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얘기지만.


나에겐 조금 이상한 친구가 있다.


"그거 알아? 일반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색의 가짓수는 지극히 제한적이야. 고작 가시광선이라고 불리는 특정 주파수에 한정되고 있지. HEPA 필터 구멍에 들어갈 수 있는 최대 입자크기 이하는 못본다는 뜻이야. 놀랍지 않아?"


나른한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의 카페.


풍수지리를 진지하게 고찰하여 항상 볕이 드는 창가에 앉아 카푸치노를 홀짝이는 소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변증법을 나에게 논했다.


"오늘은 색이냐. 주제는 뭔데."


"오만과 편견!"


나는 카페 모카를 빨대로 휘저었다. 플라스틱 컵 안에 작은 기포가 보글대며 휘핑크림이 커피와 섞였다. 빨대를 빨자 달고 쓴 엉망진창의 맛이 미뢰를 자극한다. 곧 있으면 하게 될 엉망진창 흙탕물 같은 문답법의 전조일까.


색에서 갑자기 오만과 편견이라. 뒤에 무슨 말이 따라올지 이쯤 되면 살짝 궁금해지려 한다.


"도저히 감이 안 온다. 본론부터 말해봐."


"후후, 나만의 패널리스트가 초장부터 포기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 학술적인 접근이 필요한 일이라구. 머리 위에 달린 게 단순한 전기신호의 조합체가 아니라면 조금 더 노력해봐. 지성체로서의 면모를 보여줘!"


"... 너 좀 재수 없다. 내가 수수께끼나 풀러 온— 알았어. 알았어. 생각해볼게, 눈물 글썽이지 좀 마. 이상하게 쳐다보잖아."


놀랍도록 허술한 눈물샘에 나는 늘 그랬든 항복을 외쳤다. 카운터에 앉은 중년 사장의 눈초리가 따갑기도 했고.


나는 비스듬히 비치는 햇볕을 맞으며 턱을 괬다. 색과 오만과 편견에 대체 어떤 연관성이 있단 걸까. 혹시 넌센스인가? 음, 아니다. 지난 1년간의 대화 같지 않은 대화를 떠올리면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낮았다.


나는 기억을 되감아 대화의 첫 단추를 떠올렸다. 인간이 볼 수 있는 색은 한정돼 있다는 말. 약간의 탐구적 흥미가 첨가된 알아도 쓸데없는 정보다. 근데 여기서 오만과 편견이라... 둘 사이에 연결점이 있긴 한 건가? 색에서 가지는 인간의 한계. 그리고 주제인 오만과 편견은 모두 인간이 가진 관념의 영역에 뿌리를 둔다. 


한정된 색. 편견. 오만. 인간.


인간. 인간.. 인간....


"인간이 문제다?"


"어째서?"


소녀가 싱글싱글하게 웃으며 물었다. 저렇게 웃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정답인 듯하다.


"네 말이면, 인간은 고작 한정된 색으로 세상을 본다는 뜻이잖냐. 요컨대 완벽하지 않다는 거지. 근데 그런 불완전함을 지닌 주제에, 만물의 영장라는 오만과 편견에 똘똘 뭉쳐있으니, 인간의 삐뚤어진 점을 말하려는 거 아니냐."


"흐응, 흥미로운 답변이네. 네가 내놓은 답치고는 꽤 괜찮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이걸 반이나 맞춰서 다행이네."


"...비꼬지 마."


넌 비꼬잖아. 라는 말을 땅콩 문 햄스터처럼 벌겋게 부푼 뺨과 눈물을 보며 꾹 삼켰다. 한마디 더 했다간 카페에서 나가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 있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난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요지가 뭔데."


"훗, 잘 생각해봐. 네 말대로 인간은 완벽하지 않아. 고작 색 하나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정해진 고점이 명확하단 거지. 인간의 한계가!"


척, 검지손가락을 들고 가르치는 양 말하는 소녀. 나는 카페 모카를 마시며 적당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한계가 뚜렷하니 그에 따른 의의와 미치는 영향도 분명해. 인간이 날 수 없는것처럼 말이야."


"대신 비행기가 있지."


"아니, 아니!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맨몸으로는 날 수 없잖아!"


"뭐, 그렇지?"


