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정통판타지」19) 인류의 발견

 

 

광활한 우주에서는 국경선이 보이지 않는다.

 

이 표현은 지구상에서 쓰이는 것처럼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행성 위에 그어진 국경선 따윈

안 보이니 행성을 공유하는 사이끼리

서로 작작 좀 싸우라는 숭고한 의미가 아니다.

 

행성이 최소 국가 단위로 취급받는 오늘날,

대우주개척시대 동안 지어진 

각종 워프와 초차원이동 장치 등 때문에 

거리에 기반을 두는 방식으로 

특정 행성국가의 영토를 주장하기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은하수 사이를 항해하는 여행자들 사이에선

(범우주전시국제법을 위반하는 위법물품 등을 제외하면)

특정 국가에서 금지하는 서비스업이나 제품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다.

 

당장 범우주적 이동 수단 중 아무거나 몇 번만 이용하면 

창관으로서 기능하는 콜로니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비록 천사나 유니콘 등이 이끄는 

행성 소속의 기함에 탐지당할 때마다

그들이 척추반사적으로 쏜 광자포도

종족 특성에 의한 문화적 결례로 치부하고 

무난하게 넘어가는 것이 일상일 정도로

음탕하기 짝이 없는 콜로니이지만,

 

음마나 바이콘, 그 외 발정기가 잦은 인구의 비중이 높은 행성에선 

워프를 타지 않고도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속칭 워세권 내에 이러한 콜로니가 없으면 

삶의 만족도가 크게 떨어진다는 평 때문에

창관 콜로니는 수많은 은하 전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덕분에 일부 종족들의 발작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당 시설은 철거 당할 걱정 없이 

다양하고 많은 고객을 받을 수 있었으며,

이는 곧 각 창관 콜로니가 저마다 경쟁력을 올려

최대한 많은 호색한을 끌어들이려 노력함을 의미했다.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한 업자들의 고생은 

곧 고객을 위한 투자로 이어졌다.

 

회전의 원심력을 이용해 유사중력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개인실마다 고객의 행성 크기에 맞춘 중력 조절을 제공한다거나,

고객의 종족에 알맞도록 실내 공기의 

물질 농도 비중을 조정하는 등의 세심한 서비스마저 

이제 와선 업계의 기초에 불과할 지경이었다.

 

이렇듯 나날이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창관 콜로니들 사이에서

미믹 아가씨의 일터는 다른 곳보다도 

아가씨의 매력에 한 층 더 중점을 두는 쪽으로 

차별점을 두고 있었다.


미믹 외에도 슬라임, 서큐버스, 셰이프 시프터 등 

외견을 바꿀 수 있는 종족의 아가씨들을 

최대한 전부 긁어모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음에 드는 아가씨의 성격이나 

기존의 관계성은 유지하고 싶지만

그녀의 외형에는 색다른 변화를 주고 싶어 하는 고객들을 

단골로 삼는 데에 최적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외계 종족과의 교접 경험이 적어 

숫기가 없고 어수룩한 신규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에도 

상당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아, 이 모습은 별로 안 꼴리신다고요?

이런 작은 모습은 어떠세요? 촉수는 좋아하시나요?

가슴 크기를 바꿔볼까요?

몸이 반투명한 건 어떠신가요?

아, 이런 거 좋아하시는구나?

 

 

예를 들어 오늘만 해도 그렇다.

저 멀리 시대에 뒤처진 은하계 서쪽 소용돌이의 끝,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그 변두리 지역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노란색 항성 부근에서  

최근 발견된 인간이라는 종족이

미믹 아가씨의 첫 손님이었다.

 

 

그녀를 앞에 두고 쭈뼛거리는 인간의 모습이 

평소에 보는 단골들과는 사뭇 달라

큰 덩치에 걸맞지 않게도 꽤 귀엽게 보였다.

 

미믹이 상업적인 미소에 살짝 진심을 담아 물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지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님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뭐라고 불러드리면 될까요?”

 

“그, 저, 제가 원래는 이름이 따로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인간 노예라고 부르라 하셨어요.”

 

 

미믹은 순간 번역기에 오류가 나서

고유명사와 보통명사를 구분하지 못했나 싶었다.

 

우주의 공간을 접어 빛보다도 빠르게 이동하고 

행성의 생태계를 뒤엎어 원하는 환경을 구축하거나,

항성을 파괴하는 기술은 개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종족 사이의 언어도, 통화도, 문화도,

범우주전시국제법 정도를 제외하곤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통일하지 못한 대우주시대(절망편)에선

번역기 문제로 생기는 인식 차이 정도는 

일상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믹이 시선을 방구석으로 향하자,

그곳에 드러누워 있는 매혹적인 외모의 여인이 

고개만 까닥였다.

 

그 의미를 이해한 미믹은 어이가 없었다.

저년, 정말로 자기 노예 이름을 ‘인간 노예’로 지었다.

그것도 보통명사로.

 

일견 멀쩡해 보이는 저 여인의 본성을 

잘 알고 있는 미믹은 이 악랄해 보이는 작명의

근본적인 원인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따로 이름 지어주기도 귀찮았다 이거지?’

 

 

기껏 잊을만하면 오는 저 게으름뱅이를 보고 있자니 

미믹의 입꼬리가 파들파들 떨려왔다.

언제나 즐겁고 활기차게 일하는 걸 

미덕으로 삼고 있는 미믹의 입장에선 

저 여자처럼 매사에 무기력하고 의지가 없는 지성체는

참으로 한심하고 못나 보였다.

 

그래도 손님 앞에서,

그것도 저런 년을 평생 모셔야 할 노예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티를 내선 안 될 것이다.

붕괴하려는 미소를 억지로 다잡은 미믹이

노예에게 눈을 돌려 말했다.

 

 

“어머, 그러시구나.

그러면 저도 거기에 맞춰 볼까요?

원하시면 저도 미믹 변태라고 불러주세요.”

 

“아, 아뇨, 괜찮으시면 그냥 미믹 양이라고 부를게요.”

 

 

미믹이 살포시 웃었다.

최근 들은 정보가 확실하다면,

인간족은 얼마 전 오크 군단에 침략당하기 전까진

타종족과의 접촉이 없다시피 했다는 소문이었다.

원시 행성의 단일 지성체 종족으로 자라왔던 것 같으니,

아마 저들 사이에선 변태라는 단어의 의미가 

욕설처럼 쓰일 수도 있으리라.

 

 

종족마다 성적으로 흥분하는 부분이 다 다르기 마련이다.

우주 역사 최초로 타종족 둘이 만나 

성적인 정보를 교환하는 순간,

광범위한 페티쉬를 교류함과 동시에

변태라는 단어의 의미가 크게 퇴색했다.

 

 

‘아니, 대머리가 대체 왜 꼴림? 님 변태임?’

 

‘??? 아니 이게 우리 종족 사이에서 

가장 흔한 페티쉬인데 이걸 몰라?

이거 완전 꼴알못들이네? 

그러는 너네는 대체 뭐가 꼴리는데?’

