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듯 쉴새없이 굵은 눈이 펑펑 쏟아지는 한겨울의 철원. 


 그곳은 한때 스스로를 미륵이라 칭한 미치광이가 다스린 태봉국의 도읍지로써, 고려의 시조가 그를 무너뜨린 이후 수백년간 버려져있었다. 그 버려진 도시의 중심부의 썩은 목재의 악취마저 얼어붙은 폐허에 두 개의 인영이 나타났다.


 두꺼운 승복을 몸에 두르고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막아줄 삿갓을 뒤집어써 얼굴이 반쯤 가려진 중년의 사내와 거침없이 걸어가는 그를 힘겹게 따라가는 무관복을 입은 한 사람의 청년.


 그런 초라한 행색으로 강행군을 하는 두 사람의 정체는 다름아닌 고려의 왕인 왕철과 그를 쫓아온 하급 무관이였다.


 일국의 왕. 그것도 지금 이순간에도 전 국토를 유린당하고 있는 왕이 변변한 호위부대도 없이 눈내리는 폐허를 방황하고 있을거라고는 몽골의 병사들도 예상하지 못한것이 왕철의 유일한 행운일 것이다.    


"폐하, 어찌 이 위험한 장소까지 직접오신것이옵니까, 빨리 강화로 돌아가시옵소서."


"지금 이 장소에서 칸의 병사들에게 사로잡히나 그 감옥같은 궁에서 최씨 가문의 병사들에게 감시당하나 위험한건 똑같다. 돌아갈거면 자네 혼자 돌아가게."


"아이고, 어찌 폐하를 두고 저 혼자 돌아간단 말이옵니까, 그나저나 그 서적은 대체 뭡니까? 그게 대체 뭐길래 이리 위험한 곳까지 홀몸으로 오신겁니까?"

 

"직접 보면 알걸세. 아 마침 도착했군."


 그리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 어쩌면 왕철 자신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는 그의 유일한 호위무사가 갑주 위를 덮은 도롱이를 한껏 더 여미며 환궁을 간언했다.


 사실 그 호위무사마저도 한밤중 몰래 강화도를 빠져나가던 왕철의 고깃배 밑전에 달라붙어 따라온 것으로, 왕철은 그를 귀찮게 여겼으나 그가 꿋꿋이 자신을 따라오자 반쯤 포기하고 그의 동행을 묵인하고 있던 것이다. 


  끝까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며 보필해온 그 무사가 안전을 위해 돌아가자 애원해도 왕철은 그저 빙그레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한때 대전으로 쓰였던 폐허의 왕좌에 다다라서야 발걸음을 멈춘 왕철은 그것에 앉아 품에 끼고있던 책을 펼쳤다.


"자네는 모르겠지만 사실 이 땅에는 저 야만적인 몽골의 기마들을 일소시킬수 있는 무기가 세가지 있었다네."


"세.. 세가지나 있단말입니까?! 그런데 왜 최우 장군은 여태까지 그 무기들을 쓰지 않았단 말이옵니까?"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지. 첫번째는 신라의 왕들만이 쓸 수 있었던 신물 만파식적  두번째는 신라를 수호하는 용의 가호. 허나 만파식덕은 효소왕때 잃어버렸고 용의 가호 역시 함께 사라졌네."  


"예? 만파식적을 되찾은것이 아니였습니까? 그래서 만만파파식적이라고 이름을 고친줄로 알았사옵니다만..."


"그건 위조품이였네."


"그럼 마지막 하나는 무엇이옵나이까?"


"지금 바로 볼 수 있을걸세."


 왕좌에 앉은 왕철이 자신의 곁으로 오라고 손짓하자 그 옆으로 다가간 호위무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칸의 군대를 막을수 있다는 세가지 무기에 호위무사는 귀를 쫑긋 세웠으나 이내 전설속의 물건의 이름이 나오자 호위 무사는 내심 맥이 빠져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것을 눈치챈 왕철은 빙그레 웃으며 곧 마지막 하나를 볼 수 있을거라며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


"이게 무슨...음? 이게 무슨소리지..."


투콰아앙!!


"우왓?! 폐, 폐하 위험합...어? 이 투명한 막은 대체..."


"----!!--!!!----!!!!"


 왕철이 소중하게 품고있던 서적의 정체는 다름아닌 불경이였다.


