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이었던 것) 순애






"..가지 않기를 바라지만.. 역시 안되겠지요."


선선한 밤의 바람이 불어온다. 


오늘은 만월이 뜨는 밤. 아마 환한 달빛이 시계탑을 비추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낭만적인 밤이겠으나.


내게는 그 무엇조차도 보이질 않는다.



"미안해."


"으음.."


손에 닿는 부드러운 볼의 촉감이 내 앞에 그녀가 있음을 알려준다.


나의 손에 자신의 손을 부드러이 포개고, 고개를 서서히 젓는 그녀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그대가 가야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저입니다. 단순한 어리광이 당신의 발걸음을 천근으로 만들 것이란걸 알고있는 저이고요."



예전이었다면, 그리 말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이나마 가벼워진 발을 들어내 떠날 수 있었을 터 였다.


나는 눈이 보이질 않는 맹인이고.


그런 맹인은 주로 촉각과 청각을 통해 상황을 판단하는 법이니까.



"그러니 저는.. 이곳에 서서."



그녀의 목소리는 한치의 떨림이 없었고.


고개를 젓는 행동 또한 한치의 어색함이 없었다. 


눈이 보인다 할지라도, 속아넘어갈 정도로 말이다.




얼마나 연습해온 것일까.


하루하루 다가오는 이 순간을 어찌 보내야 할지 얼마나 고뇌해온 것일까.


나는 그녀의 가슴 깊히 자리한 그 아픔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야.


나는 조금이나마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신의 대리자가 되어서 눈조차 보이질않는다는 것이 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내게 두 눈을 뜨지 않고서도 세상을 볼 수 있는 권능을 안겨주었으니.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그녀를 볼 수 있었다.


"...마지막 과제가 되겠군요."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던 나의 세상에는.


"여인을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하죠."


눈물이 맺혀있었다.



"제 인내심이 다하기 전까지 돌아와 주세요."



* * *





"크헉.."


"뭐..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용사여."



팔에 감각이 없다.


마치 엄동설한의 설산에 몸을 뉘인 것처럼 이따금 저릿저릿한 감각만이 감돌 뿐. 통증이 느껴지질 않았다.


하지만, 검을 휘두름을 멈추지는 않았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마치 관성적인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라 의식적으로 멈추는게 힘들어서.



"너의 무용은 가히 역대 용사중 최고라 칭할만하다. 나의 군세를 단신으로 돌파한 것이 그 방증이며, 지칠대로 지친 몸으로 나와 검을 겨룰 수 있었던 용사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닥쳐.."



잿가루가 휘날리며 호흡을 방해했다.


비록 신의 대리자인 몸인지라, 그것이 그리 큰 장애가 되지는 않았지만.


점차 퇴적된 잿가루들로인해 어느 순간 비릿한 피내음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조금 거슬렸다.



"하지만,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 역대 용사들 모두 나를 그 증오스러운 봉인구에 집어넣는데에 성공했지만, 오직 너만큼은 불가능 하겠지. 단순하게도, 너는 혼자이기 때문이다."


"봉인따윈 필요없어."


"..무슨 소리지? 그 말은 이미 패배를 염두해두고 나와 대적한다는 것인가? 용사가 단순 시간벌이용이라니.. 드디어 인간이 미쳤구나."


"헛소리."



쾅—!



마나를 일순간, 일점에 폭발시켜 마왕의 신형을 튕겨낸다. 비록 그에의해 팔의 뼈마디가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져 왔으나, 상관 없었다.


꿀꺽—


아직 포션은 충분히 여유로웠으니까. 팔이 조금 부러진다 한들 몇번이고.. 다시 고칠 수는 있었다.


포션이 원래 이런 맛이던가. 마치 물을 마시는 것만 같은 느낌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곧 그냥 털어냈다. 애시당초 별로 포션은 맛있는 무언가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 염두해둬야 하는 것은.. 더이상 마왕이 내 시간벌이따위에 넘어가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까지야 회복하는데에 성공했다지만, 다음 순간까지 이게 통할거라는 생각은 안하는 것이 좋다.


..미리 손에 포션을 쥐어두는 편이..?



저 멀리 마왕성의 부서진 잔해로 인해 만들어진 연기가 걷히자, 아무런 데미지조차 입지 않아 보이는 마왕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니, 오히려 입은 호선을그리며.. 웃고 있었다.



"..한방 먹었군."


포션을 넣어두었던 작은 가방이 너덜너덜하게 짖이겨져 있었고, 약의 내용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슨 의미지?"


그리 묻는 마왕에 나는 쓸모없어진 가방을 벗으며 되물었다.


"이걸 말하는건가."


"봉인따위 필요없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냐는 말이다."


"아…."


가방을 한쪽에 던져넣고, 다시금 돌입할 자세를 갖춘다.


"별 의미는 없다. 그저.."



빛이 번쩍이며, 몸을 비춘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일 터.


"..용사와 마왕의 증오스러운 연쇄는 내 대에서 끊길 것이라는 의미지."


"뭐라?"


말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마왕이 의문을 내밷었지만, 이를 기다려줄 의향은 없었다.


모든 신체의 감각이 일시에 내게 경고를 하고있는 이 상황이.


아마, 내가 머지않아 쓰러질 것이란걸 알려주는 것만 같았으니.



물론 이내 그 뜻을 파악한 마왕이 크게 폭소하며, 날뛰어버려서는.


귀조차 이명으로 먹먹해져 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았으나.


상관없었다.



오감이 모두 마비되어버린지 오래였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언젠가.


다시금 세상을 보기위해 띄어져있는  은.


마왕을 직시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줬으니까.




* * *



["제 인내심이 다하기 전까지 돌아와 주세요."]


그리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분명히.


눈물이 고여서는 떨어지려 하고있었다.


그녀, 자신도 차마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건지.


조금, 아주 조금, 살결이 떨리면서, 그녀는 내 손위에 포갠 그녀의 손으로 그 눈물을 받아내려 하지만.


노력하는 그녀에게는 조금 애석하게도.


나는 더이상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아니었다.


흐르는 그녀의 눈물을 손끝으로 받아내니.


이번엔 굳이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을정도로, 화들짝 놀란다.


["어..어떻게.."]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엽게만 보여져 살짝 웃음지으니, 다시금 놀라는 그녀.


혹자는 창백하다 말할 그 피부가 붉게 달아오르니, 마치 홍당무처럼 느껴지는게 너무나 아름다워.


다시 돌아와 그녀를 마주할때는.


많이 웃어야겠다는 것을 마음속 깊히 다짐하던 순간이었다.



[너의 얼굴을 잊기전에 다시금 돌아오겠다.]



당시에 그리 말했던 것은 어찌보면, 조금은 비겁한 말이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게.



처음으로 보았던 그녀의 미소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터라.


내가 설령 죽는다 하더라도, 그 모습만큼은 잊기 힘들 것 같았으니.





* * *







장붕이들을 화나게 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 첫번째는 소재를 쓰다가 마는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