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의 초능력자』


히어로와 빌런, 마법과 초능력, SF와 판타지가 혼란하게 뒤섞인 히어로 만화다. 주인공은 '왼손 한정' 최강의 초능력자.


이미 짐작한 사람도 있겠지만, 이 만화에는 개그 요소가 많다.


'헤로스'라는 캐릭터 역시 그런 개그 요소 중 하나였다. 아무런 능력도 없지만 어째서인지 강자로 착각당하는 '무능력자' 히어로.


특출난 점이 있다면 남들보다 조금 더 정의롭다는 점일까.


내가 왜 이 개그성 히어로에 끌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능력하다는 동질감… 때문은 아니겠지.


오히려 동경에 가까웠던 것 같다.


무능력하지만 항상 옳은 길을 선택하는 그 히어로가, 부러웠다.



'…그렇다고 이런 빙의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내가 부러워했던 건 그 내면의 강함이다.


이상하게 오해받는 행운도, 멋들어진 겉모습도 아닌, 내면의 선한 마음.


근데 그걸 나같은 패배자로 갈아치워버리면 어쩌자는 거냐.




*




도망쳤다.


'헤로스'라면 절대 도망치지 않았을 거다.


아마 바보같이 웃으며 가장 앞에서 버티고 서있다가, 어쩌다가 맞물린 우연 덕분에 위기를 넘기겠지.


그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은 헤로스를 칭송할 테고 말이다.



'젠장, 그런 거, 할 수 있겠냐고.'



우연, 운, 그런 것 따위에 목숨을 걸 정도로 나는 담력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설령 그것이 얼떨결에 떠넘겨받은 캐릭터의 목숨이라고 할 지라도, 두려웠다.


나는 뚜렷한 정의를 세우지도 감추지 못할 선량함을 갖추지도 못했다.


아픈 건 무섭다. 스트레스를 견디기 싫다. 무서운 괴물들을 상대로 다른 사람을 지켜낼 자신이 없었다.


나는 히어로가 아니다.



"…아."



정신없이 도망치다보니 어느새 시내였다.


빌런들은 어떻게 되었지? 내가 도망치도록 그냥 둔 건가? 


그래, 헤로스의 이름값이 있으니까. 내가 물러섰을 때 오히려 안도했으리라.



"…헤로스?"



숨을 돌리고 있는데, 내가 빙의한 영웅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어린아이였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나 되었을까.



"헤로스죠?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이런, 꼬마야. 아쉽지만, 나는 그런 영웅이 아니란다."



나는 헤로스가 아니다.


헤로스는 빌런에게서 도망치지 않는다.



"앗, 아니에요?"

"그래, 헤로스는 조금 더, 멋있는 사람이지…."



실망한듯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쳇, 하며 퉁명스럽게 손을 쳐내는 아이. 왠지 입에 씁쓸한 맛이 감도는 기분이다.



"헤로스 아저씨를 만나면, 하고싶은 말이 있었는데…."



하고싶은 말이라.


아쉽지만, 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 헤로스가 벌어둔 돈으로 성형이나 하고 잠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 모습은 너무 눈에 띄니까.



"꺄아아아악 - !!"

"…어?"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왔다.


아니, 어디선가가 아니다.


내가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했던 그 도시의 어둠이, 네온 사인 가득한 양달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빌런이다.



"흐응, 모습은 역시 헤로스가 맞는데? 이상하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리고.


세상이 반으로 갈라졌다.


거리마다 늘어선 층층의 건물이, 포장된 도로가, 도로 위에 서있던 자동차들이.


반으로 갈라지며 소음과 함께 미끄러져내렸다.



"아니면…,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거나?"



그야말로 인지 외의 무언가였으나, 그 참격은 나를 털끝조차 건들지 않았다.



"이야기는 들었지. 히어로 '헤로스'는 어떤 빌런이라도 절대 먼저 공격하지는 않는다고 했던가~? 그냥 사람 참 좋다 싶었는데…."

"…."


"사실, '못하는' 거지? 선공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 아니면 그런 방식의 초능력인가? 누군가가 다칠 것 같을 때는 항상 제 한몸 바쳐서 뛰어든 것도…. 사실,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던 거지?"



아니다.


이 또한 터무니없는 오해일 뿐이다.


헤로스는 아무런 능력도 없다. 선공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초인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먹일 능력 자체가 없다.


누군가를 대신해 몸을 던지는 건, 단순히 이 인간이 바보같을 정도로 착해서 그랬을 뿐이다.


모든 게 바보같은 오해였다.



"흐응, 이 '비밀'이 다른 빌런들한테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히어로 활동은 힘들어질 텐데~."

"…뭘 원하지?"



하지만, 이용할 수 있다.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다. 살아나갈 수 있다. 살아서, 어떻게든 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


저렇게 믿고있는 이상, 나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죽지 않는다.



"헤로스는 절대 빌런과 타협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푸흡, 애초에, '공격당하는 게' 승리 조건이니 그랬을 뿐이구나? 이것 참, 천하의 헤로스도 생각보다 별 거 없었네~."

"…."


"아니거든요! 헤로스는 세상에서 가장 세거든요! 이 아저씨는 헤로스 아니에요!"



…나와 이야기 중이던 어린아이다.


내 뒤에 서있어서 목숨은 건졌나. 다행이다.



"어머? 우리 꼬마 친구, 헤로스 팬이구나? 그런데 이걸 어쩌지? 이 아저씨는 헤로스가 맞는데? 푸흡…."

"흥, 진짜 헤로스는 아줌마같은 사람 수십명이 와도 못 이기거든요!"


"아, 아줌마…? 흐응, 나는 예의없는 꼬맹이는 별로인데…."



그리고, 바람이 스치는가 싶더니.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의 머리가 떨어졌다.



