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부 구인”

 

위험한 여정, 무임금, 혹한, 기약 없는 대기, 끊임없는 위험, 무사귀환 불확실, 

성공 시 짜릿함과 학기당 2학점. 


부장 김장붕. 

부장 부재시 부부장 강아지 대기중.


 
유스티티아관 3층 (임시)낚시부실 

상시 방문 환영



아카데미에는 인문 수업을 하는 토트관과 전투 수업을 하는 마르스관의 중간 즈음에 현실의 ‘트래비 분수’처럼 근사하게 조각된 대리석 분수가 있다. 이름은 엄청 길지만 기억이 안 나고 어차피 다들 '분수'라고 부른다. 약속을 ‘분수에서 보자’라고 하면 거기를 말한다. 그리고 분수 옆에는 동아리들이 모집공고를 붙이는 아주 큰 게시판이 있다. 

 

코끼리 등보다 훨씬 넓은 초록 배경의 게시판에는 가지각색의 동아리 부원 모집 공고들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그 한 중간, 엄청나게 눈에 띄는 글씨체와 내용으로 다른 평범한 공고들을 혼자 압도하는 흰색 공고문이 붙어 있었다. 

 

강아지 발바닥 모양 도장은 덤이었다.

 

지옥의 중간고사 기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다들 고개 들 기력이 없어 기숙사까지 달팽이처럼 기어갔고, 진짜 달팽이 수인들은 아메바처럼 무너져서 물처럼 흘러갔다. 멀리서 보면 가방이 자기 혼자 스멀스멀 움직이는 꼴이니 심장 약한 사람들은 으악 하면서 비명 지르고는 했다. 그 체력 좋은 코뿔소 수인 에릭조차 다크서클이 보일락 말락 했다. 그런데 그 공고문은 노예처럼 바닥만 보고 사는 사람들의 고개를 강제로 끌어 올리고 있었다.

 

달리 말하면 자기 혼자 어그로를 오지게 끌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떴지만 저 공고문은 고고하게 거기 붙어있었다. 얼마나 존재감이 넘치는지 주변 10cm에 아무것도 붙어있지 않았다.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하얀 니트 밑에서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 갈색 꼬리가 보였다. 후배인 강아지였다. 강아지라는 이름대로 개 수인이다. 모자 사이로 뾱 튀어나온 귀도 귀엽고, 반짝이는 눈에 올망졸망한 얼굴도 귀엽고 도담한 어깨선 때문에 니트 원피스를 입은 모습이 야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그냥 개가 더 나아 보인다. 이름도 강아지니 좋네.

 

“아지야.”

 

“엄청 잘 썼죠?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대죠? 피가 끓어올라서 막 들어오고 싶을 거 같죠? 그쵸? 그쵸?”

 

“응. 보기만 해도 부정맥 올 거 같아.”

 

“부정맥이 뭐예요? 좋은 거예요?”

 

“있어 그런 거.”

 

원숭이한테 컴퓨터를 주면 셰익스피어를 쓸 수 있다고 했나? 

강아지 수인한테 낚시부 구인 공고를 맡기면 용사 모집 공고가 된다. 어디서 분명 본 문장 같은데, 개발바닥으로 기똥차게 잘도 썼다. 참 자알 했다.

 

쓸 데 없이 현실적인 캠퍼스에 쓸 데 없이 자세한 수업들 때문에 여기가 아카데미 소설 세계라는 걸 잊고 있었다. 현실이라면 저런 종이 쓰레기에 학생부 도장 따위 찍어주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는 유니버시아 아카데미다. 학생부가 아니라 학원장 도장이 찍혀 있다. 다양성을 아주 존중하는 소설 속 쓰레기 학원. 말 그대로 개나 소나 다 다니는 학원. 온갖 다양한 수인들이 다니는 학원을 고려하지 않은 내가 멍청이다. 

 

중간고사고 나발이고 내가 썼어야 했는데, 전생해도 넘쳐나는 과제에 지쳐 이 강아지 같은 후배를 믿고 말았다. 