 이런 폐허까지 와서 불경따위를 외우는 자신의 주군의 모습에 호위무사는 한숨을 내쉬며 이게 무슨 꼴인가 중얼거리던중 땅밑에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자 칼을 뽑으며 경계했다. 


 이내 콰앙하고 벽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돌로 이루어진 기둥이 솟구쳐 올라왔고 무너진 바닥의 파편이 왕좌를 향해 날아오자 호위무사는 왕철의 앞을 가로막았으나 그의 충성심의 발로가 무색하게 왕좌 앞에 펼쳐진 투명한 막에 부딫혀 파편이 잿더미로 변했다.


 이에 호위무사는 얼이빠진 표정을 지었으나 왕철은 그 상황에도 마치 주문을 외우듯 경전을 읽어내려갔다. 분명 몹시 빽빽하게 글이 적혀진 서적이였으나 왕철은 백을 세기도 전에 그 책의 내용을 모두 읽어내렸다.


 그와 동시에서 솟구쳐 올라오던 그 기둥, 돌을 깎아만든 산과 같은 크기의 거대한 승려가 대전의 폐허를 무너뜨리며 땅위에 선 것을 확인한 호위무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건 대체.... 승려..?"


"칼을 집어넣게. 이것이 바로 칸의 군사들을 몰아낼 최종병기이니... 그 이름은 호국거승 대미륵(護國巨僧 大彌勒)!!! 북벌의 망집에 사로잡혔던 미치광이가 스스로를 본따서 만든 병기일세."


"호국거승...이요?"


"그래, 이 호국거승의 힘으로 나는 국토를 유린하는 저 야만인들과 왕실을 능멸하는 최씨 정권을 무너뜨릴 생각이라네.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나와 동참하겠나 아니면 이대로 나를 죽여 저 거승을 최씨 가문에 바치겠나? 원하는대로 하게."


"저는 앞으로 영원토록 폐하를 따를 뿐입니다."


"현명하군."


 황금으로 만들어진 승복을 입은체 마찬가지로 황금으로 만들어진 석장을 짚고 한쪽 눈을 가린,  맨들거리는 민머리의 돌로 만들어진 거인이 나타나자 호위무사는 칼을 빼들어 거인을 겨누었다


 그런 호위무사를 만류하며 그 거인의 정체를 설명한 왕철은 이내 자신은 거승의 힘으로 몽골뿐 아니라 최씨들도 모조리 척살할 것을 천명하였고 누구의 편에 설 것인지를 물었다.


 이에 호위무사는 단 한차례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칼을 건네며 왕철을 향해 무릎꿇었고 이에 왕철은 피식 웃으며 그를 칭찬했다.


"---!!!"


"이런! 저 거인을 보고 칸의 군사들이 오고있습니다! 어서 물러나셔야 합니다."


"아니, 저정도면 거승의 힘을 시험하기에 충분하지. 그럼. 네 힘을 보여봐라 대미륵이여!!"


[~~~!!!]


 투콰아아앙!!


 그러던중 폐허에서 일어난 소란에 수십기의 군마가 그쪽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자 호위무사는 왕철을 데리고 자리를 피하려했다.


 하지만 왕철은 그를 만류하며 대미륵에게 공격명령을 내렸고 그 명령에 따라 대미륵이 들고있던 거대한 석장의 끝에 빛이 모이더니 일제히 몽골의 기마부대가 달려오던 장소로 쏘아졌다.


 그렇게 궁궐 안까지 널아온 흙먼지가 걷히고 그들의 시야에는 거대하고 깊은 구덩이만이 남았다.


"후후후... 후하하하하!! 보아라! 단 한번의 공격으로 수십의 군마가, 아니 지형이 바뀌어버렸구나! 이 병기만 있으면 우리 고려가 이 세상을 지배할것이다!"


'이것이 황제폐하의 힘인가...!'


"황제폐하 만세! 만세! 만세!!!'


 그 압도적인 파괴력. 그야말로 신(神)의 힘이라해도 과언이 아닌 압도적인 힘에 왕철은 눈가에 힘줄이 생길정도로 눈을 부라리며 광소하기 시작했고 호위무사는 전율하며 자기도 모르게 황제에게 절을 올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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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가 북벌하려고 거대병기 만들다가 왕건이 쿠데타 일으키고 봉인한 병기를 후손이 깨움.


몽골도 저런 거대 늑대 석상병기 있었는데 자무카가 부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