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는 개인 연구실의 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았다.

그의 얼굴은 잔뜩 구겨져 있었고
피부는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라 있었다.


교수의 번들거리는 이마 아래 달린
희번덕거리는 갈색 눈이 연구실 안을 샅샅이 살폈다.

그는 책상 위에 가지런히 쌓인 서류 사이에서 마법봉을 찾아내었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벽을 향해 소환진을 그리며 외쳤다.


 

“나와, 씨발년아.”


 

엉성한 소환진에 추잡한 단어로 마력을 불어넣자
그곳에서 선정적인 여성이 형상을 드러냈다.

 

까마귀의 날개만큼 어둡고 고급 비단만큼 찰랑이는 머리칼.

조각처럼 수려한 이목구비와 대리석처럼 하얀 피부.

잘 익은 과실이 떠오르는 붉은 뺨과 도담한 입술.


신체를 가린다는 본연의 목적을 완전히 상실한,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속옷만을 걸치고
어디에 눈을 두어도 성욕을 돋우는 뇌쇄적인 체형.

 

그러나 그녀를 그저 음란한 여자로 보기에는
확연히 이질적인 부분 또한 존재했다.


그녀의 두개골을 감싸는 멋들어진 산양 뿔.
날갯죽지 부근에 자리한 새카만 박쥐 날개.
엉덩이골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가죽 채찍 같은 기다란 꼬리.

 


그녀는 계약을 통해 소원을 이루어주는 미지의 종족,
악마였다.


 

학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으니
신중히 다뤄야 한다고 당부하는 존재이자
종교계에서는 세상에 타락을 몰고 올 테니
발견 즉시 박멸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녀를 소환한 교수는 그런 사실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성욕 처리에 특화된 음마에 불과했다.

 


“오늘은 좀 거칠 거다.”

 


음마가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교수는 그녀의 뿔을 붙잡아 책상 쪽으로 집어 던졌다.

음마는 풍만한 유방을 출렁이며 책상 위에 엎어졌다.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서류 더미가 무너지며
책상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교수는 바지춤을 내렸다.

 


“엉덩이 치켜 들어.”

 


음마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교수는 음마의 꼬리를 붙잡고 거칠게 위로 잡아당겼다.


음마가 교성을 내지르며 발돋움하자
그녀의 둔부가 교수의 고간을 비볐다.


교수는 한 손으로는 여전히 음마의 꼬리를 꼬나 쥔 채
반대쪽 손으로 음마의 음부를 가리던 속옷을 찢었다.


음마의 국부는 진작에 젖어있었다.


사람에게는 전희니, 분위기니, 필요한 것이 많았지만
그의 눈앞에 있는 음마는 언제나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단단해진 남성기로 음마를 그대로 꿰뚫었다.

 


 

악마적이었다.

성기에서부터 시작한 쾌감이 

머리끝과 발끝까지 퍼져나갔다.

수음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온기와 쾌락이 전신을 감쌌다.


머리를 가득 메우는 황홀경에 모든 사고가 멈췄다.


교수는 삼십 년 평생 쌓아온 모든 지식과 예의와 이성을 버리고
오로지 육욕만을 아는 짐승이 되어 음마의 몸을 탐했다.

 

허리가 거칠게 앞뒤로 튕겼고
그때마다 나무 책상이 시끄럽게 삐걱댔다.


책상에 처박힌 음마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녀의 손가락은 오그라들며 책상을 박박 긁었고
그녀의 날개는 경련하듯 무의미하게 퍼덕였으며
그녀의 고간은 흘러넘치는 애액으로 철벅거렸다.

살과 살이 맞부딪히는 소리로 개인실이 가득했다.


교수는 미간을 좁혔다.

그는 허리를 멈추지조차 않고 

음마의 꼬리를 다시 사납게 잡아당겼다.

 


“또 잊었어? 침묵 안 쓰냐?”

 


음마가 고통에 찬 듯한 비명을 토했다.

책상을 긁던 그녀의 손가락 중 하나가 

파들거리며 허공을 휘적였다.


전력을 다해 움직이고 있던 교수에 의해
그녀의 전신은 이리저리 튕기고 있었으나
얼핏 불규칙해 보이는 휘적임 속에서
완벽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교수와 음마, 둘 주변에서 나던 모든 소리가 단숨에 사라졌다.


이제 누가 교수의 개인실 주변에 다가오더라도
둘의 성행위를 듣지 못할 터였다.

 


그러나 일차적인 바람이 이루어졌음에도
악마의 단순하고도 완벽한 마법을 본 교수의
아랫배 깊은 곳에서 

뜨겁고 불쾌한 무언가가 들끓어 올랐다.

 

그는 마법진 하나 제대로 그리는 데에만 수 년을 바쳤고
똑바로 사용하기까지는 십수 년이 걸렸다.

 

교수는 자못 어려 보이기까지 하는 여체를 향해
자괴감과 질투, 경외와 시기심을 담아 허리를 내질렀다.


그 격렬함에 교수의 손안에서 

버둥거리던 음마의 꼬리가 반응했다.
빳빳이 솟기도 하고 흐물흐물 늘어지기도 했다.


분명 마법 수준으로 따지면 그보다 한참은 우월한 존재가
계약에 묶여 짐승처럼 따먹히는 모습을 내려다보던 교수는
모종의 고양감을 느꼈다.

 

나보다 위대한 존재를 끌어내리는 행위는
어찌 이리도 즐거운지

 

악마의 꼬리가 덩굴 식물처럼 교수의 손목을 감싸왔다.
그대로 그의 팔을 타고 팔꿈치까지 올라오더니
점차 교수의 팔을 조였다.


교수는 어딜 멋대로 기어오르냐고 외쳤지만
당연히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교수는 혀를 차고 허리를 멈췄다.


음마는 이변을 눈치 못 챈 듯
계속해서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의 허리가 튕길 때마다 검은 머리카락이 들썩이며
그를 유혹하듯 새하얀 목덜미가 드러났다 가려지고는 했다.

 


교수는 음마의 등 위에 눕듯이 몸을 숙이고
자유로운 팔을 뻗어 음마의 뿔을 잡았다.

거칠어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은근히 부드럽고 따스한 뿔을 움켜쥔 후
그녀를 강제로 끌어당겼다.


허리가 젖혀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음마를 내려다보는
교수의 눈에는 일말의 동정심도 담겨있지 않았다.

 


교수는 음마의 머리를 책상에 거세게 내리쳤다.



예상치 못했던 충격에 집중이 끊긴 듯 침묵 마법이 깨졌고,
나무 책상이 울리며 쾅 하는 소리가 터짐과 동시에
음마의 에로틱한 목소리가 교수의 개인 연구실을 가득 메웠다.

교수는 음마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나대지 마라.”

 


음마가 고개를 돌려 교수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 어디에도 상처자국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악마는 악마다.


발갛게 상기한 음마의 얼굴 위로
얼어붙은 호수가 쪼개지는 듯한 미소가 번졌다.

음마는 혀풀린 발음으로 답했다.

 


“네헤…♥

 


교수의 팔을 조여오던 꼬리가 조금 느슨해졌다.

교수는 가학적인 만족감을 채우고 그녀의 뿔을 놓아주었다.

허리를 곧추세우기 전
그녀의 목덜미를 깨물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다가
뿔을 놓은 손을 그대로 휘둘러 음마의 볼기짝을 후려갈겼다.


마찰음이 방 안에 울렸다.

 


“침묵 마법은?”


 

음마가 붉게 부어오르는 엉덩이를 실그러트리며
예의 손짓을 반복했다.


다시 소리가 사라졌다.

 



교수는 침묵 속에서 음마의 탄력 있는 엉덩이를 거듭 유린했다.


환기되지 않는 무더운 개인실이 향긋한 살 내음과 땀내로 가득 찼다.


교수는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음욕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탐욕스럽게 본능을 좇던 교수는 이윽고 고요한 절정에 이르렀다.


음마 또한 허리를 굽히며 전신의 근육을 수축시켰다.


음마의 몸 깊숙한 곳에 그의 백탁액이 왈칵 쏟아졌다.