 

좆됐다.

 

달력을 봤다. 오늘은 5월 4일 목요일. 마감은 다음 주 월요일인 8일인데, 동아리 개설을 위해서는 얘를 제외하고 3명을 더 모아야 했다. 뇌라는 게 있다면 시험이 다 끝나는 내일부터 입부 신청을 할 테니, 사흘동안 3명을 모아야 했다.

 

“동아리 만들려면 이번 주말까지 나하고 너 제외하고 3명은 모아야 하는 거 알지?”

 

“…? 네! 그게 이거하고 무슨 상관인데요?”

 

“저게 어딜 봐서 부원 모집공고야? 징집병 공고지. 그리고 우리가 던전공략부야? 위험한 여정? 2학점 말고 맞는 게 하나도 없는데?”

 

“뭐가 틀려요? 낚시하는 곳까지 위험할 수도 있고, 임금 없고, 얼음판 위에서 덜덜 떨어야 할 수도 있고, 잠자고 있던 어룡하고 싸워야 될 수도 있고…”

 

“맞다 치자. 근데, 너라면 동아리 들어올 때 그런 땀냄새에 고난이 가득한 동아리를 기대하고 올까, 아니면 교칙에 안 걸리고 일 주일동안 쉬다 오는데 2학점도 주는 개꿀 동아리를 기대하고 올까? 이렇게 써 놔도 던전공략부 놔두고 여기를 굳이 올까? 지금 3명 모으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렇게 써 놔야 사람이 많이와서좋지않을까요이강아지같은것아?”

 

“말 빨라서 잘 못 알아들었어요! 혹시 3명도 안 모일까 걱정이세요? 괜한 걱정이예요! 아마 한 가득 올 걸요?”

 

하늘이 핑핑 돌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였다.

 

“그래. 미안. 잘 했어.”

 

“괜찮아요! 부장님!”

 

그래. 내 잘못인 걸. 

포기하자. 

낚시 핑계로 어디 아카데미 근처 호숫가에 놀러가서, 일 주일동안 휴가나 즐기려는 내 계획은 강아지 발바닥에 눌려서 방금 사라졌다. 

꽝꽝. 그래, 인생을 날로 먹으려는 걸 저 작가 새끼가 가만히 놔둘 리 없지. 눈물이 나왔다.

 

“장붕 부장님, 제 글에 감동 먹어서 우는 거예요? 고마워요!”

 

강아지 같은 강아지. 

아니, 강아지보다 못한 강아지. 

그런 내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아지가 날 쓰다듬기 시작했다. 강아지 육구가 쓸 데 없이 말랑말랑해서 묘하게 기분 좋았다.



‘불과 물 속성간 변화에서 일어나는 마나의 효율적 분석’을 새벽 3시에 끝내고 나는 침대로 몸을 던졌다. 

 

한글도 없고, 워드도 없고 있는 건 펜과 타자기 둘 중 하나. 손가락 있는 종족이 타자기를 쓰면 감점이라고 교수가 말했지만 상관없었다. 이 세계를 빠져나가려면 졸업만 하면 장땡이었으니, F만 안 맞으면 된다. 도서관에서 속성 변화와 관련된 5권의 책을 빌려 문장들을 몽땅 베꼈다. 그렇게 완성한 레포트를 마지막으로 김장붕의 공식적인 중간시험 일정이 끝났다.

 

김장붕의 다음 일정은 ‘12시간 이상의 양질의 수면’이었다. 

 

부장으로써 부원 모집을 위해 부실에 있어야 했지만, ‘만약에 진짜로 저딴 공고를 보고 가입하겠다는 놈이 있거든 네가 알아서 해라.’ 라는 말을 아지한테 해 두었으니 안심이었다. 어차피 기대해도 저 윗새끼가 운명의 장난을 칠 예정이었다. 

 

5명을 모았는데 마감일이 지나거나, 5명이었는데 갑자기 1명이 물 알레르기가 생겨 4명이 돼 폐부 될 운명이니, 애초에 기대도 안 하는게 낫다. 아무렴, 저딴 글에 혹해서 오는 미친놈이 이 세상에 2명이나 있을까? 

