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어 참, 가가가가가가.."

"죄송합니다."


한숨 쉬셔도 제게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떡해요.


"야 장붕아."


담임이 평온치 못한 얼굴로 장부를 내려놓았다.


"아무리 그래도 수우미양가 중에 가可 로만 도배가 되는 건 좀 아니지 않니?"

"... 죄송합니다."


아카데미 개교 이래 기록적인 수준의 열등생.

그거 나다.

그게 나다.


"기초 마법학, 마도공학, 점성술까지 하나 같이 가可라."

"죄송합니다."

"우리 장붕이가 다른 건 다 잘하는데 유독 공부는 문제네."

"죄송합니다."

"장붕이는 성격도 좋고 사교성도 좋은데."

"죄송합니다."


담임이 가르친 것 마저 성적이 나가리로 나오는 거 보면 진심으로 미안해지긴 하지만

다른 애들이 너무 먼치킨이라고요 선생님.

제가 이상한 게 아니고.

저도 저희 마을에선 재능충이란 소리 들었는데.


"아냐, 공부가 적성에 안 맞을 수 있고 딱히 미안하단 말 듣자고 부른 게 아니고... 아."


상담을 해주던 담임의 시야에 무언가가 걸렸다.

담임이 황망히 좌우를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장붕아 너 [이거] 한번 안 해보련?"

"예?"

"핸드폰은 있을 거 아니야. 그치?"

"있기는 한데... [이거] 걸리면 위험하지 않아요?"


담임이 건넨 프린트에는 학교의 [금기] 가 적혀 있었다.

조례 때마다 지겹도록 언급되는 [금기] 가.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적발 시 무시무시한".

수식한 단어만으로도 국어사전 한 권은 만들 수 있을 만큼

다들 경고하고 또 경고하던 [금기] .


소문으론 [이거] 하다 걸려서 징계 먹은 선배들이 그렇게 많다던데.

이걸... 하라고?


겁에 질린 얼굴을 읽어낸 담임이 피식 웃었다.


"긴장 풀어 짜샤. 조금만 버티면 되는 거다."

"버티라고요?"

"여름 방학 과제를 [이거] 로 낼 거니까 그때까지만 잘 숨기면 돼."


아하.

어차피 방학 과제로 나올 거니까 방학 이후론 합법이란 거구나.

그전까지는 아직 걸리면 난리가 날 테니 방학까지만 숨기란 거고.


"방학까지 1달은 남지 않았어요?"

"넌 1달 더 먼저 시작하는 셈인 거지."

"아무리 그래도 좀 무서운데요..."

"걸리면 위험하긴 하지. 그러니 1달 동안은 눈에 힘 팍 주고 숨겨야 하고."

"[이거] 하면 성적이 오르긴 할까요?"

"학년 1위까지도 가능할 거다. 네 몸에 우선 영향이 나타날 테니까."

"어떤 영향이요?"

"마법이 더 잘 나간다거나 하는 그런 거."


걸리면 퇴학.

안 걸리면 꼴찌 탈출.

하느냐 마느냐.


뚜비도 무섭고 낫 뚜비도 무서운데

어느 쪽이냐 이거.

낫 뚜비냐?

아니면 뚜비냐?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너 이대로면 성적 미달 때문에 걸릴 상인데."

"사흘만 시간 주시면 정해오겠습니다."


금기, [성좌 계약] .

인간과 신이 서로를 파트너로 정해서 상부상조하는 계약.

시간을 달라 해 놓고서 벌써부터 망설여진다.


[계약] 한 게 걸리면 즉각 모가지야.

가족들 얼굴은 어떻게 볼 거냐.

... 라는 생각과


좋게 생각하자. 한달만 안 들키면 되는 거 아니야?

한달이면 어떻게든 버티겠지. 근친 야설 쓰던 것도 2년은 안 들켰는데.

... 라는 생각 사이에서.


