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무신 나레이션 목소리)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 철없던 기철이도 어느덧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된 기철이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닐려고 했으나 시험을 망쳐 지방에 있는 작은 대학으로 가게 되었고, 학교를 따라 지방으로 가 독립하게 되었다.



"기철아, 도시락 쌌으니 기차에서 먹으렴.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언제든 연락하고..."


"아이고 내 손주, 이 할미 우리 기철이 없으면 심심해서 어떡하나..."


"감사합니다, 어머니. 가끔씩 놀러올테니 울지마세요 할머니. 기영아, 나 없는 동안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잘 챙겨드려라."


"응, 알겠어 형."


"인석, 누가 누굴 챙겨. 너야말로 엄마랑 아빠 걱정하시키지 말고 몸 조심해라."


"오빠, 자주 연락해야 해!"


"그래, 오덕아. 오빠가 자주 연락할게. 땡구 너도 잘 있어라."


"멍, 멍! 가서 사고나 치지 마셩!"



먼 곳으로 가는 기철이를 향한 가족들의 배웅은 차가운 현실도 잠시 잊게 해줄만큼 따뜻했으나, 낯선 기차에 몸을 실은 기철이에게 닥칠 앞날은 보릿고개 겨울 바람보다 차갑고 매서웠다.



대학교는 건물이 낡아 이곳저곳 금이 가고 가끔 불도 나갔으며, 교수들의 성질은 며칠을 굶은 진돗개처럼 사납기 그지없었다.

그런데도 학비만큼은 명문대와 엇비슷하여 학생들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낡은 고시원은 다행히 대자로 누울만큼 컸고 작은 책상과 낡은 스탠드로 밤에도 공부할수 있었으나, 여름에는 습하고 겨울에는 추우며 옆방에 중년부부가 매일 소리 지르며 싸우는 소리에 공부하기도 힘들었다.


거기다 학비와 집세를 위해 매일 공사장을 돌아다니며 막노동을 하기까지 하니, 몸에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야 이기철. 너 또 자냐? 그러다 또 대머리 교수가 점수 깎겠다."


"깎으라고 해, 하아... 넌 좋겠다, 부모님이 학비 다 대줘서... 난 학비 벌려면 벽돌을 몇번이나 날아야 하는지 원..."


"너 허린 괜찮냐? 어우, 파스냄새. 아주 그냥 등에다 파스를 심는구나 심어."


"말도 마, 아버지가 어땠는지 뼈 뿌러지게 느끼고 있다....  근데 오늘은 왜 이리 사람이 없냐?"


"짜식, 그거 못들었어? 오늘 밤에 우리 학교랑 옆에 학교 사람들이랑 술 마시기로 했잖아."


기철이가 다니는 대학교 근처엔 대학교가 한 곳 더있었는데, 거리도 가깝고 교류도 잦아 가끔씩 양쪽 학교 학생들끼리 모여 술을 마시기도 하였다.


"쯧쯧, 학생이면 학생답게 공부나 할 것이지 다들 긴장 풀려서는.."


"넌 안 갈거냐? 노는 애들 다 온다던데."


"뭐야, 너 꼭 간다는 것처럼 말한다?"


"가야지, 너도 와. 재밌을걸?"


"됐어 임마, 학점 관리할려면 오늘부터 빡세게 공부를.."


"거기 복순이랑 예나랑 잘나가는 애들 다 간다는데?


"....."


어른이 되었으나 아직 철이 덜 든 기철이는 예쁜 애들이 간다는 말에 혹 했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는데, 하루쯤은 놀아도 되지 않을까...'


결국 기철이는 그 날 공사장 알바도 잠시 쉬고 친구 영일이와 같이 술집으로 향했다.



"짜식, 결국 왔네. 낮엔 엄청 튕겨대더니만."


"시,시끄러, 여기 온 건 그 동안의 노력하고 고생한 나 자신을 위한 잠깐의 휴식.."


"아유 그래 그래, 그러시겠지. 하여튼 말은 잘해요. 근데 그 촌스런 파란 코트에 왁스는 또 뭐냐? 설마 잘 보일려고 꾸민건 아니지?"


"꾸,꾸미다니 무슨, 그냥 선배님들도 오는 중요한 자리니까 예의를 표하기 위해.."


"술 마시고 노는 자리에서 예의는 무슨, 때 봐도 여자들한테 잘 보일려고 입었네. 야, 명구도 그렇게는 안 입겠다."


"시,시끄러 임마. 너도 왁스 발랐으면서 무슨."


술집은 젊은이들의 대화소리와 고기 굽는 소리, 낡은 텔레비전 소리등 온갖 잡음으로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여어, 우리 후배들 두명 더 왔네! 잘 왔다! 이모, 여기 소주 추가요! 안주도 더 주세요!"


"어머머, 너희들 뭐니? 설마 잘 보일려고 꾸민거야? 어머 얘네들 귀엽다~"


처음 가보는 술자리.


처음엔 같이 웃고 떠들며 어울린 기철이였지만,


"...야, 영일아. 나 속이 안좋다, 잠깐 바람 좀 쐬러 갔다온다."


"그래라, 혹시 토할거 같으면 왼쪽 골목에 화장실 있으니 거기 가라."


"어어, 고맙다."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들어온 술에 속이 쓰리고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 울렁거렸다.


기철이는 잠시 가게 밖으로 나가 찬 공기를 쐬며 술과 안주로 쓰라린 속을 진정시켰다.


"후우... 찬 공기 쐬니까 이제야 살 것 같네. 어라?"


찬 바람을 쐬며 가게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기철이 눈에 옆 학교의 여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쁘다.'


기철이는 코트를 고쳐 입고 머리를 매만지며 여학생들 쪽으로 다가갔다.


'아아, 이런 날씨에 장미가 피다니 놀랍군요. ...아니야, 좀 더 그럴듯한 멘트가...'


자기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멘트들을 정리하며 다가가, 폼을 잡은 순간.


한 여인이, 기철이와 눈을 맞췄다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운명처럼, 둘은 전기가 통하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무언가를 느꼈다.


'저 얼굴... 어라? 내가 지금 술에 취해 헛것이 보이나...?'


"희선..아...?"


"...이기철?"


.

.


"응... 이 근처 식당에서 일해. 여긴 아는 언니 때문에 어쩌다 오게 됐고. 넌 친구 때문에 왔다고 했지?"


"어? 어어, 응... 그렇지, 난 가기 싫었는데 친구가 하도 가자고 해서... 하하...


십몇년만에 본 희선이는, 더 이상 옛 추억 속 어린 소녀가 아니었습니다.


몰라볼 정도로 큰 키에 성숙해진 얼굴, 곱고 긴 머리,


도자기 같은 흰 피부에 앵두같은 입술.

코는 너무 작고 오똑하여 어떻게 숨을 쉬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코로 재채기를 하면 마치 플루트 소리가 날 것만 같습니다.


달빛을 비추는 호수와 같은 크고 맑고 두 눈동자는 바라볼수록 빠져들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설레이고 가슴이 간지럽습니다.


마치, 심장이 폭포를 거스르는 잉어라도 된 것처럼 마구 뜁니다.


아무래도 전... 희선이에게 한 눈에 반해버린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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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무신 성인버전 느낌.


미안함과 그리움이 가득한 희선이와의 화해, 첫사랑과의 재시작,

성공하여 가족들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취직이라는 현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기철이.



어린 시절 검정 고무신을 보고 자란 어른이들을 위한 검정 고무신이 보고 싶다



그러니 검정고무신 같은 그림체로 만화 잘 그리는 감성이 풍부한 장붕이가 만화 좀 '그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