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신을 위해서 싸운다고 생각했다.

아무렇지 않게 다른 생명을 유린하는 마족이야말로 신에 반하여 세계를 위협하는 악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아니였다ㅡ





"감히 마족을 없애다니. 내가 그들을 창조하는데 얼마나 큰 노력을 들였는지 아는가?"
"다른 종족들이 마족들과 싸우는걸 보며 즐기려고 했는데, 네놈이 없애버리는 탓에 다 망쳤다."

신이라는 것은 그저 우리들이 서로 싸우며 고통받는 것을 즐기는 미치광이에 불과했고
마왕을 없앤 나는 신에게 격려받기는 거녕, 그 자리에서 수많은 저주를 받았다


왕도로 돌아가던 나는 끝없는 무력감과 허무감에 빠졌다

'신이 선한 자의 편이 아니라면, 신을 믿었던 자들은 뭐가 되지?'
'살아가는 내내 신에게 했던 감사는? 평생동안 신을 위해 바쳤던 시간은? 줄곧 구원을 바라며 빌었던 기도는?'

신에 대한 환멸과 배신감에 가득 찬 상태로, 나는 왕도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어떤 강자도 해내지 못한 마왕 토벌을 성공하시다니! 필시 신의 인도 덕일 겁니다"

평소에는 기쁘게 들었을 말이지만, 지금은 헛구역질이 날 정도이다

"신의 인도라... 그보다는 이때까지 힘을 합쳐 싸운 여러분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사람들에게 신의 실체를 알리고 싶었지만
그동안 믿어왔던 신을 전면 부정하는건 아무리 용사라 해도 반발이 심할 것이다

'일단은 교회의 영향력부터 줄이자...'

그렇게 생각한 난 '인본진리교'라는 새로운 단체를 만들었다

헌금을 요구하는 교회가 거슬리던 귀족... 교회에 반감을 느끼던 실용주의자들...용사를 동경하던 이들까지
단체의 몸집을 키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교회 간섭 최소화에서, 점점 신의 필요성을 줄여가는 식으로 이념을 바꿔가고
드디어 몇몇 도시에서 공개적으로 연설할만한 영향력을 갖추게 되었다

"신에게만 의지해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습니다!"

"거대한 전진은 위대한 결단력을 가진 선구자와, 이성과 정의로 무장한 수많은 범인이 함께할 때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 선구자에 가장 걸맞는 존재는 용사님이며, 이제 필요한것은 여러분이 용사님을 따르는 것!"

"장벽을 부수고, 전진을 실현합시다!"

수많은 민중들이 환호하며, 용사의 존함만을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