 

1명은 있겠네. 강아지.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커튼을 친 채 나는 침대에 누워 피로의 물결에 살살 떠내려갔다.

 

그리고 그 여행을 방해한 건 157cm짜리 강아지였다. 

 

처음 전화를 봤을 때가 10시 정각이었다. 그대로 통화를 거부하고 다시 자려고 했는데, 거의 30분 내내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끊어도 10초 뒤에 다시 왔다. 

 

결국 태양이 나그네를 이겼다. 원래 북풍을 이겼던가? 어쨌든.

 

“…도대체 왜 그러는데?”

 

“선배님! 선배님! 큰일났어요! 빨리 와야 해요!”

 

“또 부실에서 라면 끓이다가 넘친 거야? 그런 거면 너 영양탕 해 먹을 거야. 그리고 나 잘 거야.”

 

“안 돼요! 영양탕이 뭔 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빨리 오세요! 지금 부실 앞에 사람 엄청 모였어요!”

 

“그래. 그래. 청소부 아주머니 오셨어? 나 끊는…”

 

“어떻게 아셨어요? 청소부 아주머니께 대기표 나눠주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런데 나눠줄 종이도 부족해요!”

 

내가 잘 못 들은 걸까, 대기표라는 말이 거슬렸다.

 

대기표?”

 

“네! 사람들이 줄 섰는데 서로 먼저 왔다고 싸움까지 나서, 그 사람들 진정시키고 대기표 나눠주고 있었어요!”

 

갑자기 귀싸대기를 맞은 것처럼 눈이 떠졌다.

 

“뭐요시벌?”

 

“한 두 명도 아니고, 3층부터 1층까지 줄 섰어요! 그리고 슬쩍 봤는데, 던전공략부에 있던 사람도 있었구요, 저 듣는 전투 수업 1등도 있었구요…”

 

통화는 그대로 둔 채 홈버튼을 눌렀다. 문자 옆 200+라는 숫자가 보였다. 현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선배님, 선배님? 듣고 계시죠? 또, 용인족도 있었구요-와 근데 용인족은 처음 봤어요! 가슴도 딥따 크고, 피부도 태닝했는데 얼마나 멋진 지…”

 

바들대는 손가락으로 문자 앱을 눌렀다. 제발, 제발 하면서 기도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와! 어룡 낚시 아시는 구나! 완전 꿀잼입니다. 그 동안 혼자여서 아쉬웠는데 같이해요 ㅎㅎ 몇 시에 찾아 가면 될까요?’

 

‘혹시 황금 참치를 낚을 일정도 있나? 용인도 참가할 수 있나?’

 

‘그, 저 확실하게 남자 조강인(깃털달린 사람이요)인데요, 저 깃털도 많이 없어요. 그런데 혹시 거기 잘생긴 남자 많나요? 제가 연애하고 싶은 여자라 그러는 게 아니라 궁금해서요.’

 

‘후배님안녕하세요저는13학번복학생복족인민괄태라고하는데낚시부공고보고연락드립니다언제찾아가면될까요’

 

‘이 싸가지없는 새끼가, 던전공략부하고 전쟁 선언하자는 거냐? 니 오늘 내하고 끝장내자.’

 

내려도 내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문자들. 지루한 학원생활에서 낭만을 꿈꾸던 미친 정신병자들의 자기소개들이었다. 눈앞이 아찔해졌다.

 

“선배님, 지금 나오셔야 돼요! 그, 던전공략부 부장님, 진정하시고…”

--그 쒸-발 쉐키 으데있나! 빨리 나오라 안카나!

--야 이 싸가지없는 새꺄, 네가 부장이고 나발이고 줄 서있는 사람 안 보여?

--이 미친년이, 용인이라고 쫄 줄 아나? 내 누군지 아나? 함 떠보까?

