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처음의 계기는, 정말 별 거 아닌 말 한마디였었다.



다른 도시 어느곳을 가더라도 있을 지저분하고 품위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뒷골목의 허름한 술집에서, 

술병이 깨지는 소리와 추잡한 고함소리가 울려퍼지는 어느 한 구석에서, 

용사가 잔뜩 취해 침을 질질 흘리고 초점이 흐리멍텅해진 취객에게 고개를 숙이며 낸 목소리였다. 



“너 같은 용사라고 자칭하는 쓰레기들이 마왕 토벌을 떠난지도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지 알아?! 벌써… 어디보자… 끄윽… 200년은 더 넘었나?” 

생김새도 내면도 모두 저급한 남자는 한참동안 싸구려 술을 퍼마신 덕분인지 말도 정확하게 내뱉지를 못했다.


“… 저희가 마왕의 토벌을 떠난지는 이제 1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습-“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용사의 뒤에서 긁히고 패인 상처가 가득한 판금 갑옷을 입은 노인 남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취객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끄으윽…. 시끄러! 네놈들 사정 따위 알바 아니야!” 

거친 트름소리와 함께 잔에 든 술을 다시 크게 들이 마신 뒤, 또 다시 입을 열었다.


“끄어어억…. 마왕이 우리에게 쏟아버린 선전포고를 듣고 벌벌벌 떨고 있는 불쌍하고 선량한 우리 시민들에게 왕국의 버러지들이 내놓은 대답이 … 에… 그… 이름이 뭐였지 토미?” 


“방금까지 말하고 있었으면서 그새 까먹은거야? 용사법이잖아.” 

토미라고 불린 남자또한 잔뜩 취해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아! 그래 그거였지. 용사법! 성의 없는 이름처럼 실속이라고는 텅텅 비어있었지.” 

마왕의 침공을 막기 위해 여신이 선택한 용사의 파티를 국가 단위로 지원한다. 

대충 그런 법이었다. 

처음의 용사로부터 어느새 278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한 제도였다.


“씨발… 너 같은 놈들이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이 많이 있었을텐데… 꺼어억- 지금 이 나라 꼴을 좀 봐라!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던 전쟁이 아직까지도 안 끝났잖아?!” 


“저… 저희는 여신님의 뜻에 따라 언제나 최선을-" 

이번에는 술집과 어울리지 않는 조금 낡은 하얀 로브를 걸친 소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지만 아까의 반복일 뿐이었다. 


“닥쳐! 여신의 용사? 너희같은 종교쟁이놈들이 그렇게 떠받들던 여신이란 년에게 선택받은그 잘난 놈들이 고작 네놈들이야?! 핏덩이 애새끼에… 늙어빠진 고기방패, 귀쟁이 마녀에, 종교의 노예년까지? 지랄도 어느정도 해야지…”


“내 피 같은 세금과 시간을 빼앗아간 걸로는 모자라. 이제는 전쟁터에서 내 다리 한쪽까지 가져가 놓고는. 아직도 모자른가?!”

취객의 말은 이미 볼품없는 하소연에 지나지 않았다.


“야. 슬슬 적당히 하고 꺼지지 그래? 아니면-"

그렇게 말하며, 눈치 채지 못하게 조용히 단검의 고정끈을 풀려는 엘프족의 손목을 용사가 잡아 멈추었다.


“… 죄송합니다.”


“왜 너가 사과하는거야! 이딴 주정뱅이의 말 따위는-"


“전부. 제 잘못입니다.”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용사의 목소리는 단호하기만 했다.


“그래 당연히 니 잘못이지! 그 젊었던 나이에 전쟁터에 끌려갔던 것도, 아내가 역병으로 뒤져버린 것도, 이렇게 맛대가리 없는 술이나 퍼마시는 것도 전부 네가 제 할일 을 못해서 벌어진 일이잖아 안그래?! 쓸모 없는 도둑 새끼들 같으니. 난 하나도 잘못 없어… 끄어억…” 


“적당히 좀 마셔. 전 처럼 니 돼지 같은 몸뚤이를 들고 다니긴 싫으니까.” 