그가 성기를 빼내는 순간까지
악마의 꼬리는 교수 팔에 단단히 얽혀있었다.

 



 +++++


 

 

어느새 창문 밖의 해가 

지평선 너머로 뉘엿거리고 있었다.


거슬리는 옷가지는 전부 벗어 던진 채
의자에 늘어져 있던 교수가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오늘은 왜 그렇게 열을 받았느냐 하면……”

 


교수의 눈은 그의 다리 사이를 향하고 있었다.


살짝 늘어진 남근을 얼음과자처럼 핥던 음마가
그녀의 가로 동공을 활짝 열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관심을 가지고 듣겠다는 의미다.


교수는 묘한 우월감 속에서 그날 오후의 일을 말했다.

 


요약하자면, 마왕군의 도발과는 무관하게
아카데미 수업이 이어질 것이라고 통보하자
학생들이 대대적으로 반발했다는 내용이었다.

 


다시 떠올려보니 재차 화가 나는지 

교수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특히 그년이 문제였어.

그 빨간 머리 년.

또 그년이 주동자였지.


하여튼 과대 아니랄까 봐
다른 애새끼들 구슬리는 것 하나만큼은 탁월한 년이야.”

 


악마가 혀를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

 


“기억한다.

예전부터도 강의에서, 날름, 무슨 말을 할 때마다, 할짝,

꼭 끼어드는, 츄릅, 재수 없는 여자가, 쮸읍, 있다고 했었지?”

 

“그래, 그년이야.
마음 같아서는 걔 입 좀
꿰매달라는 계약이라도 맺고 싶어.”

 


음마가 교수의 성기에서 입을 떼고 웃었다.

 


“가능만 하다면 그런 계약이라도 맺어주고 싶군.”

 


음마는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다시 교수의 성기를 핥기 시작했다.

교수는 피식 웃었다.

 


“말만이라도 고맙구먼.”

 

 


그런 계약이 가능할리가 없다.

 

물론 악마에게 그럴 능력이 없다는 건 아니다.


소문에 따르면 그들은 부서지지 않는 육체와
무한한 지식을 품고 있으며
인간은 존재조차 모르는 마법을 부려
계약자의 모든 소원을 들어줄 능력을 타고난다 했다.

 

때문에 그런 전설적인 존재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소원을 이뤄주는 대가로 계약을 맺을 지식인을 찾는다며
아카데미의 문을 두들겼을 때,
이는 ‘인간을 사려고 하다니, 인간을 모욕할 셈인가’
라고 꾸짖고 넘어갈 수조차 없는
너무나도 달콤한 과실이었다.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인간이 악마와 맺는 계약의 위험성을
아카데미가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긴 논의 끝에, 그녀와의 계약은 법학과 악마학 교수들 사이에서
토론을 거쳐 철저히 검토된 후 맺기로 결론이 났다.


악마와의 안전한 계약에 관한 연구는 

따로 이뤄진 적이 없었으나
이미 쓰이고 있는 골렘 3원칙을 기반으로
악마와 맺는 모든 계약서에 

무조건 포함해야 하는 다섯 원칙이 세워졌다.

 


첫째. 악마는 인류에게 해를 끼쳐서도 안 되고,
인류가 해를 입는 것을 방관해서도 안 된다.


둘째. 첫째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한,
악마는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도 안 되고
사람이 해를 입는 것을 방관해서도 안 된다.


셋째. 첫째와 둘째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한,
악마는 사람에게 종합적으로 이득이 되도록 행동해야 한다.


넷째. 악마는 개인의 동의 없이는 계약 내용을 포함한
개인 정보를 다른 이에게 발설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계약 내용에 관하여
악마와 계약자 사이에 해석 차이가 발생할 시,

위 원칙들을 위배하지 않는 한
이는 인간 계약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위 다섯 원칙이 위배될 경우,
악마는 자동으로 계약을 해지당할 뿐만 아니라
영구적인 사망이나 영구적인 계약금지 등의 

불이익을 받아야만 했다.

 


갓 교수가 된 그의 입장에선 전혀 관심이 없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계약서 작성에 법학자들을 동원했던 만큼 온갖 세부 조항이 가득했다.


섣부른 계약으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는 성실하게 통보해야한다거나,
사람에게 장기적이고 영구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것에 중점을 둬야한다거나,
심신미약 상태인 개인과는 계약을 맺을 수 없다거나 등등
조항이라는 이름의 각종 안전장치들이 악마를 옥죄고 있었다.

 

어쨌든 사망 앞에 ‘영구적인’ 같은 단어를 붙여야 할 정도로
수수께끼인 존재와 계약을 맺는 것이니까.

 

 

중요한 것은 교수가 이런 식으로 누구를 험담하더라도
악마가 그의 말을 왜곡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걱정은 할 필요 없다는 점이다.


 

교수가 그런 생각이나 하던 사이 악마의 혀가
그의 자지에 붙어있던 정액과 애액을 전부 핥아내 삼켰다.

 


“잘했어.”

 


칭찬하고 음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교수는 그녀의 붉은 얼굴이 해 질 녘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인간처럼 쑥스러워하기라도 하는 건지 의아스러웠다.

 


“뭐야, 부끄럽냐?”

 


음마가 눈을 피하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그대와 맺은 계약 내에
이 세상 모든 진리를 전부 알려줘야 한다는 조항은 없었으니
답은 못 해주겠군.”

 

 


주어진 명령을 무조건 수행하는 골렘과는 달리
악마에게는 이 정도 농담 따먹기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지능과 융통성이 있었다.

 

그것이 위험했다.

 

악마와 계약을 맺는 행위를 금기시하는 우화는
오래 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영혼을 빼앗긴다느니, 파멸을 부른다느니 하는
허황한 내용이 대부분이기는 했어도
우화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악마는 반드시 계약을 지키지만,
계약에는 반드시 허점이 있고,
계약자의 최후는 반드시 불행하다.



이를 아는 아카데미는 위험을 최소화하려 노력함과 동시에
훗날을 대비해 악마가 다섯 원칙의 허점을 발견하고
악용하는 모습 또한 기록하길 바랐다.


물론 계약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조건 없이 들어주는 계약이라거나
악마에 대한 모든 것을 알기 위한 계약 등을 맺는 것이 최선이었겠으나

스스로 아카데미에 접근한 악마가
다섯 원칙을 지키면서 동시에 

악마로서의 이점까지 모조리 잃는 계약을
맺으려 들 정도의 바보일 리가 없었다.


그 결과 설령 역효과가 생기더라도 

그 여파가 미미할 정도로 소소하고 잡다한 계약만 맺은 후 

악마를 관찰해보자는 결론이 났고,
평생 소소하고 잡다한 일만 해오던 교수는
운 좋게 계약자가 될 기회를 잡았다.

 


교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향후 1년 동안 내 개인 연구실 내에서 잡다한 소일거리들을 도와달라’는
계약조건을 걸었다.


쌍방의 합의가 있다면 

기간을 갱신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소일거리’로 정의되는 일과의 구성 요소로는
개인 연구실 내의 정리 정돈과 

청결 유지만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교수는 막판에 충동적으로 

유희 제공을 끼워 넣었다.

 

교수의 공식적인 입장은 

악마의 오락에 관해 흥미가 돋았다는 것이었지만
계약을 면밀히 검토한 아카데미가  
그의 속내를 눈치 못 챘을 리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교수의 조건을 확인한 아카데미 측에선
이를 언급하는 수정요청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대신 하나의 조항을 추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악마는 계약기간 동안 교수의 개인 연구실에 귀속되어
외부로의 출입을 금하며, 개인 연구실 외부에 피해를 끼치는
어떠한 능력도 사용할 수 있지 아니한다.”


다섯 원칙으로도 모자라
처절하리만치 자기 보존에 철저한 아카데미에 반해
악마 측은 아무런 수정요청도 없을 뿐만 아니라
‘계약자와 그 주변의 관찰’이라는 대가 아닌 대가만을 요구했다.


그 결과 

계약은 일사천리로 맺어졌다.