 

‘야무지게 식사하면서 비행하기지, 당연히.’

 

‘아니 그거야말로 꼴릴 요소가 하나도 없잖아.

이거 순 변태 새끼들 아니야?’

 

 

반면 단일 종족들 사이에서 변태라는 칭호는 

같은 종족 내에서 특이한 취향을 가진 개체를 

멸시하거나 따돌리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일 가능성이 높았다.

잘은 몰라도 어쩌면 성적인 표현을 억압하는 

문화적인 요소가 있을 수도 있겠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생글거리던 미믹이

문득 자신이 그를 비웃는 것처럼 보이진 않을까 싶어

노예의 안색을 살펴보자

그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미믹을 이리저리 관찰하고 있었다.

 

 

“후후, 미믹은 처음 보시나요?

감상은 어떠세요? 신기하시죠?”

 

 

미믹이 서비스 삼아 양손을 활짝 편 후

손바닥의 색상과 질감을 가볍게 바꿔주었다.

인간 노예의 눈이 어린아이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와, 정말 엄청난 데요? 이게 어떻게 되지?

마, 만져봐도 될까요?”

 

 

미믹은 그의 순박한 반응에 

자기도 모르게 픽 웃고 답했다.

 

 

“주인분께서 이미 돈 다 내셨으니까

안 만지시면 손해이실 걸요?”

 

 

노예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나무 같은 질감으로 변한 미믹의 한 손과

미스릴 같은 질감으로 변한 반대 손의 감촉을 비교했다.

보통 미믹의 변신 능력에 대해 

잘 모르는 지성체들이 그러하듯

흥미가 동한 모습의 노예가 물었다.

 

 

“그러면 뭐로든지 변하실 수 있는 건가요?”

 

“거의 그렇죠. 제 먼 조상은 보통 상자나 문처럼 

인위적인 구조물이나 무생물로만 

변할 수 있었다는 모양인데요,

어느 변태가 특정 종족의 리얼돌로 변하는 데 성공한 후부턴 

훈련을 통해 외모와 질감만큼은 거의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는 게 밝혀졌죠.

보세요.”

 

 

손바닥 수준의 변화만으로도 

노예가 흥미를 동한 듯 굴자

이건 먹히겠다고 확신한 미믹이 화려하게 변신했다.

 

그녀의 외견이 타오르듯 붉게 변하고,

사지의 피부가 갈라지더니 비늘처럼 매끈해졌다.

엉덩이 쪽에서 두꺼운 꼬리가 흘러나오고

어깻죽지에서 박쥐 같은 날개가 펼쳐졌으며,

목이 길쭉해지더니 머리카락 사이에서 한 쌍의 뿔이 돋아났다.

 

노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건…….”

 

 

미믹이 씩 웃었다.

 

 

“이게, 실존하는 생물인가요?”

 

 

나체의 레드 드래곤 형상을 한 그녀를 향해 

인간 노예가 멍한 얼굴로 묻자

미믹이 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아직 직접 보신 적이 없나 보군요?

드래곤 족이라고 해요.

긴 수명과 높은 지능, 그리고 엄청난 물욕 때문에 

일반적으론 행성 하나를 

홀로 군림하며 살아가는 종족이죠.”

 

 

감탄하고 있는 인간 앞에서 신이 난 미믹은

아무도 묻지 않는 정보를 풀기 시작했다.

 

 

“듣기로는 힘도 세고 불도 뿜는다던데,

아쉽게도 셰이프 시프터 분들과는 달리 

전 그런 것까진 구현을 못 하긴 해요.

 

여기 이 비늘 같은 것도 겉보기에만 단단해 보이지 

실제 강도는 그냥 살이랑 다를 바 없어요.

그래도 멋은 나죠?”

 

 

인간 노예가 고개를 세차게 위아래로 끄덕였다.

미믹이 묘한 만족감 속에서 

드래곤의 날개를 작게 파닥였다.

 

 

“후후, 하지만 오히려 그런 능력이 없는 걸 

선호하시는 손님들도 계세요.

보통 이런 직종에서 드래곤으로 변해달라고 요구할 때는

약간의 화풀이 같은 걸 겸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괜히 반격할 만한 수단이 없는 쪽을 더 좋아하는 거죠.”

 

 

예를 들어 민간무기상업행성의 한 구역에

자그마한 개인 무기점을 차린 한 고객님이 있겠다.

 

그는 그저 드래곤이 주도하는 대기업에서 쏟아붓는

자본공세에도 흡수당하지 않고,

주변 사람이 다들 어르고 달래도 

꿋꿋이 제자리를 지키는 것뿐인데

기묘한 편견들이 꼬리말처럼 따라다니는,

작은 상점의 주인이다.

 

그 행성을 지배하는 드래곤과는 

절대, 아무런, 티끌만큼의 연관도 없지만

갑자기 주변에 등장해 유독 소상민들에게만 

시비를 거는 마족들 상대로 싸움이 붙어도 

놈들을 때려눕힐 법한 전투력의 소유자여야만 한다는 편견,

 

묘할 정도로 사건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수상할 정도로 무기점에 대한 악평이 돌아도

주눅 들지 않는 성깔이 있어야 한다는 편견,

 

그리고 그 둘을 동시에 보유할 수 있는 종족은

만취한 채로도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는 똥고집과 

구축함 두께 급으로 두꺼운 신경을 겸비한 

드워프밖에 없다는 편견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편견과 오해가 

굉장히 불쾌한 무기점 주인은,

씨근덕거리며 드워프 특유의 수염을 배배 꼬다 못해

창관에 들락거리며 스트레스 해소를 하는 것이다.

 

미믹은 드워프 점장을 상대로 

불도 못 뿜는 허접드래곤의 형상을 한 채 

엉덩이를 몇 대 맞아주고 드래곤의 잘못을 사과하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물론 고객의 개인정보 유출은 여러모로 금지이니 

이런 내용을 언급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미믹은 적어도 눈앞의 인간이 

이 창관을 최대한 즐기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녀는 인간 노예가 최대한 거리낌 없이

그녀를 마음대로 다뤄주기를 바랐다.

 

방구석에서 하품하고 있는 저년이 

굳이 노예를 여기까지 데려오면서 요구한 바가 

그것 때문인 것도 있지만,

잘 모르는 종족의 성적 취향을 알아가는 묘미가 

미믹이 이 일에 종사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인간 노예의 하반신 쪽 반응을 보니

이런 식의 추천이 꽤 성공적으로 먹힌 모양이었다.

이 정도로 흥미를 동하게 했으면

슬슬 괜찮은 타이밍일 것이다.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첫 손님께 반드시 알려 드려야 하는 규정이 

있으니 잘 들어주세요.”

 

“네? 네, 네.”

 

“우선, 서비스품질관리 및 품질향상을 위해

고객님의 기억 일부를 읽을 것임을 알려 드릴게요.”

 

“예?”

