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 잘 잤어?"


"좋은 아침. 몸은 좀 어때?"


"거의 다 나았어. 전부 네 덕분이야."


언뜻 보면 두 여인들의 평범한 대화 같지만, 사실 한쪽은 여자는커녕 인간조차 아니다.


나는 몽마라고도 하는 인큐버스. 여성의 꿈에 나타나거나 관계를 맺으며 정기를 흡수하는 악마다. 

엘리를 만난 것은 대략 2주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한동안 집을 떠나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던 나는 끔찍한 피 냄새를 따라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웁...!"


마수들에게 습격받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진 마을은 온통 참혹한 시체로 가득했다. 행여나 생존자가 있을까 둘러보던 나는 죽은 마수 옆에서 몸이 반토막난 여인을 끌어안고 쓰러진 엘리를 발견했다. 

숨은 쉬고 있지만 복부에 큰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세라.. 세라.. 눈 좀 떠봐..."


반쯤 정신을 잃은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죽은 친구를 불렀다. 

나는 몰래 다가가 엘리를 잠재운 뒤, 친구만이라도 정성껏 묻어주고 빨리 집으로 데려갔다.


잠든 동안 기억을 읽어 보니 세라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였다.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부모 대신 함께해준 것도 그녀였고, 마법에 소질이 있어 친구를 지키기 위해 마수와 동귀어진하며 자신을 희생했다.


그녀의 내면은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대로는 살 의지를 잃어버리겠다고 걱정한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암시를 걸고 세라의 외형으로 변신해 그녀처럼 연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암시 덕분인지 간절한 기도에 응답한 신께서 살려주셨고, 친척 별장에 데려왔다는 핑계는 다행히 먹혀들었다. 엘리는 내가 세라라고 철썩같이 믿으며 치료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숨길 수는 없는 노릇. 조만간 밖에 나갈 텐데, 목소리는 여자처럼 바꿀 수 없는 고로 여러 사람들 앞에서 정체를 숨기진 못한다. 여태껏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속여먹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도 심했다. 

나는 고심 끝에 진실을 전하기로 결정했다.


"...엘리. 잘 들으세요.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


"무슨 할 말?"


"저는... 당신의 친구가 아닙니다. 여자도 아니고, 인간도 아닙니다. 세라는 이미-"


"사실 저도 알아요. 당신이 세라가 아닌 거."


뜻밖의 대답에 어안이 벙벙해진 동안 그녀가 말을 이었다.


"처음엔 당연히 살아있다고 믿었어요, 그만큼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당신이 해준 음식은 맛있어도 세라와는 맛도, 향도 전혀 다르더라고요. 말투도 어딘가 달랐고요."


내가 연기한 모습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기억 속 파편의 일부, 세세한 행동까지는 당연히 같을 수가 없었다.


"분명 몸이 반토막났는데 살아있을 리가 없죠. 많이 괴롭고, 슬펐지만 모르는 척했어요, 그렇게라도 세라를 만나고 싶었거든요. 어떻게든 연기해 주는 당신에게 고맙기도 했고요."


엘리는 세라, 아니 세라인 척하는 괴물을 꼭 껴안았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어요."


나는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삼키며 마법을 해제했다. 세라가 있던 자리에 붉은 홍채의 청년이 나타났다.


"죄송합니다.. 당신의 마음을 함부로 가지고 놀아서."


"죄송할 거 하나도 없어요. 당신 덕분에 살아갈 희망을 얻었는걸요.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쪽. 마시멜로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입술이 뺨에 닿았다.


그날 이후로도 우리는 여전히 동거 중이다. 더 이상 친구가 아닌 연인의 사이로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