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한스는 들여다 보던 휴대폰을 집어 던졌다.


 "또 탈락했어?"


 "시꺼"


 "애초에 내가 말했잖아. 요즘 같은 시대에 마법사를 받아주는 곳이 어딨어?"


 "..."


 아리엘의 말에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도 안다. 세상이 더는 마법사를 원하지 않는 다는 건


 '하지만 어쩌겠냐고 할 줄 아는게 마법 뿐인데.'


 신세를 한탄하며 널브러져 있는 그에게 아리엘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보다 확인 끝났으면 다시 공부 시작하자. 어차피 안되는 일 붙잡고 있지 말고"


 "아 제발, 지금 슬퍼하는 중이잖아"


 "애초에 탈락은 이미 예상하고 있던거 아니었어? 너 중학생보다도 상식이 없잖아."


 "와 진짜 말 심하게 하네"


 "사실인데 뭘"


 정곡을 찔려 다시 할말이 궁해진 한스.


 '이걸 이세계에서 왔다고 밝힐 수도 없고'


 지구에선 초등학생들도 아는 지동설은 수백년에 걸쳐 증명된 이론이다.


 겨우 한 종족이 수천년에 걸쳐 쌓아온 지식들도 그리 압축되는데


 수만년간 여러 종족들이 쌓아 왔다면 말할 것도 없다.


 때문에 그걸 머리속에 욱여 넣고 있는 한스로선 미칠 지경이었다.


 '차라리 백지 상태였으면 또 모를까, 상식이 부정당하니 더 힘들단 말이지...'


 그렇기에 직장이라도 얻어 이 상황을 탈출하고 싶었으나 결과는 이꼴이었다.


 "망할 할배는 왜 나한테 마법 밖에 안가르쳐준거냐고"


 "아무것도 모르는 널 데려다 키워준 고마운 분인데 그런 말은 좀 그렇지 않아?"


 "아니 애초에 이상함을 느꼈어야 했어. 외출도 잘 안시켜주고 마법만 주주장창 가르칠 때 의문을 가졌어야 했는데"


 "그때는 너도 마법 배우는 걸 좋아했잖아."


 "뭐 그건 할배가 보여주는게 신기하기도 했고..."


 이세계에 왔으니 자신도 마법 배워서 날뛰고 싶었다는 속마음은 감춘채 한스는 눈을 돌리고 변명했다.


 갑자기 이세계에 떨어졌는데 어느 늙은 마법사가 자신을 데려다 제자라고 키우는 상황.


 심지어 그가 엄청난 실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기에 그는 더더욱 열광했다.


 '최고의 실력을 가진 마법사긴 했지. 마법사가 그 엘프 하나 뿐이었던게 문제지만'


 왜인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기뻐보였다고 회상하며 쓴웃음을 짓는 한스와는 다르게


 아리엘은 그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처음 봤을 땐 놀랐지. 지금은 엘프도 안배우는 마법을 배우려고 하는 인간이라니. 심지어 그렇게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그냥 공부 할게. 이 이야긴 그만 하자."


 "응, 잘생각했어."


 귀까지 빨게져서 책을 들여다보는 그를 보며 잠시 미소지은 그녀는 이내 수업을 시작했다.



 몇 시간 뒤, 수업이 끝나고 돌아갈 채비를 하는 아리엘.


 짐을 챙기던 그녀는 무언가가 생각난 듯 한스에게 물었다.


 "다음달에 뭐 약속 잡은거 없지?"


 "응, 취업도 실패했으니까."


 "그럼 우리 회사 일 좀 돕지 않을래?"


 "뭐?"


 아까까지만해도 기운이 없어보이던 그가 눈을 동그렇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자 아리엘이 기쁜 듯 덧붙였다.


 "이번에 갑자기 결원이 생겼거든. 그래서 급하게 사람이 한 명 필요해서 말이야."


 "너희 회사면 그 몬스터 잡는 기업이었지?"

 "응, 이번에 개척하고 있는 무인성을 청소하는 작업이 들어왔거든. 별로 위험한 일은 아니야. 다른 대형기업들도 많이 참여하고, 위험등급도 별로 높지 않은 곳이라."


 길게 말을 늘어 놓는 눈치인 그녀와는 다르게 한스의 답은 이미 정해진 듯했다.