 

“그리고 산업안전보건지침의 타종족응대 근로자 보호조치가 시행됨에 따라 현 대면 과정과 대화 내용은 전부 녹화 및 녹음되며, 525600절대분 동안 보존됩니다. 또, 본 근로자에게 상호동의를 벗어난 폭언, 폭행, 욕설 등으로 업무를 방해하는 경우 이 대면이 예기치 않게 종료될 수 있으므로 삼갈 것을 부탁 바랍니다. 기억 읽기, 녹화 및 녹음을 원치 않는다면 거래 결렬을 선언하고 퇴장하실 것을 권합니다.”

 

“예?”

 

“거래 결렬을 선언할 의사가 있으신가요?”

 

 

이에 당연히 뒤에 누워 있는 여성이 답했다.

노예에겐 선택할 권리가 없으니까.

 

 

“없어. 진행해.”

 

 

그 축축 늘어지는 목소리에 미믹이 얼굴을 구기는 사이

노예가 놀라서 끼어들었다.

 

 

“잠깐, 잠깐만요.

제 기억을 읽어요?

이거 녹화된다고요?

그래도 되는 거예요?”

 

 

미믹이 인간 노예 같은 창관 초심자에게 

무어라 답해야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는 사이,

방구석에서 커다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아, 진짜.

괜찮으니까 그냥 대충 넘어가.

하나하나 호들갑 떨지 말고.

내가 돈을 시궁창에 버리고 싶어서

비싼 돈 주고 널 여기 데려온 줄 알아?”

 

 

노예가 화들짝 놀라더니 잔뜩 움츠러들었다.

 

미믹이 여전히 누워있는 미려한 여성을 향해

눈치를 주자 그녀가 입을 삐죽 내밀고 변명했다.

 

 

“아니, 난 배고파 죽겠는데 

아직 시작할 기미도 안 보이잖아.”

 

 

아무리 손님의 주인님이라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돈도 내는 물주라고 해도,

미믹은 결국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 그러시면 그냥 직접 정기를 추출하시면 되잖아요.

음마이시니까 지식이나 본능이 부족하신 것도 아니신 텐데요.”

 

“직접 움직이는 건 귀찮아. 운동 싫어.”

 

 

아무렴, 어련하시겠어요.

 

미믹은 어금니를 깨물어 

간신히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을 삼켰다.

 

저 나태의 화신이나 마찬가지는 서큐버스는

음마로 태어난 주제에 미믹한테 돈 내고 

성욕을 풀러 오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여자다.

그나마도 정작 와놓고서는 죽은 생선이나 통나무처럼 

밋밋하게 누운 채로 알아서 다 해달라고 뻗대는 진상이었다.

 

손님으로서만 진상이면 그래도 

이래저래60절대분으로 끝나니 상관없는데,

오늘 와서 보니 신규 손님의 추천인으로서도 진상이었다.

 

아니, 자기 정기 보급용으로 노예를 구매한 주제에

창관에 데려와 놓고, 그 옆에 붙어 구경하면서 

정기를 빨아먹고 싶다니?

굳이?

 

심지어 음마로서의 자각도 본능도 없이 태어났는지

직접 몸을 움직여 정기를 추출하는 걸 

‘운동’으로 생각할 정도의 게으름은 

미믹 입장에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섹스가 얼마나 기분 좋은데 이걸 마다해?

 

미믹의 얼굴에 혐오가 섞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음마는 심드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뭣보다 기껏 방에 자리까지 잡았는데 

시간 연장 결제하는 것도 귀찮아.

그러니까 시간 끝나기 전에 얼른 끝내줘.”

 

 

미믹은 저 뻔뻔한 서큐버스를 향해 속으로 

‘차라리 숨 쉬시는 것도 귀찮아하시죠’라고 악담을 해준 후,

서큐버스의 신규 정기 추출용 노예에게 도로 시선을 돌렸다.

 

당연히 그의 물건은 

찬바람에 노출된 것처럼 잔뜩 쪼그라들어 있었다.

 

아아, 기껏 좀 분위기가 살린 채로 

진행할 수 있는가 했는데,

망했다.

 

미믹은 노예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이게 노예의 첫 창관 이용이라고 들었다.

가뜩이나 낯선 장소에서 모르는 업종의 

낯선 종족을 상대해야 하는데

자기 주인님 앞에서 성교를 해야 한다고?

게다가 남들이 볼지 안 볼지도 모르는데 

이걸 녹화, 녹음까지 하는데다

소중한 자기 기억까지 읽을지도 모른다고?

 

이미 이런 원칙에 익숙한 종족들이라면 모를까,

오크족과의 조우 전까진 초차원우주 이동도 못 해본 

원시 종족 입장에선 이런 처우가 신경 안 쓰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성기가 저 모양 저 꼴이 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긴장감을 풀고 편안한 마음이 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미믹도 최대한 인간 노예에게 맞춰주려고 

잡담을 하거나 하면서 편하게 대하고 있던 거고.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은,

분위기고 나발이고 전부 다 망치는 데 도가 튼 

저 서큐버스가 문제인 것뿐이다.

저년에게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 

섹스하고 싶은 기분을 망칠 수 있는 

재능이 있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애초에 저년이 먼저 이런 규칙이 있다고 알려주는 걸 

귀찮아 하지만 않았어도 

미믹이 이런 일에 시간을 쓸 필요가 없었을 거다

 

미믹은 서큐버스에게 욕을 박아주고 싶은 욕망을 꾹 참고

눈앞의 문제를 해결할 방도에 대해 고민했다.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에 대해선 많이 알려진 바는 없지만 

그는 일단 건장한 남성인 것은 분명했다.

애초에 조금 전 사태로 수그러들기 전까진

살짝 흥분한 모습도 보인 걸 보면 십중팔구 발정기일 텐데,

기본적으로 긴장만 풀어주면 알아서 그렇고 그런 

기분이 들 것이라는 희망적인 관측을 해보았다.

 

물론 지금 당장 육탄공세를 시도해볼 수도 있겠지만,

아직 심리적으로도 풀죽을 법한 요소가 

많이 남아있는 이 상황에서 섣불리 이야기를 진행했다가 

그가 아예 발기부전이 될 위험도 있었다.

 

미믹은 그런 최악의 사태를 무릅쓰고 싶진 않았기에

노예에게서 서큐버스 생각을 떨치게 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미믹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손님, 우리 우선 긴장부터 풀기로 할까요?”

 

“네? 아, 예, 예.”

 

 

반응을 보아하니 이미 노예의 마음이 

복잡해져 있는 게 분명했다.

미믹이 손을 뻗어 노예의 양손을 잡고

드래곤의 변신을 풀었다.

 

그제야 데굴데굴 굴러가던 노예의 눈이 

미믹에게로 고정되었다.

미믹이 다시 씩 웃고 노예에게 말했다.

 

 

“그럼 저 따라 천천히 심호흡해보세요.

느리게 후하고 숨을 들이켜봐요.

이렇게, 하나, 둘, 셋, 넷, 다섯……”

 

 

뒤에서 이건 또 뭐하는 시간 낭비냐는 

표정을 한 서큐버스가 눈에 들어오지만,

아무리 갑갑하더라도 

저 바보가 무슨 반응을 보이든 무시해야 했다.

