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마왕을 쓰러뜨린 용사가 거리를 달리고 있다. 수년 전, 이곳에 떨어진 그 용사에게 주어진 상태창이라는 기이한 힘을 통해 수많은 적들을 섬멸했지만...


"왜 쫒아오는 건데..."


마왕도 쓰러뜨렸고, 이 세계에 위협이 될 만한 존재를 모두 쓰러뜨렸다. 그런데, 어째서 눈앞의 저 여성을 쓰러뜨리지 못하는가.


"젠장! 상태창!"


적들을 상대할 때와 같이, 도망치던 발을 꺾어 자세를 취하고, 항상 불러내왔던 상태창을 불러온다.

푸른 빛을 발산하는 문자의 나열이 그의 옆에 형성된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걸로..."


자신만만해 하며 그에게 있을 가장 강력한 마법을 장전하는 그였지만, 앞으로 달려든 여성은 발뒷꿈치로 그 상태창을 내려찍었다.

기이하게 부서지고 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상태창은 산산조각으로 흩어졌다. 푸른 빛이 사방팔방으로 퍼지고, 그 중앙에 손목을 푸는 여성이 있었다.


"...뭐냐... 넌 대체..."


용사는 뒷걸음질 쳤다. 이미 그의 동료들은 눈앞의 여성에게 무참히 살해 당한 지 오래였다. 동료들의 피를 머금은 그녀가 천천히 눈앞으로 오는 것을 직시하며, 용사는 몸에 힘이 점점 풀리는 것을 느낀다.


"상태창을 부쉈으니... 이제 더 저항할 일은 없겠네."


조용히 품에 손을 넣은 그녀는, 작은 철포 하나를 꺼내 그 용사의 미간에 겨누었다.


"피차 원망하지는 말자고.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야."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마지막으로 남았던 용사가 쓰러졌다.

다시 품에 철포를 집어넣은 그녀는 공중에 손짓하여 무언가를 불러냈다.

누군가의 영상이 그녀의 앞에 드러났고, 그는 그녀에게 반가운 듯 손짓했다.


"RP-839 이야기는 정리했습니다. 생명반응은 없고요."


"철저하네. 상태창을 아예 부숴버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걸"


"자주 있는 일이죠."


그녀는 땀에 찬 제복 겉옷을 벗으며 말했다.


"귀환하겠습니다. 이 이야기에 리셋 절차를 진행해주시길."


"그래~"


그 말과 함께, 그녀는 푸른 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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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번에는 RP-839 이야기를 처리했다라..."


그녀의 직장은 이야기 관리 위원회였다. 수많은 이야기 세계를 관리하고, 쓸모없어진 이야기를 폐기하는 것. 그리고 지금 그녀는 그 위원회의 위원장 앞에 서 있었다.


"그 이야기는 마력 농도가 워낙 높아서 성공률이 낮았을 텐데 말이지."


"상태창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녀가 처리한 어느 이야기를 둘러보듯이, 그녀는 임무에 대해 의아해하는 위원장에게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이따금, 상태창과도 같은 시스템을 통해 강해지는 줄거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시스템의 힘에 편승해 방대한 능력을 보여주죠."


"그래. 그런 것 때문에 우리 요원들도 많이 죽었지."


"그렇다면, 그 시스템을 부숴버리면 그만 아닐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방금 전 부수고 돌아온 RP-839 에서의 자료 화면을 보여주었다. 작은 단도를 집어던져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상태창을 부수고, 단순한 내려찍기 한번으로 용사의 사태창을 부수는 모습은 마치 악귀를 보는 듯 했다.


"저런 식으로, 저들이 사용하는 힘의 근간을 처리한다면 쉽죠."


"저게 가능한 요원은 몇 없네만..."


태연한 얼굴로 미친 소리를 꺼내는 요원을 보며 위원장은 한숨을 쉬었다.


"저렇게까지 철저하게 하는 이유가 뭔가?"


입에 고인 침을 삼키며 위원장이 물었다. 그의 눈 앞에 있는 요원은 대부분의 임무를 성공시킨 특급 요원이었음에도, 그녀의 일처리 방식은 잔혹하리만치 철저했다. 특히 하나의 이야기를 리셋할 경우에는, 그 이야기 세계의 모든 생명은 몰살당한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철저하게 임했다.


그런 점이 의문이었다. 대부분의 요원들은 이야기 내에서 중점적인 이들을 제거하는 것 만으로도 리셋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그저 지나가던 길에 잠시 들린 여관 주인까지 죽일 이유가 없다는 이유였다.


"...글쎄요."


그러나 그런 의문에 돌아온 것은 대답회피였다.