--그래 함 뜨자. 씨-빨 새끼가. 곰 새끼, 대가리도 곰이라서 용 무서운 줄 모르네?

“싸우지 마세요!”

 

우장창. 

 

아. 인생.

 

핸드폰을 옆으로 던져두고 천장을 노려봤다. 천장이 아니라, 저 놈을 노려봤다. 저 작가 새끼. 저 좆같은 작가 새끼. 나를 보고 낄낄대고 있을 저 좆같은 작가 새끼를 봤다. 내 꼼수를 막은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판을 벌린 저 놈을 노려봤다. ‘웹소설인데 뭐 이리 설정에 진심이냐?’ 라고 댓글을 남겼을 뿐인 날 이 세계에 강제로 보내버린 저 개새끼를 봤다.

 

내가 꿈꾸던 건 박진감 넘치는 모험이 아니라 나태함이었다. 호수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배에서 아무 생각하지 않고 가끔 물고기나 잡으면서 날려보내는 시간을 원했다. 금 같은 청춘을 왜 이리 허무하게 보내냐고? 강제로 받은 시간이니까.

 

강제로 4년이라는 시간동안 귀양 보내졌다. 소설 속 학원을 졸업하랜다. 고작 학생들이 마왕을 무찌르고 세상을 구하는 아카데미는 아니어도, 마법을 쓰고 날아다니는 게 일상인 이상한 아카데미였다. 주인공은 인간의 몸인데 치트같은 능력으로 학점도 공모전도 뭣도 원하는 건 다 1등을 하는 흔하고 재미없기 짝이 없는 아카데미. 그래서 소설 속 사건의 중심은 개뿔 엑스트라만큼의 관심도 받기 싫어서 도망치려 했다. 1년 동안 도망쳤고 마침내 목적을 달성했다. 아무도 내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내 계획대로 낚시부를 만들려고 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동아리’라고 하기는 그러니 낚시부라고 이름 붙였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낚시부에서 어룡과 사투를 벌이고 듣도 보도 못한 전설의 물고기를 잡으려 한다. 말이 돼? 진짜 그런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고? 기껏 해봐야 현실에서 대학생인 놈들이? 왜?사람이면 인생 좀 편하게 살고 싶은 거 아니야?

 

-아. 여기 사람은 주인공 빼면 나뿐이지.

 

힘이 퍽 하고 빠졌다. 허. 허허 하고 헛웃음이 났다. 

 

그래. 사람이 아니면 낭만 따라 살 수 있지. 그래. 하하. 날로 먹으려다 200명이 넘는 모험단 대장이 되게 생겼네. 주인공이 안 엮일 리 있나. 주인공은 분명 던전공략부였으니, 더 이상하게 엮이겠네. 자살이 낫겠지? 아님 아지한테 부장을 넘기고 차단할까? 그게 낫겠다.

 

“선---배---님!!! 안 오면 저 죽어요!!! 낚시부 살려!!!”

 

아지의 비명소리에, 갑자기 머리가 맑아졌다. 그래. 그걸 왜 생각 못했지? 

 

내가 도망칠 수 없다면 낚시부를 죽이면 된다.

 

유니버시아의 동아리는 구성원이 5명 밑이면 강제 폐부된다. 그 사실을 바탕으로 내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부원 모집이 부장의 역할이니 내가 여기서 버티고 있다가 마감일이 지나는 것이다. 하지만 마감일 전에 내가 아지한테 물어 뜯겨 김/장붕으로 두 동강이 날 테니 그건 불가능하다. 

 

두 번째 방법, 200명 중에 195명 이상을 내보내는 것이다. 어떻게 할 거냐? 의지를 시험하면 된다.

 

문자들을 읽어본다. 꿈과 낭만들이 가득한 이야기들이 써 있다. 

 

위험한 여정과 혹한과 기약 없는 대기와 끊임없는 위험이 가득하다고 난 분명히 말했다. 

무사귀환도 불확실하다고 분명히 말했다. 

 

어룡 낚시? 황금 참치 낚시? 

 

그래. 낚으러 가자. 