때로 가장 빠른 길은 멀리 돌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숨을 뱉고, 다시 천천히 숨을 들이켜는 동작을 반복했다.

그의 숨이 어느 정도 고르게 움직이는 타이밍을

잡아낸 미믹이 물었다.

 

 

“조금 진정 되셨어요?”

 

“……네. 그런 것 같네요.”

 

 

그렇게 심호흡으로 노예의 육체를 강제로 진정시킨 미믹은 

이번에는 노예의 정신을 풀어주기로 했다.

 

 

“기억을 읽는다고 하면 종족을 불문하고 

자신의 치부를 들킬까 봐 걱정이 많아지기 마련이에요.”

 

 

미믹은 천천히 말하며 노예의 손을 잡아끌었다.

 

 

“지성체라면 저마다 자신만의 비밀이 있고,”

 

 

노예의 손가락이 미믹의 입술에 닿았다.

 

 

“그것이 공개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당연한 감정이랍니다.”

 

 

노예의 손끝에 미믹의 숨결이 닿고 

치아가 스치자

인간 노예가 가볍게 몸을 떨렸다.

 

미믹은 입술을 모아 인간의 손가락을 밀어낸 후,

이번에는 노예의 손을 

그녀의 목덜미, 쇄골, 어깨로 이끌었다.

 

 

“하지만 조금 전의 대화로도 느끼셨을 거예요.

우리는 단순한 개인 차원을 넘어 

서로 모르는 것도 많고

아는 것도 적은 사이라는 걸요.”

 

 

미믹은 인간이 마음껏 그녀의 몸을 

쓰다듬을 수 있도록 손에서 힘을 뺐다.

후들거리는 노예의 손이 

자신의 가냘프고 매끄러운 맨몸을

쓰다듬고 어루만졌다.

 

 

“그러니 보편적인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상대적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호의로 뻗은 손길이 그릇된 오해를 사며,

누군가에겐 애정의 표현이 

남에게는 공포의 원인이 될 수도 있어요.”

 

 

어느새 미믹의 손은 인간의 손에 얹혀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가 이끌고 있다고 착각한 채로

미믹의 가슴팍과 허리와 배와 엉덩이를 

자진해서 매만지고 주무르고 있었다.

 

미믹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함께 긴 시간을 들여

그 간극을 좁힐 수 있겠죠.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사이엔 시간이 별로 없어요.”

 

 

고르던 인간 노예의 숨이 다시 가빠지기 시작했다.

미믹의 몸을 조금이라도 더 관찰하고 

그녀가 느끼는 모습을 보기 위해 

그의 동공이 확장됐다.

 

 

그리고 그녀의 본체를 보면서 흥분하는 인간 노예의 반응에,

미믹의 몸도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본인의 외견을 숨긴 채 진정한 몸과 정체를 

감추고 다니는 미믹 종족의 특성상,

자신의 진짜 나체를 이렇게 무방비하게 노출하는 것은

그녀의 가장 본능적인 금기를 어기는 추잡한 행위였다.

 

미믹의 본능이 폭주하며 폭발적인 신체 반응을 이끌어냈고,

자타공인 변태 미믹인 그녀는 그 모든 감정과 반응을

본인이 흥분하는 재료로 쓰곤 했다.

 

그런데 심지어 그녀의 본체마저 보면서

이렇게 흥분하는 상대라면?

 

…어째 손님보다도 그녀가 먼저 발정해버릴 것 같았다.

 

미믹은 황홀감에 빠지기 전에 

프로로서 일해야 했다.

 

미믹이 그녀의 가녀린 몸을 인간 노예에게 기댔다.

그리고 그를 올려다보며, 귓가에 속사였다.

 

 

“그러니 알려주세요.

제가 당신에게 가장 꼴리는 여자가 되게 해주세요.

당신이 마음껏 저를 유린할 수 있도록.”

 

 

인간 노예도 이미 어지간히 흥분한 상태였는지,

이미 그녀의 목소리는 잘 닿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거센 호흡, 충혈된 눈, 빨라진 심장박동이 이를 입증했다.

 

그러나 그 상태로도 충분했다.

 

미믹이 개조 받은 그녀의 손가락으로

인간 노예의 귓가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약간의 찌릿한 반응과 함께

인간 노예의 머릿속에 심어져 있던 칩이 

현재 상태와 유사했던 과거 기억을

미믹에게 공유했다.

 

 

 

******

 

“저, 실례지만 누구시죠?

오밤중에 제 방엔 또 어떻게 들어오신 거에요?”

 

 

서둘러 바지를 끌어올리고 있는데도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난 

정체 모를 여자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보다도 머리 하나는 더 큰 장신,

헬창인 나와도 맞먹을 정도의 

실전 압축 근육으로 꽉꽉 채워진 듯한 몸과

그 모든 것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수치심이란 걸 버린 듯한 기괴한 복장,

그러나 그 모든 것조차 이상하지 않게 보일 정도로

선명한 녹색 피부와 군청색 머리카락,

그리고 유독 튀어나온 하관의 어금니를 뽐내는 여성이었다.

 

이 기억의 주인인 ‘나’는 알지 못했지만,

미믹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수많은 세계를 먼지로 바꾼 것으로 악명 높은 그 종족을.

그녀가 말했다.

 

 

“경청하라.”

 

“그, 저, 제가 지금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러는데요…….”

 

“경청하라.

너희 종족이 지난 세월 동안 쌓아온 

모든 역사와 지식과 기술과 예술의 운명이

다음 10절대분 내로 결정지어질 것이므로.

그러니 경청하라.”

 

“예?”

 

 

그녀는 마치 아이를 어르듯 

천천히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일단 상황을 바라보자는 생각으로

정말로 말없이 듣기 시작했을 뿐.

 

 

“본녀는 본 기함 사슬엄니의 함장으로서

오크 종족의 사절로 배정받은 데브칼이라고 한다.

본녀는 사절로서, 충분히 성장했다고 판단되는

너희 종족의 각 개체 앞에 홀로그램을 소환해 

본 기함, 이어서 우리 종족의 전체의 의견을 

대신 전달하는 임무를 하명 받았다.

 

따라서 이 시간 이후로 본녀가 홀로그램을 통해 전달하는 

모든 내용은 본녀 개인의 의견이 아닌,

모든 오크의 대표로서 오크 종족 전체의 의지를 

대리 전달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경청할 것을 권장한다.”

 

내 머릿속엔 광고, 몰래카메라, 꿈, 

이해 불가 등의 생각이 떠오르면서도

일단 들어나 보자는 자세를 취했지만,

미믹은 이미 앞으로 대충 무슨 말이 나올지 짐작하고 있었다.

오크가 종족적인 차원에서 종사하는 업종은 

단 한 가지뿐이기 때문이다.

 

 

“그 무엇보다도 앞서,

항복 의사를 묻겠다.”

 

 

침공, 정복, 파괴.

 

오크가 자랑스레 제공하는 

세 종류의 서비스다.