"그래라 그럼. 근데 쓸 만한 놈 잡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니까 서두르는 게 좋을 걸."


교무실을 빠져 나가려던 내 뒤통수에 담임은 충고했다.


"예? 그냥 계약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아니면 계약 대상은 강해야만 한다는 건가.

담임의 답변은 의미심장했다.


"... 장붕이가 아직 세상에 또라이가 얼마나 많은지를 모르는구나."

"?"

"세상은 넓고 미친 놈은 많단다."



*



"뭐, 빡빡하게 생각하지 말고."


츄리닝 차림의 체육 선생님이 어깨를 긁으며 타이머를 들었다.

저 타이머 저저 타이머 저저저 타이머.

내 오랜 원수이자 오늘 수행평가의 빌런이 될 녀석이었다.


"마음 편히 해라. 혹여나 긴장해서 실수하면 감점이니까."

"네!"

"그럼 1번부터 나와서 측정해라."


오늘은 근력 테스트 시간.

본래 몸을 직접 움직이는 것은 우리 학교에서 전문적으로 다루는 과목은 아니었으나,


'계약하는 양측은 서로의 입장을 보다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기에'


라며 다른 몇몇 과목과 함께 몇년 전에 추가되었다.

물론, 이 과목도 나는 잘 못한다.


"오오 실력 많이 늘었는데."

"으헿."

"근데 웃음소리가 기분 나빠서 2점 감점. 점수는 18점."

"엫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쌤."

"꼬우면 네가 선생해라. 다음 2번!"

"2번 전데요."


앞쪽에 앉아있던 누군가가 조심스레 엉덩이를 일어났다.

차례를 기다리기만 하는 게 영 심심했던 걸까.

옆자리 짝궁이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장붕아. 너 신체 특화였냐?"


'난 다 특화가 안 되어 있는데' 라는 말이 혓바닥 위에서 춤췄으나

자학개그라기엔 심하게 아팠기에 도로 집어삼켰다.


"굳이 따지자면 창작활동이지."

"그래? 마도공학 같은 거?"

"마도공학은 아니지만."


야설도 창작이겠다, 딱히 거짓말은 아니리.

짝궁은 그럴 줄 알았다며 투덜거렸다.


"그럼 너도 큰일이네. 너 저게 뭔지 아냐?"

"저거? 지금 수행평가로 주는 저 구슬?"

"어. 저 구슬. 저걸 얼마나 오래 드는지로 평가하던데. 뭔지 알겠어?"

"모르겠지만 헤라클레스 쌤이니만큼 정상적인 건 아닐 거 같다."


헤라클레스쌤.

근육으로 뒤덮인 헬창이자

학년 선생님들중 제일 가는 또라이로 유명한 쌤.

그래도 순수 전투 능력은 쌤들 중에서도 수준급의 강자라는 소문이 있다.

무슨 용가리도 때려잡고 지옥견도 때려잡고 했다던데.


"당연하지. 그 또라이가 정상이란게 뭔지 알 리가 있냐. 저건 그거래."


짝궁이 가만히 아래를 가리켰다.


"아랫층?"

"아니."

"땅?"

"아니."

"... 행성?"

"응. 마법으로 압축한 거래. 구슬 형태로."


행성? 저 구슬이 행성급이라고? 그걸 들라고?


"... 미친 거 아니야?"

"내 말이! 우리가 저런 걸 어떻게 드냐고! 자기 같은 근력계 성좌들도 힘들어 할 걸 왜 가져오는 거야?!"

"우린 아직 성좌 되지도 못했는데 저런 걸 들란 말이야?!"

"거기 지방 방송 안 끄냐?"


성좌 아카데미, [star]. 우리 학교.

아직 신이 되지 못한, 그러나 신이 될 만한 자격이 있는 이들을 위한 학교의 총칭이 '성좌 아카데미' 인데

신이 되기 위한 여러가지 훈련을 하다가 졸업 시 신의 자격을 얻게 되는 학교들로,

간단히 말하면 [신의 씨앗을 길러내는 인큐베이터] 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성좌 계약을 맺는다면

우리가 반푼이 성좌로서 계약을 들이미는 입장이고

반대편이 인간으로서 수락을 고민하는 입장인 것이다.