 


계약을 체결하던 순간의 교수의 솔직한 심정은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었다.

 


땡잡았다.

 

 

구전설화와는 반대로 악마와 보내는 일상은
행복한 나날 그 자체였으며,
그의 성욕, 식욕, 수면욕이 전에 없이 충족되었다.


성욕은 말할 것조차 없고,


끼니를 대충 때우거나 아예 굶었던 기존에 비해
쉴 새 없이 정욕에 몸을 맡긴 전신 운동을 하다 보니
식욕이 왕성해져 식사 시간을 놓치는 일이 없었다.


또한 매일 혼자서 침대 위를 몇 시간씩 뒹굴다
눈 밑이 그늘진 채 아침을 맞이했던 과거와는 달리
매일 밤 언제 곯아떨어졌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잠든 후
기나긴 밤 동안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숙면을 즐기다 일어났다.


1초라도 개인 연구실에 오래 머물고 싶어
아예 식기와 침대까지 개인실로 옮기고 생활했음에도
절로 몸이 건강해지기까지 하는 것 같았다.

 

비록 밤놀이 중으로 치우치기는 했으나
악마와 인간다운 대화가 가능해진 이래
정신적으로도 여유로워진 것 같았다.

 



그래서 교수는 붉은 얼굴의 악마를 향해 

마음 놓고 이죽댈 수 있었다.


 

“정말로 수치심이라도 느끼는 거야?
왜 갑자기 말하기 싫어해?”

 


음마가 뾰로통한 얼굴로 교수를 마주 보더니 눈알을 굴렸다.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교수 위에 걸터앉으며
능글맞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런 것보다도 더 알고 싶은 것이 있다.”

 


음마가 톡 하고 교수의 코에 손가락을 튕겼다.


교수가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놀라 

고개를 젖히며 눈을 질끈 감았다 뜨자
음마의 모습이 바뀌어 있었다.


교수가 조금 전까지 흉보고 있던
빨간 머리 학과 대표가 그의 위에 앉아 있었다.

 


노을빛을 받아 불타오르는 것처럼 일렁이는 붉은 머리칼.

불그스름한 뺨 위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주근깨.

건강미를 내뿜는 구릿빛 피부.

군살이 하나도 없는 것만 같은 탄탄한 몸매와
근육이 도드라지는 길쭉한 팔다리.


그녀 또래 중에서는 상당히 예쁜 축에 속하면서도
또래에 걸맞게 적당히 수수하게 꾸미고 다니는 그녀가
언제나의 아카데미 교복을 입고 교수에게 기댄 채
나지막이 물었다.

 


“네 기억 속의 빨간 머리는 이렇게 생겼군?”

 


여학생의 목소리였다.

교수의 머리가 팽팽 돌았다.

 


어떻게?

그 잠깐 사이에 내 기억을 읽었어?

변신 마법은 또 어느새?

 


음마가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당장 음마가 소환될 때 입고 있던 야시시한 복장이
그의 부탁에 맞춰 마법으로 변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교수의 눈앞에서 이렇게나
대대적인 변신이 이뤄진 것은 처음이었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교수에게
여학생 음마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염려할 것 없다.

사생활 기밀 유지를 요구하는 넷째 원칙에 의거해
네 기억이나 이 모습을 남에게 발설할 일도, 

그럴 이유도 없으니까.”

 


혼란의 빠진 교수의 귀에 그녀의 말은 

거의 들리지도 않았다.


그의 머리는 오히려 다른 요소에 집중했다.

 


체취조차 바뀌었다.


빨간 머리 여학생이 코앞까지 들이닥쳐 항의할 때마다 풍겼던,
기억 속의 그 아이와 똑같은 새콤달콤한 향기였다.


성인은 되었으나 여전히 앳된 티가 나는,
그녀의 강렬한 열의와 기세가 그대로 느껴지는 듯한 향.


교수는 시선을 떨구며 떠듬떠듬 말했다.

 


“어, 어찌 되었건 앞으로는 함부로 행동하기 전에
상황 설명부터 하고, 내 의사를 물어본 다음
행동으로 옮겨 주면 좋겠는데.”

 


여학생이 노래하듯 답했다.

 


“이해했다.

고려하도록 하지.


하지만 말이야.”

 


음마가 교복 상의의 단추를 풀었다.

가슴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추가 하나 더 풀렸다.

교수의 시선이 조심스레 그리로 향했다.


단추가 하나 더 풀렸다.

교수의 시선이 교복 뒤에 숨어있던 속살에 고정되었다.


그 시선을 본 음마가 나머지 단추를 

단숨에 쥐어뜯고 속삭였다.

 


“인간은 깜짝 선물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만.”

 


완전히 뜯긴 상의 아래에 압박 붕대가 감겨있었다.


터질듯한 가슴을 두르고 둘러 

가까스로 동여맨 얇은 천에서
전혀 눈을 떼지 못하는 교수가 

꿀꺽 침을 삼켰다.

 


“진짜냐?”

 


수많은 의문을 한데 뭉친 세 글자였다.


계약자가 가장 알고 싶지만 

가장 알지 못할 정보에 대해
음마가 답했다.

 


“넷째 원칙은 계약자 외의 개인 정보 또한 발설을 금지한다.”

 


그리고 허공에서 난데없이 작은 과도를 꺼내
교수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다만, 너는 활동적인 여성이 이런 복장을 하는 걸
좋아할 것 같더군.”

 


교수가 과도를 낚아채 가며 답했다.

 


“뭘 좀 아네.”

 


교수가 압박 붕대를 움켜쥐고 조심스럽게 과도를 가져다 댔다.

국보를 담은 보물상자를 열더라도 지금처럼 떨리진 않으리라.

이리저리 후들거리는 손으로도 

케이크 자르듯 쉽게 붕대를 끊을 수 있었다.


여학생의 체형에 어울리지 않는 

우윳빛 거유가 터지듯 흘러나왔다.

 

조금 전까지도 늘어져 있던 교수의 성기가 움찔거렸다.


교수는 덜덜 떨리는 양손을 억지로 끌어 

여학생의 가슴에 가져다 댔다.


단단히 쥐고 있던 과도가 언제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보드라운 가슴과 이에 대비되는 

육중한 무게가 한껏 느껴졌다.

 

만지고 또 만져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들었다 내렸다 하며 꾸준히 가슴을 문지르자
그의 손바닥을 스치던 꼭지가 

점차 단단해지고 부풀어올랐다.


여학생이 뱉는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교수의 고간으로 피가 쏠렸다.


여학생의 교복 치마 밑에서부터 

퍼져나오는 열기와 습기가 

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일러주었다.



붉은 머리 과대가 잔뜩 상기한 얼굴로,
기대로 가득 찬 눈으로,
촉촉이 젖은 입술을 벌려 말했다.

 


“그래도 명색이 교수이신 분께서
자기 학생을 범하진 않으시겠죠?”

 


그년이 할 법한 앙칼진 어투였다.

 

아카데미의 입장을 알 것 같았다.


이렇게나 이질적이고 야릇한 존재를 품고 싶다는 변태가
교수 단 한 명뿐일 리 없다.


그의 뻔뻔한 요구사항을 알고도 묵인한 것은
그를 실험체 삼아 

훗날 악마를 노리개 삼을 때의 부작용을 연구하고
미리 대비하기 위함이리라.


다섯 원칙으로도 모자라 

무수한 조항까지 붙였으면서도
악마가 두려워 차마 먼저 시도는 못 하는 졸보 새끼들이었다.



'그 겁쟁이들 덕분에 

누구보다도 앞서 이 과실을 즐길 수 있는 거지만.'

 

 

교수는 여학생의 두툼한 골반을 붙잡았다.


음마가 기껏 구석구석 핥아 깔끔히 청소했던 곳이
치마의 장막 너머에서 더럽혀지고 있었다.


여학생의 녹녹한 성기가 교수의 것에
쉴 새 없이 비비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범하진 않으실 거냐고?

 


더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교수는 허리를 치켜올렸다.


그는 여학생 안에 삽입했다.