"...으, 아무튼 한계에 따른 가능과 불가능은 이미 정해져 있어. 그렇다면 처음 주제로 돌아가서, 이걸 색에 관해 적용하면 어떨 거 같아?"


"원점 아니야?"


"...진지하게."


"으음... 자각 할 수 없는 색이 있다면, 결국 우리의 인지능력에 한계가 있단 뜻이겠지. "


"바로 그거야!"


흥분하며 몸을 들썩이는 소녀를 보니 마치 토끼가 껑충 뛰는 것 같았다. 뭐, 백발의 머리와 새빨간 눈동자를 보면 정말 흰토끼 같긴 하다.


"인지의 한계는 곧 감각적 직관에 의한 직접적 · 개별적 · 구체적인 감성적 인식의 경계선이야! 인간이 알음에 있어 결코 다다를 수 없다는 지점이 있다는 방증이지."


"그것참 슬픈 진실이네."


"슬프지. 눈앞에 진실이 있어도 도달할 수 없는 지혜라니. 정말 안타까운 사실이야. 일방적인 편견에 갇혀 사는 꼴이잖아."


소녀는 그렇게 말하곤 다 식은 카푸치노를 홀짝였다.


문득,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이거... 


어디서 했던 얘기 아닌가?


어딘가 기이하고 강렬한 기시감이 든다. 분명 처음 나누는 얘기가 확실한데. 다가올 미래에 이런 대화를 할 거란 예감 같기도 했고, 까마득한 과거에 나눴던 얘기 같기도 하다. 왜지?


내가 이마를 톡톡 두드리고 있자, 소녀가 말했다.


"그럼, 여기서 두 번째로 넘어가 보자. 이렇게 불완전한 인지능력이 주는 문제점이 뭘까? 관측밖의 영역엔 뭐가 있을까?"


"어, 음. 잠깐만, 조금 생각할 게 있어서, 우리 이 얘기 예전에 한 적—"


"맞아, 그러니까 어서 대답해봐."


미처 문장이 완성되기도 전, 소녀가 대답했다.


아니, 대답한다.


정해진 수순을 따라 밟는 것처럼.


앞서간 현재를 따라잡는 것처럼.


소녀는 지나칠정도로 자연스럽게 대답한다.


뭔가... 뭔가 이상하다.


어딘가 심하게 잘못됐다.


"어서 대답해보라니까?"


소녀는 그렇게 말하곤 뜨거운 카푸치노를 홀짝였다.


"...너, 뭐야."


"틀렸어. 그건 답이 아니잖아."


소녀를 본다.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만 날것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


소녀의 얼굴이, 코가, 입이, 눈이... 어떻게 생긴 거지?


"어서 대답해봐."


표정이 뭐더라?


근데 이름이 뭐였더라?


내가 누구더라?


오늘이 며칠이지?


"인지의 한계, 인식의 경계선, 그 너머에 뭐가 있을 거 같아?"


"하,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아니, 너, 나. 흐, 으으, 너, 너 뭐야. 나, 나는? 아, 아으아."


숨이 막힌다. 목소리가 떨린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다. 다리, 다리,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아아, 이번에도 대답은 못 듣겠네."


이번? 이번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이게, 이게 반복되고 있단 뜻인가? 그럴 리가 없다. 불가능하다. 이건 현실이—


"궁금해? 이게 몇 번째 대화인지."


소녀가 웃으며 말한다. 말하며 웃는다. 웃는다 말하며. 말하다 웃으며. 하다 웃으며. 웃다 말하다.


"근데 답이 필요할까? 잘 생각해봐. 그게 오늘 주제잖아."


서서히 현실에 금이 간다.


"세상이 얼마나 반복됐는지."


나는 덜덜 떨며 카페 창밖을 바라본다.


"시간이 뒤로 가는지, 앞으로 가는지, 빅뱅의 이전과 이후, 엔트로피의 역전. 이 모든 것을 가늠하려는 네 알량한 시도."


아무것도 없다.


흰색도, 검은색도 아닌 색이 없다.


오직 텅 빈 


"그거야말로."


조소하는 소녀의 마지막 말이 세상을 새뻘갛게 뒤덮는다.


[오만과 편견 아니야?]














* * *


















조금 뜬금없는 얘기지만,




나에겐 조금 이상한 친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