 

일 주일마다 한 번씩 가자. 

 

개인 일정 무시, 안 오면 퇴부.

 

현실에서도 등산부 가입했다 일 주일마다 등산 한 번이라는 말에 기겁해서 첫 주에 나가는 사람이 90%다.  

그런데 너희들이 일 주일마다 한 번씩 대모험을 떠나는 걸 버틸 수 있을까? 고작 2학점 때문에?

 

니들이 버티나, 내가 뒤지나, 함 해보자.

 

아주 만족스러웠다. 웃는 목소리로 아지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 뒤 나는 씻으러 욕실로 향했다. 

 

그리고 샤워에 정신이 팔린 난 깨닫지 못했다. 

 

학원장이 ‘계획서대로라면 낚시부원 전체에게 학기마다 2학점을 주겠다’고 했을 때 그 말의 무게를, 

그리고 내가 쓴 계획서가 재미없다고 여긴 아지가 계획서를 다시 썼다는 걸,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학원에서 2학점을 주는 동아리는, 주인공이 들어가 있는 던전공략부 말고 없다는 걸, 

 

나는 깨닫지 못했다.

 


유스티티아관은 현실의 대학교로 비유하자면 법학관과 철학관을 합친 느낌이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처럼 직사각형 토대에 흰 대리석 기둥이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모양의 건물. 정문과 후문이 있는데, 정문에는 유스티티아 여신의 동상이 서 있다. 여신이 올빼미 수인이라는 게 현실과의 차이다. 건물도 넓고 크다. 아마 축구장 하나 정도는 되지 않을까? 정작 내부는 콘크리트 벽과 현대식 시설이라 좀 시시하다. 이 학원은 쓸데 없는 곳에서 현실적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데 중앙 계단에 사람들이 웅성대며 줄을 서있었다. 새 머리 남자와 악어머리 남자가 계단에 서서 서로 떠들고 있었다.

 

“야, 3층에 용인이랑 던전공략부 부장이랑 쌈났다는데?보러 가자.”

 

“어떻게 얻은 번호표인데 임마. 자리 뺏기면 어쩌려고?”

 

“아니지. 줄 서 있을 필요가 뭐가 있어? 번호표가 있는데. 우리 차례 올 때쯤 다시 오면 되잖아?”

 

“아! 너 졸라 똑똑하다!”

 

“멍청한 새 새끼.”

 

“종차별하냐 이 파충류 새끼야?”

 

“조 까.”

 

어디 줄을 서 있는 걸까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띵동. 3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매캐한 냄새가 내 코를 강타했다. 구름같이 모인 사람들 사이로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뿜어져 나왔다. 걱정이 들었다. 정확히는 아지 걱정이 아니라, 아지가 때려눕혔을 다른 사람 걱정.

 

“그러게 싸우지 말라고 했잖아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거 하나 못 기다려요? 부장님 곧 오신다구 했잖아요.”

 

콘크리트 벽이 여기저기 깊게 파여 있었고, 발톱이 긁고 지나간 흉터가 벽에 새겨져 있었다. 폭발과 충격의 흔적에서 검은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중간에서 교사가 학생을 훈계하듯 츄리닝을 입은 개 수인이 바닥에 누운 두 명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개 수인은 당연히 아지였다. 츄리닝은 먼지만 조금 묻어 있었다.

 

한 명은 키도 덩치도 내 2배는 될 거 같은 올블랙의 곰 수인이었다. 옷은 거의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드러난 몸에는 얇은 부분이 없었다. 근육질에 턱도 얼굴도 두껍고 얼굴에는 양 광대뼈를 잇는 흉터가 있었다. 거대한 몸에 비해 빼꼼 튀어나온 한 쌍의 작은 귀가 귀여웠다.

 

한 명은 뿔과 날개, 꼬리가 달린 용 수인이었다. 붉은 머리에 고양이처럼 희한한 동공의 노란 눈의 여자는 검은 탱크톱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건강하고 육감적인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보여 야했다. 싸우느라 머리가 찢어진 건지, 얇은 핏줄기가 얼굴선을 따라 오른쪽 턱으로 흐르고 있었다.