 

 

“우리는 압도적인 무력을 보유하고 있다 자부하지만,

그렇다고 미지의 상대가 비기를 사용하는 것을

순순히 방치할 정도로 오만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너희가 항복을 거부할 경우,

우리는 전력을 다해 너희를 무력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너희 개체가 최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다음 9절대분 동안 본인과 본 기함 내 전원이 

전력을 기울여 도울 것을 맹세하는 바이다.”

 

 

미믹은 범우주적인 항해를 못하는 종족에게

과연 절대시간이라는 개념이 

범용적으로 쓰이고 있는지부터가 의문이었다.

 

실제로 ‘나’는 멍청하게 

자기 행성 기준의 분 단위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 오크들 입장에선 번역 오류 따윈 신경도 안 쓰일 테다.

저들은 그냥 범우주전시국제법 하의 국제침략시행수칙을 

충실히 따르는 것뿐이니까.

 

 

“사실대로 고하겠다.

이 교섭이 결렬되는 순간부터 

너희 종족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너희 종족 중 총합 몇 개체나 생존할 수 있을지,

남녀 한 쌍이라도 남을 수 있을지도 단언할 수 없다.

우리는 그저 항복의 의사를 표하지 않은

모든 개체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제거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도 나름대로 우리 같은 외계 종족에 대비해 

우리를 무찌르거나 쫓아낼 계획을 사전에 세웠을지도 모른다.

 

허나 단언하겠다.

 

너희의 그 어떤 저항도 무의미하다.

 

기존의 계획이 허황한 내용인지,

아니면 정말로 성공할 확률이 높은 

비장의 획책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오크 사절이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확신하는 태도로 말을 이어갔다.

 

 

“왜냐하면 너희 종족의 반격이 우리의 예상을 초과할 정도로

전력과 비등하거나 심지어 우세한 경우,

너희들의 행성 자체를 철거하는 것이 

기본적인 방침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 정도로 발전한 무기와 전략전술을 보유한 종족이

훗날 문명 기술을 높여 우리 종족에게 보복한다는 

최악의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우리 종족의 단기적인 불이익조차도 감수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방침에 의거한다.

 

사전 조사 결과 너희는 범우주적 이동 수단 개발이 

미비한 것으로 판단된바, 행성 철거는 곧 

너희 종족 전체의 절멸을 의미할 것이다.

 

따라서 너희 종족에겐 우리를 성공적으로 패퇴시킨 후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는 가능성은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숙지하라.”

 

 

그 말을 끝으로 홀로그램의 말이 잠시 끊기더니

오크 사절의 눈썹이 꿈틀했다.

 

 

“홀로그램을 향한 반발과 의견을 통합한 결과,

반응할 가치가 없는 잡음과 행위를 제외한 

내용을 취합해보니, 대략  ‘협박하는 거냐’,

‘그래서 어쩌라고’, ‘뭘 원하는가’,

정도로 추려지는군.

해당 반응에 답하겠다.”

 

 

사절은 이런 식의 질의응답에 익숙한 듯

가벼운 태도로 답했다.

 

 

“우선, 이것은 통보이지 협박이 아니다.

오히려 너희 종족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을 

친절이라고 해석할 것을 권장한다.

협박은 상대를 공포에 질리게 해 

무언가를 갈취하기 위한 속셈이 있어야 성립한다.

그러나 우리 종족 입장에선 

그런 조악한 수단에 기댈 필요가 없다.

 

만약 우리 종족이 범우주전시국제법을 무시하려 했다면

애초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인구밀집이 높은 장소에 

선제공격을 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궤멸적인 피해를 줄 수 있었다.

 

또한, 우리가 제일 먼저 권했던 내용을 잊지 말아라.

우리는 너희 각 개체가 항복의 의사를 표할 것을 추천한다.

단순히 이 홀로그램을 향해 항복하겠다는 의사를 

너희의 언어로 전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오크 사절은 거의 심드렁해 보이기까지

한 얼굴로 말을 끝맺었다.

 

 

“항복 의사를 표하고 싶지 않은 개인의 경우,

역사서에 남기고 싶은 마지막 문구를 정하라.

 

너희 종족 전원이 항복을 거부하는 경우

해당 기점 이후로 추가적인 대면 없이 

본 행성을 철거할 예정이므로,

너희 종족의 유일한 유산으로 남을 수 있으니 

문구는 신중히 고를 것을 권장한다.”

 

 

홀로그램 속 오크의 눈썹이 조금 모였다.

홀로그램을 향해 인간들이 뱉은 

새로운 반응을 취합한 모양이었다.

 

 

“행성 철거가 실제로 가능한지 의심하는 의견이 

약 5~10%의 개체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에 관한 실질적인 증거를 제공하지 않으면 

다음 5 절대분 내로 충분한 정보에 의거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결론이 섰기에,

우선 본 기함의 위력과 본 종족의 진실성을 증명할 겸

너희 행성의 위성을 철거하는 시범을 보이겠다.”

 

 

 

녹색의 손가락이 허공을 한 번 휘젓자,

손가락 끝에 위에 지구와

주변 천제처럼 보이는 이미지가 나타났다.

 

 

“현 위치에서 육안으로 해당 위성을 관찰할 수 있는 개체일 경우,

실제로 관측할 것을 권장한다.”

 

 

그 말을 끝으로 오크족 특제의 행성파괴자가

근처를 떠돌던 위성에 조준하고, 발사하는 영상이 

홀로그램을 통해 제공되었다.

 

마치 장난감이 망가지듯,

작은 과일에 총을 쏜 것처럼

달은 안에서부터 폭발했다.

 

더없이 손쉽게 자행된 

오크족의 명령에 따라

달이 사라졌다.

 

 

 

이를 완벽히 타인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미믹은 차분히 생각했다.

 

‘위성이 꽤 커 보이던데,

저건 지구의 생태계 따윈 유지할 생각이 

없다는 의미의 선전포고이기도 하겠지?

애초에 원시 행성을 테라포밍한 뒤 잘 가공해서 

다른 종족에게 행성 채로 팔아먹는 게 

오크들의 주요 수입원이니 당연하겠지만.’

 

손님 중 타종족/타행성생태계를 전공한 학자가 

매번 침공을 감행할 때마다 행성을 통째로 뒤집어엎는 

오크들의 무식한 방식에 대해 잔뜩 한풀이한 덕분에 

미믹은 이러한 뒷사정도 어느 정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반면 기억의 주인인 ‘나’는 그런 생각이 수도 없었고,

미믹처럼 남의 일로 치부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저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긴가민가하면서도,

불안감이 가시길, 차라리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이길 바라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1.28초가량 걸렸다.

의문과 안심이 공포와 경악으로 바뀌기까지.

 

 

글로만 배웠던 우주적 공포가 눈앞에 현현했다.

 

인류가 사라지고 나서도, 그 한참 후에도

언제나 지구를 바라보다가 

태양계가 종말을 맞을 때가 와서야

지구와 함께 잊힐 거라고 생각되었던 달이,

그 달이! 그 달이!

