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타임네스트라


어릴 적에는 그저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 친아들까지 죽이려 한 비정한 악녀 정도로만 인식하지만


개인사를 까보면 참으로 기구하기 짝이 없는 팔자를 지닌 여인이다


신화 전체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이 칼리스토라면, 가장 씁쓸한 여인은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아닐까 싶다



일단 만화책에서는 미케네의 왕비로 첫 등장을 하지만,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처음부터 아가멤논의 아내였던 것은 아니었다


본래는 탄탈로스라는 남자의 아내로 아들을 하나 두고 있었으나, 탄탈로스의 사촌이던 아가멤논이 탄탈로스 일가를 몰살하고 클리타임네스트라와 혼인한다


그리스에서는 굉장히 전형적인 납치혼이지만, 그 과정에서 남편과 아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에 그녀로서도 꽤나 비통했을 것이다


특히 전승에 따라서는 가족의 시신 앞에서 그녀를 범했다고 하기도 하니 더더욱


허나 아가멤논과의 사이에서 두 딸과 아들을 둔 것을 보면, 생각 외로 부부 관계는 원만했을 수도 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 걸지도 모른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터지는데


트로이 원정 당시,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에게 바쳐진 숫사슴을 모르고 쏴 죽여서 그리스군 전체가 저주를 받는다


이에 그리스군의 예언자였던 칼카스가 아가멤논의 첫째 딸, 이피게네이아를 산제물로 바쳐야 재앙이 가신다고 선언하고


아가멤논은 어쩔 수 없이 미케네 측에 연통을 보내 딸을 데려오라고 명령을 하는데 


이때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오기를 거부할까 봐 "딸과 아킬레우스를 혼인시키기로 했다"는 거짓 소식을 전한다



그 말만 믿고 딸과 함께 남편을 찾아온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남편에게 매달려 제발 딸을 희생시키지 말라고 애걸복걸하나 소용이 없었고


결국 산제물로 바쳐지는 딸을 보며 피눈물을 흘리면서 "오늘의 일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아가멤논을 저주한다


이후 칼카스의 예언대로 저주가 걷히고, 그리스군이 무사히 출항하면서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쓸쓸히 미케네로 귀환해야 했다


올 때는 딸과 함께였으나, 갈 때는 아무도 없이 혼자서 말이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기를 10년


남편이 트로이에서 싸우는 동안,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이기스토스라는 남자와 정분이 나게 된다


만화책만 본 사람들이라면 이 아이기스토스도 그저 왕비를 꼬드겨 옥좌를 차지하려 한 악당 1 정도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속사정을 까보면 이 남자도 아가멤논을 증오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


그냥 왕비랑 붙어먹으며 권력을 탐한 놈팡이가 아니라는 뜻



이를 상세히 알려면 아가멤논 가문에 얽힌 비극을 전부 알아야 하지만


그럼 이야기가 너무 복잡하므로 간단하게 요약하겠다


아가멤논의 아버지인 아트레우스는 아이기스토스의 아버지인 티에스테스의 형이었는데


티에스테스가 형수와 간통해 왕위를 넘보자 분노한 나머지 조카들을 죽여 동생이 직접 먹도록 만들었고


이에 티에스테스가 복수를 맹세하며 낳은 아들이 바로 아이기스토스


그는 아버지의 숙원대로 아트레우스 밑에서 암약하다가 그를 암살, 티에스테스가 왕위에 오르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막상 얼마 못 가 아트레우스의 장남인 아가멤논이 돌아와 티에스테스를 죽이고 왕위를 되찾았다.


이후 아이기스토스는 아가멤논에 의해 추방되어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그가 트로이 원정을 나간 사이 돌아와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간통을 하고 있었던 것


쉽게 말해 아가멤논과 아이기스토스는 가까운 사촌지간이면서 동시에 로가 서로의 아버지를 죽인 불구대천의 원수라는 뜻이다


요약을 했는데도 참 길지 않는가? 제대로 알면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다......



어쨌거나,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이기스토스와 간통하며 아가멤논을 향한 증오심을 키워갔고


특히 아가멤논에게 아들을 잃었던 나우플리토스 형제라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왕비를 부추키면서 결국 암살 작전을 짜게 된다


구체적인 암살 방법은 전승에 따라 다른데


소매와 옷깃을 꿰멘 옷을 아가멤논에게 준 뒤, 그가 옷을 입을 수 없어 버둥거리는 동안 뒤에서 찔렀다는 말도 있고


그가 욕탕에서 목욕을 하던 도중 도끼로 내리찍어서 죽였다는 말도 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것과 같다


아가멤논을 죽인 후, 거기서 끝나지 않고 친자식인 오레스테스까지 죽이려고 했으나 누나인 엘렉트라에게 이 사실을 들은 오레스테스는 재빨리 친척이 다스리는 국가로 도망쳤고


차후 힘을 길러 사촌인 필라데스와 함께 돌아온 오레스테스의 손에 죽음을 맞는다


허나 그녀의 최후에 대한 기록도 판본에 따라 다른데


우리가 아는 것처럼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다 아들에게 살해 당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녀의 죄를 묻는 오레스테스에게 맞서 "어미로서는 죄가 있으되, 아내로서는 죄가 없다!"며 마지막까지 아가멤논을 향한 증오심을 표출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아가멤논을 향한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악의는 지대했던 것



우리가 아는 클리타임네스트라라는 인물은 단지 남자와 간통해 남편을 죽이고 아들까지 해하려 한 독부에 불과하지만


그녀의 개인사를 뜯어보면 그저 증오하던 남자를 향한 복수극의 일환이었기에 굉장히 씁쓸한 면이 있다


물론 아무 죄도 없는 친아들까지 죽이려 한 시점에 그녀의 행동은 선을 세게 넘었다


그 점을 참작해서 아테나조차 친모를 살해한 오레스테스의 행위를 용서할 정도였으니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읽는 우리의 심정이 착잡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결론은 헬레네 이 시불장 것이 만악의 근원이다


느닷없이 파리스랑 트로이로 도망가서 전쟁 일으킨 주제에 질질 짜다가 남편이랑 같이 스파르타로 돌아와서 혼자 잘 먹고 잘 살았으니


지 때문에 인생 망친 사람이 도대체 몇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