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수대의 스토리는 이세계 출신 주인공이 세계의 법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진행됨.

주인공의 최종 각성형태가 진리의 열쇠 였던것도 그러함.


모든것을 정의할 수 있었던 용의 노래는 무한의 마왕을 쓰러트리지 못했음.

용의 노래는 폭력적인 방식임.

용의 노래는 강제로 상대를 규정하는 힘이지.

하지만 무한은 규정할 수 없는존재.

때문에 억지로 형질을 주려 해도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봉인이란 방법밖에 없었던거임.


지수의 진리의 열쇠는 무한의 마왕을 쓰러트린게 아님.

무한의 마왕의 근본된 힘은 무한이란 미지에 대한 두려움임.

실제로 리바이어던의 힘은 두려움으로 증폭된다고 나왔지.

지수가 택한 방식은 수용임.

인간이 무한을 모른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너를 받아들이겠다.

그것은 말 그대로 진리의 열쇠지.

모른다는걸 인정하지 않으면 진짜 진리를 볼 수 없으니까.

무섭다고 그릇되게 측정할 수록 더 무섭게 어긋날 뿐이니까.


그 결과 무한의 마왕은 수학의 법칙 아래에 수용되면서 마왕이 아닌 신대륙이 됨.

공포로서의 미지가 아닌 도전하고 알고싶은 미지가 되는거지.


지수와 그 친구들이 전대 용사 일행과 달리 성공한것도 이 수용에 있음.

나눗셈의 신관인 카심과 리샤의 차이가 그러함.

카심은 끝없는 빛을 추구하다 결국 스스로를 희생함.

반면 리샤는 한번의 타락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수용하게 됨.

그 둘은 똑같은 헌신의 빛이지만, 카심은 헌신에 잡아먹혔고, 리샤는 자신과 세상 모두에 헌신을 할 수 있게됨.


진짜 학습만화에 이런 서사와 철학을 담아냈다는게 너무 신기하고 이런걸 볼 수 있었다는게 존나 좋은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