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 이야기다.


{꼬마야, 나랑 계약할래? 내가 네 운명을 바꿔줄게.}


보잘것 없는 소년이 회귀자가 되의 수백번의 회귀 끝에 괴물로부터 세상을 구한다는, 뻔하디 뻔한 이야기.


{...믿을수가 없군. 정말, 해내다니.}


"내가 해낼거라고 했지?"


{정말 놀랍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군. 자, 그럼 이제...}


"계약 종료지?"


{...그래.}


양복차림의 붉은 악마가 서류가방에 들어있는 수많은 계약서중 하나를 꺼내어 내게 내밀었다.



《계약서》


1.[메피스토는]은 [김철수]에게 회귀능력을 준다.

2.회귀능력은 [김철수]가 세상을 구할때까지 유지되며, [메피스토]는 이 능력을 중간에 회수할수 없다.

3.세상을 구하면 [김철수]는 모든 위협이 사라진 세상으로 회귀하고, 메피스토는 회귀능력을 회수한다.

4.[김철수]가 세상을 구하지 못하고 회귀를 포기할 경우, 그의 영혼은 [메피스토]의 것이 된다.


계약자: 메피스토. G. 펠레스, 김철수



{아쉽지 않나? 지금의 능력, 인간관계, 인생, 심지어 목숨을 수없이 바쳐 만든 평화까지. 전부 없던 일이 되는데?}


"회귀할때마다 그랬는데 뭘. 그리고 평화는 다음 세상에도 유지되잖아."


{그럼 뭐해. 모두가 네가 세상을 구했단 사실을 모를텐데.}


"됐어. 모두가 안전하다면, 그걸로 충분해."


{끌끌끌, 넌 참 재밌는 놈이야. 그래... 그동안 정말 재미있었지.}


악마가 계약이 끝난 계약서를 찢자, 검붉은색으로 빛나는 가시덤불이 날 감싸고, 정신이 희미해져갔다. 


그런 나에게 악마가 중절모를 내려 인사를 하며,


{너 덕분에 정말 즐거웠다. 부디 다음생은 행복하게 살아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간에게 경의를 표했고,


난 마지막 회귀를 했다.


.

.


다시 18살, 헌터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시점이 됐다.


하지만 이번 생은 좀 다르다.



"뭐? 베히모스? 얘가 잠이 덜 깼나, 헛소리하지 말고 밥이나 먹으렴."


"몬스터? 그래, 게이트에서 나오지. S급? 그런 높은 등급의 몬스터는 수십년전부터 안 나오기 시작했잖아. 너 역사시간에 졸았구나?"


악마와의 계약으로 얻은 평화로운 세상.


모든게 똑같지만 세상을 위협하던 괴물이나 악의 조직만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세상.


그래, 바로 이거지. 이 세상을 위해 수백번을 회귀한 거다.


평화로운것 빼곤 모든게 똑같은...


"으이구, 우리 동생. 아침부터 왜 이럴까? 누나가 뽀뽀라도 해줄까?"


같은...


"우리 언니 늙어서 그런가 이상한 소릴하네?"


"...막내는 조용히 밥이나 먹자. 그리고 언니 아직 꽃다운 25살이야."


"응, 늙은거 맞아. 응, 상했죠. 응, 아무말도 못하죠."


"이놈의 기집애들이 정말! 조용히 밥이나 먹어!"


...이 둘은 뭐지.


난 외동이고, 친척 동생이나 형누나는 커녕 애초에 친척이 없다.


근데 이 둘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아들, 정말 어디 아프니? 나랑 네 아빠 사이에 애가 안 생겨서 너희 누나 입양했다고 말했잖아. 그 뒤에 기적적으로 네가 생겼고, 네 누나 입양했던 고아원 들렀다가 동생까지 입양했고. 정말 기억 안 나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수백번을 회귀했지만 가족관계만큼은 단 한번도 변한 적이 없는데.


바뀐 점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철수야! 오늘도 같이 등교할래?"


"선배! 좋은 아침임돠!"


"여어, 후배. 오늘 같이 술 마실래?"


"철수학생, 잠시 교무실로 오도록."


"잠시 시간 되시나요? 된다면 밥이라도..."


아카데미 후배, 선배, 교사, 심지어 현직 S급 헌터까지. 별의별 여자들이 나와 엮였거나 엮일려고 한다.


{평화로운 세상은 좀 어떤가, 즐거워?}


"메피스토!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분명 평화로운 것만 바뀐 세상이라며! 근데 왜 내 인간관계까지 바뀐 거야!"


{자, 진정하고 잘 들어봐. 난 악마고, 인간들과 끊임없이 계약하는게 내 일이야. 너와의 계약이 끝났으니, 다른 인간들과 계약해야 하지 않겠어?}


"그게 저 여자들이랑 무슨 상관인데?"


{저들은 네 전 회귀, 그러니까 네가 세상을 구하는데 성공한 세상에서 온 자들이야. 너는 저들을 모르겠지만 쟤들은 널 알지. 저 사람들에게 넌 영웅이야. 당장 네 누나와 동생으로 있는 자들만 해도 너 덕분에 목숨을 구한 시민들이지.}


"...그, 말은...?"


{저들은 나와 계약했다. 너의 소중한 무언가가 되게 해달라는 계약.}


악마는 서류가방에서 여러장의 계약서들을 꺼내 나에게 보여줬다.


하나 같이 나와 관련된 인물이 되거나 나와 만나게 해달라는 내용들.


{아, 참고로 다들 마지막엔 너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니 잘 해봐라. 한명이라도 불행해지면 계약에 따라 내가 이 세상을 멸망시킬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잠만, 뭐라고!?"


{오늘밤 네 누나랑 교사가 너 덮치러 가니까 미리 준비하고.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라, 안녕!}


"야 이 미친놈아!!!"


악마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힘들게 얻은 평화로운 세상.

이 평화를 지킬려면 그녀들 모두와 결혼해야 한다.


"근데 우리나라는 일부일처재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ㅈ된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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