜가던 무렵.



"케일리."


수년간의 지옥수련을 마친 브래드가 도장의 문을 열었다.


원래도 나름 단단한 신체였지만, 그 혹독한 수련을 거쳐 마치 강철처럼 단련된 근육. 브래드는 긴장하듯 식은땀을 흘리는 소꿉친구를 맞이하기 위해 도장에 발을 내딛었고.


"비켜 근육돼지."


마치 종잇장처럼 가볍게 저 멀리로 날아갔다.


태산같은 근육의 거구를 가볍게 날려버린 갈색피부의 남자는 자신을 보고 자세를 잡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여기, 지면 결혼하겠다고 자신할 정도로 강한 여자가 있다던데."

"…예, 그게 접니다."

"나는 솔 굴드. 기대해도 되겠지?"

"케일리. 갑니다."


말은 길지 않았고, 결착 또한 순간이었다.


구경꾼이 포착한 것은 두 사람이 가까이 섰던 단 한 순간.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케일리는 쓰러져있었고, 솔은 그녀의 얼굴을 스치게 주먹을 뻗고는 쓰러지던 그녀의 뒷목을 받쳤다.


"아…."

"자, 내 승리야."


태어나서 첫 패배. 멍했던 정신이 부드럽게 바닥에 앉혀주는 편안한 손길에 퍼뜩 깨어난다.


충격적인 패배였지만, 케일리는 마냥 좌절하지 않았다. 아직 무도의 길에 나아갈 길이 잔뜩 남았다는 사실이 그녀를 고조시켰고, 지금까지 공언했던 것이 거짓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케일리의 이상형은 자신보다 강한 남자였고, 솔은 그런 그녀의 이상형을 충족하고도 한참이나 남을 실력을 갖추었다. 거기다 대련 후의 행동을 보아 매너마저 겸비하고 있으니 이상형을 제외하면 나름 평범한 소녀의 감성을 가진 케일리로서는 그에게 반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 그럼 이제 솔님께서 저를 아내로……."

"엉? 싫어."

"……예?"


언젠가 들어봤던 것 같은 단호한 말. 왜인가 싶어 기억을 떠올려봤더니, 지금껏 자신에게 패배했음에도 청혼해왔던 바보들을 거절했던 자신과 같은 태도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잔뜩 당황한 케일리는 말을 떨었다.


"그, 그 어째서…?"

"어째서냐니, 너 허접이잖아."

"허, 허접?"

"난 말이야."


솔이 운을 떼고, 케일리는 그 모습에서 또 익숙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보다 약한 여자와는 결혼하지 않을 거야."


무도가 케일리 20세.


섬광처럼 찾아온 첫사랑은 그렇게 좌절됐다.




***



소재란게 떠올랐을 땐 아 이거 재밌겠다 싶었는데 막상 글로 써보니까 그렇게 재밌지도 않은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