"저도 잘 모르겠군요. 단지 이렇게 철저하게 하고 싶을 뿐이네요."


"하아... 알겠네. 오늘은 가서 쉬게나."


"네."


보고를 마친 그녀는 조용히 위원장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 그녀를 위원장이 다시 불러세웠다.


"아! 잠시 기다리게. 내 정신 좀 보게나."


위원장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그녀에게 말했다.


"당분간은 다른 요원들이 힘써줄 걸세. 그러니 좀 쉬는 게 어떤가?"

"쉼... 말씀이십니까?"


"그래. 어디 아직 정리처분이 내려지지 않은 그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서 잠시 쉼을 가져도 되고..."


"...그렇다면 리셋처리가 끝난 RP-839 이야기에서 잠시 휴가를 내도 되겠습니까."

위원장은 잠시 생각을 거듭하더니, 이내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러게나. 편히 쉬게. 나머지 일은 다른 요원들이 힘써줄 걸세."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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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다 정리됐네."


방금 전 요원의 보고를 듣고 나온 리셋 요원은 RP-839 이야기 세계를 거닐고 있었다. 요원이 헤집어놓고 간 그 이야기는 아무런 생명도 남지 않아 살풍경한 현장이었다.


"그 친구 일처리는 참 기가 막히게 하는데..."


적당히 리셋 장치를 설치한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건물들은 죄다 무너져 있고, 시체들이 즐비해 있지만 고요했다.


"너무 잘 해서 문제라니까. 흠..."


리셋 장치를 가동하고, 주변을 살폈다. 역시 아무도 없었고, 그저 황량한 도시만이 있을 뿐이었다.


본디 이 도시는 RP-839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수도였다고 하더라. 그 요원은 홀로 이곳의 수많은 사람들을 모조리 처리한 것이다.


그의 눈 앞에 널브러져 있는 용사까지. 전부 다.


"머, 이정도면 됐겠지."


그는 기지개를 한번 펴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원래 이곳에서 잔여 생명반응이 있는지를 점검해야 했지만, 그 요원의 일처리 능력을 믿었기에, 그는 별 다른 체크를 하지 않고 위원회로 돌아갔다.


푸른 빛과 함께 그가 사라지고, 리셋 장치로부터 이야기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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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불사의 마법. 자신의 생명을 바쳐 타인의 삶을 세계에 예속하는 마법.


"리리안..."


동고동락한 마법사. 푸른 머리칼이 인상적이던 귀여운 소녀가, 죽기 직전에 자신에게 걸어준 마법.


"젠장..."


마력이 약했는지, 한번 죽음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여자에게 미간이 꿰뚫렸지만, 오히려 그 마력의 부족함으로 인해 그녀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데 성공했다.


용사는, 그렇게 다시 살아났다. 다행이었다. 그녀 다음으로 온 남자는 딱히 생명반응이라는 걸 체크하지 않는 듯 했다.


이야기는 붕괴했고, 그는 초목이 우거진 세상 속에서 눈을 떴다.


"리리안... 두베..."


눈앞에 동료들이 어른거렸다. 그들 또한 그녀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다.


"용서...못한다... 그 마녀..."


차가운 눈동자로 자기를 내려다보던 그 시선을 잊지 않았다.

그것이 분노와 복수심을 불태우는, 마왕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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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가 완료 된 RP-839 세계는 활기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한 여성이 길을 걷고 있었다.


'적당히 이전 세계에서 생존한 사람이 있는 지만 체크할거야.'


"딱히 이전 이야기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으와아아아! 거기 비켜!"


붉은 망토를 입은 검사가 상념에 잠긴 그녀의 옆을 치고 지나갔다.


"으악!"


그녀는 마치 바보를 보는 듯 그 검사를 쳐다봤다. 우스꽝스럽게 넘어진 검사는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사과했다.


"미안! 내가 좀 급해서!"


그렇게 말하고는 쌩하니 도망쳐버린 것이다.


"..."


갑작스러운 일에 벙 찐 그녀는 몸을 추스르고 다시 갈 길을 갔다. 이 이야기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파악해야 했다.

RP-839는 저번 이야기와 같이 용사와 마왕에 대한 이야기임이 틀림없었다.


이곳이 이 이야기의 중심일테고, 그렇다면 이제 그녀가 확인해야 할 것은 마왕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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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야기를 관리하는 이야기 요원이 있고

얘가 용사물 하나를 족쳐놨는데


용사가 모종의 이유로 살아남아

다음 세계에서 마왕이 되고


아무튼 이전 세계 인물이 남아있으면 안되니까

요원이 용사물 일원이 되는 그런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