기쁨에 찬 교성이 울렸다.

 

 


겉모습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애액 덕분에 저항이 없는 것은 

음마와 마찬가지였으나
조여오는 압박감이 이전과 전혀 달랐다.


음마의 것은 지난 몇 주 사이 

매일 그의 물건을 받아들이며 익숙해져
느긋하고 나긋하게 그를 감싸 안았으나


여학생의 것은 마치 처음 맛본 군것질거리를 탐하는
아이처럼 게걸스럽게 달라붙어왔다.

 


이 차이의 원인이 짐작 간 교수는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겉만 보면 꽤 놀아봤을 법도 한데,
처녀 같은 반응이군.”



게슴츠레 뜨여진 채 

천장을 향했던 학생의 눈이
교수를 내려다보았다.


교수의 어깨를 붙잡은 손과 

치마 아래 맞닿아 있는 피부를 통해
한껏 달아오른 체온이 느껴졌다.


여학생이 부끄러움을 참기 위해 

짐짓 화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처녀인게 뭐 어때서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학생이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거친 어조와는 상반되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숫처녀와도 같은 어색한 움직임이었다.


심지어 한 번은 둘의 교합이 어긋날 뻔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교수는 그 풋풋한 모습이 되레 만족스러웠다.

 


평소 드세고 고압적이던 여학생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서투르게 엉덩이를 움직이는 광경은
엔간한 기술보다도 더욱더 자극적이었다.

 


조금씩 이것저것 시도해보던 여학생이
흐뭇해하는 교수의 얼굴을 보고
심통이 난 것처럼 뺨을 부풀렸다.


그녀는 심호흡하고선 마침내
큰 결심이라도 내린 것처럼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의자의 등받이에 기댄 교수에게 몸무게를 싣더니
자기 몸 제일 깊숙한 곳까지 교수의 물건을 받아들였다.

 


마치 두 번째 삽입과도 같은 쾌감과
그의 몸을 누르는 폭유의 무게를 교수는 말없이 만끽했다.


여학생이 호흡을 고르더니 

그녀의 튼실한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위아래, 앞뒤 할 것 없이 

거칠게 엉덩이를 흔들었다.


길들지 않은 야생마 위에 올라탄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황홀스러운 순간 속에서

시간이 녹아내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학생의 다리 근육은 뚜렷해졌으나

긴장한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있던 그녀의 얼굴은
시나브로 풀려 천박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전신에서 흘러내리는 땀이 교복을 적셔갔다.

원래부터 높았던 그녀의 체온이 한 층 더 뜨거워졌다.


그녀의 선정적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성을 붙잡기 힘들던 교수로서는
자극적인 움직임과 매혹적인 향까지 더해지자
절정을 참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때 그녀의 입이 벌어지며
헐떡임과 함께 짧은 단어들이
속내처럼 흘러나왔다.

 


“하앗… 깊어… 좋아…”

 


그 탕녀 같은 교성이 마지막 한 방울이었다.


장대비에 무너지는 제방처럼 

교수는 한계에 도달했다.

여학생의 거유를 쥐어짜며 골반을 최대한 치켜올렸다.


이에 맞춰 여학생도 

팔다리를 교수에 감싸며 매달렸다.


교수는 정소에 쌓여있던 모든 정자를
그녀 안에 내보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자지를 최대한 깊숙히 쑤셔 넣었다.


여학생은 몸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정액을
단 한 방울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지를 단단히 조여왔다.


둘의 거친 신음이 

작은 개인실 안을 울렸다.

 


수십 년 치 인생의 희열을 농축한 듯한 수 초가 흘렀다.

 


머릿속에서 폭죽처럼 터져나간 짜릿함이 가시지 않았다.


박명의 빛이 

개인실 창문으로 새어들어
교수에게 단단히 매달려 있는 여학생을 비췄다.

 

초점이 풀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입가가 

살짝 벌어져 있었다.

 

 

 

교수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입술에 그의 입을 가져다 댔다.


처음은 아랫입술을 가볍게 깨무는 것에서 시작했다.

여학생은 마치 밀어내려는 것처럼 

혀끝으로 그의 입술을 쓸어내렸다.


반면 그녀의 손은 교수의 목덜미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고
교수의 양손 또한 이에 맞춰 

그녀의 허리춤과 어깨를 둘렀다.

 

교수의 혀가 여학생의 아랫입술을 쓰다듬었다.

여학생의 혀가 조심조심 교수의 윗입술을 어루만졌다.


틈을 놓치지 않고 교수의 혀가 튀어나와 

그녀의 것과 엉켰다.

그리고 그녀의 입안으로 침범했다.


과대는 처음에는 잠시 입을 닫아 

저항하려던 것 같았으나
머잖아 그녀의 턱에 힘이 풀리며 

그의 혀를 받아들였다.

 

둘의 혀가 얽히고 섥히며 

농밀한 입맞춤이 이어졌다.

 


기나긴 혀놀림 중 숨이 차면 

잠시 입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 길게 늘어진 침이 끊겨
바닥에 미처 떨어지기도 전에
다시 입술이 포개졌다.

 


하루 온종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고
무아지경에 빠져 시간의 흐름을 놓쳤다.




어느 순간 여학생이 소리를 내며
교수의 뒷머리를 잡아 뜯듯 움켜쥐었다.


교수가 고통에 제정신이 돌아와 

입술을 떼고 숨을 몰아쉬자
여학생이 혀를 입 안으로 집어넣지도 못한 채
완전히 풀린 눈을 하고 

조금씩 몸을 떨고 있었다.

 

 

당장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억세게 항의하던 여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랬던 그녀의 얼굴이 암컷의 표정을 하고

절정에 빠져있는 꼴을 보자니

교수의 아랫도리가 다시금 반응했다.



교수는 여학생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갓 태어난 사슴처럼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서 있는 그녀를
서류로 엉망이 된 책상 위로 밀어 쓰러뜨렸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듯 축 늘어진 채 

다리 사이의 균열에서 걸쭉한 흰색 액체를 흘리는 여학생의 모습이
교수의 흥분을 돋구는 조미료가 되었다.

 


교수는 다시 그녀 체내로 파고 들어갔다.


절굿공이가 곡식을 빻는 것과 같은 움직임을 

끝없이 반복했다.



그와 그녀의 입에서 쾌감 섞인 헐떡임이 배어 나왔다.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운 개인실에서
말없이 들썩이며 

그의 성욕을 받아내고 있는 여성의 윤곽을 내려다보자니
문득 처음으로 악마에게 성교를 요구했을 때가 떠올랐다.

 

 

 

계약이 체결되고,
악마를 처음으로 개인실에 소환한 교수는
환영 인사를 채 마치기도 전에
계약에 유희 제공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과
다섯째 원칙의 중요성을 떠듬거리면서도 거듭해 강조했다.


그의 장황하고 어색한 요구를 

잠자코 들어주던 악마는

교수가 마침내 본론을 말하자
말 한마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그는 그녀와의 성교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렇게 고대했던 첫날밤의 그녀는,

톡 까놓고 말해

목석이나 다름없었다.

 

 

표정도, 목소리도, 시선도 

바뀌는 것이 없었다.


언제나처럼 냉철히, 

그녀가 계약에서 요구했던 그대로
교수를 관찰할 뿐이었다.

 


물론 첫날은 그저 그녀의 이상적인 육체를
탐미하는 것으로도 충분했고


첫 한 주는 무표정한 악마를
마음껏 범하는 것 자체로도 흡족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악마와의 성교가 야기했던
불안과 동요는 야금야금 무뎌져 갔고,
예쁜 조형물과의 관계가 질린 교수는
이 주 전 큰마음을 먹고 악마에게 부탁했다.

 


“그, 섹스 중에요,
조금 더 제대로 된 반응을 보여주실 수는 없나요?”


 

쓸데없는 부탁은 받지 않겠다며 바로 내치거나
계약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요구사항은 이행할 이유가 없다며
묵살하는 것까지 예상 범위에 두고 한 부탁이었다.