 

귀가 쫑긋하더니 아지가 뒤돌아본다.

 

“아, 오셨어요? 어우, 죄송해요. 두 분이 갑자기 싸워서, 진정시키느라…”

 

그 말에 거기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드러누운 두 명의 눈길이 내게 닿았다. 

 

“응, 괜찮아. 괜찮아. 고마워.”

 

개판의 한 중간, 갑자기 튀어나온 의문의 사람 하나. 

원래라면 이 관심에 비명을 지르고 도망쳤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오히려 좋다. 

 

숨을 깊게 들이 마신다.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목청 터지게 소리를 질렀다.

 

“낚시부 면접은 선착순이니까 받으신 번호표대로 명단에 이름하고 핸드폰 번호 남기시고, 연락하면 제 시간에 꼭 와 주세요!!”

 

숨을 몇 번 가다듬는다. 아지가 내 모습을 보더니 낭랑한 목소리로 모두에게 소리쳤다.

 

“네~ 1번부터 들어오세요~ 5번까지는 남아서 대기해주시고 나머지 분들은 받으신 번호표대로 여기 이 종이에 이름하고 연락처 남겨주세요~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그 말로 정리되자 사람들이 아지 앞에 줄을 서며 펜을 주섬주섬 꺼냈다. 사람들 한 중간에서 노란색 더듬이 하나가 솟구쳤다. 더듬이는 ‘1’이라고 쓰인 종이를 잡고 있었다. 민달팽이 여자였다. 더듬이가 아니라 손이었구나.

 

“여기 1번이요! 1번 저예요!”

 

아지가 생긋 웃으며 날 이끌었다.

 

“부장님, 들어가세요, 얼른! 사람 못해도 200명은 왔어요! 사흘 안에 다 끝내야 하니까 엄청 바쁠 거예요! 이따 다 정리되면 도와드릴 게요!”

 

그래, 그래 하면서 달팽이 여인과 함께 부실로 향한다. 누워있는 2명의 시선이 따라오는 데 영 당혹스러운 눈치였다. 슬쩍 보니 용 수인은 156번이었고, 곰 수인은 번호표가 없었다.

 

부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여자는 찰박 소리를 내며 의자에 앉았다. 다리도 없는데 의자 말고 다른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려다 관뒀다. 오늘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오늘은 자랑스러운 낚시부의 ‘면접’ 날이다. 그거에 집중하자.

 

나도 의자에 앉아 책상을 사이에 두고 여자를 마주봤다. 장부 비슷한 노트를 피고, 깃펜에 잉크를 적셨다. 눈웃음을 지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동아리인데요, 뭘.”

 

“아하하. 네.”

 

“네, 성함이?”

 

“아, 김석류요. 과일 석류. 네.”

 

“낚시부에 왜 들어오려고 하세요?”

 

“아, 실은 제가, 호수에 누워서 배영하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배영하는 동안에 할 게 마땅치 않더라고요. 그래서 낚시를 해 봤는데, 이게 재밌더라고요…”

 

오, 그러셨구나, 하면서 이야기를 메모했다. 호수에 누워 낚시라. 좋다. 참 좋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하겠지만 상관 없다. 

어디 할 테면 다 해봐라. 너희들이 말하는 모든 걸 다 하는, 민주적이기 짝이 없는 꿈의 동아리에 어서 와라. 

 

너희들이 말하는 모든 걸 일 주일마다 할 테니 기대해라. 이 개같은 낚시꾼들아.


 

 


내 이름은 김장붕. 회빙환이 주인 웹소설에서 유행 지난 '전생'당한 前 대학생.  

 

그리고 여기는 소설 속 학원 '유니버시아 아카데미'. 

 

탈출하는 방법은 졸업 뿐. 졸업까지 3년, 80학점 남았다. 

 

그리고 나는 부원 200명이 넘는 대규모 동아리 ‘낚시부’의 ‘부장’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