 

나와 같은 상황에 빠진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수많은 비명이 들려왔다.

물론 그 중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한 비명은

내 입에서부터 나오고 있었다.

 

가슴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아팠다.

나는 그제야 내가 숨도 못 쉰 채

끝없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안간힘을 다해 하늘에서 눈을 뗀 후,

간신히 입을 다물고 억지로 숨을 들이쉬었다.

 

산소가 폐를 채울 때마다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실감이 났고

숨을 뱉을 때마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숨결인 것만 같다는 공포에 빠졌다.

 

분명히 눈을 돌렸는데도

달이 실제로 조각나는 모습이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다시 빠르게 숨을 들이켜고,

억지로 내쉬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호흡은 진정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고이며 

몸이 벌벌 떨렸다.

 

 

차마 다시 하늘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보고 싶지 않으면서도 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내가 잘못 보았길,

내 눈이 어처구니없는 착각을 저질렀길 바랐다.

 

 

밤하늘에는 바스러진 달의 파편만

드문드문 보였다.

 

 

마라톤에 도전했을 때보다도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어디로든 멀리 달려가다 보면

이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이 들었다.

혹시 자고 일어나면 전부 없었던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이 들었다.

 

하지만 내 눈에, 내 머리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은 현실감이 심장에 고했다.

사절의 홀로그램과 함께 합창했다.

 

 

“항복해라.”

 

 

나는 홀로그램을 향해 눈을 돌렸다.

뿌옇게 보이는 초록빛 형상에서

사무적인 어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개체도 이해한다.

다만 다음 3절대분 내로 

어느 쪽으로든 의사 표현을 할 것을 권한다.

만일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을 경우,

국제침략시행수칙에 따라 

항복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이 광경을 본 나는 확신이 섰다.

우리에겐 지금이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만,

오크에게 이는 일상업무에 일환에 불과했다.

 

 

“우선 다음 통합된 의견에 답하겠다.

‘선택의 여지는 없는가’에 대해서다.”

 

 

오크 사절이 턱을 긁었다.

 

 

“선택이라는 게 정말 있다고 믿는가?

 

하긴, 한 행성을 단독으로 군림한 지성체들은 

선택, 권리 같은 착각에 쉬이 빠진다고는 들었다.

 

자신들의 걸어온 이 길은 자신만의 길이며 

여태까지 내렸던 모든 선택의 총합이고,

저들의 역사가 그 증거이므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존중받고 싶어하지.

 

하지만 대개, 선택이란 환상에 불과하다.

누군가는 갈림길 앞에 서서 자신이 왼쪽을 택했다고 생각하고

다른 누군가는 스스로 오른쪽을 택했다고 착각하겠지만,

현실은 둘 중 누구도 진정한 선택은 내리지 않았다.

그 갈림길을 짓지 않았으니.

 

한 발짝만 물러나 보면 깨달을 거다.

진정한 선택은 이미 한참 전에,

훨씬 높은 곳에서 이미 내려져 있었고,

너희는 그 길을 충실히 따라 걸은 것에 불과하다는 걸.”

 

 

나는 눈물도 훔치지 못하고 

말 같지도 않은 억지를 뱉는 녹색 인영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런 착각에 휘둘리는 것도 이해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들이 중요하고 위대한 존재라고 

믿고 싶어하는 게 지성체 전반의 공통점이니 말이다.

 

이대로 너희 종족과 행성이 영영 사라진다면,

너희라는 존재가 얼마나 무의미했는지,

여태까지 쌓아왔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얼마나 덧없는지 증명하게 될 테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오크는 잠시 침묵한 다음

다시 말을 시작했다.

 

 

“그러니 너희의 입장을 배려해 답하자면,

선택지는 이미 주어졌다.

항복해 노예 계약을 받아들여라.

거듭 말하지만 이 홀로그램을 향해 

각 개체의 언어로 항복을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싫다면, 역사서에 남기고 싶은 문구를 선언하라.

1절대분 남았다.”

 

 

나는 눈물을 훔쳤다.

야속함과 억울함, 분노와 허무를 담아 주먹을 내리치고,

나도 모르는 사이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있던 그 자세 그대로

오크 사절을 올려다보았다.

 

 

인간은 많은 것을 이룩했다고 생각했다.

전염병을 종식시키는 치료제를 개발했고,

자연재해에 맞서는 건축물을 지었다.

우주를 관측했고 기후를 조절했으며

폭력을 그들의 도구로 삼았다.

 

그리고 그 모든 역사와 성취가 오늘,

상륙조차 하지 않은 단 한 대의 외계선에 의해

영영 사라졌다.

 

 

******

 

 

인간 노예가 인간 노예가 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미믹은,

어째서 이 기억이 그녀에게 보였는지 알 것 같았다.

 

 

흔들다리 효과라는 심리현상이 있다.

잘못된 귀인의 오류라고도 부른다.

불안감 등에 의한 교감신경 반응을 엉뚱하게 해석한 결과,

본인이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고 착각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죽음 목전에 두고 생기는 번식 욕구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성에게 향할 수도 있을까?

 

미믹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눈앞의 인간 노예에게는 통용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특히나 항복 선언을 할 때의 그의 고간을 보면.

 

 

미믹은 변신했다.

그녀가 그를 내려다보며

녹색 손으로 그의 턱 끝을 치켜올리자 

함께 위로 솟아오르는 양물을 보니,

확신이 섰다.

 

그녀가 긴 어금니를 포함한 

모든 치아를 드러내며 말했다.

 

 

“항복 선언을 하기 전까지

죽도록 따먹어주지.”

 

 

 

.

.

.

 

 

 

“주, 죽겠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미믹은 오크 사절의 흉내고 뭐고

원래 말투로 돌아간 채

애원하고 사정했다.

그러나 인간은 사정해주지 않았다.

 

미믹의 얼굴은 이미 눈물과 침으로 범벅이 되어있었지만

인간 노예는 허리를 계속해서 흔들 뿐

그녀를 봐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오크의 형상을 한 미믹은 

튼실한 대퇴근 사이로 애액만 줄줄 흘리며

어째서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남자가

신체 대비 지나치게 비대한 크기의 성기를 

가지게 진화한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어떻게 전보다 더 커지고 단단해질 수 있는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머릿속에서 번쩍이는 불빛과 

전신을 아우르는 쾌락이

한시라도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영원처럼 느껴지는 절망적인 시간은 

쌓이고 쌓여 어느덧 5절대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일반적인 종족과의 교접은 보통 길어도

1절대분 내에 끝내는 게 일반적이었다.

당연하다.

번식은 결과적으로 종족 전체를 유지하기 위함이고,

번식에 투자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기타 생존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지루인 종족들조차도

쉽게 발기가 풀리거나 유지를 못 할 뿐이지

지금의 인간처럼 쉬지 않고 

그녀의 몸을 탐닉하는 경우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었다.

