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할아버지의 왼쪽 허벅지엔 작고 동그란 흉터가 하나 있었다.

내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다. 미처 두 남매를 키울 시간조차 낼 수 없었던 부모님은 하는 수 없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우릴 맡겼고, 저녁이 되면 우리를 데리러 오곤 했다. 자연스레 나는 부모님보다 조부모님에게 더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다.

내 할아버지께선 내가 자유롭게 모든 것을 보고 들을 수 있게 해주셨다. 책이 되었든, 만화가 되었든, 영화가 되었든. 많은 것을 보고 익히면 결국 그게 전부 내 재산이 된다는 것이 할아버지 나름의 교육 방침이었다. 덕분에 나는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할아버지를 끌고 가곤 했고, 할아버지도 웃으며 같이 영화를 보러 가곤 했다.

다만 딱 하나, 할아버지께서 내게 보여주려 하지 않으셨던 영화가 있었다. 전쟁영화가 그것이었다.


철없던 시절, 할아버지께서 날 씻겨 주실 때면, 나는 거의 매번 할아버지한테 그 흉터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 시절의 내 눈에는 그저 신기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내 아버지에게도, 내게도 없던 그 자그마한 자국이 너무나도 특이했다.

그리고 젖먹이 손자의 그런 순수한 질문을 받을 때면, 할아버지는 으레 ‘도깨비가 콱 깨물고 간 자국이다’ 며 적당히 웃어넘기시곤 했다.

나도 한동안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나이를 조금 먹고 학교라는 곳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때는 할아버지보다는 아버지와 좀 더 가까워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다르게 전쟁영화를 보는 걸 꺼려하는 분이 아니었고, 덕분에 나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전쟁영화를 마음껏 보고는 했다. 물론 그건 우리 부자만의 비밀이었다.

어느 날 퇴근을 한 뒤 차를 끌고 나를 데리러 온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 집을 떠나 아버지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문득 할아버지의 흉터에 대해 궁금해졌던 나는 아버지에게 그 흉터의 정체에 대해 물어보았다.

“총상이야.”

총상이라는 생소한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을 본 아버지는 재차 설명하기 시작하셨다.

“총 알지? 거기에 맞아서 생긴 상처야. 네 할아버지께서는 전쟁터에 나가셨지. 거기서 열심히 싸우다 그 다리에 총을 맞고 제대하신 거야. 지금도 나라에서 참전용사라고 매달 돈을 보내주고 있단다.”

그 나이대의 어린이라면 영화나 게임에서 나오는 멋지고 화려한 영웅담에 매료되곤 하는 법이었다. 나는 특히나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전쟁영화의 매력에 푹 빠져있던 상태였다. 아버지의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선 멋진 군복과 소총을 쥐고 온갖 포화를 뚫으며 적들을 쓰러뜨리고, 육중한 전차와 날렵한 비행기와 함께 전진하는 용감한 군인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 군인들의 선두에 내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영화에서나 보던 멋진 영웅이 바로 내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에 나는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날부터 나는 학교에서 그 이야기를 마치 내 이야기라도 된 마냥 자랑스럽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런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그 영웅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어느새 나는 학교에서 참전용사의 손자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우리 할아버지께서 학교로 찾아오셨다. 매해 몇 번씩 있는 보호자와 교사 간 상담 때문이었다. 그런 자리엔 아이도 같이 참여하고는 했기에 당연히 나도 동석하게 되었다.

상담이 시작되고, 의례적인 칭찬과 겸양의 말이 오간 뒤, 선생님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은 이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할아버님께서 전쟁에 나가셨다지요? 손자분이 정말 자랑스러워하더군요. 저도 할아버님이 참 존경스럽습니다.”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의 안색이 잠깐 어두워졌다. 어리고 눈치 없던 나조차 알아차릴 만큼, 명백히 좋지 않은 반응이었다.

“자랑스럽다니요. 이놈이 어디서 이상한 걸 주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존경할 만한 일은 안 됩니다.”

그 자리에선 그나마 웃어넘기셨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내내 할아버지께선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셨다. 내 머릿속엔 의문뿐이었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그런 자랑스럽고 용감한 일을 하셨는데도 저렇게 껄끄러워하시는 걸까? 그때의 나는 호기심이란 것이 생기면 해소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머지않아 풀리게 되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앉혀놓고 말을 하셨다. 평소 엄한 분위기가 아니었던 할아버지가 드물게도 딱딱한 표정을 짓고 나를 부르셨다. 드물게 엄숙한 공기가 흐르는 거실에 잔뜩 긴장한 채로 무릎을 꿇어앉은 내게,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을 하셨다.

“쓸데없는 말을 했더구나.”

뜬금없는 말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나를 보고 할아버지는 재차 입을 여셨다.

“그 일을 어디서 들었니?”

“아빠한테 할아버지 흉터 이야기하니까 말해주던데요.”

“그래, 그랬겠지. 너야 그 일이 자랑스러울지 몰라도, 나한테는 그렇지 않다. 약을 쓰든 뭘 쓰든 잊고 싶은 일이야. 더 이상 그 일을 꺼내지 말거라.”

더더욱 의구심만 늘어난 나는 결국 약간의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왜요? 멋진 일 아니에요? 영화처럼 멋진 군인이 돼서 싸우는 게 왜 그렇게 싫어요?”