그나마 덜 취한쪽의 동료가 있었기에 폭력 사태로는 발전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알았어 알았어… 거참… 남은 건 자비로운 이 몸께서 친히 용사님에게 주도록 하지. 그거 받고 이 망할 세계나 빨리 구해주세요~ 크하하핫!” 

라고 말하며, 잔에 남아있던 술을 그대로 용사의 머리위로 들이 부운 체. 

역겨운 웃음소리와 함께 취객들은 절뚝 거리며 도시의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몰래 듣고 있었던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있는 내 귀에까지 들릴 정도로 큰 소리였지만, 

이 정도 소란은 눈길을 줄 만한 것도 아니라는 듯이 술집은 여전히 소란스럽기만 했다.


“괜찮… 아요?” 

머리에서 뚝뚝 흐르는 술방울들을 수건으로 닦아주며 성직자 소녀가 걱정어린 말을 건냈다.


“왜 가만히 있는거야! 저런 놈들 쯤은 아무것도…” 

상황이 굉장히 불만족스러운지 귀 끝까지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화를 내는 엘프가 보였다.


“저 아저씨에게 오늘 조금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지 뭐. 아하하… 그리고 이런 좁은 곳에서 사람들과 싸울수는 없잖아?” 

살짝 낯부끄러운 듯이 슬며시 웃는 용사의 얼굴도 눈에 들어왔고. 


“저런 머저리들 상대할 필요는 없어. 잘 참았네.” 

그런 엘프를 말리려는 갑옷의 노인은 별 거 아니라는 듯 분위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저 4 명이 이번 세대의 용사들 인가. 

라고 생각하면서. 

역안과 뿔을 들키지 않게 위장 마법을 걸어놓은 로브를 뒤집어 쓴 마왕군 소속 공작원인 나는 술집에 들어왔을 때와 똑같이 은밀하고 조용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받은 임무는 단순한 인간들의 동향 감시나 말단의 암살 정도였으니, 이렇게 까지 용사와 가까운 거리에서 접할 기회가 없어서 였을까. 

반 쯤은 호기심, 나머지 반은 경계심을 품고 한동안 잔을 홀짝이며 그들에게서 눈을 때지 않았다.


“용사라…” 

저 소년은 용사라는 칭호에 비해서는 그렇게까지 강해보이지는 않았다. 

지금 이렇게 잔을 홀짝이는 도중이며 딴짓을 하는 중이지만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오늘 가지고 온 유일한 무기인 단검 하나만으로도 여기 술집에서 아무도 살아서 나가게 하지 못할 자신감은 있었다. 

시간은 조금 더 걸리겠지만 용사 무리도 그 아무도 나가지 못할 사람들 중 하나가 될게 뻔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왕국의 기사단 보다 조금 더 강할 수준이지 않을까. 


왜 인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 마왕군의 숙적이어야 할 상대가. 

가장 찬란해야만 할 용사가, 고작 저런 술취한 쓰레기에게 욕이나 먹고 있는 비참한 꼴을 보는게 싫었다. 

마왕을 위협할 만한 대적자인 용사가 과연 저 정도로 될까 싶었다. 

말단이지만 그래도 마왕군 소속인 만큼, 내 할 일에 쥐꼬리 만큼의 자부심은 가지고 있는데… 고작 저런 풋내기가 우리의 위협이야?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드는데 말이지. 


난 오늘도 임무때문에 7일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보고서를 써가며 철야 근무나 뛰고 있는데. 

여신의 결계인가 뭔가 덕분인지 왕국에는 강력한 마족이 들어올 수 없었다. 

경험자의 말로는 뼈까지 다 타버리는 느낌이 든다나 뭐라나. 

하루종일 온 몸이 불타고 있는 헬하운드가 오들오들 떨며 그런 말을 했을 땐 어이가 없었다. 


아무튼 그거 덕분에 이 왕국에 있는 마족이라고는 하급 임프인 나 뿐이다. 

