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삶도 이제는 마무리할 때인가. 이 정도면 꽤 오래 즐겼지."

"…짐꾼?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환생하고 나면 지루한 유년기를 거쳐야하기에 죽음은 그리 달갑지 않다.

하지만 가망없는 삶을 억지로 붙잡을 정도의 집착은 아니다.

이왕 두고 갈 목숨, 폼이나 잡으면서 끝내면 꽤 괜찮은 마무리겠지.


"도망가라. 뒤는 내가 맡겠다."

"…?!"


환송의 깃털. 구명줄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일회용 순간이동 도구. 위험해지면 '약한' 나 먼저 도망치라며 지금은 죽어버린 성녀가 건네줬던 물건이다.

…그래놓고 먼저 죽어버릴 건 무엇인지. 참, 미련한 여자다.


"짐꾼, 당신…!"

"…나중에, 내 시체 정도는 건져달라고. 부탁한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깃털의 능력이 발동되며 용사가 빛에 휘감겼다.

그리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뭐, 제 몸 하나 간수하기에는 충분할 거다. 용사란 그런 존재였으니까.


─…갸륵하구나. 연약한 여신의 종복아.

"뭐야, 죽이기 전에 유언이라도 들어주려고?"


마왕의 입이 열리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마물들이 고개를 숙인다.

마물 특유의 가레가 끓는 듯한 으르렁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마왕성. 그곳에서 마왕이 입꼬리를 올린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못 들어줄 것도 없지. 여신에게 버림받은 자에게 악마가 속삭임을 건네는 게 이상하느냐?

"딱히 신을 믿었던 적은 없는데 말이지."


굳이 믿는다면 부처 쪽이려나.


─그렇다면 어찌하여 희생하느냐? 거짓된 구원에 미혹되어 스스로의 몸을 던지는 게 아니라면, 그 용사라는 자를 살리기 위해 네가 죽어야할 이유가 있느냐?

"…이유, 음. 여신을 믿는 건 아니지만, 뭐, 나도 믿고있는 게 있어서."


─…?


의아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마왕을 향해 검을 들어올렸다.

숨 죽이던 주변 마족들이 살기를 드러냈지만, 진정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에게는 대수롭지도 않다.


"내가 목숨을 잃은 뒤에도, 새로운 아침이 올 거라는 걸 믿는다. 그것 뿐이야."


다른 세계에서의 아침이 말이지.


─…한낱 짐꾼 주제에 기개가 제법이구나. 신앙이 아니라 정의를 위해 싸운다라…. 어쩌면, 우리는 통하는 구석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혹시 이쪽으로 전향할 생각은 없나?


내가 그런 거창한 말을 했던가.


"혹시, 세계의 절반을 준다거나 그러냐?"

─사천왕의 한 자리 정도는 내어줄 수 있겠구나.


"이래뵈도 욕심이 많은 남자라서, 안 되겠는데."

─….


"역시, 세계 하나 정도는 구해줘야 폼이 살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무림에 환생했을 때 익혔던 무공이라도 수련해둘 걸 그랬나.

…뭐, 정말로 세계를 구해버릴 생각은 없지만. 나는 어차피 이 세계에 잠시 표류하는 손님일 뿐이다. 손님이 깽판치고 다니면 민폐잖아.

그 세계의 일은 그 세계의 운명에 맡긴다. 그게 요즘 밀고있는 내 좌우명이라서.


'…그래도 뭐, 그 용사라는 녀석은 꽤 마음에 들었으니까.'


선물 하나 정도는 남기고 가도 괜찮겠지.


"덤벼라, 마왕."

─오만하구나.


그 대화를 끝으로, 마족의 군세가 밀려왔다.


.

.

.


"…마왕, 나를 잊었다고는 하지 않겠지."

─아, 짐꾼에게 목숨을 구걸하며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았던 그 '용사' 말인가?


"…닥쳐!"

─너와는 달리 그 짐꾼은 참 용기있는 자였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나를 향하여 달려들었으니.


