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혁이가 사흘 뒤에 입대라고?"


말년 휴가를 나와 본가에 들린 나는 동생의 입대 소식을 들었다.


"어. 그래서 지금 밖에서 지 친구들이랑 놀고있잖냐."


"나도 사흘 뒤에 전역인데?"


"그러게 말이다. 어떻게 큰 아들 전역날이랑 작은 아들 입대날이 겹치냐."


엄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하긴, 나 훈련소 들어갈때도 별 반응 없었으니 당연하겠지만.


"그래서, 나도 사흘 뒤에 전역하고 바로 논산으로 가면 되는거야?"


"아니, 창원으로 와라."


창원에 신교대가 있던가?




-띠리릭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대화의 당사자인 동생, 박진혁이 들어왔다.


"다녀왔습니ㄷ... 형?


현관에서 신발을 벗던 동생은 탁자에 앉아있던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하긴, 쟤도 나도 시간이 안 맞아서 못 본지 1년은 됐지. 


"어, 왔냐?"


"뭐야, 형 전역이야?"


"아니, 말년 휴가. 찍턴해야돼."


"그 휴가 갔다가 전역날에 돌아가서 전역하고 나오는거? 형 휴가가 남아있기는 했어?"


그 말대로. 나는 자대에서 온갖 미친짓은 다 해서 휴가가 족족 잘렸었지.

생각해보니 영창 안 간게 신기하네. 


"그래도 말년 휴가는 남아있더라. 사흘 뒤에 전역이다."


"난 사흘 뒤에 입대인데?"


"이미 들었어. 그래서 창원에 신교대가 있긴 하냐?"


내가 알기로 창원에는 신교대가 없을텐데.


"아, 나 육군으로 입대하는거 아냐. 해군으로 입대할거라."


"해군? 해군은 배 한번 타면 몇 개월은 배에 있어야 한다던데, 버틸 수 있겠냐? 휴가도 마음대로 못 나오잖아."


"내 꿈이 군함 한 번 타보는 거였잖아. 이번에 소원 성취 하는거지 뭐."


대화를 하다보니 동생의 왼손목에 있는 시계가 보였다.

비싸지도 않은, 수수한 디자인의 시계였다.


"야 너 그 시계 아직도 차고있냐? 하나 새걸로 사줄까? 군대에서는 전자시계 아니면 불편해."


"됐어, 아직 쓸만한데, 형이 사준거기도 하고."


"그럼 됐고, 그래서, 입소 시간은 언제야."


"2시. 올 수 있어?"


"되겠네."


"아, 그리고 우현이 형이 형 휴가 나오면 약속잡으라는데, 형 몸에 알코올을 들이 부을 기세였어."


제발, 그 새끼는 대체 어떻게 술을 매일 마셔도 정상이고, 또 왜 신검 5급인데? 진짜 졸라 부럽네.


"내일 보겠다고 약속 잡아야겠네. 걔는 남는게 시간이겠지. 어쨌든 준비 잘 하고, 난 피곤하니까 잔다."


그때 엄마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나에게 말했다.


"아, 맞다. 진우 네 방에 침대 없다. 이사오면서 낡은 가구들은 싹 다 버렸어."'


잠 좀 편하게 자려고 집으로 온건데 침대가 없다니. 세 달전에 이사했다고 말할 때 대충 예상은 했다만.

어쩔 수 없이 방바닥에서 쓸쓸하게 자야겠다.




***




전역 이틀 전에 나는 몸에 흐르는 피가 소주가 되는 듯한 경험을 했고, 그날 먹은 안주들과 다시 인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이틀을 정신없이 놀다보니, 전역날이 되었다.

전역신고를 한 뒤 모포에 말려 돈가스에 들어가는 돼지 앞다리살이 된 듯한 경험을 하고선 창원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군복 입고 훈련소를 또 가다니, 재입대하는 느낌이 들어서 싫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창원역에 도착했다.

역 벤치에 앉아 엄마와 동생을 기다렸고, 얼마 안가 도착한 엄마와 동생을 만나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훈련소로 가 동생을 배웅해 주었다.


"다치지 말고, 몸 조심해야된다."


"걱정마, 엄마."


"내가 입대할 때는 그런 말 하나 안해줬으면서...!"


"너랑 진혁이랑 같아? 사고만 치던 너랑 진혁이는 다르지."


"서운하네, 어쨌든 고생해라."


"응, 형. 다녀올게."


거의 1년간 연락을 안해서 그런지 예전과는 다르게 조금 서먹했다. 예전 같으면 장난치면서 배웅할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입소식이 끝났고 나는 엄마와 함께 집에 돌아가는 열차를 탔다.

그 녀석은 군대에서도 잘 하겠지. 뭐든 열심히 하는 동생이었으니. 




***




전역을 하자마자 나는 일자리를 구했고, 동생은 한 달여 간의 훈련소 생활을 끝냈다. 2함대 초계함에 탄다나 뭐라나.


직장에 취업하는데 성공한 나는 잠시 다른 지역으로 가 직장 생활을 해야 했다.

그렇게 6개월정도 근무한 나는 매일같이 야근을 했고, 그 날도 밤까지 혼자 남아 잔업을 처리하던 중이었다.

