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누렁이와 흰둥이는 오프라인에서 만나 칵테일 한잔씩 나눠 마시며 서로의 작품세계를 토론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



그들은 같은 작업실에서 서로의 글을 비평해주면서 같이 야설데뷔를 준비했었지만, 변변한 연재경력도 없는 누렁이는 프롤로그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슬럼프에 빠져들었고 흰둥이는 팬픽을 연재하던 경험을 살려 야설 사이트에서 호평을 받으며 퍄퍄 머꼴 소리를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소설을 연재하느라 바빠진 흰둥이는 심마에 빠진 누렁이를 케어해줄 여력이 없었고 결국 누렁이는 슬럼프에 늪에 빠져 글자 하나 적지못하고 웹소설이나 읽는 망생이가 되고 말았다.


누렁이가 그렇게 바닥없는 망생이의 늪에 빠져드는 동안 흰둥이의 야설은 많은 인기를 끌었고 정산금을 보여주며 오늘은 소고기를 먹자고 하는 흰둥이의 티없이 밝은 웃음을 보며 누렁이의 심장은 자신도 모르게 싸늘하게 식어갔다.


이후 둘의 관계는 겉으로는 이전과 같다고 여겨졌지만 실상은 언제 파탄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둘의 관계가 완전히 파탄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흰둥이는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낼 캐빨장면을 연출하고 싶어했고 당연히 자신의 작품세계를 가장 깊게 이해하던 누렁이에게 조언을 구했다.


'얘는 가슴이 크니까 더 키우고 얘는 빗치같이 생겼으니까 빠르게 대주면 좋겠다.'


심마에 시달린 누렁이는 본연의 총기를 잃은지 오래였고 그런 그가 흰둥이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이렇게나 조악한 것 뿐이였다.


'그래 그거야! 가슴은 무겁게 보지는 가볍게!'


하지만 흰둥이는 누렁이의 조악한 조언에서 답을 찾아내었다.


'심장을 울리고 발기시켜 거유라 그러니, 거유 쿨데레. 바람을 초월하여 무엇보다 빠르게 주인공에게 다가간다. 그러니, 처녀빗치. 가슴은 무겁게, 보지는 가볍게.'



이 문장을 본 누렁이에게, 자신이 더 이상 흰둥이를 뛰어 넘을 수도, 따라 잡을 수도, 이해 할 수도 없다는 사실은 충격이였고 흰둥이의 목을 조른건 그런 자신도 이해 할 수 있는 충동이였다.


흰둥이에게 자신의 불합리한 충동을 모조리 쏟아낸 누렁이는, 자신의 정신을 흐리게 만들던 심마에서 벗어났다는걸 느꼈고 다시 흰둥이를 이해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후, 그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대신 소설을 연재하며 누렁이는 점점 흰둥이에 가까워졌지만 그럼에도 완전한 흰둥이가  될 수는 없었다.


'가슴은 무겁게 보지는 가볍게'


흰둥이의 껍데기를 뒤집어썼지만, 여전히, 누렁이는 이 문장을 이해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