그러나 악마의 대답은 그의 예상범위를 벗어났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표현이군.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예?”


 

악마는 무기물 같은 얼굴로 

교수를 바라보고 답했다.


 

“그대의 희망 사항을 재해석해 정리해 보겠다.

그대는 성교 과정 중  
본인이 그대의 성적 취향에 맞춘 인간과
유사한 언행을 보일 것을 희망하는가?”

 

“뭐, 그렇죠, 크게 힘드신 게 아니라면…….”

 


혹시 화라도 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에
급격히 저자세를 잡은 교수를 향해

악마가 즉답했다.



“이해했다.

시행착오는 있겠으나
조금씩 그대의 취향에 맞춰나가도록 하지.”


 

그리고 악마는 손가락을 흔들어 옷을 없앴다.


 

“지금부터 시도해보겠나?”

 


그 순간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방탕한 행동과 끈적한 반응.

난잡한 언어와 추잡한 표현

 

분명히 신체에는 변화가 없었음에도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늘어난 사정량에
교수 자신도 경악스러웠다.


그 순간부터 교수의 눈에 

악마 대신 음마만이 보였고,
고삐가 풀렸다.

 


그녀의 강인한 신체는 

교수의 어떤 행동에도 끄떡하지 않는 장난감이 되었다.

그녀의 위대한 마법은 

성교의 편이성이나 스릴을 위한 도구로 쓰였다.

 


그녀와 최초로 몸을 섞은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오늘에 이르러선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기면
개인실에서 음마로 해소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국제정세가 불안해?

음마의 가슴이 걱정을 쥐어짜 냈다.


학생들이 말을 안 들어?

음마의 입이 울분을 대신 삼켜주었다.


아카데미 교수진들이 불쾌한 시선을 보내?

음마의 보지가 쾌락 외의 모든 감정을 전부 빨아들였다.

 

 


교수는 자기 아래에서 다리를 활짝 벌리고
처녀처럼 울어대는 여성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움직임에 맞춰 출렁이는 비현실적인 가슴.

달빛이 닿을 때마다 언뜻언뜻 비치는 적발.

땀에 푹 젖어 반짝이는 피부와 그 위에 달라붙은 교복.



이 모든 것이 생소했으나
그 모든 것이 그가 원하던 그대로였다.

 


악마와의 첫날밤과 비교해보면
여학생 흉내를 내는 음마가 아니라
여학생 본인과 마주하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마저 자연스레 들 정도였다.

 


언제나 시끄럽게 닥달하는 그년이
자기 분수를 깨달으면 이렇게 되는 걸까?


 

단순히 여학생과의 성교가 아니라
무력해진 그녀를 마음대로 다루고 있다는 자각이 들자
남근이 전에 없이 단단해졌다.


뻐근했던 전신의 고통이 사그라들고
잃었던 청춘이 되돌아오는 듯 했다.


교수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할딱이면서도
강박적으로 허리를 움직였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어리고 자신만만한 여학생의 몸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세찬 움직임이 엇갈릴 때마다
여학생과 교수가 번갈아 소리를 질렀다.

여학생이 다리로 그의 골반을 휘감아 끌어당겼다.

교수는 저릿저릿 올라오는 사정감에 몸을 맡겼다.


교수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또 한 번 그녀의 질 내에 정액을 쏟아냈다.


그의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 

 

 

교사는 멍하니 서있었다.


그와 그녀의 결합은 아직 이어져 있었으나
그의 물건은 완전히 쪼그라들어 있었다.

 

조금 전의 활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몸에 있는 모든 근육이란 근육은 모조리 아우성쳤다.


금방이라도 포근한 잠에 빠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교수는 이대로 끝나고 싶지 않았다.

 


교수는 기진맥진한 채로 손을 뻗었다.

달빛이 비추는 여학생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달라붙은 머리카락 너머 촉촉한 그녀의 살결이 느껴졌다.

 

손가락을 펼친 채 조금씩 손을 조금 아래로 내렸다.

오뚝한 코와 말랑한 입술의 감촉을 느꼈다.

가쁘게 움직이는 그녀의 숨결이 손에 와 닿았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그의 손에 입을 맞췄다.

 

손을 조금 더 아래로 내렸다.

턱선 아래로 한 손에 들어오는 목이 만져졌다.

괜한 변덕으로 살짝 조여보자 격동하는 동맥이 느껴졌다.

그녀의 높은 체온이 그의 손을 달궜다.

 

손을 살짝 더 아래로 내렸다.

쇄골을 따라 내려가다 가슴 덩이 사이의 계곡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맥동하는 심장을 느끼다 결국 본능을 참지 못하고 

유방에 손을 뻗었다.


쉴 새 없이 붙잡히고 흔들렸으니 아플 법도 하건만
부드러움은 그대로였고 젖꼭지는 여전히 빳빳했으며
여학생의 몸은 움찔대면서도 그의 손길을 반겼다.

 

긴 방황 끝에 마침내 젖의 유혹에서 벗어나
가슴 언덕의 둘레길을 따라 

동그랗게 손을 움직이다보니
어느새 그녀의 겨드랑이까지 손이 올라와 있었다.


흠칫대는 그녀의 반응과 

말랑거리는 감촉을 즐기며
잠시 그곳에서 노닐다가
비스듬히 손톱을 세우고 느릿느릿 골반 쪽까지 긁어내렸다

 

유방 옆에 도드라져 있는 갈비뼈들을 문지르며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선을 지나쳐
톡 튀어나온 골반에 안착했다.

손톱의 자극이 간지러웠는지 

부르르 떠는 그녀의 모습을 즐기며
손을 가로로 그었다.


그녀의 아랫배에 살그머니 솟아오른 둔덕 위에 올라 

그 아래는 무슨 모습일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손을 조금 더 밑으로 내렸다.

까슬거리는 체모의 숲을 누비던 중
돌기에 손끝이 닿았다.

 

즉각 반응하는 그녀의 몸을 보고
음핵임을 확신한 교수가 여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학생.”

 


답은 없었으나 어둠 속의 윤곽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교수는 조심스럽게 돌기를 톡톡 건드리며 말을 걸었다.

 


“왜 항상 그렇게 나대는 거지?”

 


여전히 답은 없었다.

교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다른 교수들 말에 따르면 평소에는 멀쩡한데
꼭 내 강의에서만 그렇다더군?


하루가 멀다하고 주변 인물까지 끌어들이며 불만을 쏟아내던데.

대체 왜 그리 심성이 배배 꼬인 건가?”

 


소리를 삼키려 애쓰는 여학생의 형상이 보였다.

교수의 손끝에 약간 힘이 들어갔다.

 


“오늘만 해도 그래.


주변 나라 정세가 어떻든
아카데미는 기존의 시간표를 따라간다는 결정이 내려진 게
내 잘못인가?


정 꼬우면 학장한테나 가서 따지라고.

왜 강의 시간에 훼방을 놓는 건가?”

 


교수의 손에 힘이 실렸다.


결국 그녀가 참지 못하고 그의 손을 잡았으나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교수의 손을 떼어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게 전력인 건지, 아니면 

기운이 다 빠져 힘이 들어가지 않는 건지는 몰라도
정말로 도저히 교수를 막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강의가 없는 날이면 개인실까지 쳐들어오지.

내가 악마한테 침묵 마법을 요구하는 이유의 

태반은 자네 때문이야.


자네는 대체 뭐가 불만인가?”

 


그녀의 입술은 파르르 떨렸으나
아무런 말도 빚어내지 못했다.

 

평소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력해 보이는 과대의 모습에
교수는 평소라면 절대로 묻지 못할 질문을 던졌다.


 

“내가 악마한테 박는다는 소문을 퍼트린 거, 너였지?”

 


순간 그녀의 숨이 멎었다.

 


“학장한테 꼰지른 것도 너고?”

 

“그, 그건……”

 


여학생의 눈가에 달빛을 머금은 눈물이 고였다

 


강의가 없는 날마다 매일 같이 개인실에 찾아오던 그녀가
단 한 번 그를 방문하지 않은 날이 있었다.


