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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귀엽다."


"네?"


치즈가 진하게 올라가 있는 피자의 냄새를

최대한 추해 보이지 않게 맡던 진혁이 놀라 되물었다.


"그 되묻는 버릇은 고치고."


진혁의 나쁜 습관을 지적한 그녀는 스테이크처럼 칼로 피자의 끝부분을 한입 크기로 잘라내 입으로 가져갔다.


걸어 다니느라 지친 다리와 조금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오후 한 시, 약간은 늦은 시간에 점심을 먹으려고 찾아간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서

두 사람은 고기와 버섯, 토마토가 치즈 속에 파묻혀있는 피자와 레몬 맛이 나는 음료수를 사이에 두고 앉아있었다.


처음에는 프랑스에 왔는데 굳이 피자를 먹는 것에 의문을 품었던 진혁이었지만

인상 좋아 보이는 배불뚝이 직원이 내려놓은 음식을 보자마자 그 의문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한국에서 보던 피자와는 치즈의 양부터가 다른 비주얼.

언뜻 보면 치즈에 비해 토핑이 부족한게 아닌가 싶지만

사실은 하얗고 고소한 바다에 묻혀있을 뿐,

위에 덮인 치즈를 조금만 밀어내면 모습을 드러내는 토핑의 층.

그 양만큼이나 강렬한 맛을 받아내는 묵직한 도우.

그리고 느끼함을 씻어 내려주는 이름 모를 레몬 주스까지.


처음으로 먹어보는 프랑스 피자의 맛과 향기에 매료된 진혁은

한 조각을 빠르게 먹어 치우고 두 번째 조각을 입에 가져가기 전에 피자의 냄새를 즐기던 중이었다.


"귀엽다는 말 별로야?"


"그건 아닌데... 처음 들어봐서요."


"잘생겼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


"네... 뭐..."


진혁이 코를 긁적이며 대답하자 여자가 조용히 소리 내어 웃었다.


"너는 진짜 부모님께 감사해야겠다."


"ㄴ... 왜요?"


습관적으로 '네?' 되물으려던 남자는 여자가 해준 조언을 떠올리고 간신히 말을 바꾸었다.


"남중 남고 나왔지?"


"네."


"학원이나 교회 같은 곳도 안 다녔고?"


"네."


"친한 친구들은 다 게임만 하지?"


"... 네."


"연애해 본 적 없고."


"... 네..."


점점 목소리가 작아져 가는 진혁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에 작은 장난기가 감돌았다.

방금 전까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던 순수한 청년의 의기소침한 모습을 즐기던 여자가 말했다.


"그게 다 네 매력이야."


"네?"


"잘 생겼잖아. 지금처럼 어벙한 모습 여자애들한테 보여주면 귀엽다고 너 챙겨주고 싶어 할걸?"


여자의 말을 칭찬으로 듣는게 맞나 고민하는 진혁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


"그러니까 오늘까지만 나 같은 여자한테 낚이고, 마음씨 착하고 너처럼 순수한 여자 찾아."


약간의 자책이 섞여 있는 조언을 한 여자는 다시 피자를 썰었다.

작게 썬 조각을 포크로 집은 그녀는 입을 살짝 벌렸다가 진혁의 묘한 시선을 눈치채고 포크를 멈췄다.

그리고는 입으로 가져가려던 음식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고 굳어버린 남자의 입을 향해 내밀었다.


"아~"


"어, 그..."


"아~ 해."


갑작스럽게 내밀어진 음식에 당황한 진혁이 머뭇머뭇 입을 벌리면서 고개를 앞으로 가져갔다.

음식이 입술보다 안쪽으로 들어온 후에도 자신이 그걸 먹는 게 맞나 눈치를 보던 그는

여자가 왼쪽 눈썹을 살짝 들었다가 내려놓으며 얼른 먹으라는 신호를 보낸 후에야

낚싯바늘에 매달린 미끼를 삼키는 물고기처럼 덥석 포크를 물었다.


"맛있어?"


입에 들어온 피자 때문에 말을 할 수 없는 진혁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여기 피자가 제일 맛있더라.

근데 그거 알아?"


'어떤 거요?'라고 말하는 듯한 눈을 하면서, 꿀꺽, 음식을 삼킨 진혁에게 여자가 말했다.


