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민간인?"

"예, 2소대가 민간인들을 마을 한 쪽으로 모아뒀습니다. 미처 피난가지 못한 이들 같습니다."

바짐 대위는 피우던 담배를 해치 밖에 버렸다. 바닥에 고인 흙탕물 때문에 담배불은 알아서 꺼졌다. 그는 레프 소위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봤다.

"뭘 당연한 걸 묻고 있나 소위. 늘 하던 대로 하게. 다른 소대장들한테 재정비 후 1530에 출발한다 전하고."

"예, 알겠습니다."

레프 소위는 그에게 경례를 한 뒤 지휘장갑차를 나섰다. 소위가 뭐라 지시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몇몇 병사들이 전투식량을 챙겨 그의 뒤를 따랐다.

바짐 대위는 탁자 위에 놓인 작전지도를 바라보며 중대의 이동 방향을 생각했다. 어제 적 포격으로 인해 재수없게도 모니터가 고장나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번 작전이 끝나면 꼭 수리를 받으리라고 다짐하던 때에 누군가 다가왔다.

"브라시이 소위, 무슨 일인가?"

"중대장님, 정말로 민간인들에게 전투식량을 나눠줍니까?"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브라시이 소위에 소리에 바짐 대위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바보같은 명령을 자신은 내린 적도 없었다.

"더 자세히 말해보게. 그게 무슨 소리인가?"

"좀 전에 레프 소위가 소대원들과 전투식량을 들고 이동하길래 무슨 일인지 물으니 민간인들에게 식량을 주겠다고 하길래..."

브라시이 소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심 대위는 탁자 옆에 꺼내뒀던 권총을 챙겨 지휘장갑차 밖으로 나갔다. 소위가 다급하게 그의 뒤를 따라갔다. 대위는 씩씩거리며 주변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3소대! 정비 작업 중단하고 총 챙겨서 따라와! 밧줄이랑 공구들도 같이 가져오고!"

막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한 머저리들은 현실을 모른다. 머리가 온통 꽃밭이라고. 바심 대위는 그리 생각하며 한 건물로 향했다. 건물 입구엔 병사 둘이 서있었는데 그들이 경례하는 것도 무시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

"가관이군. 대체 뭐 하는 건가?"

"중대장님. 그러니까... 민간인들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너 지금 미쳤어?! 내가 뭐라 했는지 기억 안 나나? 늘 하는 대로 하랬지 누가 식량을 나눠주라고 했나!"

바심 대위가 주변을 돌아보니 열댓명 정도의 사람들이 서로 감싼 채 모여있었다. 이 바보같은 놈은 아까운 식량을 나눠주려고 했음이 틀림 없었다.

"잘 듣게 소위. 우리가 저들에게 줄 건 밥이 아니야. 이거지!"

대위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민간인들에게 겨눴다. 그들 중 가장 선두에 있던 중년 남성과 눈이 마주치고, 어두웠던 실내가 순간 밝아졌다.

탕! 하는 사격 소리가 대위의 귀를 잠시 먹먹하게 했지만 잠시 뒤 들리는 건 떨어진 탄피의 맑은 소리와 불쾌한 비명. 권총에선 윤활류 냄새와 화약 냄새가 흘러 바심 대위의 코를 채웠다.

"그래, 이거라고." 레프 소위는 대위의 목소리가 마치 생일선물을 기대하는 아이처럼 신난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들뜬 표정의 소년이. 아니, 바심 대위가 레프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저들이 지금까지 피난가지 않았겠나? 그건 저들이 네오나치의 추종자기 때문이야. 선량한 척, 불쌍한 척 연기하다 우리 뒤에 칼을 꽂고 총질하는 나치 찌꺼기들이라고!"

그의 말이 끝나고 권총이 다시 불을 내뿜었다. 이번엔 흰 머리가 가득한 어느 할머니가 말 없이 쓰러졌다. 흰 머리카락은 어느새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레프 소위가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자 대위의 손이 그의 얼굴을 웅켜쥐었다. 증오가 실린 가죽장갑에서는 화약냄새가 풍겼다.

"똑똑히 보라고. 저것들은 사람이 아니야. 사람인 척 하는 더럽고 역겨운 짐승들이라고."

아버지라고 울부짖으며 피흘리는 남성을 붙잡고 있는 여성. 새빨갛게 물든 할머니를 찾는 두 아이들. 움직이지도 못하고 얼어붙은 채 있는 가족들. 이 모든 게 소위의 눈에 보인 것들이었다.

그들은 짐승이라기엔 너무 인간적이었고, 네오나치라고 하기엔 너무 평범했다. 레프 소위의 눈에 보인 그들은 쓰레기가 아니었다. 극단주의자도, 짐승도 아닌 그의 고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사람이었다.

"브라시이 소위!" 바심 대위는 브라시이 소위를 부르더니 한 가지 명령했다.

"여기 지하실이 있는 거 같던데, 이 버러지들 데리고 내려가게. 마침 여자들도 꽤 있으니. 소대원들이랑 같이 공구 갖고 재미 좀 보라고. 어디 잘라버려도 상관없네."

"예, 알겠습니다!"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한 브라시이 소위는 병사 몇몇과 함께 민간인들을 포박하더니 지하실로 끌고 같다. 지하실로 내려가던 병사 중 하나는 벨트를 풀고 있었다.

"레프 소위. 그딴 위선은 집어 치우라고. 이것들은 어머니 조국에게 총을 겨누고 자기 동족들을 죽인 쓰레기들이야. 동정 따윈 필요 없지. 내 말을 이해했다고 믿네."

레프 소위는 그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어떠한 반항심도 없이.

"좋아! 이제 가봐도 되네. 원한다면 자네도 즐길 수 있겠지만... 딱히 원하는 눈치는 아니군. 가서 몸 좀 추스르게."

힘겹게 경례를 한 후, 레프 소위는 그 저택을 떠났다. 그는 멍하니 마을을 돌아다니다 어느 반파된 집을 발견하곤 그곳으로 들어갔다. 거실은 깨진 유리창과 어지러진 가구들로 난장판이었지만 소위는 신경 쓰지 않고 흔들의다에 앉아 눈을 감았다.

곧 눈을 뜨자 떨어져 있는 액자가 보였다. 삐걱거리는 의자에서 일어나 액자를 들자 유리조각이 떨어지며 적막한 집에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액자에는 웃고 있는 한 가족의 사진이 있었다.

그들 중 아들로 보이는 이는 레프 소위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그는 뭘 하고 있을까? 레프는 생각했다. 이 가족은 무사히 피난을 갔을까? 그는 자신의 가족을 떠올렸다가 고개를 저었다. 정말 이들이 네오나치인가? 소위는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아니야." 레프는 스스로에게 답했다. 그들은 네오나치가 아니었다. 어쩌면 네오나치는...

뒤를 돌아보자 금이 간 거울에 소위의 얼굴이 보였다.

"나치는 누구지?" 레프 소위가 물었다. 답은 없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5/0003209998?sid=104
귀 잘리고, 치아 뽑힌 시신들 쌓여있다…러軍 잔혹한 고문실

이 기사 보고 생각나서 적은 소설
누가 장편으로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