 

기회가 되면 학자들의 푸념도 흥미롭게 귀 기울여 듣고,

호기심을 채우는 것 자체가 즐거워 

다양한 종족들을 각종 잡다한 정보를 관심있게 

모으는 미믹에게조차 

인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종족이었다.

 

왜지?

대체 뭐가 어떻게 돼야 지성체가 이딴 식으로 진화할 수 있던 거지?

지성체를 위협할만한 포식자가 아예 없었나?

생식처럼 외부의 위협에 무방비해지는 행위는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종족적으로 이득 아니야?

설마 서큐버스 년이 일부러 날 엿먹이려고 노예를 마개조했나?

저 년은 귀찮아서라도 그런 짓은 절대 안 할 년인데!

 

 

그러나 이 수많은 의문들은 

그녀의 목을 타고 입 밖으로 나올 무렵에는

어느새 앙탈에 가까운 신음으로 변질돼 있었다.

 

 

“앙! 하응! 앗!”

 

 

인간이 그녀의 양팔을 고정하고

미믹의 가장 깊숙한 곳을 꾹꾹 눌러올 때마다

본능이 정신을 지배했다.

 

…라.

 

미믹이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며 

가까스로 말했다.

 

 

“잘, 흑, 잘못했어요.

봐주세요.”

 

 

그러나 육봉은 그녀 속을 계속해서 헤집었다.

 

…해라.

 

 

“워, 원하시는 건, 힉!

뭐든, 읍, 전부 다 들어 드리겠……”

 

 

인간이 그녀의 골반을 붙잡고

쩍쩍 소리가 나도록 그의 것을 부딪쳐왔다.

 

…복해라.

 

 

“제발요, 하읍!

제발, 인간님! 네?”

 

 

미믹의 안에서 인간의 성기가

오히려 더 커진 느낌이 들었다.

 

항복해라.

 

인간 노예가 목전에서 달이 부서질 때 느꼈던 공포와 절망을

미믹은 이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녀가 다급하게 외쳤다.

 

 

“하, 항복할게요!

인간 자지는 절대 못 이길 것 같아요!

자지 님은 못 이겨요!

그러니까 제발!

그… 만…….”

 

 

미믹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인간이 남성기를 부풀리며

미친 듯이 스퍼트를 올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강제적으로 때려 박히는 쾌감과 행복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오옥! 컥! 큭! 응힛! 읏!”

 

 

목 졸리는 듯한 천박한 소리만 내던 미믹은

마침내 그녀의 몸 안에 뜨거운 것이 

부륫부륫 퍼지는 것을 느끼며

마침내 단말마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아❤

 

 

그 폭발적인 절정과 함께

미믹의 눈이 까뒤집혔다.

 

인간의 움직임이 멎자,

마치 인형의 실이 끊긴 것처럼

미믹의 몸이 풀썩하고 침대 위로 무너졌다.

 

셰이프 시프터와는 달리 

의식을 잃으면 변신을 유지하지 못하는

미믹의 몸이 서서히 본체의 형상으로 돌아갔다.

 

근육이 잔뜩 붙은 팔다리와는 달리 

크고 둥글고 푸짐했던 초록색 엉덩이가

서서히 미믹 본인의 작고 봉긋한

형상으로 돌아왔다.

 

미믹의 몸이 줄어들어 

미처 모든 정액을 수납하지 못해

다리 사이의 균열에서 

흰 체액이 흘러나오는 풍경까지

쭉 지켜보던 여인이

느릿느릿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인간 노예를 옆에서 안았다.

 

 

“봤지?”

 

 

인간 노예는 아직 절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처럼 

멍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의 상태를 본능적으로 눈치챈 서큐버스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네 정력은 이미 성교의 프로도 쓰러트릴 정도로 훌륭해.

너한테 울고불고 매달렸던 건 내 문제가 아니라고.

오십보백보긴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마지막까지 정신은 차리고 있던 

내 쪽이 차라리 낫지.”

 

 

의식을 잃은 채 온갖 체액으로 범벅이 된 

더러운 침대 위에 널브러진 미믹을 

내려다보던 서큐버스는 속으로는 고소하다고 생각하며

미믹이 듣지 못할 비난을 뱉었다.

 

서큐버스는 미믹이 매번 그녀를 깔보는 눈치를 못 알아챌 정도로

어리석은 지성체가 아니었다.

그저 그걸 교정하기 위해 따로 행동하는 게

귀찮아 묵인하고 있었을 뿐이지.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저 부지런한 적, 잘난 척하는 년을

조금 혼내준 것만으로도 

이미 그녀 입장에선 충분한 수확을 거뒀다.

물론, 귀찮음을 무릅쓰고 이곳에 인간 노예를 데려온 것은

단순히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생각해봐.

미믹이란 종족에겐 따로 발정기가 있는데도 이 모양이야.

물론 발정기 상태라 아기를 가지려고 

공짜로 손님에게 안기려 드는 매춘부들을 

직장에 내버려두는 창관은 없으니,

너희 종족은 따로 발정하지 않은 종족도 

이렇게 정신 나가게 할 정도로 절륜하다는 증명도 되지.”

 

서큐버스가 손을 움직여 인간 노예의 몸을

나긋나긋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줄게.

아무리 내가 직접 사냥에 나선 지 오래됐다고는 해도,

다른 종족들에게 음마 취급받는 나조차도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인 너는,

그리고 네 말대로라면 너희 종족 전체는 

성적으로 지나치게 출중해.”

 

 

서큐버스는 슬금슬금 인간 노예의 

고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가볍게 성기를 뿌리부터 짜내 

그 안에서 걸쭉한 백탁액이 흘러나오게 했다.

서큐버스는 입맛을 다셨다.

 

 

저번에 시도한 경험에 따르면

그녀가 직접 나서서 인간의 정기를 뽑는 건 

거의 익스트림 스포츠 수준에 가까웠다.

 

때문에 평범한 성교도 운동 같아서 성가시다고 보는 

그녀의 입장에서 인간 남성은 참으로 계륵처럼 느껴졌다.

딱 봐도 먹음직스러운 정기가 흘러 넘치길래 

덜컥 충동구매를 했는데, 정작 이를 뽑아 먹는 것은 

번거롭다 못해 고생스럽게까지 느껴지다니!

하지만 귀찮음을 무릅쓰고 번 돈이 아까워서라도 

그녀는 차마 이대로 인간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름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이득을

얻을 수 있을 법한 계획을 세워보았고,

보이는 바와 같이 당당히 성공했다.

 

비록 다른 여성의 몸을 빌리는 바람에

불순물이 섞이긴 했지만,

그래도 단순 자위행위와는 달리 

음양이 섞이며 제대로 추출한 맛있는 정기가 

인간의 맥박과 함께 흘러넘치는 모습은

서큐버스의 식욕을 자극하고도 남았다.

 

그녀는 수컷 냄새가 물씬 풍기는 남성기에

얼굴을 기울였다.

