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력을 지닌 인간들 중에서도 특수하게

정령과 계약이 가능한 인간이 존재한다.

정령과의 계약은 일생에 단 한번 뿐인 기회이며

보통 성인식 전후로 발생하지. 이렇게 계약한

정령은 계약을 통해 정령계에 존재하는 자신의

실체를 현실계에 구현화하여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정령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교제

73페이지에 정령의 형태와 종류에 대해 정리해

놓은 표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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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령이다.

그것도 인간과 계약한 정령.

많은 사람들은 정령에게 선택받은 인간을 보고

부럽다고들 하지만 사실 그건 틀린 말이다.

정령은 인간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특정 인간에게

이끌리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질색하는 정령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과 계약해서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은

정령계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나 또한 정령계에서 처음 눈을 뜬 이후로

인간계에는 일절 관심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눈은 인간계의

한 여인을 쫒고 있었다.

마치 운명에 이끌리듯이 말이다.

머지 않아 나는 그녀에게 계약을 요청했고

그녀는 이를 수락했다.


그렇게 나는 정령으로서 그녀의 동반자가 되어

사람들에게 데스나이트라고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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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내 계약자는 뭐라고 할까

무척이나 차가운 사람이었다.

귀족집 영애인데다 아카데미 수석인지라

조금은 우쭐할 법도 한데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을

가시를 세우며 거절했다.


하지만 그런 주제에 눈물은 또 많아서

가끔 자신의 방 서랍 속에서 사진 한장을

몇 시간이라도 쳐다보며 눈물을 흘린다거나

또 한번은 내가 불의의 사고로 인해 한동안

힘을 회복하느라 인간계에 가지 못했을 때

오랜만에 나를 만난 그녀가 나를 껴안고

펑펑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나름 위로해주려 했는데 언데드류의 정령은

말을 할 수가 없어 잠자코 가만히 안겨있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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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가 정령을 인간계에 구현화하지 않은 상태일

때 정령은 일반적으로 정령계에 가있거나 계약자

주변에 영체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


그 날 밤은 정령계에 있기만 심심해서 그녀

곁에서 영체 상태로 떠돌며 인간이 자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녀가 악몽이라도 꾸는 듯

땀을 뻘뻘 흘리며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어느 순간 나는 실체를 가지고

발을 땅에 딛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꿈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나를 구현화 시킨 것 같았다.


땀을 몇번 닦아주고 그녀의 손을 잡아주니 곧 다시

평온한 얼굴로 자기 시작했다.

구현화의 일반적인 해제는 계약자의 의지로

이루어진다. 즉 그녀가 꿈속에서 잠꼬대하는게 

아닌 이상 아침까지는 이렇게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계약으로 인해 인간계에서는 계약자로부터

일정 거리 이상 멀어질 수도 없다.

1시간 좀 넘게 멍을 때리던 나는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나름 신사적인 정령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그녀의 서랍이다. 일전에 저 서랍 속의 사진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던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시끄럽지 않게 조용히 서랍 아래층을 열어보니

그곳엔 책이 한 권 놓여있었다.

'정령의 기원과 그 발자취'

책을 집어들어 보니 상당히 오래되고 고급진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다. 아카데미 도서관에서

볼 법한 그런 류의 책이 아니라 아무래도

꽤나 가치있는 고서인듯 했다.


책 중간에 책갈피처럼 삐죽 튀어나와 있는

부분이 있어 펼쳐보니 찾고 있던 사진이 책에 반

접힌 채로 끼워져 있었다.

사진을 빼서 꺼내는데 문득 사진이 끼워져 있던

페이지에 눈이 갔다. 그 페이지의 대부분이

여백이었지만 정중앙에 붉은 글씨로 한 구절이

적혀있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그대여, 죽은 그 사람은

죽음의 기사가 되어 영원히 그대 곁을 지킬 것이다'


......죽음의 기사? 데스나이트?

그 구절에 의아해진 내가 사진을 펼쳐보았고



....이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사진 속에는 자신의 계약자와 한 남성이 서로

껴안은채 행복한듯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환히 웃고 있는 그녀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람인것만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남성의 얼굴이

분명 처음보는 얼굴임에도

너무나 익숙해서

........마치



그 순간 내 눈 앞에 이상한 장면이 펼쳐졌다.


굵은 비가 내리는 와중 여기저기에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 속에는

피를 흘리면 죽어가는 '나'를 껴안고 통곡하는

그녀가 있었다.



그 순간 내 전생의 기억이 돌아왔다.

















다 쓰고 보니 먼가 이미 있을 법한 소재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