반쯤 자며 문서를 작성하던 나에게 갑자기 걸려온 엄마의 전화. 이런 시간에 전화하는 엄마가 아닌데,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전화를 받으니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우야... 진혁이가... 진혁이가..."


"엄마, 왜 그래? 진혁이가 왜? 무슨 일 생긴거야?"


"진혁이가 타고 있던 배, 배가 침몰했대..."


그 말을 듣자마자 불안한 감정이 머리를 뒤덮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살아있겠지, 살아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지, 진혁이는, 진혁이는 어떻게 된거야..."


그렇게 말하는 내 목소리도 좋지 않은 감정에 떨려왔다.


"아직 소식이 없어... 엄마는 너무, 너무 무서워서..."


"내가 택시타고 내려가 볼게. 괜찮아 엄마. 진혁이 괜찮을거야."


전화를 끊은 나는 정신없이 짐을 챙겼고, 진혁이가 타던 배가 침몰했다던 위치의 근처로 내려갔다.




***




그 때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물어물어 현장 근처에 도착한 나는 주둔하고 있던 해경들에게 상황을 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고, 울고를 반복했었던 기억 밖에는 없다.


쉰 여덟명이 구출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진혁이의 이름은 없었다.

엄마는 혼절했고, 깨어난 뒤에도 한참을 울다가 지쳐 잠들었다.

언론에서 이번 사건은 북한의 소행이다 뭐다 하며 떠들어 댔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회사는 잠깐 쉬겠다고 사장님께 말씀드렸고, 엄마와 나는 진혁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며칠 뒤, 진혁이는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다.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내가 고등학교 졸업 때 사준 시계를 차고 있어 알아볼 수 있었다.


-졸업 선물이다. 그리 비싼 시계는 아니지만.

-고마워, 형. 근데 난 아무것도 못 해줬는데...

-대학 졸업하고 취직한 뒤에 줘도 안늦는다.


그 시계를 보자마자 그동안 참아왔던 울음이 터졌다.

누워있는 진혁이 앞에 무릎을 꿇고, 한동안 눈물만 흘렸었다.



***



진혁이와 그 동료분들의 영결식이 이루어졌다.

나라를 지키다 세상을 떠난 분들은 현충원에 안치되었다.

동생의 유품을 전달받은 엄마는 상자를 끌어안고 울었다.


지쳐 잠든 엄마를 거실에서 안방으로 옮기고 나는 거실 바닥에 앉았다.

왼쪽 시야에 보인 현관의 문을 열고 아무렇지 않게 진혁이가 돌아올 것 같았다.

아니, 돌아왔으면 했다.

그러게 군함타는게 뭐가 꿈이라고 해군에 입대를 했을까.

그러다 문득 기억 깊은 곳에 있던 나와 진혁이의 대화가 떠올랐다.


아마 초등학생 때 였을 것이다.

동생과 내가 티비에 나오는 영화를 보고있었다.

영화에서 웅장한 항공모함과 군함이 전쟁을 치루는 장면을 보고 나는 어린 날의 꿈을 정했었다.


-진짜 멋있지 않냐? 저런 군함을 타고 바다에서 적들이랑 싸우는거야!

-저런거 타려면 해군이 돼야지. 형은 해군이 꿈이야?

-응. 이제부터 난 해군이 꿈이야.

-하하, 그럼 만약에 형이 해군이 못 되면 내가 타야지.

-못 되면이 어딨어? 난 해군이 될거라니까?


하지만 점점 자라면서 꿈은 잊어버리고 학창시절에는 사고만 치면서 살았었지.


"진혁이는... 내 꿈을 대신 이루려고 했던거였구나..."


내가 뭐라고, 그냥 어렸을 때 꿈이 뭐라고.

미련하게 느껴졌다. 바보같았고, 허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무언가에 홀린듯 집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사고가 났던 위치 근처의 항구로 가서 방파제에 걸터 앉았다.

진혁이의 시계를 쥐고 밤 시간대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모두 꿈이었다는 듯 진혁이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랐다.

꿈에서 깨어나면 휴가를 나온 진혁이가 눈 앞에 있기를 바랐다.

다시 진혁이를 볼 수 있기를 바라며, 한 교수님이 쓰셨다는 시를 읊었다.



"772함 나와라."


뭐든지 열심히 하는 녀석이었다.


"온 국민이 애타게 기다린다."


사소한 것에 웃고,


"칠흑의 어두움도"


슬픈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던,


"서해의 그 어떤 급류도"


그런 동생을 다시 보고싶다는 마음을 가졌다.


"당신들의 귀환을 막을 수 없다"


마지막 말을 내뱉고 싶었지만, 목에서 한번 삼켜져 나오지 않았다.

시계를 쥔 손에 힘을 주고, 참았던 울음과 함께 쥐어 짜듯이 말했다.


"작전지역에 남아있는 772함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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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는 천안함 피격사건 추모시인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 입니다.

호국영령 대회 공지를 보았을 때 부터 생각한 소재입니다.

제 주변에 천안함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어떤 방법으로든 알리고 싶어 쓰게되었습니다.

나라를 지키신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올리며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