 

 

 

그를 구매한 미모의 여성이 

그의 요도에 입술을 댄 채 남아있던 정액을 

쪽쪽 빨아먹는 모습을 보며,

인간 노예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분명히 아무런 권리도, 권력도 없는 노예인 위치는

전혀 변하지 않았을 텐데도,

그는 마치 세계의 지배자라도 된 듯한 우월감과 전능감에

단순한 쾌락을 넘어선 충족감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나름 현실감을 잘 챙긴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눈앞에서 달이 터져 나갔는데도

발광하거나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적어도 본인은 상위권이리라 확신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최대한 보수적인 견해를 취하려 시도했다.

 

 

“과찬은 감사합니다만,

그래도 이 분은 미믹이시고,

변신한 모습은 확실히 진짜 오크처럼 장대해보였지만 

정작 본체는 상당히 연약하신 것 같아요.

그러니 단순히 이분께서 체력 문제로 

힘들어하시는 걸 수도 있지 않나요?”

 

 

그의 귀두를 갈라진 혀끝으로 핥던 서큐버스 주인이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잠깐 입을 떼고 뭔가 반박하려다가,

그냥 귀찮아서 넘기는 모습이 명백하게 보였다.

 

하지만 번거롭게 토론을 시작하는 대신

그녀는 말을 돌렸다.

 

 

“아무튼 따로 더 박아보고 싶은 종족이라도 있어?

다른 애 누구 불러줄까?

아님 다른 창관이라도 가볼래?”

 

 

인간 노예는 서큐버스 주인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 그녀로서는 단순히 

본인이 직접 고생하는 일 없이

손쉽게 그가 제공하는 ‘특상급 정액’을 

마시고 싶어하는 것뿐일 테다.

 

서큐버스에게 팔린 첫날 

그녀가 본인 입으로 직접 밝힌 지론에 따르면,

그녀는 정기 중에서도 가장 높게 쳐주는,

정액 제공자가 가장 성적으로 각성한 상태에서 

발산하는 정기를 먹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고생은 감수할 각오가 이미 되어 있다고 했다.

 

……물론 전형적인 미녀상인 그녀가 

그를 향해 그런 말을 한다는 것부터

이미 충분히 그의 성욕을 돋우기 충분했고,

그 결과 불과 3절대분 뒤에 그의 아다를 

그녀가 직접 떼게 되었다.

 

다만 그렇게 추출해낸 정기의 획기적인 품질과는 별개로

추출에 걸리는 시간과 과정이 서큐버스 주인에겐

‘어느 정도의 고생’을 훌쩍 뛰어넘는 경험이었다며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렸다.

 

걸어다니는 섹스 그 자체인 서큐버스 주인님과

다시는 섹스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인간 노예에게 그녀가 말했다.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따로 꼴리는 종족이나 상황이 없는지 한 번 읊어봐.

못해도 비슷한 상황까진 이룰 수 있을 거야.

나만 아니면 돼.”

 

 

그래도 현자타임 중에 그런 생각이 들 리는 만무했고,

우물쭈물 대는 노예의 반응을 

주인이 제멋대로 해석한 결과가 바로 이 창관이었다.

 

설마 창관에서 기억을 읽어내면서까지

가장 최근에 가장 크게 흥분했던 대상과,

그 년을 거의 노리개처럼 부려 먹게 해주는 

서비스까지 제공할 줄은 몰랐던 노예로선

주인님의 탁월한 선택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무시무시한 이용약관을 듣고 

반사적으로 거부감이 들었지만,

주인님 말씀대로 조용히 따르는 것이 맞았다.

 

덕분에 마지막에 가선 항복하겠다면서 

엉엉 울다시피 하다가 지쳐 기절하다시피 한 

미믹 양의 서비스도 받고, 그녀의 처절한 연기 덕에

중간중간 정말 그의 정력이 대단한 취급을 받는 게 아닌가

싶은 착각이 진심으로 들 뻔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괜히 꼴불견을 보이며 자만해선 안 됐다.

조금만 꼴리는 상황이 나오면 바로 서고 

바로 싸는 절조 없는 자지 주제에

괜히 잘난 척하다가 서큐버스 주인님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되니까.

 

 

방금 서큐버스 주인이 무언가 반박을 하려는 것처럼 

뜸을 들였던 것도, 십중팔구 어떻게 하면

그를 더 꼴리게 할 수 있을지 잘 아는 음마이기에

일부러 저런 태도를 보이시는 것일 테다.

 

비록 서큐버스 본인의 이득을 위해서라곤 해도

그를 위해 세세한 점까지 꼼꼼하게 신경 써주시는 

주인님의 모습에 인간 노예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는 감사의 의미를 담아 

서큐버스 주인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서큐버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순순히 그의 손길에 응했다.

 

그의 주인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귀엽고 순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인간 노예가 푸근한 미소를 짓자,

서큐버스 주인님이 자지에서 입을 때고

매력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징그럽게 웃지만 말고 

누구를 제일 박고 싶은지 말이나 해.

다음 식사 전까지 준비하고 싶으니까.”

 

 

인간 노예는 주인님의 새침데기 같은 반응에

멋쩍게 웃고 답했다.

 

 

“아휴, 말한다고 다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요.”

 

“일단 말이나 해봐. 결정은 내가 하니까.

누구라도 상관없이 박을 수 있다면 

누가 좋겠어? 나 빼고.”

 

 

인간 노예는 곰곰이 생각했다.

사실 지금도 현자타임 중이긴 하지만

다행히 이 창관과 미믹 양의 도움 덕분에 

그에게 가장 꼴리는 상대를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만약 저한테 정말로 누구라도 

헤롱거리게 만들 수 있는 마법 자지가 달렸다면

지구를 침략할 때 얼굴을 보인 그 오크 사절부터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싶네요.”

 

 

그 발언 이후 인간 노예는 괜한 말을 했다며

쑥스러운 듯 뒤통수를 긁었다.

그러다 미믹 양이 처음에 언급했던 녹화와 녹음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제 발이 저린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래서 그는 보지 못했다.

그의 고간에 얼굴을 파묻은 주인의 눈빛에

섬광과도 같은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는 것을.

 

오크의 특성과 문화 등을 떠올리며

남녀, 대결, 승부 등을 생각하고 있는 것을.

 

 

그리고 그는 알지 못했다.

그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등한시하는 

인류라는 종족의 특성이 발견된 지금,

대우주시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선천적인 지능, 무력, 마력 등

무엇 하나 다른 종족을 이기지 못하는 인간이

어쩌다가 음마마저 뛰어넘는 색마로 평가받게 되는지.

 

무엇보다도, 그는 상상조차 못했다.

훗날 하프 오크라는 단어가

인간과 오크 사이에서 나온 

혼혈만을 지칭하는 보통명사가 될 미래를.

 

오리온성좌 근처에서 타 버린 우주선과 

탄호이저 게이트에서 어둠 속 오로라를 볼 수 있을 때까지

인류가 전 우주에 DNA를 퍼트리게 되는 운명을.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 노예는 그저 

주인님의 청소펠라를 받으며

인간이든 아니든 여성적으로 보이기만 하면

별 거리낌 없이 박고 쌀 수 있는

본인의 이상성욕에만 감사하고 있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