"여기 피자, 프랑스 스타일 아니야."


"네?"


"주인아저씨는 캐나다 사람이고, 피자는 미국 스타일, 치즈는 이탈리아산.

그래도 빵이랑 토핑은 프랑스 남부에서 가져온 거야.

아, 이 음료수도 프랑스산이네."


여자는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노란 음료수를 살짝 돌린 후에 입으로 가져갔다.


"진짜로요?"


"음, 흠."


자신이 먹는 피자가 프랑스 피자라고 믿고 있던 진혁은 자신의 접시 위에 놓인 피자를 내려다보았다.


피자는 여전히 피자였지만,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었다.


진혁이 생각에 잠긴 틈을 타 음료수를 한 모금과 피자 조금을 먹은 여자가 물었다.


"그렇게 충격적이야?"


"어... 충격적이라기보다는... 음..."


누가 봐도 크게 충격을 받은 진혁을 보며 여자가 미소 지었다.


"그래도 여전히 파리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야."


여자가 그릇의 가장자리를 포크로 약하게 긁었다.


"프랑스 음식은 아니지만, 프랑스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거, 재밌지 않아?"


드륵드륵, 접시에 볼록하게 올라온 무늬를 따라 포크가 불규칙하게 작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진혁은 잠시 생각했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은 후, 이름 모를 여인을 따라 돌아다닌 파리는 꽤 흥미로웠다.


에펠탑이니, 루브르 박물관이니, 노트르담 대성당이니, 그런 유명한 관광지 대신,

이름 모를 공원과 벽화가 그려진 조용한 거리,

배가 떠가는 강을 뒤로하고 모자 하나를 내려놓은 채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음악가가 있는 파리는

진혁이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이었고, 그만큼 새롭게 다가왔다.


관광객들이 몰린 지역처럼 인위적으로 꾸민 장식품 가게와 촬영 스폿도 없고

시끄럽다 못해 복잡할 정도로 어지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조용하고 밋밋한 일상적인 풍경도 아닌,

어쩌면 그가 막연하게 품고 있었던 '파리'라는 도시의 모습과도 닮은 장소들.


그 장소들과 지금 눈앞에 놓인 '프랑스에서만 먹을 수 있는 프랑스 요리가 아닌 피자'는

꽤 닮아있었고, 분명 재미있었다.


"네, 재밌는 거 같아요."


자신이 제시한 답에 도달한 진혁이 피자를 크게 잘라 먹는 걸 본 여자가 그제야 자신의 식사를 제대로 시작했다.

여전히 그녀가 한 번에 먹는 피자 조각은 작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저 열심히 자신의 앞에 놓인 반쯤 남은 피자 한 조각을 썰고, 찍어서, 씹어 삼키는 동작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본 진혁은 어쩌면 여태까지 그녀가 자신에게 말을 건 것에 어떤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처럼 자신의 앞에 놓인 피자를 열심히 먹었다.


그것이 배려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여자가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아서인지는 구분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두 사람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 기묘한 유대감이 있었기에 진혁은 불안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놓여있던 피자가 전부 사라진 후,

냅킨으로 입가를 가볍게 닦아낸 여자가 다시 진혁을 바라보았다.


"근데, 나랑 같이 다녀도 괜찮아?"


이제 와서 묻기에는 늦은 게 아닌가 싶은 질문이었다.


"왜요?"


"너도 네 계획이 있을 거 아냐."


"음... 딱히 계획이란 게 없어서...

가고 싶은 장소만 몇 개 있는데, 딱히 안 가도 상관없어요."


"나랑 더 오래 있고 싶어서?"


"어, 그..."


옆으로 굴러가는 진혁의 눈동자를 본 여자가 쿡쿡 웃었다.


"누나는 어떤데요? 혼자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요?"


부끄러움에 얼굴이 조금 달아오른 진혁이 역으로 물었다.


"글쎄, 아무 계획 없는데."


그녀가 내용물이 얼마 남지 않은 유리잔을 잡으며 말했다.

한 모금에 살짝 못 미치는 음료를 목구멍 안쪽으로 넘겨 보낸 그녀는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잔의 윗부분을 검지로 눌러 빈 잔이 살짝 기울여지게 만들었다.