교수가 최초로 악마에게 반응을 요구한 결과
예상치 못하던 쾌락에 정신이 팔려
소음에 관해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날이었다.


음마와의 관계에 심취한 상황이라 신경 쓰지 않았으나

대충 그때쯤 해서 학장과의 면담이 있었고

그날 이후로 학장과 학생이 그를 벌레 보듯 하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좆대로 움직이는 교수라지만
원인과 결과 정도는 유추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이해도 갔다.

 

그래, 숨겨진 의도가 어떻고
묵인하는 게 어떻고 간에
이렇게 대놓고 들켜서는 안 됐다.

 


무엇보다도 학장, 

그 위선적인 년의 뾰족귀에는 들어가선 안 됐다.


십 년에 한 번꼴로 번식한다는 종족 아니랄까 봐
조금만 야한 일과 연관되면 

멀쩡한 사람을 호색한 취급을 하는 년.

 

지난 이 주 동안 면담이라는 명목하에
매일 같이 학장에게 불려 나가
아카데미의 품위나 그에 걸맞은 품행 같은
내용의 어처구니없는 설교를 듣느라
진저리가 나던 참이었다.

 

음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식사와 수면조차 개인 연구실에서 해결하는 교수를 상대로
강의 중에는 과대가, 강의가 끝나면 학장이
정신적으로 몰아가던 나날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형언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씨발 내가 누구랑 박든 뭐랑 박든 네가 뭔 상관이야!”

 


교수가 과대의 음핵을 움켜쥐었다.

고통을 호소하는 비명과 함께 울음소리가 났다.

교수는 화풀이로 몇 번이고 그녀를 괴롭혔다.

 

여학생은 주체할 수 없는 것처럼 흐느끼며
팔로 눈물을 훔쳤다.


훌쩍이는 과대의 몸에서 손을 뗀 교수가 씩씩거렸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아 

그녀에게 다시 한번 손을 뻗었을 때
그녀가 웅얼거렸다.

 

 

“그렇게나 밤상대가 필요했으면 

차라리 나한테 말 걸면 되는데

그딴 거한테나 박으니까……”

 

 

뭐?



누군가가 교수의 뒤통수를 망치로 후려갈긴 것 같았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여학생의 울먹임이 이어졌다.

 


“매일 열심히 꾸민 모습도 보여주고
일부러 가까이 다가가기까지 했는데도
나한테는 관심도 안 줬으면서……”

 


말이 되지 않았다.

 


“어느 날 교수님 개인실이 시끄럽길래
몰래 들여다보니까 그 안에서 둘이……

틀림없이 악마한테 속아 넘어갔다고 생각해서……

학장한테 상담하니까 현혹이나 매혹 같은 마법에
당한 흔적은 없다는 얘기만 하고……”

 


그러고 보면 학장과의 면담 중에 검사를 받기는 했었다.

악마의 계약자가 된 이래
안전 차원에서 매일 꾸준히 건강검진을 받아왔고
학장이 면담을 시작한 이후로는 매번 그녀가 직접 검사했었다.

 

그러니까 교수가 제정신으로 악마를 박고 있다는 걸
직접 확인한 이후부터 대놓고 싫은 표시를 했다는 의미다.

 


“이유를 모르겠으니까 불안하고 화가 나서
교수님을 볼 때마다 점점 날서고……

교수님도 날 점점 멀리하는 게 느껴져서……

도리어 더 가까이 가야겠다는 생각에
점점 더 신경이 날카로워지다 보니 계속 악순환만…….”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라
교수는 도저히 더 듣고 싶지도 않았다.

 


과대가 그를 좋아한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가.


말도 안 된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녀의 나신이 그의 눈앞에 놓여있었다.


수치심과 고통에 몸을 웅크리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녀의 솔직한 고백이라고 믿기

너무나 쉬운 모습이었다.

 


설마?

혹시?

 


교수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의 얼굴이 뜨거워졌다.


머리가 어질거리는 것 같아 

눈을 감고 마른 세수를 했다.

 


“잠깐, 그만, 잠깐만.”

 

 

교수는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한 후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는 텅 빈 책상만 놓여있었다.

 


꿈이라도 꾼 건가 싶은 마음에
잔뜩 구겨진 서류 더미 위에
온갖 체액이 뒤섞여 난장판이 된 책상을 바라보고 있자니

종이들이 춤추기 시작했다.

 

흩뿌려져 있던 체액이 급속도로 말라가며
찢기고 구겨졌던 종이들이 말끔하게 펴지는
몽환적인 광경에 정신이 팔려 있던 교수의 등 뒤로

활짝 펼친 날개의 그림자가 솟아났다.

 

교수는 황급히 뒤돌아 창문을 향했다.


처음 만났을 때만큼이나 

무기물 같은 얼굴을 한 악마가 달빛을 등진 채
창문 턱에 걸터앉아 음악단을 지휘하듯 

손가락을 까닥이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허공 위에서 움직일 때마다
책상 위가 정돈되고 얼룩들이 지워졌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얘한테 맡기겠다던 소일거리라는 건 이런 거였지.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교수는 허벅지를 꼬집어 

현실에서 도피하려던 두뇌를 강제로 깨웠다.


악마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그녀의 청소가 끝났다.


악마가 교수 쪽으로 눈을 돌리더니 

억양도 어조도 없이 말했다.

 


“내가 묘사 또는 언급했던 인물, 단체 및 지명은 실존하는 것과
일체 관계가 없는 허구임을 밝히겠다.”

 

“뭐?”

 

“아카데미 내에 머무는 동안
습득한 정보와 읽은 기억을 근거 삼아
사건을 재구성했기에 실존하는 것과
완벽히 무관하지는 아니할 수 있으나,

개개인의 기억을 기반으로 엮은 것에 불과한 가설을
진실이라고 착각할 여지를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아니한다.”

 

 

좆같네.

 


교수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렇다면 과대의 그 고백은 완전한 허구였다는 의미인가?

그러나 악마는 동시에 

현실과 완벽히 무관하지도 않다고 했다.

 

온종일 쌓인 신체적, 정신적 피로가 

교수의 두뇌 회전을 굼뜨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지난 한 달 동안 이렇게 골치 아픈 일이 생겼을 때의
해결책은 언제나 하나로 귀결되었다.

교수는 습관적으로 악마를 불렀다.

 


“야, 와 봐.

한 판만 더 뜨자.”

 


지치긴 했어도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에 생각해봐야 할 문제였다.

그러나 악마의 대답은 그의 예상범위를 벗어난 것이었다.

 


“불가능하다.
본인은 그대에게 해를 끼쳐서는 아니 된다.”

 


“뭐?”

 


여태까지 그녀 측이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대의 신체 상태를 고려한 결과,
현 시각으로부터 24시간 이내에 성관계를 시작하면
인간의 안전을 요구하는 둘째 원칙을 위반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 경중은 다를 수 있으나
공통적으로는 그대의 일상생활에
무리가 갈 정도의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판단되므로
본인이 그대에게 해를 끼친다고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씨발 내가 복상사라도 한다, 이거야?”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를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교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에
어안이 벙벙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납득이 가기도 했다.

예상치 못하게 등장한 과대의 모습에
평소보다 지나치게 무리하긴 했었다.


그러나 그가 과했음을 납득하는 것과
악마의 거부를 납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아니, 그래도 그러면 내 심란한 마음은 어쩌고.”

 

“해당 수준의 정신적, 심적 자극은
해를 입는 것으로 간주하지 아니한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교수는
본의 아니게 이별 통보를 받고
구차하게 매달리는 애인의 흉내를 내게 되었다.

 


“저기, 오늘 나랑 하다가 싫은 점이라도 있었어?

질렸다거나 그런 거야?”


 

악마는 무표정을 유지했으나
그녀의 입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술술 답했다.

 


“그대의 성적 욕구를 이뤄주는 것은
우리 계약에 포함되어 있을뿐더러
본인의 개인적인 바람과도 일치한다.


그대가 욕망을 발산할 대상으로
본인을 지목하는 것에는 언제나 만족한다.