하지만 일할 사람은 하나여도, 해야할 일의 개수는 줄지않았다. 

말 그대로 어둡기만한 직장이라니까.


그래서 이 도시에 용사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몰래 감시하고자 이 술집에 왔던 거였다. 

용사의 목이라도 가져간다면 휴가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품으며 말이다. 

그렇지만…



“저런 세상 물정 모르는 놈 따위를 잡아도 그렇게 까지 큰 보상은 못 받을 것 같단 말이지.” 

면전에서 모욕을 퍼부어도 저렇게 사람좋은 듯이 실실 웃고 넘기는 한심한 놈 따위, 용사로 취급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지금의 용사를 잡아가도 상부에서 인정해 줄 것 같지가 않은데. 

손등에 새겨진 여신의 문장이 있다면 용사라고 증명은 될테지만, 

나 같은 잔챙이 하급 임프 선에서 처리당한 자가 용사라면 아무래도 미심쩍은 반응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공적을 뺏기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평소 같았더라면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라며 실소를 내뱉으며 다시 지시대로 염탐이나 ‘쓰레기 처리’ 나 하러 내가 왔던 어둠으로 돌아가 버렸을테지만, 

이 날은 나도 조금은 취했던 것일까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좋아. 이것도 길게 보면 일의 연장이니까.” 

그렇게 작게 중얼 거리며 사랑스럽고 순진한 소녀처럼 보일 표정과 말투를 생각한 뒤, 

로브속에서 헝클어진 푸른 머리카락을 조금 정리하고, 따지 않은 술 병하나를 들고 테이블에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용사님! 아까는 조금 소란이 있었네요.” 

지금 죽여도 아무런 의미도 없다면, 의미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이지. 

마침 남는 건 시간밖에 없는 내가 좀 도와주지 뭐. 

일이 잘 안 풀리면 뭐… 모두 갈가리 찢어버리면 그만일 테니까.



“마침 한 병이 남아있는데, 여자 혼자 다 마시기는 좀 많아서… 실례가 안 된다면 저도 같이 마셔도 될까요?” 

그게. 용사 파티 합류의 첫 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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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세요?! 카밀라 씨?!”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지도 않은 체로 용사가 쓰러진 내게 손을 뻗었다.


“아. 아… 네…” 

… 분명 조금만 도와줄 생각이었는데. 

풋내기도 용사는 용사라는 걸 증명하듯이 그의 주변엔 산 처럼 쌓인 고블린과 오크, 스켈레톤 트롤과 레이스의 시체가 가득히 쌓여있었다. 

죽인 숫자가 500 마리를 넘어갔을 때부터는 세지도 않았다. 

마왕군 소속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저급한 마물의 무리라 해도 이정도의 수량이면 간부인 사천왕 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상사급 마족이 한 둘은 땀을 흘릴 정도가 아닌가.


“아! 다리에 상처가. 잠깐만요. 세리아 씨! 여기 치유 부탁드려요!” 

우리중 누구보다 앞서서 칼을 휘둘렀던 덕분에 피투성이가 된 용사가 먼저 치유를 받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저 중 절반 이상은 땅바닥에 널부러진 저 시체들에게서 뿜어져 나온거니 저는 걱정 하지 말라며 웃는 용사의 대답이 들려올게 뻔했다. 

그리 길지 않은 동행이었지만 언제나 그랬으니까 대충 알 수 있었다.


“네!” 

후방 지원의 성직자인 세리아도 용사만큼은 아니었지만 흙먼지와 핏방울이 뒤집어쓴 체 종종걸음으로 귀엽게 뛰어와 열심히 치유 마법을 걸어주었다. 

처음엔 악마인 나한테 힐이 통할까 싶었지만, 다행히 정체를 들키지도 않고 별 문제는 없었다.


“이런 시골 까지 이정도로 대규모로 마물이 습격을 할 줄이야. 아이고… 앞으로도 힘들어지겠어.” 

무수히 많은 흠집이 생긴 방패와 창에 묻은 피를 닦으며 파티의 전위인 판금전사 아스피다가 허리가 아프다는 듯 골골대는 소리를 내었다.