"크, 푸흐, 푸흐흡…! 설마 반응도 못할 줄이야. 이거, 너무 재미가 없는데? 이야, 그 표정, 너무 마음에 들었어."

"…."



헤로스가 있는 곳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


그렇기에, 헤로스가 최강의 영웅이라 불린 것이다.


사람의 목숨이 깃털보다 가벼운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힘 없는 사람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적을 쳐죽이는 것보다 몇 배는 어려웠으니까.



"다른 히어로들이 곧 오려나? 아아, 이거 참, 최강의 영웅이 절망하는 모습을, 더 구경하고 싶었는데. 푸, 푸흐흡…."



헤로스가 있는 곳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


헤로스가 강하기 때문이 아니다.


무능력자인 헤로스의 곁에서 아무도 죽지 않은 이유는, 강하다고 '착각'당하는 헤로스가 가장 앞에서 몸을 던졌기 때문이다.


순전히, 그의 선함과 용기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행운이나 우연 따위가 아니라. 



"Kap'ra= Sfadeerr…."

"…지금 뭐하는 거야?"



나는 헤로스가 아니다.


나는 영웅이 될 수 없다.


무능력한 주제에 멋대로 사람 좋은 웃음이나 지어보이는, 그런 호인이 나는 될 수 없다.


나는 헤로스가 아니다.


나는, 무능력자로 남고 싶지 않다.



"Fas,de es noxe…."



『왼손의 초능력자』


히어로와 빌런, 마법과 초능력, SF와 판타지가 혼란하게 뒤섞인 히어로 만화다.


즉, 마법과 판타지가 존재한다.


나는 이 만화의 꽤 유별난 애독자였다. 기껏해야 설정딸 수준에 불과한 의미없는 주문 몇 자 정도 기억에 남아있을 정도로.



"…Daes for tat."

『대가는?』



주문을 완성한 그 순간, 시간이 멈췄다.


아니, 불길한 목소리가 시간을 잠시 잠재웠다.



"헤로스라는 이름."

『그것은 네 것이 아니구나. 하여, 불가하다.』


"일어나지 않은 일의 지식."

『과연, 흥미롭구나. 허나, 부족하다.』


"…젠장, 뭘 바라지?"

『그런 것이야, 자네가 더 잘 알지 않겠나?』



비웃음이 가득 들어찬 목소리로, 혹은 무언가 재미있는 상황을 즐기는듯 들뜬 목소리로.


'악마'가 말했다.



『자네가 가치있게 여기는 것을 내놓게.』

"…'진실된' 이름을 바친다."


『저런, 그걸 버리면 '이야기'가 끝나도 돌아갈 수 없게 될 지도 모르는데?』



…돌아갈 수 있는 건가.


아니, 유혹일 뿐이다. 악마의 헛소리를 진지하게 들어서는….



『'시간'을 걸고 맹세하지. 선견하여, 예언하겠다. 이름을 버리지 않는다면, 언젠가 원래 세계로 돌아갈 기회가 생길 것이다.』

"…."



어차피 이 상황에서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빌런은 내가 '선공'을 하지 못할 뿐이라고 여기고 있으니까.


다른 빌런한테도 그 정보가 알려질 테고, 나는 계속 '혼자' 살아남겠지.


비겁하게도.



"…바치겠다."

『무엇을?』


"나의 이름을, 네가 예언한 미래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가능성을 바친다."

『거래는 이루어졌다. 무엇을 바라지?』


"하레스의 거짓된 명성에 걸맞는 힘을."

『자네도 알고있지 않나? '전부'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그래.


'왼손'만은 주인공이 최강이니까 말이지.



"…등, 등이 좋겠군."

『…진심인가? 왼손과 오른손의 자리는 이미 차지한 자가 있지만, 다리나 머리 정도라면 남아있을 터인데.』



하레스는 항상 누구보다 앞에서 달려나가던 히어로다.


하레스에게 지켜진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건 하레스의 등뿐이었다.


하레스는 항상 자신의 몸을 던지던 히어로다.


하레스에게 방해당한 빌런들이 볼 수 있던 것 역시 다른 사람을 품에 안은 하레스의 등뿐이었다.



"그래, 계약을 이행해라."

『공정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목소리가 아득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 흐응? 뭐야, 아무 일도 없잖아? 하, 하핫, 내가 혼자 당황해서 먼저 공격할 거라고 생각한 거야? 아쉽겠네~. 그런 간단한 속임수에는 안 넘어가서."

"…과연, 이게 '등'인가."



겁 먹고 숨으려던 나에게 딱 어울리는 능력을 얻었어.



"…너, 이름이 뭐지?"

"이제와서 그걸 물어보는 거야? 흐응, 뭐, 대답해줄게. 나는…."


"필요없다."

"…와, 나도 모르게 한 대 칠뻔했네."



능력을 발동하자 몸에서 청록색의 빛이 흘러나온다.


흔히 히어로들이 '슈트'를 착용할 때 나오는 빛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어둡고 차가운 느낌의 빛이다.


그것이 내 몸을 감싸며, 단단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오각형과 육각형의 단단한 짜맞춤을 이룬 그 옷은….



"…거북이?"



거북이의 등껍질을 닮아있었다.



"하레스에게 이런 슈트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



빌런을 말을 더 이어가지 못했다.


내가 빌런에게 몸을 던지는 순간, 나의 온몸이 회전하며 거북이 등껍질의 형상을 한 무기가 되었으니까.


배관공이 자동차 타고 달리는 레이싱 게임의 투척형 아이템같은 모습.


최강이라는 말 답게, 빌런은 순식간에 죽음을 당했다.


…조금 어지럽다.



"닌자 몰살…인가."



닌자 거북이는 아니겠지. 응.