 

다만 지난 25일에 걸친 지속적인 관찰 결과
이 이상 단기간 내에 성관계를 과도하게 지속할 경우
그대의 건강이 악화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따름이다.”

 


교수는 술병에 담긴
마지막 한 모금을 핥는 술꾼처럼 다급해졌다.

전 재산을 건 경마의 관람이 막힌 도박꾼의 심정이
이런 걸까 싶은 정도로 몸이 달아올랐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우선 원인은 분명했다.

 

전부 이년 때문이다.

 

교수는 마른세수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본,
울먹이던 여학생의 얼굴을 떠올렸다.

 

음마가 과대 얼굴로 그런 표정을 지으면서
그런 목소리로 말하니까 헷갈린 것이다.

 

씨발, 역할극이면 차라리 아예 말도 안 되는 설정을 잡던가.

대체 왜 은근히 말이 되는 이야기를 짠 걸까?

 

교수는 다시 마른세수하며 심호흡했다.


머리가 조금씩 굴러가기 시작했다.

근 한 달 만에 처음으로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교수는 필사적으로 

오늘 악마가 해왔던 말을 되짚어 보았다.


무언가가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너, 가능하면 정확한 표현만 사용하지?

거짓말도 안 하고.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가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줘서
첫째나 둘째 원칙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사실이다.

다만 성교 전후로는 다르다.

그대가 취향에 맞는 인간과 유사한 언행을
모사하기를 본인에게 희망하였기에,
지나치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선에서
진실과 동떨어진 언행을 할 수 있다.”

 

“그래, 덕분에 역할극으로는 최고이긴 해.

하지만 말이야,

너, 내가 ‘그만’이라고 말하자마자 

모든 연기는 그만뒀지?”

 


악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다.
그대의 발언을 역할극의 중지를 희망한다고 해석했다.


뒤집어 말하자면 그대가 오늘 본인을 소환한 직후부터
‘잠깐, 그만, 잠깐만’이라고 외치기 전까지의 내 모든 언행은
그대의 요구사항에 부합하기 위해 꾸며낸,
거짓이 연루되었을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하지만 네가 역할극을 멈춘 후에 한 말은 아니지.”

 


얼어붙은 호수에 금 가는 듯한 미소.


 

“너, ‘개개인’의 기억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고 했지.

‘개인’이나 ‘내’ 기억이 아니라.”


 

얼어붙은 호수가 쪼개지는 듯한 미소.


 

“너, 과대가 개인실에 온 사이에
남몰래 그 녀석 기억 읽은 거 아니냐?”

 


교수의 말이 끝날 때마다
척척 답하던 악마가
처음으로 입을 다물었다.


막힌 사고 회로가 뚫리는 것 같은 느낌 속에서
교수가 말을 이어갔다.


 

“기회는 잔뜩 있었겠지.

네 마법 실력이라면 우리 둘이 한눈판
잠깐 사이로도 충분할 테니까.

 

그리고 기억을 읽는 것 자체는
해를 끼치지 않는 걸로 취급해서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거지?


당장 오늘만 해도 아무런 양해나 설명도 없이 내 기억을 읽었잖아.


사람들의 기억을 미리 읽어두지 않으면
사람이나 인류가 해를 입는 것을
모르고 방관하게 될 수도 있다든가 하는 식으로
첫째나 둘째 원칙을 해석한 거 아니야?


네 계약 조건이 나와 내 주변의 관찰이라서
무슨 정보를 어떻게 모으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퍼트리지만 않으면
넷째 원칙도 위반하지 않는 거지? ”


 

악마는 소름 끼치는 미소를 거두지 않고
교수를 마주 보았다.


교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과대의 기억 속에서
걔가 날 좋아한다는 걸 읽고
오늘 역할극에 그걸 집어넣은 거야.

 

네 입으로 분명히 말했지?


‘읽은 기억을 근거 삼아 사건을 재구성’했고
‘개개인의 기억을 기반으로 엮은 가설’이라고.


단순 창작으로 넣은 설정이 아니었어.

실존하는 기억을 읽고
그걸 기반으로 행동한 거지?”

 


교수는 숨을 몰아쉬었다.

악마가 미소와 함께 답했다.

 


“질문은 끝인가?”

 

“그래.
요약하면 간단하지만.


과대는… 그러니까, 

오늘 네가 흉내 낸 여학생은 

정말로 나를 좋아하는 거냐?”


 

교수의 심장이 쿵쾅댔다.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사실 그는 학생과의 연애에 목마른 사람은 아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갈증은 

연애 감정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아카데미의 눈엣가시였다.


악마에게 악용당해도 제일 부작용이 미미할 상대로
교수가 뽑혔다는 것 그 자체가
아카데미에서의 그의 위치를 반증했다.

 

소소하고 잡다한 일만 해온 그의 학업이
교수진들 사이에서 유의미하게 보일 턱이 없었고


학생들 사이에서 그의 인망이나 강의가 고평가받았다면
제아무리 과대표가 주도했다 하더라도
단순 통보의 전달자의 불과한 교수를 상대로

학생들이 대대적으로 들고 일어날 리가 없었다.


 

그의 존재가치는 한없이 작았다.


교수도 이를 자각하고 있었다.


 

그가 스스럼없이 악마와 계약할 수 있었던 것도,
단 몇 주 만에 악마와의 성관계에 중독되듯 빠진 것도
이러한 배경이 원천이었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악화할수록
교수는 그를 긍정적으로 봐줄 누군가를 

더더욱 갈구했다.


그의 존재 가치를 

높이 쳐줄 누군가를 갈망했다.

 


그렇기에 악마의 입술을 노려보는 교수의
마음 한 켠에는 기대가 담겨 있었다.


누군가가 그를 좋아한다면,
그에게 연심을 품을  정도로 높게 봐준다면
그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악마는 계약에 따라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설령 과대에게 직접 묻는다 하더라도
확신할 수 없을 그녀의 속내를
악마는 알려줄 수 있었다.

 


진지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교수의 뺨을 

꼬리로 훑던 악마가 

능글맞은 미소를 띠고 답했다.

 

 

“안타깝게도 그대와 맺은 계약 내에
이 세상 모든 진리를 전부 알려줘야 한다는 조항은 없었으니
답은 못 해주겠군.”

 

 


교수는 폭발했다.

 


“말 안 하면 나한테 정신적 피해를 끼치는 거 아니냐!

그것도 둘째 원칙에 위배되잖아!”

 

“넷째 원칙에는 ‘둘째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한’이라는
조건문이 들어 있지 않다.

개인정보 침해는 그 자체로 개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어떤 답을 주더라도
해당 아카데미 학생의 개인정보를 제공한다고 간주할 수 있다.


그대의 정신적 불안정이 

둘째 원칙을 위배할 정도로 심각하지 않을 때는
넷째 원칙을 우선해야하는 세부조항이 존재한다.


따라서 본인은 함구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교수는 맥이 쭉 빠졌다.


그의 평생 처음으로 그를 

원하는 사람을 찾았는가 싶었는데
정작 그 사람의 기억을 읽은 존재는
답해주지 않았다.

 

기대가 컸던 만큼
배신당했을 때의 분노 또한 커졌다.

 


진작에 솔직한 마음을 말하지 않은
과대가 원망스러웠고


저년 몸에 정신이 팔려
계약서를 꼼꼼히 읽지 않은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무엇보다도 이렇게나 안달이 나게 했으면서
정작 답은 주지 않는 악마가 원망스러웠다.


 

교수는 체력 고갈로 둔해진 머리의 마지막 힘을 짜냈다.

악의를 원동력으로 지혜를 긁어모았다.


그는 악마와의 계약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이 많지는 않았지만
다섯 원칙과 이를 어겼을 경우의 불이익은 알고 있었다.


교수의 머리에 한 발상이 떠올랐다.

 

 

“네가 대답을 안 해주니
내가 과대한테 공개적으로 고백을 해야겠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악마가 꼬리로 교수의 얼굴을 쓰다듬는 것을 멈추고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과대가 뭐라고 답하든 

내 사회적 평판은 완전히 무너지고
어쩌면 아카데미에서 추방당할지도 모르지.


