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됐다."


 한국인에게 너무나 친숙한 이 말을 내뱉은 당사자는, 믿기지 않겠지만 일단 여신.


 한 세계를 담당하는 불멸자이자, 그 세계의 법칙을 상징하는 법관 그 자체.


 아리따운 외형과 하늘하늘한 흰 토닉을 입고, 월계관을 쓴 엄숙한 여인이 할 말은 아니었다.


 "좆됐네."


 다만, 그 상황이 영 좋지 않게 흘러간다면, 어쩌면 그럴 수도.


 여신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우습게도 한 태블릿. 태블릿에는 세계 담당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자 필수적인 업적, 그리고 게임인 용사 키우기가 띄워져 있었다. 이 여신도 다르지 않은 지, 공들여 커마한 남자 용사가 띄워져 있었다.


 용사 키우기는 별 거 아니다. 담당자들이 만든 세계에 용사를 만들어, 그 용사를 키우는 것. 사실상 프린세스 메이커나 다름 없다.


 남신은 여자 용사를 만들고, 여신은 남자 용사를 만든다. 그리고 적을 만들고 시련을 부여해서, 용사를 키운다.


 그렇게 성장한 용사는 위업을 쌓고, 반신이 된다. 반신이 된다면 신들은 그렇게 자기가 키운 용사를 반려로 맞이할 수 있다.


 즉, 초-수퍼-하이퍼-테크놀로지 키잡인 것이다.


 그러니 신들 사이에서 용사 만들기가 제일 인기있는 이유다.


 다만, 성장에도 문제가 있다.


 신들에게는 게임이지만, 그 피조물들에겐 현실이다. 즉, 예기치 않은 사고로 용사들은 죽을 수 있고, 반인 불수가 될 수도, 폐인이 되버릴 수도 있다.


 공들여 커스터마이징하고 애끼고 키워온 캐릭터가 한 순간에 증발해버리는거다.


 신이라고 해도 세계에 일정 법칙 이상 개입한다면 문제가 된다. 상위 차원의 신들이 만든 규율에는 세계에 필요 이상의 개입을 금지하는 것 역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용사가 죽을 위기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구원하기 위해 손을 뻗는 것은 금지.


 뭐, 이런 악독한 점이 오히려 좋다는 이상 성향의 신들도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여기 있는 여신은 그런 취향은 없었다.


 그리고 그 좆된 이유가 바로, 용사가 좆됐기 때문이었다.


 이 좆된 이유에 대해선 여신의 잘못도 있었는데, 알량한 질투심 때문에 자기 용사에게 꼬리치는 잡년들(*용사 파티)가 꼴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꼴받는 대상 중엔 자기가 직접 고른 성녀도 있었지만, 아무튼 간에.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NTR의 전문가, 금발 태닝 양아치 짐꾼을 영입.


 약속된 전개를 통해, 용사에 들러붙던 잡년들을 전부 정리하는 건 좋았지만, 부작용이 있었으니.


 동료가 전부 자기를 배신하고, 용사를 팽해버리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심지어 용사의 증표인 성검마저 타락 성녀에게 NTR 제물로 뜯겨, 짐꾼 손에 들려지게 된다.


 물론 성검이 짐꾼을 용사로 인정할 리는 없고, 비적격자에겐 그저 잘 드는 검에 불과하다. 그래도 그 상징성 때문이라도 성검은 용사에게 들려져 있어야 한다. 짐꾼이 성검을 들고 자기가 진짜 용사라고 나대는 순간, 여신이 안배한 시련과 적에 의해 짭용사와 비처녀 통수파티는 물론이고 그 세계까지 운 없으면 말려들고 만다.


 그런 개막장 엔딩을 회피하기 위해 성녀에게 계속해서 신탁을 내려봤지만, 이미 여신 님보다 짐꾼 님의 자지가 더 좋은 걸레성녀는 듣지도 않았다.


 애초에 용사 파티에 약속된 전개를 보장하는 캐릭터를 넣는 잘못을 저지른 용사와 여신의 잘못이지만, 어쩌겠나? 이미 물은 엎어졌고, 주사위는 던져졌으며, 사고는 일어난 것을.


 "하 씨발 진짜⋯⋯."


 여신이 한껏 구겨진 표정으로 손바닥으로 눈두덩을 문질렀다. 자칫하면 자기가 관리할 세계 자체가 파국을 맞을 판. 세계가 멸망하면 결국 자기도 사라진다. 신도 없는 신은 죽음을 맞이한다. 불멸자의 유일한 소멸이자, 그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는 죽음이었다.


 그 와중, 태블릿이 알람을 울렸다.


 용사 상태 업데이트인가? 하고 허겁지겁 확인한 여신은, 순간 굳을 수 밖에 없었다.


 단순한 문자 알람이었지만, 그 안의 내용이 문제였다.


 [키우던 용사가 죽을 것 같나요? 덩달아 세계도 멸망할 것 같나요? 걱정하지 마세요! 굿맨 컴퍼니가 어떤 문제든 해결해 드립니다!  ttp://goodmansaul-company.godcom⋯⋯]


 이거다.


 지금 상황을 어떻게 알아채고 귀신같은 타이밍에 이런 광고 문자를 보냈는지는 몰라도, 아주 기가 막혔다.


 그녀는 아무런 의심조차 하지 않고, 아니, 피어오르는 의심마저 꾹 누른 채 문자에 포함된 주소를 타고 접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