그러니까 학교에 먼치킨들이 많지.

신이 되기 직전이면 보통 영웅인데.

당장 우리 반 반장이 지구라트다.

부반장이 멀린이고.


내가 만년 꼴찌 안 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나는 그저 공부만 좀 잘하던 일반인인데?


헤라클레스 선생님의 핀잔에 주눅 든 짝궁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계속했다.


"하여간 저 돌아이 저거 난 도무지 정감이 안 간다."

"저거에 정감이 간다는 사람은 애초에 우리 학년에서도 필록테테스랑 아킬레우스 정도 밖에 없지 않냐."

"발키리쪽 지원하는 여자애들도 좋아하던데."

"무친련들... 그 ㄴ들은 성좌가 된다면 똘끼의 신이 될 거다. 틀림 없어..."


혹시 미친 놈을 주의하란 게 이런 뜻이었나?

하지만 화신 계약과는 별 상관이 없을 텐데...

안 들키게 유의하란 건가?


"그보다 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

"맥락 없이 미친 놈을 조심하라고 하면 무슨 의미일 거 같아?"

"김장붕!"


헤라클레스 선생님의 귀 따가운 호명이 적절치 못하게 말을 끊고 들어왔다.

이리 오라는 손짓.

벌써 내 차례가 된 건가.

자신 없는데. 하...


"힘내라."


짝궁의 응원을 등에 업고 '행성 구슬' 을 들기 위한 시도를 했다.


음, 내 설명이 부적절한 것 같아 구태여 강조해 주겠다.

'시도를' 했다.


답이야 정해져 있지 뭐.

그런 걸 어떻게 들어.


"읍으읍우오오옷, 오오오, 오고고고곡!"

"... 12번 김장붕, 20cm 5초."

"켁, 아이고 허리야!"


그 난리를 쳐도 저게 한계라.

그래도 20cm나 들었다는 게 더 신기하다.

조금은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그래, 저번과 비교하면 확실히 발전했으니까 자신감을 가지자!

이 상승세라면 유급 걱정 없이 통과하는 거 아니야?

[계약] 같은 위험천만한 건 하기 싫었는데 다행이네!

하하하!


"김장붕, 김장붕... 여깄네. 근력 시험, E..."


하하하.

하하, 하.

하.

하아...



*



EEEEEE....

어제 받은 시험지다.

룬 문자 부문부터 점성술 부문까지.

외우긴 쉬워서 좋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 아닐까 싶다.

내가 인정하기 싫었을 뿐이고.

그런 괴물들 사이에서 낙제를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킹치만 밍나... 너무 먼치킨인 걸!


- 연금술 오늘 활동은 인조 드래곤 제작이다. 호문쿨루스나 키메라 만드는 법과 원리 자체는 비슷하지만...

- 기초 마법학 실기시험 본다 했지? 다중 영창 9서클 바람 마법이었던 거 같은데.

- 오늘 발표자 누구누구니. 차원논리 관련 단원이었던 거 같은데. 슬슬 시작해야지.


- 식 잘못 짰나 보구나. 그건 드래곤이 아니라 와이번이란다. 드래곤보다 한참 격이 떨어지는...

- 장붕아 그건 7서클짜리다. 8서클은 되야 뭐라도 하지 않겠냐?

- ... 6차원 이상의 고위차원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면모. 발표 내용 중 허술한 곳 다수 존재.


"아니, 와이번도 드래곤 비슷한 거 아니야?

마법은 여기서 처음 배운 건데 7서클 이상은 무리라고!

6차원? 4차원도 모르는데?!

나보고 대체 어쩌란 말이야아아아아아!"


누가 들어준다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건지.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꼴이 육지에 올라온 물고기 꼴이다.