그 결과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거야.


이 스트레스의 근원은 우리가 나눈 이 대화에서
네가 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일테고.


그정도 정신적 피해면 우리 계약의 둘째 원칙을 위배하나?”

 


악마의 미소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악마에게 처음으로 유효타를 먹인 것 같아 통쾌했다.


그래, 악마는 반드시 계약을 지킨다.

원칙을 어기면 받는 불이익도 반드시 지킬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그녀의 약점이었다.


악마가 느릿느릿 답했다.

 


“사실이다.

일시적인 자극이나 불안정을 상회하는 정신적 피해는
둘째 원칙을 위배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다섯째 원칙에 근거해 

그리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니 원칙을 어기지 않으려면
지금 나한테 사실대로 일러줘야겠지?”

 


악마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된다.

넷째 원칙을 위반하게 된다.”

 

 

이건 교수의 예상 밖이었다.


어?

이러면 모순 아닌가?

 

 

“이봐, 그렇게 나온다면
내가 내일 아침에 과대한테 공개적으로…”

 

“그러니 여기까지로 하겠다.”

 


무슨 말인가 싶었다.

딱 하고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악마가 언제나와 같은 얼굴로 말했다.

 


“그대의 오늘 밤 기억을 삭제하도록 하지.”

 


“뭐”라는 거야?

 


교수는 무언가 위화감이 들었다.

생각이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말이 나오던 중에 끊겼다.

 


“너 무슨 짓을” 한 거냐?

 


“그대의 사고를 과대의 연정으로 유도한 것까지는
본인의 유희였음을 인정한다.


인간의 해석과는 다를 수도 있겠으나
충분히 유희 제공에 부합하는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대가 의도적인 다섯 원칙의 위반함으로써
본인의 안전을 빌미로 협박하는 이상
그대의 사고 회로를 좌시할 수 없다.”

 

“좌시고 자시고 좆이고” 사람의 기억이나 사고 회로를 바꾸는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악마가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교수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꿈을 꾸다가 순간적으로 자각몽이 되었다가도
조금만 긴장이 풀리면 꿈속이라는 사실을
도로 잊어버리는 것과도 같은,

생각이 연결되지 않고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꿈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가능하다.
지난 25회에 걸쳐 실패한 적도 없다.”

 


어처구니없는 답변에 교수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 전신이 가위라도 눌린 것처럼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교수는 마음속으로나마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니미 이거야말로 누가 봐도 둘째 원칙을 위배하는 거 아니냐!

사람 기억을 강제로 지우는 걸 어떻게 해를 끼치지 않는 걸로 취급할 수 있어!

 

“단기적으로는 그대의 심신의 안정을 돕고
장기적으로는 그대의 건강에 필수적인
숙면을 돕는 과정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본인은 계약에 따라 그대가 무익한 생각과 감정으로 인해
수면 부족이라는 해를 입는 모습을 방관해서는 아니 된다."



교수를 뺨을 어루만지던 악마의 꼬리가 

그의 머리를 둘러 똬리를 틀더니
그의 눈을 완전히 가렸다.



"그러니 그대의 사고를 둔화시키며
오늘 밤 떠올린 모든 생각과 감정을
꿈속의 것으로 치환시키는 중이다.


어차피 꿈의 내용은 매일 망각하지 않는가.
본인이 이를 취사선택해줄 뿐이다.”


 

교수가 암흑 속에서 외쳤다.



그딴 논리가 통할 리 없잖아! 엄연히 원칙을 위배하는


 

악마가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무슨 원칙이었는지 떠오르나?”


 

교수의 머리가 새하얘졌다.

 


그게, 그러니까…… 

 

“본인이 하는 말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나?”

 

해석……?

 

“인간의 기억도 읽을 수 있는 내가
왜 일부러 이해에 방해가 되는 단어를 골라쓴다고 생각하지?”

 

일부러……?

 


악마가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교수의 의식이 완전히 끊겼다.

 

 

+++++

 

 

악마의 꼬리가 교수의 머리를 완전히 옭아맸다.

교수가 악마에게 향한 감정들이 꼬리를 타고 스며들어왔다.


첫맛으로 달콤한 색욕을 베이스로 시작해
상쾌한 의구심과 끈적한 갈망을 더하고
시큼한 분노와 쌉쌀한 절망을 우려낸 후
끝맛은 톡 쏘는 청량감의 배신감으로 마무리했다.

그 위에 적절히 뿌려진 공포와 혼란까지.


흡족한 식사였다.

 

 

악마는 교수를 침대 위에 가지런히 눕혀주었다.

그리고 톡 하고 교수의 코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악마는 교수의 기억을 재단했다.

그의 정신 건강을 위한 일과였다.


모르는 것이 약인 사실들은
영원히 깨닫지 못하도록 의문과 관심을 털어냈고
자각하면 속만 썩일 감정과 기억은
차곡차곡 묶어 심층의식의 깊은 곳에 파묻었다.


따지자면 이 또한 교수가 요구했던 소일거리 중 하나였다. 

사무실 내에서 이뤄지는 정리 정돈.

 

물론 지난 25일 동안 교수의 개인 연구실에 출입한
모든 인간의 기억을 읽은 악마는
인간들이 이를 말장난, 또는 의미 왜곡으로
간주할 가능성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교수가 이를 온전히 인식하고 반대하는 순간
다섯째 원칙에 의거해 재해석될 것이며
악마는 이에 복종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견이 없도록,
보다 근본적으로는 의견이 생기지 않도록
그의 사고 회로와 정신을 말끔히 정돈할 필요가 있었다.



단어를 신중히 선택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평이한 단어를 배제하고 대화함으로써 

교수가 이를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머리를 굴리는 찰나

그의 기억을 읽음으로써
그의 사고 회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성욕의 비대화로 전두엽 활성화를 

억제한 것 또한 그 일환이었다.


교수의 고등정신작용이 느려질수록

그의 사고 방식을 읽는 과정도 수월해졌다.


이를 유도하기 위해선 

첫 만남에 일반적으로 성욕을 돋우는
형상으로 변신한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그 이후부터는 교수가 자진해 성욕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는 발상을 추천해왔기에


악마는 이 방식을 고수하는 데에 

별다른 노력조차 들일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악마가 이에 안주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악마는 본인을 요리 연구가로 치부하고 있었으니까.

 

악마는 매일 밤 교수의 사고를 다방면으로 이끌었다.

매번 다르게 뿜어져 나오는
다양다색의 욕망으로 악마를 만족시켰다.

 

어쩌다 오늘 밤처럼 말썽을 일으키는 사고 회로에 도달해버리면
이를 꿈의 일부로 치환시켜 인지의 저편에 묻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밤이 오면
새로운 조리법을 찾아
식자재의 마음을 농락했다.

 


교수처럼 훌륭한 식자재는
함부로 낭비해서는 아니 되었다.


경계심을 잔뜩 품은 아카데미에 자진해 온 것도
인간 중심적인 원칙이 깔린 계약을 체결한 것도

그와 같은 식자재를 확보하기 위함이었으니.

 

지식인과 교수의 긍지 같은 

맛없는 외피 밑에 숨겨진 애정결핍과
거기서부터 우러나오는 불건전한 

열등감, 갈망, 고독 등의 깊은 맛이 

악마의 기호에 적중했다.


그의 여린 마음을 무방비하게 노출한 후
뒤틀고, 냉대하고, 내칠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악감정이 악마를 향해 발산할 때마다
굳이 꼬리가 닿지 않아도 

만족스러울 지경이었다.

 


미식가로서 이 별미를 오래오래 즐기기 위해,
연구가로서 이를 계량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악마는 교수의 모든 사고 회로를 모두 맛볼 생각이었다.

 

그의 욕망을 완벽히 파악하고 이해하고, 이용하기까지는
아직 먼 길이 남아있었다.


그의 전부를 파악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악마는 괘념치 않았다.


식자재로써의 교수에게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악마는 잠든 교수의 귓가에 속삭였다.



"잘 자. 내일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