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돼. 내가 용사 파티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데.


용사는 스스로도 겸연쩍다는 듯 목을 큼큼거리며 가다듬었지만 뜻을 무를 생각은 없어보였다.


"이유라도 들읍시다. 왜 난데없이 저를 자르시는 겁니까."


이전 대규모 전투에서 실수한 것도 없고, 심부름도 잘 하고, 마족 전사들 사이에 숨어있는 마법사 암살도 잘 하고 못하는 게 없는데. 


내 질문에 성녀는 되려 어이가 없다는 듯 머리를 짚었고, 궁수도 허리에 손을 턱 올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법사는... 먼 산을 보며 '나는 모르는 일이오'하고 있었고.


그래, 너는 적어도 가담하지는 말아야지. 내가 멕여놓은 돈이 얼만데.


용사는 팔짱을 끼며 벼르고 있었다는 듯 주저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먼저 이번 베른 마을 습격사건에서도 사리사욕을 취하지 않았나."


사리사욕? 


"강도질이나 도둑질은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런 질 낮은 도적 아니라는 거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알지. 그러니 용사파티에 도적을 들인 것이고."


이제는 내가 되려 어이가 없어졌다. 아니, 뭐가 문제라는 거야, 그럼.


"자네, 매번 구한 마을에서 이것을 팔고 있지 않았나."


용사는 손에 꽉 쥐고 있었던 걸 들어 내게 보여줬다. 


"피규어요?"


"그래, 피규어. 그것도 내 피규어 아닌가!"


용사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손에 쥔 피규어를 더욱 내밀었다. 


이렇게 보니 퀄리티 장난 아니다. 목재로 만들었지만 쇠의 질감이 드러나는 갑옷을 입은 용사는 용맹하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성검도 비록 실제의 아름다움에 비하지는 못하지만 이 시대의 기술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인만큼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잘만 만들었구만, 뭐가 문제입니까!"


"가격이 문제 아니겠나! 이걸 1골드에 팔다니,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아하. 결국 용사님은 나무 덩이로 만들어진 자신의 형상을 너무 비싼 가격에 판다고 사리사욕을 취한다고 생각하는 거군.


문제점을 파악한 이상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내가 누구냐. 현대 사회에서 스마트폰 팔이로 손님을 쓸어모으다가 맞은편 영업점 사장에게 칼 맞아 전생한 게 바로 나다. 


"용사님. 1골드로는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으, 음? 으음... 중급 여관에서 열흘 숙박이 가능하겠지."


"맞습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이런 호구... 아니, 세상 물정 모르는 착한 용사님을 대할 때에는 타이르는 태도가 중요하다. 


"바꿔말하자면, 이 조각상을 구매한 이들은 이 조각상이 가지는 의미가 중급 여관에서의 열흘만큼 소중하다고 여기는 겁니다."


"...그렇, 지."


아주 간단한 시장원리처럼 보이지만 폰팔이.. 아니, 영업의 기본은 '거짓은 이야기하지 않는 것'. 바꿔말하자면 사실을 조금 거르는 건 상관 없다는 거다.


방금 용사에게 구해진 이들이 이성적인 효용 판단이 가능하겠는가? 그럴리 없지. 용사파티의 일원인 도적이 '용사님의 은혜를 받은 여러분들께 특가! 드워프 장인이 만든 용사님 조각상 1/10 사이즈가 단돈 1골드!'하면 나라도 넘어가겠다. 방금 죽을뻔한 사람에게 1골드 정도는 작은 돈으로 보이니까.


"어째서 그렇겠습니까? 신에게 선택받은 용사님 - 여기서 성호 한 번 그어주고 - 께서 직접 신의 힘을 담은 성검을 휘두르며 생명을 구하시는 모습을 눈에 담을 경험이 이 숲 속, 베른 마을 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있겠습니까?"


"거의 없겠지.."


"이번이 인생 마지막인 사람도 있지 않겠습니까. 촌장이라든지."