“으으으... 게다가 언데드도 잔뜩 있었습니다… 보통 자연적으로는 발생하지 않는 마물일텐데요…” 

언데드의 천적인 성직자가 있으니 그렇게 큰 적수는 아니었지만, 종교적인 이유인지 생리적인 이유인지 단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원인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주민분들에 피해가 가기전에 다 처리 해버렸으니 한 동안 문제는 없을거에요.” 

모른다는 말은 물론 거짓말이었다. 

이 마물들의 무리는 내가 몰래 마력의 흐름을 뒤틀어서 강제적으로 모이도록 며칠동안 유도한 결과물이니까. 

그런 마물의 무리를 주변 마을 사람이 발견해서 용사에게 토벌의뢰를 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기대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나 많이 모여들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우리가 하루라도 늦게 도착했더라면 아마 마을은 흔적도 남지 않고 불타 없어져 버렸겠지. 

물론 그래도 용사를 성장시킨다는 내 목적에 부합하니 나야 어찌되던 상관 없었지만, 

파티에 괜히 악영향을 미칠 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결과적으로는 잘 풀렸다고 할 수 있겠지?

 

 

 

피 비린내나는 시체들의 산을 뒤로 하고 서로 무기의 손질이며 뒷 정리는 하는 와중에 용사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촌장님께 의뢰 완료 보고를 하고 올게요! 여러분들은 조금 휴식을 취하고 계세요!” 

그렇게 말하며 용사는 마을 방향으로 멀어져갔다.


“… 크리시아 씨. 오늘도 맨 앞에서 싸우셨네요.” 

용사가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진 후 세리아가 걱정스러운 듯이 입을 열었다.


“으음… 원칙대로라면 방패역할인 내가 제일 앞선에 서는 것이 맞겠지만… 이제 이 늙은이는 내 제자의 속도를 따라 갈수가 없어서 말일세. 그리고 나보단 그가 앞에 서는 게 토벌 자체는 제일 빠르지 않은가?”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 공격 담당인 용사.. 아니 크리시아 씨가 무너져 버리면 저희 파티는 순식간에 불안정해집니다.” 

그는 언제나 용사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기는 아직 그럴만한 그릇이 아니라고 했었지.


“방패 하나, 보조 하나, 저랑 오늘은 비번인 카렌까지 해서 마법사 둘인 근접 전사없는 파티가 되어버리네요.” 

일단은 마법사라고 거짓말하고 여기에 들어왔으니까 말이다. 

마법을 쓸 수는 있으니 마냥 거짓말은 아니지만, 내 주특기는 좀 더 다른 분야란 말이지.


“전에 의뢰중에 아스피다 씨가 허리를 크게 다치신 이후부터, 크리시아 씨는 후방인 저희 뿐만 아니라 전위인 당신까지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선다구요.”


“으음… 지키는 건 방패인 내 역할인데 말일세.”


“어차피 저희가 하는 말은 듣고 흘릴게 뻔하니까. 크리시아 씨가 돌아오면 아스피다 씨가 책임지고 말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한쪽 뺨을 부풀리는 성직자는 마냥 귀엽기만 했다.


“허허허. 처음 전투를 가르쳤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말일세. 아직도 내 눈엔 소년같아 보여서 그렇게 쓴 소리는 잘 못하겠는데 말이지.” 

기분이 좋을 때의 버릇인 백발의 수염을 쓰다으면서 아스피다는 조금 부끄러운 듯 미소지었다.


“아스피다 씨가 용… 크리시아 씨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쳤다고 하셨죠?” 

전에 한 번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래. 기사단에서 퇴역하고 시골에서 조용히 잊혀가던 어느 날. 약초 채집같은 별거 아닌 의뢰로 찾아왔었던 소년이었지.”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는 언제나 행복해 보였다.