육지라는 적응할 수 없는 환경에 고통받고 있는 물고기... 다시 생각해보니 딱 나네.

에이 망할.


"... 할까."


어쩌겠는가.

역경은 너무 굳세다.

파도가 너무 높다.

내겐 너무 험난한 세계라는 걸 알았다.

알아버리고 말았다.


돌파구는 하나 뿐이었다.

썩은 동앗줄도 동앗줄이라.

지금 나에게 내려온 동앗줄은 이것 밖에 없다.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담임의 충고,

미친 놈 주의하라는 말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건 뚜껑을 열어보면 알게 되겠지.

핸드폰을 켜서 하계 실시간 중계 앱을 다운 받았다.

뭐시기 스트리밍 사이트라던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락도 안 걸어둬서야 하지 말란 건지 하란 건지."


다운로드가 완료되자 기기에서 빛이 나오더니 반투명한 청색 창을 공중에 띄웠다.

마도공학 시간에 이거 배운 거 같은데. 원리가 어떻게 되었더라.

기억이 안 났다.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 것 같으니 됐다.


"즉시 실행."

[환영합니다. [김장붕] 님. 닉네임을 입력해 주세요.]


맑고 깨끗한 목소리와 대비되는 탁하고 불안정한 어조.

AI 특유의 어조가 날 반겼다.

누군가가 반겨준다는 건 기쁜데, 엇나간 띄어 읽기며 무미건조한 어조 때문에 달아오르지를 않았다.

기술이 진보해도 이런 건 발전이 없는 걸까.

기왕이면 사람을 한 명 고용하지.


"닉네임은... [꼴찌신]"

[[꼴찌신] 으로 하시겠습니까?]

"예."


별 생각 없이 나온 말로 수식언을 정했다.

꼴찌신. 그럴듯하지 않은가.

달리 날 뭐라고 더 부르겠어.

딱 들어맞는데.

딱 들어맞아버리는데.


[접속을 원하시는 하계를 말씀해 주십시오.]

"221번. B코드."

[수락 되었습니다. 랜덤으로 성좌와 계약하지 않은 지적 생명체, 이하 미 화신체를 검색하겠습니다.]


221번 B코드.

선생님이 귀띔해주셨던 하계다.

검과 마법의 세계. 화신체 계약도 활발한 세계.


여기가 그나마 머리 괜찮은 애들이 많다고 하셨는데 무슨 의미였을까.

세상은 넓고 미친 놈은 많다는 말도 신경 쓰이고.


[검색 완료했습니다. 3인칭 시점으로 관찰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수락."


로딩화면을 한참 동안 띄우던 앱이 남자 하나를 포착했다.

앞치마와 조리 모자.

요리사인가.


"나도 창작 분야 특화니까 상성 좋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 기왕이면 정상인에 말 좀 잘 통하는 애였으면 좋겠다.

미친 놈 주의하라는 말을 듣고 나니까 불안해서 원.


[아아.]

"앗."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화면 속 남성이 입을 열었다.

이게 첫 만남이란 말이지, 내 예비 화신체와는?

물론 딱히 얘가 화신체가 될 거라고 정해진 건 아니지만

고르기 귀찮은 것도 있고 하니 어지간하면 처음 만나는 애로 할 생각이...















[아아... 이것은 튀김이라는 것이다. 지구의 문화지.]

[그렇군요 이러면 밀이 부족한 흉년에도 버틸 수 있어요!]

[어이어이! 식량난에도 밀가루와 달걀, 기름만 많이 쓰면 음식을 만들 수 있다니 정말 천재적이잖아!]

[우효오오오옷 지구 스게에!]

"... 다음 미 화신체 검색."

[요청 수락 되었습니다.]


얌전히 두 손을 앞머리에 가져다 대었다.

어쩐지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 장붕이가 아직 세상에 또라이가 얼마나 많은지를 모르는구나.

"그런 의미였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