용사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아가리 털.. 영업의 핵심은 말에 적절한 정보를 담아 내용을 불리는 거다. 내용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그 내용을 자세히 살피는 걸 귀찮게 여기니까.


그나마 이 파티에서는 고등 교육을 받은 마법사가 트집을 잡을 수 있겠지만, 리스크 요소는 이미 뒷거래로 해결해놓은 상태다.


"그들에게 있어서 중급 여관에서의 열흘과 용사님의 모습을 담은 고급 조각상.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으음..."


"생각해보십시오. 중급 여관에서의 열흘. 저희 같은 방랑자들에게는 피로를 그나마 해소할 수 있는 여관이지만 수도의 최고급 여관만큼 호화롭고 기억에 남습니까? 전혀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산골 마을이기는 하지만 제 집이 있는 이들이 중급 여관에서 열흘을 잔다고 해서 그리 행복하겠습니까?"


"아니겠지.."


"결국 이들은 1골드를 지혜롭게 사용한 겁니다. 인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경험,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인연을 위하여 1골드를 기꺼이 지불한 겁니다."


눈이 풀린 용사는 이제 반 쯤 넘어온 것 같았지만 여전히 걸리는 게 있는 듯 머뭇거렸다.


"그치만 이 목각 조각상에 1골드는 너무 비싸지 않나.."


'왔다.'


지금의 용사에게 딱 맞는 해결책. 


"원가와 소정의 인건비를 제외한 금액은 모두 고아원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녀님."


"...맞아요."


성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 뜻을 따르는 이로서 거짓말은 할 수 없는 노릇. 


물론 나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소정의 인건비'가 얼마인지는 내 마음대로니까. 고아원에 기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으으음... 그런가..."


입으로는 고민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미 상황종료다. 내 눈을 피하기 위해 눈을 이리저리 또르륵 굴리고 있었으니까. 아마 너무 쉽게 나가라는 얘기를 꺼낸 게 아닐까 후회하고 있겠지.


"도적. 저도 할 말 있습니다."


"에? 성녀님도요?"


거의 끝나가는 상황에서 난데없이 성녀가 돌입했다.


"용사님의 지적과 유사하긴 합니다만, 상품을 판매할 때에 제 이름을 팔 뿐더러 거짓을 섞어넣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네? 거짓이요?"


이 지극히 정상인 밖에 없는 용사파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다들 성인군자처럼 거짓말을 혐오하는 데, 거짓말을 했다가 걸리면 무슨 꼴을 당할지는 뻔히 보이니까.


스윽-


성녀는 품에서 로자리오 하나를 꺼내들었다. 별다른 장식 없이 투박한 로자리오에는 햇빛에 색이 바랜 듯한 단풍색이 칠해져 있었다. 이번에 한정판으로 내놓은 성녀 굿즈, <성녀의 축복을 받은 로자리오>였다.


"저는 당신이 판매하는 로자리오를 축복한 적 없습니다."


아하. 성녀님의 불만사항, 확인 완료했습니다.


"저는 거짓으로 상품을 판매하지 않습니다."


"알아요. 그러니까 당신이 '굿즈'라는 것들을 판매할 수 있게 모두가 동의한 거고요."


"그 로자리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녀님의 축복을 받은 게 확실합니다."


성녀는 그런 적 없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당연히 본인 기억에는 없겠지.


"얼마전에 전선에 보급하기 위해 성수를 대량 축복하시지 않았습니까."


"네, 그랬죠. 짐마차에 가득 찰 정도로."


"그 짐마차 뜯어서 만든 겁니다."


"..."


성녀는 말문을 잃은 듯 입을 살짝 벌린 채 로자리오를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나에게로 돌렸다. 나는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짐마차에 가득 찰 정도로 성수를 축복할 때 짐마차에도 신성력이 흠뻑 스며들었으니까. 물론 신성력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성수와 달리 곁가지로 축복받은 짐마차의 신성력은 금방 흩어졌지만, 적어도 팔 때는 신성력이 충만했다.