"…닥, 치라고, 했어!"

─다른 사람의 시체를 짓밟고 겨우 살아남았으면서, 겨우 그 정도인가? 이번에는 누굴 내치고 살아남을 거지? 아! 신실한 아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며 너를 살려주겠구나.


"…."

─그 짐꾼의 유언이 궁금한가? 아, 분명 이렇게 말했을 거다.


"끄, 흐, 으…."

─"용사, 원망한다."


마왕이 그 문장을 내뱉는 순간, 어디선가 현을 팅기는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

─…이건, 대체?


용사는 이 음악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언젠가, 성녀와 마법사와 짐꾼이 살아있을 적에. 자기 나라의 자장가라며 짐꾼이 들려주었던 음률이었다.

일렁거리는 모닥불과,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낙엽과, 짐꾼의 기묘한 분위기가 밤하늘 아래에 내려앉아서.


그날은 분명, 좋은 꿈을 꿨던 것 같다.


용사는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그 밤하늘이, 그때 그 별이 분명 그 자리에 펼쳐져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그 기대는, 정말 완벽하게 배신당했다.


"…하, 하하."

─…?!


하늘에 있는 것은 마법진이었다.

용사가 알지 못하는 낯선 별자리를 그리며 이어지는, 하나의 마법진.


- 내가 있던 나라에는 큰곰자리와 작은 곰 자리라는 별자리가 있었는데….


항상 '내가 있던 나라에는' 이라며 운을 떼던 용사의 옛 이야기. 그 이야기 속에 나오던 두 별자리가 마왕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용사, 원망한다."]

[─…이제와서 후회하는가?]

["꼭, 용사한테 그 유언을, 전해줬으면 좋겠군."]


마왕의 입을 통해 전해진 유언. 그건 사실 하나의 마법을 완성하는 시동어였으니.


- 작은 곰자리가 된 자신의 아이에게, 큰곰자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


"하, 하하…!"


- 네가 화살을 쏘아 나를 맞혔더라도, 나는 너를 원망하지 않았을 거라고.


용사의 성검에서 빛이 터져나왔다.

언제나처럼 따스하고 온화한 빛. 여신이 직접 내려준 신의 축복.

그 빛이 지금, 검을 중심으로 몰아치며 한 단계 성장하고 있었다.


─그, 빛은, 대체…!


그것은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른 세계의 기술.

만약 무림의 사람이 그 빛을 보았다면, 경악하며 이렇게 말했을 거다.


검기성강(劍氣成罡)의 경지라고.


"이거, 그냥 짐꾼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용사에게 달려들던 마족의 군세가, 세로베기 한번에 반으로 갈라지며 쓰러진다.

타인을 멋대로 검기성강의 경지로 올려버리는 기상천외의 마법.

여러 세계를 환생하며 그 세계의 기술을 익힌 환생자만이 가능한 규격외의 이적.

용사는 이 이적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알고있었다. 그야, 악몽에 시달리던 용사에게 짐꾼이 항상 보여주던 것이었으니까.


- 이름? 음, 글쎄. 자장가… 정도로 해야겠네.


별빛으로 엮어낸 자장가가 마왕성을 은은하게 밝혀나갔고.

용사는 마왕의 시체 위에서 하염없이, 정말 하염없이 울었다.


.

.

.


'이번 컨셉은 짐꾼으로 할까.'


용사 파티의 짐꾼이라, 뭔가 불온한 어감이다. 그래서 좋아.


"…짐꾼?"

"엥?"


뭐야, 내가 짐꾼이 되려고 한 걸 눈치채다니.

설마 독심술사인가? 위험한데.


"짐꾼, 당신…!"

"…흐읍?!"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나를 껴안는 그녀. 아니, 미친년인가. 그런데 얼굴이 어쩐지 익숙…?


"…용사? "


어, 용사네.


그런데 나한테 갑자기 왜…?



#후회 #피폐 #집착 #용사 파티의 짐꾼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