"음... 진짜로 딱히 떠오르는 게 없네?

안 가본 관광지도 없고, 딱히 가고 싶은 장소도 없고.

그냥 죽을까?"


"네?"


"농담이야."


여자가 눈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여태까지와 다르게, 그 미소는 진혁에게 설렘이 아니라 불안감을 주었다.


"농담이라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살짝 눈을 내리깔고 빈 잔을 이리저리 굴리던 여자가 흔들리는 잔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주인아저씨가 보면 피자가 맛없었나 걱정하겠다."


"그럼 저랑 같이 다녀요."


"응?"


데굴데굴, 손가락의 움직임을 따라 모서리를 따라 둥글게 구르던 유리잔이 멈췄다.


"할 거 없어서 죽겠다면서요. 죽을 거면 저한테 하루 빌려주세요."


여전히 검지로 잔의 끝부분을 누르면서, 여자가 눈을 들어 진혁을 바라보았다.

조금이라도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이리저리 눈치를 보던 그의 눈동자가

지금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나 따라 하는 거야?"


"네."


"흐음."


그 눈빛과 대답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인지 여자가 기분 좋은 콧소리와 함께 슬며시 미소 지었다.

가식이 섞이지 않은, 순수하게 상대가 마음에 들었기에 피어난 옅은 미소였다.


"싫어."


"엇..."


여자의 미소를 보고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했던 진혁이 자신도 모르게 작은 소리를 냈다.


"어차피 이곳 지리도 내가 더 잘 아는걸?


그리고 너는 몰라도 나는 패스권 안 끊어서 유명한 장소는 한참 기다려야 할 거야.


그렇다고 아예 새로운 길을 탐색하는 것도 어렵지.

파리는 생각보다 위험한 골목도 꽤 많으니까."


"그건 그렇지만..."


반박할 수 없는 지적을 들은 진혁의 기세가 다시 사그라들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녀를 혼자 내버려 두기 싫었기에

그는 자신이 그녀에게 제시할 수 있는 무언가를 열심히 생각했다.


무엇을 고민하는지 눈에 보이는 연하남을 보며 살짝 웃은 여자는

잔을 굴리던 손을 들어 직원을 불러 영수증을 받았다.


"얼마 나왔어요?"


지갑에서 지폐와 동전을 꺼내는 여자에게 진혁이 물었다.


"적당히."


"그러지 말고요."


"너를 빌렸으니까 오늘 하루 경비는 내가 다 내준다고 했잖아."


"그래도요. 잔돈 정도는 제가 낼게요."


"그럼 30센트만 줘."


"여기요."


진혁에게 동전을 받은 여자는 그것을 자신의 지갑에 넣고 지폐를 꺼냈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지폐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잔을 올려놓은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시간이요?"


진혁이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널 빌린 시간만큼은 책임져 주겠다는 거야."


"..."


먼저 앞서가는 검은 로퍼를 따라가려던 흰 운동화가 멈춰 섰다.


'그럼 그 시간이 다 지나면요?'


질문이 진혁의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는 차마 그것을 말할 수 없었다.

몇 걸음 앞서가던 여자는 진혁이 자신을 따라오지 않음을 눈치채고 멈춰 섰다.


"있잖아,"


어젯밤 두 사람이 떨어져 있던 거리만큼 간격을 두고 선 여자가 남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제 슬슬 복잡한 곳 돌아다녀 볼까?

<라따뚜이> 봤어? 쥐가 요리하는 영화."


"디즈니 영화요?"


"응."


"네, 봤어요."


"그럼 거기 나오는 장소들 보러 가자."


여자가 가볍게 몸을 돌리자 그녀의 몸에 매달린 크로스백이 옆구리에서 살짝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갔다.

그 아무렇지 않은 가벼움이 진혁의 마음을 조금 가볍게 만들었다.


'내가 너무 깊게 생각했나.'


진혁은 조금씩 멀어져가는 여자를 놓치기 전에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어디 가는데요?"


고개를 살짝 돌려 잰걸음으로 자신을 쫓아온 진혁을 바라본 여자가 대답했다.


"쥐덪 가게."


진혁이 움찔하고 몸을 떠는 걸 본 여자가 웃었다.


"농담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