".......하아."


한참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성녀는 결국 자신이 졌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곤 로자리오를 품에 집어넣었다. '아버지, 저를 용서하십시오'라고 중얼거리는 게 사죄의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크흠. 나도 할 말 있다."


아니, 무슨 줄줄이 소세지도 아니고. 오늘 날 잡고 컴플레인이 있는대로 들어오네.


나는 '너는 또 뭔데'라는 눈빛을 숨기지 않고 엘프 궁수를 쳐다봤다. 그야 성녀나 용사는 대체 불가능한 고용주지만 이 쪽은 나처럼 피고용자니까.


"내 모습을 그린 그림을 판매하는 건 그만두지 않겠는가."


"아하."


순간 그녀가 무엇 때문에 불만을 품었는지 알게 되었다. 용사파티의 그림을 그려 파는 일은 시작한 지 한참 되었는데 이제와서 불만을 품는다? 그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최근 내놓은 신상품이 문제인 것이겠지.


"<엘프숲의 궁수>가 문제신가 보군요."


"으, 으음."


궁수는 정곡을 찌른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침음을 흘렸다. <엘프숲의 궁수>는 최근에 궁수 굿즈라인에 추가된 포스터였다. 말 그대로 엘프의 숲에서 나무를 타며 활을 쏘는 궁수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었다. 그리고 치마를 입은 궁수의 특성상 나무를 타면-


"노출이 살짝 있기는 하죠."


"그래, 그거다!"


궁수는 순간 내 말에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를 냈다.


물론 노출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선, 소위 말하는 '절대영역'까지만 드러난 그림이다. 그러나 여태껏 노출이 전혀 없던 궁수의 굿즈 라인에서 이만큼의 맨살이 드러난다? 


'난리나지.'


게다가 한정판에는 <엘프숲의 궁수> 미채색 피규어까지 포함이 된다. 모든 이들이 궁금해하는 치마 안 쪽은 '저도 확인해본 적 없습니다'라는 이유로 표현을 하지 않고 있었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판매자로 이름을 내걸고 있는 용사파티의 도적조차 치마 안쪽을 모른다는 사실이 소위 말하는 '유니콘'들이 달라붙는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궁수님. 그게 노출입니까?"


"무슨 소리냐! 다리가 드러나는 게 노출이 아니면-"


"궁수님은 용사님의 비키니 아머가 노출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포커페이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펑! 소리를 내는 용사, 자신이 모시는 신의 취향이 민망한지 시선을 돌리는 성녀, 얼빠진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궁수.


그러나 내 표정은 진지하다.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다. 


"강력한 악적을 만날 때에 전력을 발휘하는 용사님의 복장이 노출입니까, 아니면 위대한 신의 뜻을 드러내는 복장입니까?"


"으으음..."


"용사님의 비키니 아머는 사제의 사제복과 다름이 없으며, 기사들의 전신 갑주와 다름이 없습니다. 전력을 다해야 하는 강력한 악적에 대한 스스로의 다짐이자 각오이죠."


그럴리가 있냐. 비키니 아머의 탓인지 평소에 갑옷을 고집하며 온 몸을 갑주로 치장하고 다니는 용사. 그런 용사가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비키니 아머로 변신할 때, 남자라면 그 변신에서 시선을 돌릴 수가 없다. 아니, 나는 솔직히 드워프 마을에서 구매한 영사기로 매번 찍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음흉한 사심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원래 사기를 칠 때는 말을 하는 사람, 메신저가 누군지에 따라서 사기가 될 수도 있고 진심을 담은 설득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저는 궁수님의 그 그림 역시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주하는 적을 쫓으며 자신의 마을을 지켜내는 궁수님의 늠름한 모습. 그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자로서 기록해야 하는 의무를 지었을 뿐이며, 궁수님의 모습만이 아니라 용사 파티의 건재함을 온 세상에 알릴 의무도 진 것입니다."


"....."


궁수는 멍하니 내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당연하지.