 "갈게! 무조건 갈게! 그래서? 내가 뭘 하면돼?"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은 그녀가 답했다.


 "별거 아니야. 그냥 서류정리나 숙소 관리 같은 걸 도우면 돼."


 "응, 알겠어. 최선을 다할게"


 전투직이 아니라는게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본인의 실력을 알고 있는 한스는 그저 생애 처음으로 다른 행성에 간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로 했다.



 "와아..."


 파란색과 초록빛이 어우러진 채 은은한 빛을 내고 있는 행성.


 이번에 새로 개척되고 있는 곳으로 아직은 정식 명칭도 없이 베가-3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지도로 이미 보긴 했지만 역시 지구랑은 다르네. 그리고 행성을 밖에서 실제로 보는건 이런 느낌이구나.'


 한편, 우주선 밖을 내다보며 계속 감탄하는 한스를 보며 제인은 혀를 내둘렀다.


 "아니 사장님, 쟤 뭡니까? 저번주에 처음 우주선을 탔었던 제 조카도 안보여주는 반응을..."


 "그냥 이런게 다 처음이라 그래. 이해해줘."


 "아뇨, 이해 못할 건 아닌데, 꽤 반반하게 생긴 얘가 저리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니까. 뭔가 꿈틀대는 느낌이 들어서"


 "해고 당하기 싫으면 그 입 다물도록"


 "넵"


  아리엘의 눈빛에 꼬리까지 뻣뻣해진 제인.


  그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던 마리가 입을 열었다.


 "쟤가 걔죠? 데우스 할아버지 제자라는 사람"


 그 말에 시무룩해져 있던 제인을 비롯해 근처에 있던 동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데우스 할아버지?"


 "아, 그 사람 아니냐. 은하튜브에서 마법 쓰는 거 보여주는 채널 만들었던"


 "아~나도 알아. 요즘 시대에 마법 쓴다고 인기 끌었었지."


 "그럼 쟤도 쓸 줄 아는건가?"


 "마법이라니 오랜만에 들어보긴 하네. 할아버지께서 '겨우 수천년간 인간이 쌓은 과학이란게 수만년간 드래곤과 엘프가 쌓은 마법을 몰아낼줄은 몰랐다'고 자주 말씀하시곤 했는데"


 "마리씨 할아버님 돌아가셨다고 하지 않았어요?"


 "응, 1400년 정도 전에"


 "와아..."


  직원들의 한스를 보는 눈이 슬슬 신기한 생명체를 볼 때의 것으로 바뀌어 갈 때쯤,


 "슬슬 도착할 거 같으니 짐 챙겨. 한스! 너도 이리와!"


 아리엘이 대화를 끊었다.


 휴게실에서 나와 소형우주선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동한 일행들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무원이 그들을 맞이하며 물었다.


 "소속과 성함을 말씀해주세요."


 "블랙리버의 아리엘 로렌입니다."


 "네, 확인되었습니다. 여기 인식기에 신분증을 대어주시겠습니까."


 사무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손등을 내밀었고, 인식기가 그녀의 생체칩에 반응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랙리버는 A-42-6지역을 맡는 걸로 되어 있는데 맞습니까?"


 "예"


 "준비가 끝나면 해치가 개방될 예정이오니 우주선에서 대기하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접수처를 떠나 비행장으로 들어선 일행들 사이에서 한스는 여전히 신기한 듯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도착하게된 검은색 몸체의 멋들어진 비행선을 보고선 탄성을 내질렀다.


 "이게 너희 회사의 우주선이야?!"


 "맞아, 창업할 때부터 계속 함께한 거지. 물론 그렇다고 성능이 떨어진다거나 하진 않아."


 신나서 이것저것 설명하는 아리엘과 그걸 듣고 연신 눈을 빛내는 한스


 "말이 창업 때부터 썼던거지 3달 전쯤인가 거의 뜯어 고치다시피 하지 않았어?"


 "응, 별로 위험한 업무 가는 것도 아니고, 성능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마리씨가 반대하니까, 사비를 들여서라도 했다던데"


 "우리야 뭐, 좋은 함선타서 나쁠 것 없지만..."


 나머지 직원들은 그런 대화를 나누며 먼저 기체에 올라 타 이륙 준비를 했다.


 잠시 밖에서 더 떠들던 둘도 곧이어 안으로 들어왔으나 설명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우주선 곳곳을 돌아다니던 그들은 이윽고, 격납고에 도착했다.