“왜 인지는 이미 잊어버렸지만 그에게 검술의 기초를 가르쳤었지. 쓰는 무기도 다르고 체격도 다르니 정말 기초밖에 가르칠 수밖에 없었지만, 배우는 속도와 응용력이 정말 놀라울정도로 빠른 대단한 꼬마였지. 며칠만에 내가 더 이상 가르칠게 없어질 정도로 말일세!”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손자뻘인 꼬마를 치켜세워주려는 말인 줄알았습니다만… 이제는 좀 실감이 되네요.” 

슬쩍 고개를 돌려 여전히 쌓여있는 시체들을 보면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용사는. 

용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그 때 술집에서 만났던 어리숙한 풋내기는 이미 한참 전의 옛말이 되어버렸다. 

뭐… 나도 놀고있는 건 아니고 열심히 성장하고 있으니까 문제 없을거다. 

용사와 일 대 일로 싸운다면 지금이라면 팔 하나 내어줄 각오를 하면 내가 이길 수 있을 정도일까.


“그래도 이 정도로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건… 자네 덕분일세.”


“맞아요! 카밀라 씨. 카밀라 씨가 오신 다음부터 저희 모두 눈에 띌 정도로 강해지고 있다구요! 뭐랄까… 연계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 졌다고나 할까요? 카밀라씨가 찾아오시는 의뢰는 힘들지만... 오늘처럼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 들이구요!”


“동료라면… 당연히 서로 도와야죠. 의뢰는...  참 운이 좋았네요.” 

물론 거짓말이다. 

성장이 눈에 보일 정도로 느껴진다고? 

그야 당연하겠지. 

너희들의 성장치에 맞추어서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내가 유도하고 있는 의뢰가 몇 개였는데. 

전투중에 몰래 몰래 빈사상태의 마물을 처리하게끔 앞에 내어준 적이 몇 번이었는데. 

파티 모두의 전투 버릇이나 습관 같은 걸 일일히 적어가며 밤새도록 연구한게 누군데. 

성장하지 않으면 오히려 내가 곤란할 정도다. 


지금 이 4명의 파티의 연계라면 사천왕 한 명정도의 토벌… 까지도 꿈 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한명 한명씩 상대한다면 택도 없을테지만 말이다. 

그 만큼 연계라는 힘은 무서울 정도다. 


“그… 그래서 말인데. 카밀라 씨가 저희 파티에 들어오신지도 벌써 1년이 지났는데… 이번에 도시로 돌아가면 다 같이 기념 파티를 할까 싶은데… 어떠신가요?”


“네?” 

예상치 못한 말에 한순간 사고가 멈추었다.


“사실 이미 맛 좋은 가게도 예약해 놓았고… 아스피다 씨가 묶혀 두었던 포도주도 가져오신다 하셨고… 카렌 씨도 엘프 전통의 디저트도 준비해 놓으신다고 하셨는데… 괜찮으시다면… 같이 와주시겠어요?” 

혹시 거절하면 어쩌지 하며 불안해하는 성직자 뒤에서 조용히 수염을 쓰다듬으며 비슷한 눈길을 보내는 노인의 기대를 저버릴 순 없었다.



“… 네. 기쁘게 가도록 할게요.” 


“와아! 다행이에요! 혹시라도 거절하시면 어쩌나 했는데…”


“음! 후회하지 않을 걸세! 이제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지방의 특제 와인일세! 기대해도 좋다네!”


“여러분~~! 의뢰 완료 증서를 가져왔어요!”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저 멀리서도 크게 들릴 만큼 크게 소리치며 용사가 귀환하는 것이 보였다.


“자 그럼 돌아가세나. 우리 엘프 아가씨께서 기다리다 지쳐버리겠네.”




“아하하… 기대하고 있을게요.” 

나도 모르게 새어나온 미소와 함께 가슴 한쪽이 시리듯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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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나랑 잠깐 얘기좀 하자."

폭우가 멈추지 않고 도시의 거리를 적시던 날. 

엘프족 마법사인 카렌이 나를 불러 세웠다.

어째서인지 전투때에나 사용하는 지팡이를 들고있고, 

조금 떨리며 긴장한 듯한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