'그래도 그건 노출이 아니냐!'라고 한다면,


'용사도 노출이라는 거니까.'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고개를 푹 숙인 용사를 봐서라도 궁수는 그런 말을 못할 거다. 

 

그럼 여기서 마무리.


"그리고 모든 굿즈 판매 수익의 일부분은 늘 고아원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결국 용사파티의 목적은 신의 뜻을 세상에 전파하는 거니까요."


말을 끝맺은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성호를 그었다. 물론 나는 무신론자다.


"으으음..."


결국 침몰당한 궁수는 쭈굴쭈굴해진 채로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침울해진 분위기를 바꿔놓을 게 필요하다.


"아 참. 그리고 아까 잠시 대도시에 들려 디저트를 사왔습니다."


우울한 분위기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자고로 우울함을 달래는 데에는 단 게 최고다.


"베른 마을에서 처리한 마물의 시체도 정산 완료했고요. 대도시에 들를 때 호텔 예약까지 해놓았습니다."


마물의 시체도 내가 갈무리했고, 호텔 예약도 물론 내 이름값 덕에 싸게 했다. 


서서히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한다. 굿즈의 가격도 생각보다 이유가 있고,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상품으로 거짓말하는 것도 아니고, 굿즈를 팔아먹기 위해서 과한 노출을 넣은 것도 아니고. 


게다가 벌은 돈은 소정의 인건비를 제외하고는 고아원에 기부하고 있으며, 굿즈 판매 수익이 짭짤한 덕에 디저트나 호텔처럼 용사 파티 생활이 윤택할 수 있다.


판매하는 사람이 도적이라는 점? 일을 할 때에는 열심히 하고, 성녀가 기도할 때에는 옆에 앉아서 함께 기도한다.(물론 속으로는 굿즈 판매 수익을 정산하고 있었지만) 그리고 용사가 나를 잘라서는 안 되는 치명적인 이유.


"용사님. 부탁하신 그건 잘 처리했습니다."


씨익-


나는 용사에게 듬직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용사는 흠칫하더니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제서야 내 중요함을 깨달은 듯 몸둘바를 모르고 있었다.


'나 같아도 그렇겠지.'


용사가 강적을 만나면 비키니 아머를 입게 된다는 사실의 통제. 바꿔말하자면 내가 용사파티에서 쫓겨난다면 용사가 비키니 아머를 입는다는 소문이 온 대륙에 돌아다니게 되겠지. 용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항변하겠지만 그걸 보는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거다.


"그러면 간식이나 먹도록 하죠. 오늘은 에그타르트로 가져왔습니다!"


보따리를 풀어헤쳐 안에 든 디저트를 모두에게 나눠준다. 보온 마법이 걸려있는 간식용 보따리 덕에 에그타르트는 뭉근한 달콤함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구석에 숨어있다가 이야기가 끝난 이후 기어나오는 마법사를 눈으로 한 번 째려봐줬다. 


내가 너한테 먹인 돈이 얼만데, 이런 일이 있을 때까지 알려주지도 않았냐는 질책을 담아서.


"크, 크흠-!"


마법사는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에그타르트를 들곤 한 입 베어물었다. 고된 전투 이후의 달달한 디저트가 마음에 드는 지 모두 말 없이 녹아내린 얼굴로 에그타르트를 맛보고 있었다.


나는 아무도 볼 수 없게 고개를 돌린 뒤 씨익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고비를 잘 넘겼다.


이대로 몇달만 지나면 용사파티 따위 때려치고 저어기 남방 왕국에 별장이나 하나 구할 생각이다. 바다 보이는 곳으로다가.


그리고 용사파티가 마왕을 물리쳐서 할 일을 잃은 백수가 된다면-


'드라마나 하나 찍을까.'


그리고 굿즈로 어마무시한 돈을 벌어들이는 거다. 이번에는 수영복 버전까지 출시한다면-


"쓰읍-"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군침을 삼켰다. 이 사랑스러운 돈덩어리들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