 "이게 바로..."


 "WS슈트란 거야. 너도 알겠지만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 쓰이지."


 몇몇 기술자들이 조정하고 있는 그 기계들은 전생의 아바타란 영화에 나왔던 로봇과 닮아 있었다.


 강화 유리로 보호되는 조종실이 있는 짧은 몸체와 그에 붙은 팔과 다리.


 그러나 장착된 무기들은 겉모습만 같을 뿐 위력은 전혀 다르다고 말해주는 듯 했다.


 "저쪽에 있는 건 몸에 달라 붙도록 설계된 슈트야. 위력은 좀 떨어지지만 WS가 들어가지 못하는 공간에서 쓰이지."


 '하지만 내 마법보단 강하겠지'


 씁쓸한 생각이든 한스는 이제 슬슬 물어보기로 했다.


 1달 전부터 계속 궁금해왔던 그것을


 "이건 파인사의 제품인데, 안정성도 높고..."


 "아리엘"


 "응?"


 "이제 말해주지 않겠어? 날 왜 데려왔는지"


 그 말에 놀라 얼굴을 굳히는 아리엘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있는 슈트의 기본적인 레이저 공격이 네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마법과 위력이 비슷할거야."


 "그렇겠지"


 "위력을 높인다고 해도 달라질건 없겠지. 애초에 너보다 훨씬 강했던 데우스 할아버지도..."


 "산 따위는 가볍게 날릴 수 있었지만 딱히 조명받진 못했지."


 "응, 산을 날릴 병기 따윈 얼마든지 있고, 오히려 마법은 정밀도만 떨어지는 기술이니까."


 "..."


 "전투에서 벗어나도 마찬가지야. 마법이 할 수 있는 일 따위 과학이 훨씬 손쉽고 정확하기 이룰 수 있지."


 어느새 입을 다문채 듣기만 하는 한스를 보며 그녀 또한 기분이 우울해졌지만, 멈출 순 없었다.


 이것이 그를 위한 일일 것임으로


 "너 여러 회사들에 '마법사'로서 지원했지?"


 "응"


 "네가 기초상식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간단한 업무를 못할 정도는 아니야. 평범한 업무에 지원했다면 합격했을 지도 몰라."


 "아마 그렇겠지."


 "너의 마법에 대한 마음은 잘 알아. 하지만 이제 그만 현실을 받아 들여. 굳이 마법은 취미로만 남기고..."


 "아니, 그건 안돼."


 "뭐?"


 "네가 그랬지? 할배는 날 데려다가 키워준 고마운 사람이라고"


 "그랬지..."


 "나도 잘 알아.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그리고 할배가 마법이 이어지길 얼마나 바랬는지."


 "하지만 굳이 직업으로 삼지 않아도 되잖아!"


 "아니 그래야만해. 마법사는 마법으로 살아야한다. 그게 내 스승님이 가르쳐주신 그리고 유언까지 하며 지켜지길 원하신 것이니까."


 "한스!"


 "이 이야기는 그만 하자. 난 조금 피곤한 것 같아서 먼저 방에 가볼게. 너도 좀 쉬도록 해."


 그리곤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그녀는 잡지 못하고 허망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이후 생활에 큰 변화가 있는건 아니었다.


 아리엘과 한스는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를 성실하게 해나갔다.


 첫날과는 다른 서먹한 분위기에 직원들이 이상함을 느끼긴 했으나 그뿐이었다.


 그리고 소탕이 시작된지 4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뭐라고?"


 오퍼레이터인 마리의 말에 아리엘이 경악하며 되물었다.


 "저희 옆구역 놈들이 베히모스를 깨운 것 같아요."


 "그건 나중에 전함의 함포로 없애기로 했잖아?! 왜 지금 깨어나!"


 "아마 거기 신참이 실수로 지맥을 건든거 같은데..."


 "그런 기본도 모르는 놈을 왜 데려온...이럴때가 아니지. 상황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묻는 그녀에게 마리가 현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 직원들에게 소집령을 내렸고, 제인에게 모두 모이면 바로 이륙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했어요."


 "잘했어. 나도 지금 가고 있어"


 "사장님의 조가 제일 멀리 있으니 아마 오시면 바로 출발할 수 있을거에요."