할아버지의 표정이 더더욱 일그러졌다.

“영화처럼? 그래, 영화처럼 말이지. 이래서 내가 너에게 그런 쓰레기를 보여줄 생각이 없었던 건데. 너희는 모른다. 그 영화라는 게 얼마나 멍청한 물건인지. 그걸 만든 놈들이 전쟁에를 나가 봤겠느냐? 귀를 찢는 폭탄에, 따발총 소리에. 단 하루라도 버틸 놈이 있을런지 모르겠구나. 같이 기차를 타고 한솥밥을 먹던 친구들이, 엊그제는 하나가 칼에 찔려 죽고, 어제는 하나가 총에 맞아 제 어머니를 찾다 죽고, 오늘은 또 하나가 폭탄에 맞아 손가락 하나 못 건진 그 꼴을 너희들이 상상이냐 하겠냐 이 말이다.”

보기 드물게 격앙된 목소리로 울분을 털어놓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내게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나는 그 광경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영화에선 주인공과 그 친구들이 모두 살아남아 승리를 누렸으니까. 나와 내 친구들이 총에 맞아 죽는다는 상상을 해 본적이 없었다.

“그 미련한 놈들. 그땐 뭐가 그리 좋았다고 싱글벙글하면서 그 열차를 탔는지. 한 놈도 제 명에 죽지를 못했으니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지.”

조금 진정된 듯, 이번에는 이전보다는 차분한 목소리로 조용히 울분을 씹어 삼키듯 한마디 한마디 말을 이어갔다. 나는 여전히 벌벌 떨며 할아버지가 읊조리는 말을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내가 너만큼은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건만, 나 혼자 살아남은 업보인걸까…?”

살짝 물기가 어린 목소리로 한탄하던 할아버지는 한참을 고개를 떨구고 계셨다. 여전히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그렇게 무너져내린 할아버지의 어깨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내 할아버지께선 다시 고개를 들고는 나를 바라보면서 말씀하셨다.

“…어떻게든 무언가를 잊으려 노력하는 사람에게,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만큼 무례한 짓이 없다. 다시는 그 일을 입 밖에 내지 말거라.”

조곤조곤 하지만 힘이 들어간, 위압적인 말투였다.

그 뒤로 나는 학교가 되었든 집이 되었든 할아버지의 전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점점 더 많은 것을 보고 자랐고, 전쟁에 대해서도 마냥 영웅시했던 어릴 적과는 다르게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내가 장성함과 동시에 할아버지는 점점 노쇠해졌다. 무언가 자주 잊어버리고, 했던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고,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변해갔으며, 끝내는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해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밤이 되면 매일같이 악몽을 꾼 듯, “다이너마이트다!” 라든가 “공습이다!” 같은 고함을 고래고래 질러대곤 하셨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나라는 고작 푼돈을 쥐어주었다. 어마어마한 약값과 치료비를 대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할아버지의 유골은 화장되었다. 유골함은 나라가 마련한 국가유공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할아버지의 유골함 앞에 쓰여진 명패엔 소속 부대와 함께 ‘이등병’ 계급과 함께 이름 석 자가 쓰여있었다. 내 고모 중 한 분이 그 명패를 가리키며 묘지 직원에게 물었다.

“아버지께서는 상병으로 전역을 하셨는데, 왜 여기에 이등병으로 써져있나요?”

직원은 명패를 살펴보고는 입을 열었다.

“사실 이런 일이 드문 게 아닙니다. 그때 전쟁이 여간 치열했어야 말이죠. 당시에 이런 계급 같은 걸 일일이 기록할 시간조차 없던 때가 많았습니다. 어떤 분께서는 상관이 모두 죽는 바람에 현장에서 몇 계급씩 진급을 했는데도 공식적으론 여전히 말단 병사였던 적도 있습니다. 아버님도 비슷한 일이 아닐까요?”

그 말을 듣고 주위를 조금 둘러보았다. 과연 근처 납골당엔 할아버지와 같은 부대인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친구가 하나 둘 죽어 나가고, 혼자 살아 돌아왔다는 그 말이. 명령을 내릴 상관들도 모두 죽고, 같이 전쟁터에 나갔던 친구들도 모두 죽어 없어진 그 상황에, 홀로 남아 허울 뿐인 계급만 받고 상처까지 받아 돌아온 셈이었다. 목숨 바쳐 지켰던 나라는 할아버지의 고통을 들을 생각조차 않고, 얼마 되지 않는 푼돈과 되도 않는 리본 하나만 주고 말았다.

그런 명예 따위, 전쟁 따위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게 당연한 일이었다. 사랑하는 손자라고 해도, 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도저히 버틸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내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셨던 이유는, 만약 또다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자신처럼 헛된 공명심을 품고 전장에 나가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금 와서는 그런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지금은 그저,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목숨 바쳐 지키셨던 그 땅에서 편안히 쉬시기를 바랄 뿐이다.






실제 참전용사셨던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조금 각색해서 써봤음

저 납골당 이야기는 진짜 있던 이야기임. 그만큼 한국전쟁이 치열했다는 이야기겠지

솔직히 이렇게 길게 쓸만한 이야기는 아닌데 어거지로 늘여서 좀 보기가 안좋을거같다

더 좋은 작품 많이 나왔으면 좋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