 "그래"


 슈트의 속도를 최대한으로 올린채 함선으로 달려가며 그녀는 생각했다.


 '지맥이 있는 인접구역이면 고산 놈들인가. 평소엔 잘하던 놈들이 하필이면 이런 때 기초적인 실수를!'


 기계에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달린 끝에 도달한 함선.


 아리엘과 부하들이 열려있던 격납고로 들어가자 바로 해치가 닫혔지만


 그녀가 슈트에서 내려 조종실에 올라갈 때까지 함선을 진동하기만 할 뿐 출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출발을 못하고 있어!"


 조종실로 뛰쳐들어온 그녀의 호통에 제인이 외쳤다.


 "놈의 마력장에 걸렸습니다! 충분한 속도가 나오질 않아요!"


 "함포는?"


 "몇 번 쏴봤는데 애초에 전함으로 죽이려던 놈입니다. 별로 소용 없어요!"


 "급소라도 노리고 다시 쏴봐! 이대로 있을 순..."


 "사, 사장님!"


 아리엘이 지시를 내리려던 그때, 마리가 다급히 소리쳤다.


 오랜 세월을 산 드래곤답게,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침착하던 그녀의 그런 모습에 아리엘이 의문을 가진 순간.


 "저게...뭐야?"


 그녀가 보고 있는 모니터에서 소형 슈트를 입고 밖에 나간 어느 남자의 모습이 있는 걸 발견했다.



 바람이 차다.


 상황이 별로 유쾌하진 않지만 왠지 히어로 영화 속 슈트를 입은 것 같은 마음에 설레는 기분도 든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그런 상념을 깨고 귓가에 소리가 들린다. 아마 벌써 눈치 챈거겠지.


 "여보세..."


 "너 미쳤어? 지금 뭐하는거야!?"


 그녀가 날 향해 이렇게 과격한 말을 하는건 처음이라고 생각하며 답한다.


 그녀와 처음 만났던 그리고 마법을 처음 배웠던 그날을 떠올리며


 "할배가 그랬어 마법은 열망의 힘이라고"


 "갑자기 뭔소리를 하는거야! 됐고 빨리 돌아와!"


 그야 갑자기 이런 말을 하면 그런 반응이겠지.


 하지만 말해야 한다. 이건 반드시 전해야하는 말이니


 "과학이 아직 덜 발전했을 시절, 무언가를 간절히 이루길 바랬던 열망이 만들어낸 기적. 그것이 마법이라고"


 "저 슈트, 원격제어로 바꿔! 빨리!"


 이제 충분히 이동했다. 원격제어로 바뀌기 전에 빨리 슈트를 벗는다.


 이런 점은 그 영화와 비슷해서 다행이다.


 "그때는 무슨 소린지 몰랐는데 네 덕분에 이제야 알 것 같아."


 "너 무슨..."


 삑


 통신기도 끈다. 지금부터 하는 일엔 마음이 흔들려선 안된다.


 잠시 주위를 둘러 본다.


 과연 개발 전의 자연이라 마나가 풍부하다.


 하지만 그뿐 별로 중요한건 아니다.


 눈을 감고 마나를 끌어올려 마법을 준비한다.


 수식은 불필요하다.


 마법진은 거추장스럽다.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있는 것은 오직 간절한 소망,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


 그것으로 마음을 가득채운다.


 준비가 끝났으면 영창으로 마무리를 한다.


 너무 길게 할 것 없이 한마디면 충분할 것이다.


 "사랑해. 아리엘"


 그렇게 만들어낸 찰나의 기적은 하나의 현상을 만들어 낸다.


 일순간 마력장이 사라지고, 계속해서 억눌려있던 우주선이 폭발적으로 솟아오른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신비를 목격한, 생애 최초로 '마법'을 사용한 마법사는


 후련한 듯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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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력 없는 인류문명은 세워지고 약 4000년 만에 우주에 진출하는데


 수명이 천 년이 기본인 엘프나 드래곤놈들은 대를 이어도 우주에 못가길래


 '사실 마법이란거 엄청 열등한거 아님?'이란 생각에서 시작된 이야기.


 분명 처음 떠올릴 땐 그러하니 인류가 열등종 엘프를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는데


 어째서 이런 이야기가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 어제밤 8시 쯤에 이것만 쓰고 자야지 했는데 지금까지 깨어있던 탓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